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낙태 왕국 코리아.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다. 새삼스럽재 않은데 이런 얘길 꺼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낙태반대 운동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생명을 없애야만 했던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사연들을 일일이 들춰내자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어떤 흐름을 말하고 싶을뿐이다. 예전엔 남자 아이를 중시해서 뱃속의 아기가 여자아이라면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긴 하지만 대세는 아닌 듯하다. 현재 낙태를 했거나 할 계획인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아이를 셋 이상 낳거나, 40대 이후에 아이를 가지면 으례 '살만하군' 이라는 말을 건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거꾸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거나 그다지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겐 아이라는 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생명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보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과학의 발전으로 이젠 아이의 상태를 미리 알뿐만 아니라 조건을 맞춰서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대가 왔을땐 사람들은 또 어떤 조건에 맞추어 아이들을 가지려 할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그런 세상을 향해 생명의 잉태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를 말하는 책이 있다. 아이를 갖는 것이 때론 힘이 들지만 그것이 삶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임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저자는 하버드 대학을 다니는 캠퍼스 커플이다. 이미 아이 하나를 가지고 있으며, 또 다시 임신 상태임을 알게된다. 그런데 그 뱃속에선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 다운증후군이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를 없앨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일류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 인생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쉴 틈 없이 달려온 하바드 인들은 그런 아이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바드 인뿐만이 아니라 의사들, 친척, 심지어 남편마저도. 그러나 이내 남편은 아내의 뜻을 이해하고, 친구라고 말할 수 없었던 얼굴만 아는 사이의 사람들이 힘이 되어준다. 교통사고에서 살아남고, 화재에서 살아남으면서 겪게 된 이상한 현상들. 저자는 그것이 뱃속의 아기, 아담이 천사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담을 잉태하고 나서부터 찾아온 비논리적 경험들. 그리고 한없이 따뜻한 주위의 사람들. 하바드로 이루어진 자신의 울타리는 여전히 차가운 마음과 지성으로, 성공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차 있다. 그러나 점차로 하바드인으로 성장하며 닫힌 자신의 마음을 열어제끼자 주위는 한없이 밝고 따스했다. 그녀는 그것을 천사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마음에 가두고 있던 천사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순간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친절한 순간이라고.



자가면역질환까지 앓고 있는 저자에겐 임신이란 큰 부담이다. 그녀는 이런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면서 그 고통의 크기만큼이나 자신의 아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느낀다. 그 과정의 일들이 그녀의 필체속에 잘 녹아나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자아낸다. 왜 아이를 지켜야만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그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해가 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불가사의한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마냥 이해가 되는 순간순간들.



그래서 서두에 말했던 이 시대가 용납하고, 오히려 강제했던 낙태의 이유들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순간에서 선택한 그 결정들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적 사고에 파묻혀 위로하고 쉽게 망각해버린 그 순간들.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순간들을 놓아버린 끈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나 고속철이 아니라,  쉬엄쉬엄 사람들과 정을 싣고 내리는 완행열차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한보따리 이고 타기도 하고, 젖먹이 아기를 등짝에 포대기로 싸고 두손엔 짐보따를 가득 든 아낙내가 타기도 하는 바로 그 완행열차 말이다. 마치 시골 장터에 와 있는 듯한 분주함. 그리고 추운 겨울 창안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빛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가로움이 공존하는 곳.  체온으로 가득한 그 완행열차. 내 몸을 싣고 달리고 있는 이 기차의 속도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결정하고 있음을 깨닫고 어떤 속도로 내달릴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겠다. 지금까지의 성공에 대한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아담은 지워졌어야만 할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아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맛보고 있는가? 아담은 정말 천사였다. 아담이 이 세상에 나온걸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도 이렇게 축복해마지 않는다. 삶은 마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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