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이해하는 생태사상 그림으로 이해하는 교양사전 5
김윤성 지음, 권재준 그림 / 개마고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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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봄이 왔는데도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상의 마을을 통해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환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카슨 이전에도 생태와 관련된 논의는 있어왔다. 그리고 카슨 이후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태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책은 이런 생태에 대한 생각을 개괄적으로 죽 훑어보여주고 있다. 생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그 시선들의 장단점, 그리고 오히려 악용 또는 오용될 수 있는 여지 등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생태학을 크게 두 줄기로 파악하고 있다. 시스템적 관점에서 전체 특징을 분석하는 오덤학파와 진화론적 관점에서 염색체 수준의 설명을 시도하려는 맥아더 학파이다. 즉 전체주의와 환원주의로 거칠게 나눌 수 있겠는데, 생태에 대한 설명 또한 다른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두가지의 절묘한 결합이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주의깊에 들여다본 부분은 종의 다양성에 대한 접근이다. 맥아더와 윌슨은 해마다 지구에서 14만종의 동식물이 사라진다면서 종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종이 다양해질수록 지구 생태계가 풍성해질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종이 다양하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먼저 극단적 예를 하나 들어보면, 숲을 허물고 도시를 만들면서 숲에 살던 다양한 동식물이 사라졌다. 대신 도시 속에서 인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곤충들의 종은 대폭 늘어났다. 지구 생물의 90%는 곤충류에 속한다고 하니,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즉 종 자체는 오히려 다양해졌지만, 무엇인가 생태적 균형을 잃어버린 모양새다. 메이는 생태계 생물들의 관계가 복잡해질 수록 생태계가 불안정해진다고 본다. 특히 그 관계 중 벼리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종이 있다면, 그 종의 사라짐이나 증대로 인해 생태계가 깨져버릴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양성이나 복잡성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공진화의 양상이다.

 

플랜테이션 농장이 생태계에 불안정한 이유는 생태계의 구조가 단순해서가 아니라는 관점과 일치한다. 대신 해충이나 기생충이 작물과 맺는 공진화의 관계가 무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해충이 나타나면 살충제로 박멸시키고, 다시 내성을 갖춘 해충이 발생하는데, 해충과 내성제 싸움에서 작물들은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즉 공진화를 함께 하지 못하고 해충과 전염병에 약하게 변모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를 보완하는 측면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GMO라 여겨진다. 하지만 GMO는 공진화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또다른 문제를 내포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곳곳의 농업은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살충제와 살균제를 사방에 뿌려대고 있다. 오직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이유이다. 즉 경제적 이윤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적 피해로 인한 손실은 농업의 득실 계산에서 빠져있다. 땅의 황폐화와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농부의 장부 어디에도 기록되어져 있지 않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하천을 유지하고 플랑크톤과 수초를 잘 자라도록 만드는 활동은 경제적 활동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없이는 결코 물고기를 계속해서 잡을 수가 없다. 농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생태적 활동까지 포함하는 경제학이 바로 생태경제학이다.

 

우리의 농수산업도 이런 생태경제학점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왔다. 지구온난화 속에서 지속적 농업과 어업이 가능하기 위해선 당장의 눈앞 이득만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경제에 대한 수고를 인정해주는 제도가 정착되어야지만, 우리는 먼 미래 우리 자손들에게도 풍부한 농수산물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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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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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변화가 찾아오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변화가 희망적이라면 다행이지만, 앞길이 어두컴컴하다면 '지금까지 내가 뭘 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그리고 자괴감을 넘어

 

지금 내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체계가 그 시효를 다 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 시킬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와"라는 말보다 "휴우~"라는 한숨이 많아지고 있다면, 그렇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검토해봐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안경을 낄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시기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않는다.

