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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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계를 꾸린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똑같은 말이 아닐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입에 어떻게 풀칠할지, 서리를 맞지않고 어떻게 잠을 잘지 걱정하는 것이 생계라고 한다면 산다는 것은...


여기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불과 200년도 안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다. 평범한 조상이라 하기에는 조금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주류에 뛰어들지 못한 변방의 지식인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소위 지금의 마니아나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즉 현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다.(책 중 허균은 예외라고 생각되어진다)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붓글씨나 그림, 노래 같은 하찮은 기예도 이렇듯 미쳐야만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미쳐야 할 것인가?(30쪽)


하지만 굶어 죽어야 했던 천문학자 김영, 책을 팔어서 겨우 끼니를 연명했던 이덕무, 자신의 기량을 끝내 세상에 펼쳐보이지 못했던 노긍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미친다는 것이 미칠만큼 매혹적인 그 무엇인지 의문을 갖는다. 생계를 꾸려가는 일은 대부분 구차하다. 땅을 갈고 하늘에 목을 매며 바다에 생명을 거는 직접적인 생산에 가담하지 않는한 먹고 산다는 일은 구차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인가에 집념을 보이며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썩 괜찮아 보인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벽이나 치에 빠지지 못한다. 이내 머릿속에선 계산이 선다. 저게 사는데-여기서 사는건 생계를 말한다-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내 벽(癖)에서 깨어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간혹 어떤 사람들은 미친 체 한다.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으려한다. 가짜로 미치고서 밥그릇을 챙기려 한다. 그렇기에 굶어 죽어도 좋은 정도로 진짜 미친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특히 책 1권을 1억번(현재의 수치론 10만번) 넘게 읽었으면서도 그 내용을 암기하지 못해, 인용글을 자신의 글이라 착각하거나, 익숙한 낭독 소리에 그 출처를 알지 못할 정도로 우둔했던 독서광 김득신이 마침내는 문장을 얻었다는 사실은 결코 미친 짓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극한 사례라고 보여진다. 정말로 산다는 것은 미쳐야지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말이다.


책은 3부로 나뉘는데 <미쳐야 미친다>는 책의 이름은 1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2부에서는 멋진 만남들을 3부에서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깨달음을 적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만남과 깨달음 또한 어느 정도 미침의 경지에 이르렀을때 가능한 그 무엇임을 상기한다면 불광불급은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2부에서 허균과 이정의 우정, 권필과 송희갑의 사제지간의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미침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관계. 신체적인 아픔도 죽음도 결코 가를 수 없는 사람간의 벽(癖)도 있는 법이다. 3부에서는 그림자 놀이에 빠진 정약용이 보인다. 국화의 아름다움은 그 실체만이 아니라 빛과 어우러진 그림자에서도 드러남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한다. 또 세검정의 참 맛을 알기위해 소나기를 맞으며 길을 나선다. 풍류란 으례 그런 것이다. 일상과 똑같다면 무슨 맛이 날터인가? 살아간다는 것은 참 맛을 아는 것이라 여겨진다. 살아있다는 것의 참 맛은 생계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벽과 치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밤 중에 호롱불을 켜고 국화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이나 거센 물의 흐름을 보기 위해 비를 흠뻑 맞고서 세검정에 오르는 정약용의 모습은 분명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행위로 인해서 그는 삶의 구차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미쳐야 비로소 삶에 미칠수(及) 있는 법이다. 맨정신으로 살아가기엔 삶은 너무나도 저만치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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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창사특집 <출가>를 우연찮게 봤다. 1개월간의 단기간 수련과정을 들여다본 프로그램이었다. 14세 아이부터 70 노인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도반으로 한데 모였다. 그들이 무슨 뜻으로 출가를 결정했는지는 모르나 수련의 마지막 날, 그들의 얼굴은 환했다. 오랜 고행을 끝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깨우쳐가기 때문이었을까? 알 수 없지만 밝은 얼굴은 아름답다.


수행과정을 지켜보던 중 가장 가슴뭉클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서로 부처되기]라는 수행이었다. 2명의 도반이 짝이 되어서 번갈아가며 한쪽은 부처가 되고 한쪽은 108번의 절을 행하는 수행자가 된다. 108배가 진행되는 동안 한쪽에선 절하는 자도 절을 받는 자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엇이 나의 가슴을 울렸을까?


