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에 집착하는 버릇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흔히 영화든 소설이든 연극이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질문은 "어떤 이야기냐?" "어떤 내용이냐?"가 대부분이다. 스토리를 중심에 두지 않고 캐릭터나 이미지의 충돌 또는 분위기만으로 끌고 가는 것들의 매력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매력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것들도 많다.  

<놈놈놈>은 스토리만으로 따지자면 빈약하다. 그러나 '추격'이라는 테마로 살펴보면 남다른 재미가 있다. 물론 세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주는 묘미도 만만치않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쫓아가게 되면 다른 무언가가 쫓아오게 되어 있어. 결국 우리 인생이라는 게 쫓고 쫓기는 연속인거지. 피할 길이 없어. 

박도원은 윤태구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윤태구를 쫓게 된다. 그렇다면 박도원이 쫓기는 다른 무언가는 무엇일까. 피할 길 없는 그 무엇 말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꿈을 품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도원은 오히려 그 꿈에 쫓기는 것은 아닐까.  

꿈을 향해 쫓아가기 보다 꿈에게 쫓기는 상황.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잃어버린 땅만큼이나 척박한 황무지일 것이다. 우린 무엇을 쫓고 무엇에게 쫓기고 있는가. 그림자를 쫓지 말고 환상에 쫓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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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구름



빛과 성에 

 

구름 뒤에 가려졌던 빛이 얼마나 급한지 곧게 곧게 뻗어 내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들. 눈앞에 있지 않더라도 항상 있을 것임을 믿게 만드는 것들. 그것은 모두 빛이 된다. 말 그대로의 빛이요, 누군가의 빛이기도 하다.  

꽁꽁 언 성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가움을 전해준다. 그러나 유리창 뒤에서 비쳐지는 빛 덕분에 조금은 따스함을 얻는다. 빛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을 데워준다. 얼었던 마음을 녹인다.  

빛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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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기도 전에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내 안의 적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김종래 <밀레니엄맨 칭기즈칸> 중에서

목에 칼을 쓰고 탈출하고 뺨에 화살을 맞고, 가슴에 화살을 맞으며 도망쳤다. 아내가 납치됐을때도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전쟁에 지고서도 더 큰 복수를 결심했고 군사 100명으로 적군 1만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칭기즈칸이었다.

더이상 앞으로 갈 수 없다고. 이젠 끝이라고 말할 때조차, 철저한 암흑에 빠졌다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때조차, 길은 앞에 놓여 있고 빛은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희망은 절망을 더욱 크게 만드는 부조리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놓지 않아야 할 끈은 희망이다. 희망을 품었을 때만이 차가운 가슴이 따듯해지고, 행복의 씨앗은 움틀 수 있다. 그 씨앗이 어떤 열매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희망의 빛과 물과 토양은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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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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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수신하던 사람들이 모여 바이칼호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행은 새로운 문명에 대한 접근과 이국적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냥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자 하는 휴양과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여행은 플러스만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봄으로써 덧씌워진 나의 껍질을 벗기는 마이너스 작업도 병행한다. 이 책의 저자 신영길씨는 바이칼호로 가는 길에서 자신의 마음뚱아리를 줄여나감으로써 순수에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울지마라. 그러게 애초에 함부로 따라나설 일이 아니지 않았더냐. 무슨 일 있겠느냐고, 그래 이 나이에 별일 없을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말이다. 누가 있어 내 안의 기막힌 별을 탐내겠느냐고, 내 마음을 빼앗길 일이 있겠느냐고, 기적은 없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말이다. 인생을 헛산 거다. (157쪽)

그래서 깨우친 것이 무엇일까. 자신이 흔들리며 비워내고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마음을 닫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내 무지함이 탄로날까봐, 내 안의 황폐함이 드러날까봐 두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닫고 사는 때가 있다. 어느 때, 무슨 연유로 자물쇠를 걸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마음을 열려고 해도 이제는 열쇠를 찾지 못해서 열지 못한다.... 마음을 여는 데도 마스터키가 있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자물쇠라도, 아무리 복잡하고 오래된 원한이라도 열 수 있는 만능열쇠가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닐까. (167쪽)

사랑으로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면 어떤 삶이 기다릴까.

일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삶을 보려고 했지,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행복의 길은 내 안에 있다. 행복을 막는 진짜 적은 마음속 질투, 미움, 자만심, 두려움 같이 부정적인 감정들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보다 불필요한 것ㅇ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로워졌는가에 달려 있다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음미해볼 일이다. (204쪽)

그러나 깨달음을 얻고 새로 시작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면서 또한 고통의 길이다. 그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208쪽)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이 참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때는 외롭고 두려워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인가라고. 왜, 선생님에게만은 그런 슬픔이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170쪽)

무뎌진 부리를 돌로 쪼아 피를 흘려가며 다 닳아없애 새 부리를 얻고 그 부리로 무뎌진 발톱과 깃털을 뽑아 날카로운 발톱과  깃털을 새로 얻음으로써 부활하는 솔개처럼, 고통의 과정을 인정하고 극복하고, 그 속에서 행복의 길을 찾고, 행복에 젖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 바로 바이칼호 여행이 가져다 준 삶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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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끝나갈 때면 노오란 은행잎을 비롯해 오색의 단풍잎들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길을 걷다 그 화려한 색에 놀라 단풍을 하나 집어들어 책사이에 끼워 놓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이 그냥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일 터이다. 단풍은 그렇게 찬란했을 때 땅에 떨어지는 걸로만 알았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요즈음. 산을 오르다 갑자기 낙엽이 되지않고 끈질기게 가지에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을 보게됐다. 단풍나무의 그 화려한 잎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칙칙한 갈색의 쪼그라든 잎들만이 처량하게 매달려 있었다. 단풍의 색을 유지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색을 다 잃어버리면서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레한 그 잎은 탐욕에 대한 깨우침을 준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야 했음에도 기어코 자리를 지키려 한 그 잎의 욕망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듯했다. 퇴색의 끝자락까지 버텨보았자 그것은 안타까움조차 자아내지 못한다.

단풍나무 옆엔 소나무가 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솔잎은 어떻게 독야청정할 수 있을까. 솔잎은 보통 2~3년에 한번씩 물갈이를 한다고 한다. 즉 솔잎 또한 낙엽이 되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솔잎이 나오는 것이다. 그 순환의 물결이 푸루름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솔잎이 말해주는 청정한 마음이다.

퇴색은 누구나가 겪어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퇴색이 주는 초라함에서 벗어나 청청하고 맑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키는 자세에 있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언제나 젊은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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