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정말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의 과학적 성과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겨우 2년 조금 넘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랑을 좌지우지하는 호르몬이 이 기간이 끝나면 멈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별을 맛보기도 하고, 반대로 2년이 아니라 20년을 넘게도 사랑에 빠져 살기도 한다.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콩깍지가 씌여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콩깍지가 씌여 있는 기간만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어쩐지 과학이 밝혀낸 호르몬이라는 것은 현실과 더욱 거리가 있어 보인다. 때론 구체적이며 실체적인 어떤 작용보다는 감상적이며 추상적인 것이 보다 현실을 잘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 <쌍화점>이 인기다. 고려왕과 친위부대 건룡위 수장 홍림, 그리고 왕비라는 세 인물을 둘러싼 사랑과 갈등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세 명의 캐릭터는 나름대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만 개인적으로 주진모가 열연한 고려왕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홍림은 남자들만의 세상에 갇혀 살면서 오직 왕만을 바라보며 살다가 여자(왕비)와의 몸섞임이 가져다 준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소원했던 왕비와의 관계가 대리합궁 한번만으로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장면은 어쩐지 과장돼 보인다. 왕비는 그나마 왕이 관계를 계속 거부해온 터에 홍림을 만나면서 사랑에 눈을 떴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고려왕의 갈등이 사랑의 진면목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이 사랑했던 홍림을 믿고서 왕비와의 대리합궁을 주선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건 배신의 칼날이었다. 여기에서 사랑은 신뢰의 문제로 바뀐다. 그리고 신뢰의 문제는 진실과 거짓말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왕은 홍림의 첫번째 거짓말에 충격을 받는다. 왕비를 만나러 간 걸 다 알면서도 그의 입에서 진실이 말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에게 들려진건 거짓말이다. 홍림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홍림은 정말로 진심을 다해 왕에게로 돌아가려 했는지 모른다. 그 진심이 왕을 움직였다. 하지만 홍림은 그 진실을 진실되게 간직하지 못했다. 왕비 앞에서 진실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는 거짓이라는 복수의 칼날을 꺼낸다. 왕이 자신을 불러들이기 위해 거짓 처사를 만든 것에 대한 분노였다. 왕은 마지막까지도 홍림의 진실된 말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어떤 칼끝보다도 날카롭게 그의 가슴을 후벼팠을 것이다.  

사랑은 진실을 대들보로 삼아 나와 연인의 관계를 굳건하게 버티도록 만들어준다. 거짓은 대들보를 갉아먹는 벌레다. <쌍화점>은 홍림과 왕비의 사랑이 호르몬의 작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왕과 홍림의 사랑 속에서 진실과 거짓말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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