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영(한여름)은 혹시 바수밀다(인도의 창녀-그녀와 자고나면 사람들은 모두 불교신자가 되었다고 전해짐)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섹스만 하면 너무 삭막하잖아"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원조교제라는 것을 하지만 아무런 죄의식-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몸뚱아리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팔겠다는데 누가 욕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을 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하기엔 몸이라는 것이 너무 성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이때의 성스러움은 단순히 숫처녀/숫총각의 의미와 같은 정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영혼을 담기만한 육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에서 성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 속의 구분이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하나의 제제로서 다가올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죄의식 자체는 없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 없이 얼굴가득 미소를 띠우며 즐겁게 행한다. 그에게 있어 원조교제는 단순히 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어갈때에도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 여진이 그녀의 미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한다.

 

2. 가장의 자살

여진(곽지민)의 씻김굿(재영의 원조교제 상대였던 사람들을 찾아 그들과 섹스를 나누고 다시 돈을 돌려주는)은 재영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를... 하지만 그것이 재영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영이였든 여진이였든 그 대상자체가 어떤 특정인물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에겐 따뜻한 품이 그리웠을 뿐이다.

여진의 아버지 영기(이얼)는 딸의 행동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씻김굿의 대상자들을 응징한다. 그 응징은 폭력으로 이루어진다. 힘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 있는 형사 영기는 폭력을 통해 딸을 구원하려 한다. 하지만 그 폭력은 외로운 한 가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고2 딸을 둔 그 가장은 영기의 무단 가택침입과 뺨세례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끝내 아파트에서 몸을 떨어뜨린다. 가족들 앞에서 그렇게 무참히도 쓰러져버린 가장이라는 멍에를 벗어버리는 순간이다. 이 여리디 여린 남자는 그 가장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여진을 찾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여진에게서 필경 구원을 얻었으리라. 분명 그는 바수밀다를 만났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바수밀다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바수밀다를 만난 사람들도 용서하지 않는다. 벗어나는 길은 그래서

자살이었다. 끝내 구원을 얻지 못하리니...

 

3. 혼자서라도 가라

눈물로 자신의 죄를 씻겨낸-난 그녀가 원조교제를 했다는 죄가 아니라 재영을 죄인으로 생각했었다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여진을 아버지는 강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동차를 혼자 운전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의 죄값을 치르러 떠난다. 그녀는 아버지를 쫓아 자동차를 몬다. 그러나 차는 웅덩이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다. 인생은 그렇게 자동차를 모는 법을 배운뒤 혼자서 길을 떠나야 한다. 비록 그 길이 진흙탕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럴때 때론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기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기를 우리는 바란다.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잠시 어깨만 빌려달라는 것이다. 그 가녀린 어깨가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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