브라운관을 통해 그 수행을 지켜보는 동안 나 또한 서로 부처되기의 한 도반이 되어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108배를 받는 부처의 입장에선 도대체 난 이 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토록 절실하게 절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상념이 떠나지 않는다. 반면, 108배를 행하는 입장에선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부터 시작해서 나를 낮추는, 한없이 낮추는 이 절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특히 현대를 살아갈땐 자기를 드러내야만 한다. 내가 얼마나 잘 났는지 어떻게든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부처가 되고 보니 얼마나 내가 못난 존재인지를, 그리고 왜 한없이 나를 낮출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으며, 나 또한 부처임을 상기한다면 자비는 넘쳐날 것이다.


1개월간의 출가. 그들은 마음을 비우고 거울을 깨끗이 하고자 절문을 들어섰을진대 그 마음 속에 자비심을 가득 안고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도반의 출가의 의미. 그의 출가는 곧 실천이었다. 라는 자막은 이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출가 졸업후 자원봉사를 지원한 그 도반은 출가의 첫 발을 내디딜때부터 이미 깨달음의 세계에 한발 내디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아우성쳐도 정막의 세계에 있던 사람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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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4-11-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부분만 잠깐 봤는데, 여운이 남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님의 글도 그렇고요...

하루살이 2004-11-3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 상자 속의 세상에서 때론 큰 배움을 얻기도 합니다.
 


MBC프로그램 중<공감>이란 것이 있다.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저번 주 금요일 우연히 보게된 <팔봉씨의 도전>편은 지금까지도 나를 오리무중에 빠지게 만들었다. 팔봉씨는 32살로 암벽등반에 푹 빠져있는 산악인이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캐나다 북서쪽에 위치한 베핀섬 원정길에 나선다. 한국인 최초로 3명의 원정대가 험한 길을 나선 것이다. 죽음과 대면하며 오르는 암벽. 혹시나 찢어질까 안절부절하며 머무는 암벽위 텐트에서의 새우잠. 낙석으로부터의 위협. 암벽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미친 짓이다. 하지만 빠진다는 것이 바로 미친다는 것일터. 북한산 인수봉에서 시작한 팔봉씨의 중독을 십분 이해하며 프로그램을 지켜봤다.


그런데...


아직도 내 머리속에 맴돌고 있는 것은 그가 이 원정을 마치고 돌아와 느꼈다는 심정이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이젠 노후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충 이런 뜻의 인터뷰.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해 다녀온 원정길에서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노후대책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후대책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게 있을까 싶지만 분명 팔봉씨에게 있어 이것은 삶의 커다란 변화일 것이라고 상상되어진다. 저축, 모은다는 행위가 오직 바위를 향한 그리움이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 이번엔 방편이 아닌 하나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그 무엇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암벽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진 않지만.


그렇다면 그는 왜 느닷없이 그런 깨달음에 도달한 것일까? 암벽등반이라는 것이 항상 죽음과 직면한 스릴감을 맛보는 것일테지만 이번 원정에서의 경험은 그 극한을 경험했던 탓이었을까? 사신을 코 앞에서 만나고 헤어지니까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일어난 것이었을까? 내가 살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살겠다. 산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뭐,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 돈을 전부 쏟아서 한번쯤 이런 경험을 했으니 다음에 또 한다고 해서 이번과 같은 감흥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는 자족적 판단때문일까?


정말로 묻고 싶다. 난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으니 말이다. 당신은 마치 현실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깨달음은 어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그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을 제 머리로, 가슴으로 메꿀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도달한 깨달음입니까?


