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인 나는 필립 말로와 같은 탐정을 꿈꾼다. 그래서 탐정사무소를 차렸지만 그가 맡는 일이라곤 대부분 잃어버린 동물을 찾아 주는 것이다.

학창시절 왕따 당하기가 일쑤였던 주인공은 동급생들의 빵을 사다주고, 책가방을 들어주던 일을 때려치고 과감히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찾아든다. 순전히 필립 말로 덕분이다. 물론 그 과정엔 상처만이 가득했지만...

말로는 당시 내 주위에 있던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제치고 성적을 더 올릴 수 있을까 하는 방법밖엔 가르쳐주지 않았고 주위의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행복하게 보일까 하는 데만 부심했다. (18쪽)

주인공의 학창시절에 대한 고백은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진짜 행복한게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방법에 몰두하는 모습. 그래서 다들 "행복이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고 그 정의에 근접한 삶을 자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짜 행복감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행복의 정의와 닮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말로 처럼 여인들과의 로망을 꿈꾼다. 그래서 여사원을 구하지만, 웬걸 할머니가 찾아와 떡하니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티격태격 속에서 삶은 성숙되어 간다.

 "익숙해지면 나쁜 일만 있진 않아요"라고 위로하는 불법이민자의 말은 그의 삶에도 적용이 될련지 차츰 할머니와의 동행에도 익숙하게 된다. 그러던 중 살인사건과 직면하는 주인공은 비로소 탐정다운 일이라는 것을 해본다. 그리고 주인공의 맹활약에 힘입어 사건은 해결된다. 반전도 재미있고, 특히 버려지는 애완견에 대한 신랄한 비난도 짜릿하다. 귀엽다고 예뻐해주다가 어느 순간 길거리에 내팽겨쳐지는 유기견이 우리나라에도 많기에 그냥 흘려듣기에는 마음이 아프다.

옛날 개한테는 물면 물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요즘 개는 느닷없이 물어. 자기 주인도 상관 안 해. 뭐, 마음의 병 같은 거지. 권세증후군이라고... 자신을 무리의 보스라고 착각하는 거지. 자신이 가장 위대하고 뭐든 자기 뜻대로 된다고 믿어버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켜. 봐, 요새 아이들하고 똑같잖아. .. 강아지 때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것이 원인이야.(242쪽)

이 대목 또한 허투루 흘려듣기에는 현실비판적 시선이 매섭다.

사람간의 신뢰, 또는 사람과 동물 간의 사랑 등을 둘러싼 관계라는 것이 때론 맹목적으로 때론 선입관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만이 그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상은 꼭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래서 좌절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게지만, 그래도 유쾌할 수 있다는 것. 아니 유쾌하게 내가 고집한 길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 물론 그 길이 내가 원하는 그곳으로 향하진 않을지라도... 그러니 고독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해본다. 아님 그 생각만으로 현실을 위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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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한 밤에 바삭한 토스트를 먹으면서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군요.
내 길이라...길이 잘 안보일 땐 누군가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떨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하루살이 2008-05-2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유쾌한 책이랍니다.
맞아요. 잠시 멈춰서는 법을 알아야 길도 잘 보이기 마련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