 

견디며 내쉬는 한탄이 아니라, 견뎌야 할 것들을 하나씩 없애나가며 내 삶에 다가오는 변화에 감탄하는 삶을 위해 애써야 할 순간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조차 구별하지 않고 그저 버텨온 나날들을 청산하고, 막연히 행복을 기다리지 않으며 좋아하고 예뻐할 일에 감탄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멀리 봐야한다. 자주 올려다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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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Yz3dNqOuMI

정수기엔 온수와 냉수가 따로 있다.
한쪽은 뜨겁게 한쪽은 차갑게 물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냉정과 열정이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주 오고가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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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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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꽤나 안주했던 모양이다.

도시(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지 7년째.

맨 첫해는 물론 그 다음해까지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도 많았다. 도시적 삶에서 벗어나 자연적 삶(이게 어떤 삶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는 경제적 해결점을 찾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입안에 풀칠 정도가 아니라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돈은 항상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어중간한 타협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연적 삶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 다시 생계의 문제가 눈앞에 다가왔다. 너무 안주했는가 보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했던 고민을 해결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중간한 타협점에서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왔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설렘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불안하지 않아야 성공한 삶이다. 잠 푹 자고 많이 웃는 삶이 진짜 성공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또다시 생계를 위한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냥 살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풀과 함께하는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것이 생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돈벌이와 노동이 따로 논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생계를 지탱해주던 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불안이 치솟는 것이다.   

 

 

인간행위의 심리학적 설명에서 의미와 재미는 가장 중요한 차원이다. 그 어떤 정서적 경험도 부재하면 삶의 의미는 부여되지 않는다.

 

아마 또 돈벌이를 위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한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혀 재미없는. 그래서 삶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아마도 시골에 내려온 시간동안 안주해버린 삶이 가져온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속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변할때 생기는 심리적 반응은 설렘이다.

 

당분간 또다시 어정쩡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아니, 어정쩡하게라도 불안없이 살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골로 내려와 살고싶었던 자연적 삶이라는 막연한 그리움이 현실 속에서 실현가능할 수 있도록 힘쓰는 삶을 고민할 시점이기도 하다. 안주가 주는 안도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설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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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블루베리 밭의 풍경이다.

도대체 어디가 풀이고 어떤 것이 블루베리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다리 염증으로 다시 농작업을 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풀과 함께 기르는 생태농법을 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지만, 현재 상태는 그 정도를 살짝 넘어간듯 판단된다.

과연 풀을 어느 정도까지 자라도록 놔두어야 할까.

그리고 한계선을 그은 풀을 제거할 때는 베어야 할까, 눕혀버려야 할까.

지난해에도 올해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블루베리 주위의 풀은 블루베리를 가리기 전에 베어주었다. 골과 골 사이는 충분히 자라게 놔두고(허리춤까지 자랐다) 발로 밟아 눕혀주었다. 그 덕분에 올해 봄에 풀들이 자라는 시기가 한참 늦게 시작되면서 작업량을 줄여주었다. 또 퇴비를 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베리가 어느 정도 열려주었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비료를 주면서 생장에 집중한 블루베리에 비해 새가지가 나온 것이 적고, 키도 별로 크지 못했다. 수확은 어느 정도 챙겼지만 나무의 성장은 너무 더딘 것이다. 

지금 상황은 풀이 블루베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판단된다. 얼른 블루베리 옆의 풀을 제거하는 게 좋을성 싶다. 몸이 낫는대로 낫으로 벨 계획이다. 얼른 몸을 추스리면 좋겠다.

골 사이에 풀은 지난해처럼 충분히 자라도록 둔 후 발로 눕힐 생각이다.

이처럼 풀을 놔두는 이유는 풀이 자란만큼 뿌리도 땅 속 깊숙히 풍부하게 자라면서 땅의 물리성, 그러니까 물과 공기가 잘 통하는 길을 만들어주고, 또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유기물도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풀을 매개로 하는 곤충들이 블루베리의 성장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아무튼 성장이 조금 더딘 것을 빼면 올해까지는 예상대로 커가주고 있다. 풀과의 싸움 덕인지는 모르지만 겨울에 동해 피해도 많지 않을만큼 건강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렇다하더라도 지금은 나무 주위에 풀을 베어주어야 할 때.

농사도 체력(건강)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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