난을 놔두다보면(키우는게 아니고)

역시 애정을 쏟지 않으면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몇년째 때가 되면 꽃도 피고 푸릇푸릇함을 잃지 않은 난이 있다

그 난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간혹 몇줄기 잎을 억지로 고사시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병들고 말라 비틀어진 잎이 축 늘어지면

그것을 떼어내버린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듯 새 잎이 나와 생명력을 뽐낸다.

상처는 

억지로 되돌리려 한다고 해서 되돌려지는 것이 아님을... 

그래야 새순은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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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2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 잎이 꼭 저 같아서 좀 아픕니다.
아픈 이파리 아래 새 순이 돋겠지요?

하루살이 2008-05-2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돋아날 겁니다.
 
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인 나는 필립 말로와 같은 탐정을 꿈꾼다. 그래서 탐정사무소를 차렸지만 그가 맡는 일이라곤 대부분 잃어버린 동물을 찾아 주는 것이다.

학창시절 왕따 당하기가 일쑤였던 주인공은 동급생들의 빵을 사다주고, 책가방을 들어주던 일을 때려치고 과감히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찾아든다. 순전히 필립 말로 덕분이다. 물론 그 과정엔 상처만이 가득했지만...

말로는 당시 내 주위에 있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제치고 성적을 더 올릴 수 있을까 하는 방법밖엔 가르쳐주지 않았고 주위의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행복하게 보일까 하는 데만 부심했다. (18쪽)

주인공의 학창시절에 대한 고백은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진짜 행복한게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방법에 몰두하는 모습. 그래서 다들 "행복이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고 그 정의에 근접한 삶을 자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짜 행복감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행복의 정의와 닮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말로 처럼 여인들과의 로망을 꿈꾼다. 그래서 여사원을 구하지만, 웬걸 할머니가 찾아와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티격태격 속에서 삶은 성숙되어 간다.

 "익숙해지면 나쁜 일만 있진 않아요"라고 위로하는 불법이민자의 말은 그의 삶에도 적용이 될련지 차츰 할머니와의 동행에도 익숙하게 된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과 직면하는 주인공은 비로소 탐정다운 일이라는 것을 해본다. 그리고 주인공의 맹활약에 힘입어 사건은 해결된다. 반전도 재미있고, 특히 버려지는 애완견에 대한 신랄한 비난도 짜릿하다. 귀엽다고 예뻐해주다가 어느 순간 길거리에 내팽겨쳐지는 유기견이 우리나라에도 많기에 그냥 흘려듣기에는 마음이 아프다.

옛날 개한테는 물면 물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요즘 개는 느닷없이 물어. 자기 주인도 상관 안 해. 뭐, 마음의 병 같은 거지. 권세증후군이라고... 자신을 무리의 보스라고 착각하는 거지. 자신이 가장 위대하고 뭐든 자기 뜻대로 된다고 믿어버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켜. 봐, 요새 아이들하고 똑같잖아. .. 강아지 때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것이 원인이야.(242쪽)

이 대목 또한 허투루 흘려듣기에는 현실비판적 시선이 매섭다.

사람간의 신뢰, 또는 사람과 동물 간의 사랑 등을 둘러싼 관계라는 것이 때론 맹목적으로 때론 선입관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만이 그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은 꼭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래서 좌절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게지만, 그래도 유쾌할 수 있다는 것. 아니 유쾌하게 내가 고집한 길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 물론 그 길이 내가 원하는 그곳으로 향하진 않을지라도... 그러니 고독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해본다. 아님 그 생각만으로 현실을 위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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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한 밤에 바삭한 토스트를 먹으면서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군요.
내 길이라...길이 잘 안보일 땐 누군가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떨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하루살이 2008-05-2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유쾌한 책이랍니다.
맞아요. 잠시 멈춰서는 법을 알아야 길도 잘 보이기 마련이죠. ^^
 



 

상처를 받으면 흉터를 남긴다.

가만히 두면 그 상처는 더욱 커져 이내 산산조각난다.

그래서 땜질처방이라도 해야한다. 

금 간 마음에 반창고라도 붙여야 한다.

그게 실컷 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알코올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으며, 깊은 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삭이는 것보다는 낫다.

비록 그 흉터를 가릴 순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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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는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꽤 성공한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고 간 소재들이 한번쯤은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당연히 매스컴에 등장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극단적 소재인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극단적인 예를 잘 활용함으로써 극의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론 이 드라마가 작가에 대한 꿈과 두려움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가는 시청률이라는 악마와 같은 숫자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률은 좋지 않지만 적극적인 마니아들을 형성하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것도 있다. 온에어 속에서는 인기와 마니아 사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가들의 두려움과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드라마의 영향력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 중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권력욕이다. 권력욕이란 거창하게 누군가를 지배하는 지위, 계급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는 육체적 변화보다도 정신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 정치적 권력적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온에어의 마지막회에서 김하늘이 낭송하는 편지는 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실제론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도 괜찮을 터인데 은연중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런 욕망을 드러낸다. 때론 거칠게 때론 소리없이. 어떤 부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휩싸여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작가라는 엄숙한 도덕주의 또는 경건주의가 아직도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드라마의 한계점도 노출된다.

근래에 보았던 드라마 중에는 <고맙습니다>가 어느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에이즈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 이후 에이즈 환자를 위한 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변화 등이 뒤따라 왔을까.

온에어 속 편지를 쓴 동생은 과연 평생토록 언니를 바보가 아닌 모습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보단 분명 나아졌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예 반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유쾌발랄함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움직여보겠다는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엄숙주의를 벗어난 삶의 가벼움에 대해서 박수를...

어쨋든 사람의 습관과 행동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는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확고부동한 그 무엇을 지탱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세심한 드라마가 그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그래서 사랑은 시작될지도 모른다. 온에어가 드라마제작을 씨줄로 사랑을 날줄로 가지고 있던 것도 그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만 한다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의무감으로 지니지 않고 자유롭게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거나, 분방하게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바보상자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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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낸 가족들이 12일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함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이제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영화가 한편 있다.



씨 인사이드

 

2007년 개봉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씨 인사이드>는 안락사에 대해 다루었다.

26년 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라몬 삼페드로,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라몬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두 명의 여자가 찾아온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수다스럽지만 순수한 여인 로사. 그녀는 라몬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을 위해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또한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변호사 줄리아. 라몬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안락사 소송을 도와주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지만, 그 감정조차도 그들에겐 너무나 버겁다.

그리고 또한명 주목해야 할 사람은 생명의 존엄성을 설파하는 추기경(?), 자신도 장애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명을 영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라몬에게도 그의 가족들에게도 깊은 상처만을 남긴다.

변호사 줄리아와의 사랑이 점차 깊어져갈 때 이 사랑이 라몬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막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마저도 안락사에 대한 그의 열망을 식혀주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어쩃든 살아야 한다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정말로 어쨋든 살아가는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과 어떻게 다를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것에 대한 결정은 스스로에게 주어져야 할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일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다.

엉엉 눈물을 흘리는 영화가 아니라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현재 노령화 사회로 치닫는 우리에게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게된 우리에게도 잔잔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너울을 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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