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이 하나의 선택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이는 그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언짢은 기분으로 일어나고 습관처럼 일하러 가고 출근길에도 얼굴에 웃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생활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날마다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 웃음과 열정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연료다. 세상은 열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열정적인 사람을 따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열정을 가진 자의 것이다.  

-폰더씨의 실천하는 하루 중에서 

열정을 불사르도록 만드는 것은 확실한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과감한 결단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천만이 열정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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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라는 단어는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렇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단골 소재로 등장해 전혀 낯선 소재가 아니다. 특히 ㅇㅇㅇ 공화국 시리즈를 통해 급박한 정치적 변혁의 과정을 TV를 통해 맛본 경험은 쿠데타라는 '사건' 이외에 그것에 가담하는 '사람'들에게도 눈길을 보낼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만들었다.  

<작전명 발키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했던 독일 내 반나치 세력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5번의 암살시도 중 맨 마지막 시도이기도 했던 실패한 발키리 작전의 실화가 그 주요 내용이다.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한 암살이라는 것만 특이할 뿐 실제론 쿠데타 과정 속에 놓여진 여러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드라마 ㅇㅇㅇ 공화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의 매력이 반감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특히 먼저 통신과 방송 등을 장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거나 내부자 배신의 파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익히 알고 있다는 것 등등 쿠데타 진행과정에 대한 긴박감과 상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익숙한 소재이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긴장의 리듬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특히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하는 수뇌부, 집권세력과 쿠데타 세력간에서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복불복 심정으로 결정하는 사람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정치적,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채 행동하는 사람, 그저 충성하고자 맹세했기 때문에 충성을 다 바치는 사람, 목숨을 부지하고자 위기에서 먼저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 등등. 그중에서도 백미는 담배를 통한 긴장감의 고조다. 인물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를 통해 심리묘사와 함께 긴장의 끈을 최고조로 높이는 연출은 영화의 숨은 매력이다.  

지금이야 과거의 역사에 대해 선과 악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지만, 당시 그 상황에 직면해 있던 사람들에겐 결코 명확한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았을 상황.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눈앞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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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밀실범죄를 다루고 있다. 롯폰기 빌딩 12층 사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트릭을 밝히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단 소설의 전반부는 방범 컨설턴트-다른 소설 이라면 탐정에 해당하는-의 입장에서, 후반부는 범인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은 범죄가 일어난 수단과 방법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된 범인의 인생역정을 통한 심리적 접근까지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또한 절대 안전하게 설계된 또는 만들어진 로봇이 어떻게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지를 통해 의도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소설의 제목 <유리망치>는 범죄의 도구를 암시할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정신상태도 보여준다. 흔히 질풍노도라고 부르는 청소년기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른이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것에도 청소년의 정신상태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 마치 어느 정도 버텨내던 유리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순간 깨져버리듯 말이다. 범인의 범죄동기는 이렇게 깨져버린 정신 속에서 만들어져 죄의식을 지우고 범죄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어른들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던 범인은 돈이 주는 힘을 통해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그 힘을 얻기 위해 그는 또다른 폭력을 사용한다. 그가 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일그러져 있는 셈이다. 힘에 대한 관념은 범인이 어렸을 적 경험한 극한에 가까운 체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계속 유지하도록 만들어준 사회 탓이기도 하다. 밀실범죄를 다룬 재미있는 추리소설 뒤편엔 일그러진 힘에 대한 자화상도 살펴볼 수 있다.  

사족 :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우리는 어떻게 배울까.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그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그 방법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나중 문제다. 소설 속에선 얼핏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단상도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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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첫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번째나 세번째를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첫경험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마디씩 건넨다. 첫경험의 첫은 첫째가는의 첫이 아니라 처음의 첫을 의미한다. 처음의 첫이 둘째와 세째 등과 다른 것은 두근거림 때문이다. 첫은 기대를 불러오고 두려움도 가져온다. 기대와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것이 묘하게 합쳐져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첫경험이 제일 좋은 또는 제일 멋진 경험인 것만은 아니다. 첫경험은 별로였지만 두번째 세번째로 갈수록 더 나아지는 경우도 많다. 또는 두번째 세번째가 첫경험의 짜릿함보다 더한 짜릿함을 선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기대와 다른, 또는 두려움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첫경험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첫경험을 말하는 것일까. 

첫만남, 첫사랑, 첫골, 첫홈런, 첫키스, 첫여행...... 

살아가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많지않다. 스트레스로 가슴이 뛰는 건 두근거림과 다르다. 걱정과 근심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슬픔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은 인생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기도 한다. 그러기에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은 그야말로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다. 아니, 기쁨과 환희에 대한 기대, 또는 기다림이 가슴 두근거림으로 나타난다. 첫경험은 그래서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주는 기대와 두려움이 주는 기쁨이다.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가슴 두근거림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느끼고자 할 때는 기다려야 한다. 첫경험을 향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기에 인생의 길목에서 첫경험의 순간들을 계속 마주쳐야 한다. 첫경험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인생을 가슴두근거리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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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엽문>은 실제 역사적 인물인 엽문에 대한 이야기다. 절권도 창시자 이소룡의 스승으로 알려진 엽문의 영춘권 세계를 살짝 엿보게 되는 이 영화는 <황비홍><정무문><무인 곽원갑>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일개 개인으로서의 무인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에 쫓기어 또는 역사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반청 또는 반일을 위한 도구로서 무술을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란한 손동작을 자랑하는 영춘권의 멋에 빠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술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도 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엽문이 자신이 무술만 수련한 헛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무술이 타인들 또는 국가를 위해서 쓰일 수 있게 됨으로써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 바로 생각의 시발점이 된다.  

무(武)란 그 뒤에 어떤 글자를 덧붙이느냐에 따라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된다. 힘 력(力)자냐 큰 덕(德) 또는 길 도(道)냐에 따라 무는 우리에게 억압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깨우침과 평안의 길이 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일본의 가라데는 무력이 되고, 영춘권은 무도 또는 무덕이 된다. 물론 무술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이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또 이와는 아주 다른 길도 있다. 영화 <소오강호>에서 절대무공을 지닌 임영영(?)은 세상에서 벗어나 은거하고자 한다. 자신의 연인의 목끝에 드리워진 칼날 앞에서는 그 어떤 절대무공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세상과의 연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무림이 말하듯, 또는 세상살이가 이야기하듯 혼자만의 것은 결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것이 의미를 갖으려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임영영의 무 또한 결국 무도의 이미지로 세상에 모습을 내비치게 된다.  

무는 쌓아가는 것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쌓아진 무가 정신적 성장까지 가져다 주었을 때 무는 뒤에 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도는 무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성장해 가는 모든 것들의 뒤에 붙어야만 할 숙제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결코 개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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