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아프면 안돼, 알았지? 튼튼하게 자라야 돼"

아기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마가 불덩이인데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이 볼에 뽀뽀를 해주며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네요. 요즘 눈가가 마를 날이 없네요. 정말 바보같아요.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 안왔어?"라고 묻네요. "오늘은 안 올거야"라며 슬며시 넘어갑니다. 다행히 더이상 보채지는 않네요. 숙소 앞의 밤송이를 보여주며 딴 생각에 빠지도록 자꾸 유도합니다. 아이는 어제 본 노을이 생각난지 "오늘은 구름이 하얘. 빨갛지가 않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아침을 서둘러 먹이고 새로운 어린이집에 데려갔어요. 아이는 "여긴 내 친구들 없어. 사랑반 선생님 보고 싶어"라며 울먹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어린이집 문앞에서 눈물을 터뜨립니다.

 

어린이집 새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달래줍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선생님에게 꼭 들러붙어 있네요. 원서접수를 쓰는 동안 아이는 눈물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무룩한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표정에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혹시나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을까봐 겁이 덜컥 났어요. 당장 달려가 아이를 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이곳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겨우 진정한 아이를 다시 울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대신 오늘은 점심만 먹이고 다시 데려가기로 했어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어린이집에 다시 왔습니다. 아이는 방금 낮잠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깨고 나서 저에게로 왔습니다. 방금 잠에서 깬 것 때문인지 몰라도 좋아하는 표정도 없이 무뚝뚝하네요. 또한번 겁이 났어요.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려 이야기를 자꾸 건넸습니다. 조금씩 대꾸하기 시작합니다. 휴~ 다행입니다. 아이가 떼 쓰는 것도 다행입니다. 아이가 보채는 것도 다행입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아빠 사랑해?" "응, 사랑해" "그럼 뽀뽀" 아이가 뽀뽀를 해줍니다. 마음이 사르르 녹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 염소에게 데리고 가 먹이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피부에 뭔가 토돌토돌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열도 조금 있는 것 같구요. 병원에 갈까 망설였습니다. 조금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녁시간이 됐는데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나 봅니다. 밤이 깊어가니 아이의 몸이 뜨거워집니다.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시골에서 응급실이라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몸이 더 뜨거워지면 아무래도 병원으로 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이곳저곳 주물러 주며 몸 상태를 체크해봅니다. "많이 아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프면 안돼. 씩씩해야지, 우리 아가는 그럴 수 있지?" "응" 대견스럽게도 아이가 아빠를 보며 웃어줍니다. 크게 보채지도 않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오늘밤 더이상 열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가야 부디 잘 견뎌내렴. 이렇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말아줘. 네 옆엔 항상 내가 있을거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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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연일 뜨거운 날씨

 

오늘 한 일 - 감자밭 후작으로 배추 정식(불암 3호, 토종 괴산, 구억리, 청갓 등)

 

"후루룩 국수 안 사주면 다음주부터 안 나올거유"

농담처럼 건네는 할머니의 말씀엔 독기가 조금 서려 있다.

"아침 참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말이야"

사실 아침밥을 챙겨드시지 않고 아침 6시에 일을 하러 나오시는 할머니들에게 참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품을 산 첫날부터 이미 농장 사정을 말씀드려온 터였다. 할머니들도 이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처음엔 두유와 빵이었지만 두유 대신 미숫가루라도 타 드리려 노력했다. 미숫가루를 타 온 첫날엔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셨다.

"이거라도 먹으면 그래도 든든해"

그러던 할머니들께서 점차 요구하시는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방울토마토의 열과를 따지 못하도록 주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요구사항이 늘어난듯 느껴진다.

 

시골에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할머니들께선 초반기 눈치를 조금 보며 일하셨다. 그러다 농장에서 사람을 잘 구하지 못한다는걸 아시게 되자 점차 '갑'의 자세로 변하셨다.

"품삯도 올랐어. 다른데선 5천원을 더 받아"

그래도 다른 할머니 한 분은 꽤 상식적이시다.

"다른 사람들이 받으니까 받지만 미안스러워. 밭주인은 빚더미에 올라 죽네 사네 하는데 일꾼들이 돈 5천원 더 안주면 일 안한다고 하니..."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제. 망하는 건 우리 사정이 아니잖여."