미루어 짐작컨대 살아있다는 것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일게라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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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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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왕국 코리아.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다. 새삼스럽재 않은데 이런 얘길 꺼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낙태반대 운동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생명을 없애야만 했던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사연들을 일일이 들춰내자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어떤 흐름을 말하고 싶을뿐이다. 예전엔 남자 아이를 중시해서 뱃속의 아기가 여자아이라면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긴 하지만 대세는 아닌 듯하다. 현재 낙태를 했거나 할 계획인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아이를 셋 이상 낳거나, 40대 이후에 아이를 가지면 으례 '살만하군' 이라는 말을 건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거꾸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거나 그다지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겐 아이라는 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생명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보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과학의 발전으로 이젠 아이의 상태를 미리 알뿐만 아니라 조건을 맞춰서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대가 왔을땐 사람들은 또 어떤 조건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지려 할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그런 세상을 향해 생명의 잉태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를 말하는 책이 있다. 아이를 갖는 것이 때론 힘이 들지만 그것이 삶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임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저자는 하버드 대학을 다니는 캠퍼스 커플이다. 이미 아이 하나를 가지고 있으며, 또 다시 임신 상태임을 알게된다. 그런데 그 뱃속에선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 다운증후군이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를 없앨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일류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 인생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쉴 틈 없이 달려온 하바드 인들은 그런 아이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바드 인뿐만이 아니라 의사들, 친척, 심지어 남편마저도. 그러나 이내 남편은 아내의 뜻을 이해하고, 친구라고 말할 수 없었던 얼굴만 아는 사이의 사람들이 힘이 되어준다. 교통사고에서 살아남고, 화재에서 살아남으면서 겪게 된 이상한 현상들. 저자는 그것이 뱃속의 아기, 아담이 천사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담을 잉태하고 나서부터 찾아온 비논리적 경험들. 그리고 한없이 따뜻한 주위의 사람들. 하바드로 이루어진 자신의 울타리는 여전히 차가운 마음과 지성으로, 성공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차 있다. 그러나 점차로 하바드인으로 성장하며 닫힌 자신의 마음을 열어제끼자 주위는 한없이 밝고 따스했다. 그녀는 그것을 천사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마음에 가두고 있던 천사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순간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친절한 순간이라고.



자가면역질환까지 앓고 있는 저자에겐 임신이란 큰 부담이다. 그녀는 이런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면서 그 고통의 크기만큼이나 자신의 아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느낀다. 그 과정의 일들이 그녀의 필체속에 잘 녹아나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자아낸다. 왜 아이를 지켜야만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그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해가 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불가사의한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마냥 이해가 되는 순간순간들.



그래서 서두에 말했던 이 시대가 용납하고, 오히려 강제했던 낙태의 이유들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순간에서 선택한 그 결정들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적 사고에 파묻혀 위로하고 쉽게 망각해버린 그 순간들.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놓아버린 끈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나 고속철이 아니라,  쉬엄쉬엄 사람들과 정을 싣고 내리는 완행열차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한보따리 이고 타기도 하고, 젖먹이 아기를 등짝에 포대기로 싸고 두손엔 짐보따를 가득 든 아낙내가 타기도 하는 바로 그 완행열차 말이다. 마치 시골 장터에 와 있는 듯한 분주함. 그리고 추운 겨울 창안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빛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가로움이 공존하는 곳.  체온으로 가득한 그 완행열차. 내 몸을 싣고 달리고 있는 이 기차의 속도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결정하고 있음을 깨닫고 어떤 속도로 내달릴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겠다. 지금까지의 성공에 대한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담은 지워졌어야만 할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아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맛보고 있는가? 아담은 정말 천사였다. 아담이 이 세상에 나온걸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도 이렇게 축복해마지 않는다. 삶은 마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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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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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은 아주 틀린 말이다. 사랑은 지상에서 오직 하나 우리에게 서로를 가장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것이다.

<나의 생각>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조차 아름답게 느끼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기에 눈이 먼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모든 걸 꽤뚫어보며 그 시선에 한없이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을지도...-234쪽

아담은 나에게 사물 자체를 보고, 무자비하고 흔히 무감각하나 세상이 그것에 갖다붙인 가치를 보지말라고 가르쳤다.-334쪽

사람들이 아담을 보고 그들의 눈앞에 있는 아름다움 대신에 그들의 인식 속에 있는 기형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의 생각>인간의 인식과 가치판단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해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동시대의 가치와 인식을 항상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긴다. 그래서 생겨지는 층계들.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에 마음 아파할수밖에 없는 처지. 그 상하의 계단을 마음속에서 치울 수 만 있다면.-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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