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8월 3일 비온 후 갬 25도~31도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유전 형질이 100% 발현되지는 않는다. 유전자의 형질이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유전자는 그 형질이 발현된다. 즉 유전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나야지만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라고 알고 있다. 


이런 앎은 올해 커피콩을 심으면서 직접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봄에 커피콩을 10개 가량 심었다. 처음에 2개를 심었다가 뒤에 8개를 더 구해서 심은 것이다. 4개는 실내에, 6개는 실외에 심었다. 사전 공부도 없이 커피콩(아라비카 종)의 열매(체리라고 부른다)를 구해서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고 씨앗을 원예용 상토에 심었다. 상식적으로 커피는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것이라 한여름 바깥에 놔두면 발아가 되어서 잘 자랄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일부러 심지 않아도 커피나무가 번성한 것을 생각해보면, 열대의 기후와 가장 근접한 우리나라의 여름 기후가 커피가 나고 자라는데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었다. 열대지역에서 자라긴 하지만 800미터 이상의 고온지대에서 잘 자라다 보니 평균기온 15~24도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잠깐 더 생각을 해보면 커피나무의 경우에도 자연상태에서는 6~8미터, 크게는 10미터 이상까지 자란다고 하니, 열매가 떨어져 싹이 나는 동안 햇빛을 직접 쏘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어느 정도 그늘이 져야 싹이 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다보니 직사광선을 피한 실내에서는 싹이 모두 났지만(최소 30일~60일), 한여름 태양빛을 쐰 야외의 파종은 모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커피콩은 휴면 상태가 없이 바로 발아가 되는 씨앗이라고 한다.- 물론 발아조건에 따라 발아하는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봄직도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라도 그늘막을 쳐주어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이런 조건을 생각해본다면 발아가 된 이후에도 직사광선은 될수록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콩나물 모양의 모종이 떡잎을 키우는데까도 무려 두 달 가까이 걸린다고 하니, 이 기간에도 직사광선을 많이 쐬지 않도록 관리에 신경을 써야할 듯 싶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커피콩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조건에서 싹이 날지 잘 살피고, 그 조건을 맞추어 주도록 애쓰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몫이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의 몫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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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8월 2일 소나기. 흐림  25도~32도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은 틀림이 없다. 올해 대여섯번 풀을 베었지만, 여전히 풀은 왕성하게 자란다. 



지난해 심었던 블루베리 묘목이 있는 곳도 풀이 많이 자라서 묘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바랭이풀, 강아지풀, 개망초, 칡, 환삼덩굴 등 가지가지다. 묘목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냥 놔두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리가 있겠는가.



무딘 낫을 갈고, 예초를 시작했다. 한두 시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낫으로 베면서 블루베리 묘목 주위의 풀은 뽑아 주었다. 이번이 올해 마지막이면 좋겠지만, 아마도 최소 한 번 정도는 더 깎아 주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풀 속에 파묻혀 있던 블루베리 묘목들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 


풀을 깎으면서는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할까? 그냥 제초제 뿌리면 될 일을'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한다. 하지만 풀을 다 깎고 나서는 뿌듯해지는 기분이 든다. 베어진 풀들은 땅으로 돌아가 블루베리가 잘 자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기물이 될 것이다. 죽은 흙이 아니라 살아있는 흙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풀 베기 작업. 정말 끝이 없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한 곳 한 곳 풀이 깎이고 작물이 드러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 하지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또다시 우거진 풀들이 보인다. 다시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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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8월 1일 비온 후 갬 25도~32도


태풍의 영향인지 잠깐 동안 비바람이 거셌다. 폭우가 쏟아진 것도 폭풍이 몰아친 것도 아니지만, 태풍 끝자락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배나무(신고) 한 그루 중 유독 한 가지에 배가 엄청 달렸다. 가지가 휘어져 땅에 닫을 정도였다. 솎아주기를 하려다 그냥 자연스레 자라도록 놔두었다. 그런데 이번 비바람에 그만 가지가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품종이 아니라 야생의 품종이었다면 이렇게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열매를 맺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개량된 품종들은 어떻게든 사람의 손을 탈 수 밖에, 즉 농사라는 작업을 거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자연 상태로 놔 두었으니, 탈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과욕은 이렇듯 참사(?)를 불러오는 모양이다. 



가지가 꺾이는 피해를 본 김에 배나무 두 그루를 둘러보았다. 열매 중에 이번 장맛비로 열과가 된 것도 나오고, 벌레 먹은 것들도 꽤 보인다. 솎는 작업을 하지 않고 놔두었던 것들이라, 이런 피해과를 따 주는 것이 솎는 작업과 겸하는 셈이 되었다. 


