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불같이 뜨거운 하루 1분간의 소나기가 아쉽다

 

오늘 한 일 - 옥수수 밭 후작으로 양배추 약 400주 정식, 가을 배추 약 100주 정식, 방울토마토 곁순 정리

 

끔찍할 정도로 무더운 하루였다. 이런 날엔 오후를 통째로 쉬어도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할머니들이 일하러 오는 날이다. 할머니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신다. 오전에 참 시간, 오후에 참 시간, 그리고 1시간여 정도의 점심시간을 빼고는 줄곧 일하신다. 그렇게 해서 버시는 돈이 일당 5만원. 요즘은 5천원이 올라 5만 5천원까지 받는다고 한다. 일당은 지역별이나 일의 강도에 따라 편차가 있는듯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일손이 너무 부족해 7만원 수준까지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무더운 날엔 오후에 쉬고 저녁에 조금 더 일하시면 좋을텐데, 할머니들은 극구 거부하신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고단한 인생은 쉬이 끝나지 않은가 보다. 이렇다 보니 나도 덩달아 오후 휴식없이 비지땀을 흘려야 한다. 할머니들이 일하려 오시는 날엔 보통 새벽 5시 반에 할머니들을 모시러 가서 하루 종일 함께 일하다 다시 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일을 마무리 짓다 보면 저녁 8시가 다 된다. 오늘 같은 날엔 무쇠라도 녹을 판인데 한낮에 일할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처진다. 정말 몸이 축 처지고 헥헥 거리게 된다. 할머니들의 체력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약으로 버티시며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강철 체력을 지닌 듯하던 할머니들도 오늘은 한낮에 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하우스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노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오후 5시 까지 양배추와 배추를 정식했다. 남은 1시간은 그나마 조금 더위가 가신 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유인 작업을 하셨다. 하지만 말이 더위가 가신 시간이지 여전히 하우스 안은 찜통이다. 1시간 동안 흘린 땀이 토마토 10주에 물을 듬뿍 줄 정도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일이 끝나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할 시간. 이번 주엔 이태근 회장이 직접 할머니들을 챙기신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의 건강이 걱정되신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할머니 한 분이 차에서 구토를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무더위 속에서도 일을 하셔야만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문득 우리네 할머니들 세대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굶주리지 않고 배부르게 먹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2주 전쯤 멜론이 생겨 숙소에서 밤중에 먹을 기회가 있었다. 연수생 둘이서만 먹기엔 미안스러워 미얀마 친구들 두 명을 함께 불렀다. 멜론을 먹으면서 짧은 영어와 몸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월급은 미얀마에서 받는 것의 약 3배 정도라고 한다. 야근이나 특근을 한다면 4~5배 까지 벌 수 있다. 한국에서 3년을 일하면 미얀마에서 최소 10년 정도 일한 것의 보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미얀마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나"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친구가 대답한다. "한국의 S전자 대리점을 하고 싶다" "아니, 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벌길래?" "잘만 경영하면 일반 월급쟁이들보다 7~10배 정도 벌 수 있다" "우와! 그렇게 벌면 금방 부자가 되겠네. 부자가 되면 뭘 하고 싶어?" "세계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한국의 서울은 물론이고 일본, 호주 등을 돌아다니고 싶어" (애석하게도 괴산에 온 두 미얀마 친구들이 한국에서 본 것은 출입국 관리소와 퇴비공장 뿐이라고 한다. 언어도 안 통하고, 돈도 많이 들기에 섣불리 주말에 돌아다니지 못하고 있다)

오호라, 세계 여행이란다. 이건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로또에 당첨되면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지 않던가. 돈만 있다면. 물론 돈 없이도 혈기만으로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공통으로 가지게 됐을까. 이렇게 꿈이 같아진다면 꿈이란 욕망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하거나 세뇌당한. 자신은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말이다. 너무 멀리 나갔다. 음모 이론처럼. 아마도 미디어의 발달이 세계 여행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를 눈앞에 펼쳐있듯 보여주는 미디어들 탓에 그 꿈이 조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예 직접 대놓고 권하지 않는가. 여행을 떠나라고. 미디어의 태반은 여행과 음식 또는 여행지에서의 음식이지 않는가. 그 형식만 다를뿐.

우리 세대의 꿈. 돈이 있을때 보다 그 가능성이 커지는 꿈. 노마드의 정신은 사라지고 쾌락이 꿈틀대는 꿈. 그렇기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겐 용기가 필수다.

 

꿈은 세대를 따라 변해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지닌 듯하지만 똑같은 또는 비숫한 꿈을 꾼다. 다만 그 꿈을 향한 길이 서로 다를 뿐. 그러니 생각해본다. 애시당초 다른 꿈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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