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7월 28일 맑음 20도~32도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 시절.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 학교 가는 도중에 길 오른편으로 성당이 있었다. 성당 담벼락에는 봄 늦게부터 나팔꽃이 피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가정집 담벼락을 넘어선 무화과를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그 길을 일부러 찾아 한 번 걸었을 땐 참 좁고도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당시엔 넓고도 길었다. 그 길이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나팔꽃 덕분이었다 생각된다. 동요 속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이렇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화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꽃밭을 만들고 일부러 나팔꽃을 심고 넝쿨을 유인하기 위해 새끼줄을 묶어둔 것이다. 즉 나팔꽃은 관상용 꽃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나팔꽃은 잡초와 다름없다. 아니, 잡초임에 틀림없다. 작물을 칭칭 감고 올라가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쁜 꽃을 피우기는 하나, 그 꽃을 감상할 여유는 없다. 꽃이 필 정도라면 주위 작물을 온통 감싸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어렸을 적에도 성당 담벼락 나팔꽃이 아니라 밭에서 난 나팔꽃은 분명 잡초라 여겨졌을 터이다. 똑같은 나팔꽃이지만 한쪽에서는 일부러 잘 자라도록 돌보면서 키우고, 한쪽에서는 혹시나 더 번질까 얼른 얼른 뿌리 채 뽑아내는 것이다.
나팔꽃은 그냥 나팔꽃이지만, 어디에서 피었느냐에 따라 그 대접이 다르다. 사람도 저마다 대접받는 자리에 있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잡초 신세가 된다. 물론 친환경농업에서 잡초는 지긋지긋한 대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멀칭과 공생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잡초도 분명 그 나름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지만, 기왕이면 잘 자라도록 대접받는 자리에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꽃밭 속의 나팔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