나도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의 진통까지 겪으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받고 신장시키려 애쓴 적이 있다. 노동자로서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었다. 못내 당하고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노동자가 갑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갑이 되었다고 해서 갑 행세를 하는 것엔 반대다. 누가 갑이 되었든 갑이 된 자는 그 위치의 이권을 마음껏 누리려 해서는 안된다. 갑은 갑이 아닌듯 을과 함께 갈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의 위치는 갑도 을도 아니다. 할머니들을 내가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품삯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흙살림에게 잘 보이려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며 일하도록 채찍질 할 필요도 없다. 할머니들이 일하면서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잘 해결해 드리고, 다른 한 편으론 흙살림에서 필요한 일을 잘 마무리 짓도록 함께 일하면 된다. 손해를 본다거나 복종을 한다거나 하는 손익이나 힘의 싸움에서 벗어나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게 최고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장을 차는 순간 확 바뀌고 만다. 할머니들의 '갑' 행세를 보자니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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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날씨 뜨겁다 뜨거워

 

 

별 도장이 찍힌 방울토마토. 그래 넌 나에게 별이다. 희망을 품게 만드는...

 

 

오늘도 방울토마토 수확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두번 꼴이던 수확이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5개 하우스 중 두개 동 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3개 동은 병충해로 건질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끝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진 수확한 토마토를 E마트나 대전에 있는 흙살림 직영 매장 '농부로부터'에 납품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농장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기회가 생겼다. 회장님의 인심으로 납품가보다도 싸고 일반 마트의 절반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이었지만 뿌듯했다. 한번 맛보기로 먹어본 방울토마토가 맛있다며 너도나도 사가겠다고 줄을 서는 모습에 흥이 절로 났다. 덤을 퍼주고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여름 내내 피땀흘려 키운 토마토를 헐값에 내놓는다는 아쉬움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회장님에게 다소 질타가 섞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투정이었다. 소비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직접 키운 토마토를 판매하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

요즘은 포장을 하면서 생산자의 사진을 올려 소비자와의 간접적 만남을 추구한다. 사진만으로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쌓아갈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 대면보다는 아무래도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직거래가 꼭 좋은 건만은 아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산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팔리는지를 모르고 생산하는 것과는 천연지차다. 로컬푸드의 정신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로컬 푸드도 매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한 발 더 나아간다면 농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굴을 맞대는 교류를 통해 탄탄한 믿음을 쌓아가고 인간적 풍취마저도 풍겨나도록 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으로써 노동의 소외도 말끔히 없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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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또는 도덕성에 대한 고민은 예로부터 계속되어 왔다. 지금도 딱히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나 루소의 성선설이나 순자, 마키아벨리, 홉스의 성악설을 비롯해 고자의 성무선악설 등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한 것들은 그것이 선하건 악하건 간에 대부분 후천적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연쇄살인이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평가 또는 판단은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유전성, 불변성을 그 특징으로 내세운다. 인격장애라는 것이 유전이라는 선천적 요소로 인한 것이며, 그것의 변화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하에 우리의 인격도 어느 정도 유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샴 쌍둥이나 일란성 쌍둥이도 그 성격에 현격한 차이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가 지은 책 <개성의 탄생>에서는 왜 내가 유일한 나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리암 니슨이 주연한 영화 <언노운>은 <토탈 리콜>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언노운을 보기 전까진 토탈 리콜을 재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같이 나라는 정체성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언노운을 보면서 다른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는 정체성 즉 기억이 바뀐다면 인격, 도덕성마저도 한꺼번에 바뀔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유전적 측면에서의 성격의 발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로지 후천적 경험만이 셩격을 좌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직접적으로 이런 문제를 거론하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끝내 지울 수 없었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스포일러 주의) 리암 니슨은 학술 대회 발표를 위해 아내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 온다. 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는다. 몇일 후 기억을 되찾은 그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리암 니슨이 자기라고 믿었던 남편이 버젓이 함께 있다. 누군가 자신의 행세를 하고 있다고 믿은 그는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결국 그가 테러를 저지르기 위해 자신의 행세를 하고 있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테러를 막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던 중 자신의 기억을 더욱 온전하게 되찾으며 자신 또한 테러범임을 자각한다. 가짜 행세를 하던 테러범은 자신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한 동료였던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가 문제다. 리암 니슨은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테러를 저질러야 하는가, 아니면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진짜 자신이라 믿었던 선량한 학자로 돌아와 평화를 지켜내야 하는가. 영화는 후자를 택한다. 잔인함으로 가득했던 사람이 선량함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이 이렇듯 후천적인 것이라면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로의 개조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비윤리적이며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다. 영화 <클락워크 오렌지>에서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성범죄자들에게 화학적 거세를 하는 것은 허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마무리를 지어보자. 예전엔 유전이라 하면 불변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전의 발현성 여부는 환경과 연관되어져 있다. 유전이 모두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위치가 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문화, 교육 등을 통해 선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 사회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인간성이라는 단어 마저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익이라는 거대한 그물에 갇혀 허우적 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는 얼마만큼 지독하게 이기적인지를 자문해 볼 일이다. 자본주의라는 현대사회가 가르쳐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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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불같이 뜨거운 하루 1분간의 소나기가 아쉽다

