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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지승호의 누드토크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한사람을 무슨무슨 주의자로 규정해버리는 순간 우린 그 사람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만다. 무지개가 7가지 색깔을 띠고 있지만 그 경계선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빨강색인지 주황색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색이라는 것은 파랑 빨강 노랑 검정 색이 어떤 배합으로 섞여 있는지에 따라 수만가지의 색을 보여준다. 사람 또한 이런 색깔과 같다. 그 사람이 빨갛다고 또는 파랗다고 규정하지만 그 빨강, 또는 파랑 속에선 오히려 반대색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지승호가 만난 사람들은 비판적 지성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져 있다. 하지만 그들을 다시 세분화시키는 순간 한 사람이 하나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유시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누군가에 의해서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다가 자유주의자로 변신하고 다시 올바른 보수주의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스펙트럼은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냐에 따라 그 색깔 또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책 속의 인물들이 자유주의자이든 사민주의자이든 보수주의자이든 이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항상 일관되게 사회의 문제점을 밝혀내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다. 특히 자신이 쓰는 글이나 말한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 비판받거나 저항받을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은 짜릿한 전율마저 느끼게 만든다.
내가 어디쯤 서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비판받는것, 즉 한번 깨져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엄청 겁을 먹고 있음으로 인해 토론이 불가능하고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은 내가 그토록 비판하고 싫어하는 족속들과 얼핏 닮아 있다는 점에 몸서리 처진다.
내가 깨져도 좋다. 깨지기 싫으면 공부해라. 공부는 열린 사고를 통해서 가능하다.
서로 충돌할 듯 위태위태한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조화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든다. 그 조화는 소통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소통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한다. 억지부리지 말고 일방통행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자신을 무너뜨림으로써 새롭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ps. 김규항-제 아무리 막돼먹고 불량한 사람도 품위 있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게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아는 순간 사람은 파행하게 됩니다.
홍세화-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사회라서 그렇습니다. 수치심이 무의미한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책속의 인터뷰 대상자들의 사유에는 논리적 이성적 합리성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감수성 또한 중시하고 있음을 얼핏 볼 수 있는듯하다. 품위있게 살고 싶어하는 삶과 수치심을 안다는 것은 문명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요, 이것은 어찌보면 진보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