열매의 벌레 피해는 열매가 맺히고 나서가 아니라 꽃이 피었을 때부터 발생한다고 한다. 즉,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선 꽃이 필 때부터 예방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는 작년처럼 끝까지 방치하지 않고, 방제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시기는 늦었던 모양이다. 열매가 맺히고 어느 정도 자란 뒤부터 방제작업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방제 작업 덕분에 수확할 수 있는 열매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있다. 


지금의 모습은 과거 행위의 결과임을 즉, 모든 사건의 결과는 그 원인이 있음(인과응보)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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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7월 28일 맑음 20도~32도


사과나무가 네 그루 있다. 부사 두 그루. 알프스오토메 한 그루,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품종을 잊어버렸다. 알프스오토메와 같이 작은 사과로 알고 있지만, 도무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과가 벌써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른 시기에 익으면서 크기는 작은 사과를 검색해보니 루비에스라는 품종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4년전 부터 보급이 된 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알프스오토메와 산사라는 품종을 교배해서 만든 것이다. 묘목을 심은 시기가 4년 전이었으니, 얼추 맞을 듯하다. 크기나 익는 시기도 비숫해서 루비에스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루비에스 수확시기는 8월 중순부터라고 하니, 조금만 잘 버텨주면 수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주먹보다는 작고 탁구공보다는 조금 큰 크기이다. 다만 성한 사과가 별로 없고, 벌레 피해를 입은 것들이 많아 보여 걱정이다. 


워낙 크기가 작다보니 벌레가 상처를 낸 곳을 도려내면 먹을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ㅜㅜ 그나마 아직 새들이 쪼아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2주 정도만 잘 버텨보자는 생각이다. 과연 올해 처음으로 사과를 수확할 수 있으려나.



반면 부사는 그을음병에 벌레가 구멍을 뚫기까지 하는 등 피해가 크다. 더군다나 크기도 아직 작다. 루비에스와 비슷한 수준. 길을 지나치다 마주치는 과수원의 부사 크기는 이미 주먹만할 정도로 커진 것들이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너무 작아 보인다.

알프스오토메 또한 크기가 너무 작다. 겨우 골프공 크기 정도로 자랐다. 더 크게 자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9월말 경이 수확시기라 하는데, 적어도 탁구공 정도는 자라야 따 먹을만하지 않을까. 과일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양분이 그만큼 적다는 것인데.... 부사는 아직 수확시기가 남아 있으니 추가로 줄 수 있는 양분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아야 겠다. 그리고 내년엔 밑거름도 더 충분히 주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올해 이렇게 성한 사과가 많진 않아도 가지마다 주렁주렁 몇 개씩 달린 것을 보니 친환경으로 키울 희망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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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7월 28일 맑음 20도~32도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 시절.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 학교 가는 도중에 길 오른편으로 성당이 있었다. 성당 담벼락에는 봄 늦게부터 나팔꽃이 피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가정집 담벼락을 넘어선 무화과를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그 길을 일부러 찾아 한 번 걸었을 땐 참 좁고도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당시엔 넓고도 길었다. 그 길이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나팔꽃 덕분이었다 생각된다. 동요 속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이렇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화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꽃밭을 만들고 일부러 나팔꽃을 심고 넝쿨을 유인하기 위해 새끼줄을 묶어둔 것이다. 즉 나팔꽃은 관상용 꽃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나팔꽃은 잡초와 다름없다. 아니, 잡초임에 틀림없다. 작물을 칭칭 감고 올라가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쁜 꽃을 피우기는 하나, 그 꽃을 감상할 여유는 없다. 꽃이 필 정도라면 주위 작물을 온통 감싸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렸을 적에도 성당 담벼락 나팔꽃이 아니라 밭에서 난 나팔꽃은 분명 잡초라 여겨졌을 터이다. 똑같은 나팔꽃이지만 한쪽에서는 일부러 잘 자라도록 돌보면서 키우고, 한쪽에서는 혹시나 더 번질까 얼른 얼른 뿌리 채 뽑아내는 것이다. 


나팔꽃은 그냥 나팔꽃이지만, 어디에서 피었느냐에 따라 그 대접이 다르다. 사람도 저마다 대접받는 자리에 있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잡초 신세가 된다. 물론 친환경농업에서 잡초는 지긋지긋한 대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멀칭과 공생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잡초도 분명 그 나름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지만, 기왕이면 잘 자라도록 대접받는 자리에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꽃밭 속의 나팔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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