 

오늘 한 일 - 옥수수 밭 후작으로 양배추 약 400주 정식, 가을 배추 약 100주 정식, 방울토마토 곁순 정리

 

끔찍할 정도로 무더운 하루였다. 이런 날엔 오후를 통째로 쉬어도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할머니들이 일하러 오는 날이다. 할머니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신다. 오전에 참 시간, 오후에 참 시간, 그리고 1시간여 정도의 점심시간을 빼고는 줄곧 일하신다. 그렇게 해서 버시는 돈이 일당 5만원. 요즘은 5천원이 올라 5만 5천원까지 받는다고 한다. 일당은 지역별이나 일의 강도에 따라 편차가 있는듯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일손이 너무 부족해 7만원 수준까지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무더운 날엔 오후에 쉬고 저녁에 조금 더 일하시면 좋을텐데, 할머니들은 극구 거부하신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고단한 인생은 쉬이 끝나지 않은가 보다. 이렇다 보니 나도 덩달아 오후 휴식없이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할머니들이 일하려 오시는 날엔 보통 새벽 5시 반에 할머니들을 모시러 가서 하루 종일 함께 일하다 다시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일을 마무리 짓다 보면 저녁 8시가 다 된다. 오늘 같은 날엔 무쇠라도 녹을 판인데 한낮에 일할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처진다. 정말 몸이 축 처지고 헥헥 거리게 된다. 할머니들의 체력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약으로 버티시며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강철 체력을 지닌 듯하던 할머니들도 오늘은 한낮에 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하우스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노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오후 5시 까지 양배추와 배추를 정식했다. 남은 1시간은 그나마 조금 더위가 가신 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유인 작업을 하셨다. 하지만 말이 더위가 가신 시간이지 여전히 하우스 안은 찜통이다. 1시간 동안 흘린 땀이 토마토 10주에 물을 듬뿍 줄 정도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일이 끝나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할 시간. 이번 주엔 이태근 회장이 직접 할머니들을 챙기신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의 건강이 걱정되신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할머니 한 분이 차에서 구토를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무더위 속에서도 일을 하셔야만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문득 우리네 할머니들 세대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게 먹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2주 전쯤 멜론이 생겨 숙소에서 밤중에 먹을 기회가 있었다. 연수생 둘이서만 먹기엔 미안스러워 미얀마 친구들 두 명을 함께 불렀다. 멜론을 먹으면서 짧은 영어와 몸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월급은 미얀마에서 받는 것의 약 3배 정도라고 한다. 야근이나 특근을 한다면 4~5배 까지 벌 수 있다. 한국에서 3년을 일하면 미얀마에서 최소 10년 정도 일한 것의 보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미얀마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나"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친구가 대답한다. "한국의 S전자 대리점을 하고 싶다" "아니, 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벌길래?" "잘만 경영하면 일반 월급쟁이들보다 7~10배 정도 벌 수 있다" "우와! 그렇게 벌면 금방 부자가 되겠네. 부자가 되면 뭘 하고 싶어?" "세계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한국의 서울은 물론이고 일본, 호주 등을 돌아다니고 싶어" (애석하게도 괴산에 온 두 미얀마 친구들이 한국에서 본 것은 출입국 관리소와 퇴비공장 뿐이라고 한다. 언어도 안 통하고, 돈도 많이 들기에 섣불리 주말에 돌아다니지 못하고 있다)

오호라, 세계 여행이란다. 이건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로또에 당첨되면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지 않던가. 돈만 있다면. 물론 돈 없이도 혈기만으로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공통으로 가지게 됐을까. 이렇게 꿈이 같아진다면 꿈이란 욕망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하거나 세뇌당한. 자신은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말이다. 너무 멀리 나갔다. 음모 이론처럼.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이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눈앞에 펼쳐있듯 보여주는 미디어들 탓에 그 꿈이 조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예 직접 대놓고 권하지 않는가. 여행을 떠나라고. 미디어의 태반은 여행과 음식 또는 여행지에서의 음식이지 않는가. 그 형식만 다를뿐.

우리 세대의 꿈. 돈이 있을때 보다 그 가능성이 커지는 꿈. 노마드의 정신은 사라지고 쾌락이 꿈틀대는 꿈. 그렇기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겐 용기가 필수다.

 

꿈은 세대를 따라 변해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지닌 듯하지만 똑같은 또는 비숫한 꿈을 꾼다. 다만 그 꿈을 향한 길이 서로 다를 뿐. 그러니 생각해본다. 애시당초 다른 꿈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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