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이승의 삶을 소풍이라 표현했죠. 아름다웠더라고 말한다 했죠. 한편 <나의 가난은>이라는 시에선 '괴로왔음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표현합니다. 시인의 삶이 괴로웠지만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도 아이는 아침에 기침을 심하게 하다 몇번이나 토하더랬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기관지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네요. 괜히 주사를 꽂아 영양제를 주거나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침에 토하는 모습을 보며 울컥해진 저의 마음을 의사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곧 나아질거라 합니다. 일단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점심 때가 가까워지면서 아이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쇄골에 붙여논 기관지 확장제가 숨을 편히 쉬게 해주나 봅니다. 밥도 조금 먹고 약도 크게 거부하지 않고 먹습니다. 과자며 두유며 조금씩 조금씩 입에 가져다대는 걸 보니 한결 기분이 좋습니다. 더군다나 장난도 치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장난이라니요.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열이 펄펄 끓던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장난을 거는 겁니다.

 

그렇구나.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장난질을 하는 거구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장난질에 저도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일할 기분도 납니다. 갑자기 인생이 장난같아 보입니다. 유쾌하고 즐겁게 한판 놀다 가볼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슬퍼했음 마지못해 산 인생 여기 뛰놀다 장난치며 위로받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록 소풍은 짧고 장난은 순간이라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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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몸이 불덩이입니다. 약을 먹었는데도 차도가 별로 없네요. 자꾸자꾸 못된 생각만 듭니다. 아이가 일어나는대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데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라고 하네요. 주사를 맞히려 했지만 아이가 "싫어 싫어" 고개를 젓습니다. 갓난아이였을 때 정말 주사를 잘 맞았었는데 말이죠. 주위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도로 "앵~" 한번 하고는 뚝 그쳤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주사를 무서워합니다. 할 수 없이 약을 좀 강하게 쓰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면서부터 잘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 왔더니 고작 한 조각 먹고는 밀어냅니다.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싸 왔더니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약이 쓰고 독하다고 하니 잘 먹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날마다 아이를 몇번씩 안아줍니다. 오늘은 아이 무게가 가볍게 느껴집니다. 아이를 안고 걸을 때마다 '아이고, 몸무게가 늘어서 힘드네, 언제쯤 저 혼자 걸으려나'하며 푸념을 했었는데. 마치 아이 몸 속에서 마음 한 구석이 떨어져나간듯 가벼워졌습니다. 그 영혼의 무게가 참 무거웠나 봅니다. 또다시 미안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죄인이 된 듯합니다. 아이가 번쩍 들어올려집니다. 그 가벼움이 저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아주 무겁게.

 

아이는 연신 잠만 자려 합니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간지럽히기도 하고, 장난을 건넵니다. 가끔씩 웃어주는 아이는 정말 천사입니다. 제겐 천사가 있습니다. 결코 저의 곁을 떠나지 않을 천사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 천사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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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2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아프면 밥을 못 먹'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은 '평소에 먹고 싶던 것'을 줄줄이 댈 뿐이에요.
그걸 고스란히 사다 줄 수는 없고,
"네가 다 나으면 다 사 줄게." 하고 말하면 됩니다.
그리고, "아프면 아무것도 못 먹는단다. 깨끗하게 낫고 모두 즐겁게 먹자." 하는
말을 아이한테 들려주셔요.

아이한테 "네가 튼튼하고 씩씩하게 크려고 아프단다." 하는 말도
잊지 마시고요...

크리스마스 2013-08-29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때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못받아 성인이 된 지금도 불안해하고 았습니다. 따님께선 먼 훗날에 오늘을 어렴풋이 기억할테고 아빠의 따뜻한 사랑으로 예쁜 마음의 성인이되겠지요. 힘내시길 활기차게!!

하루살이 2013-08-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약을 먹이려다 보니 자꾸 욕심이 가네요.
건강하게 키우는 게 제일 큰 목표랍니다.
응원을 힘삼아 기운 내겠습니다.
 

"아가야, 아프면 안돼, 알았지? 튼튼하게 자라야 돼"

아기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마가 불덩이인데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이 볼에 뽀뽀를 해주며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네요. 요즘 눈가가 마를 날이 없네요. 정말 바보같아요.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 안왔어?"라고 묻네요. "오늘은 안 올거야"라며 슬며시 넘어갑니다. 다행히 더이상 보채지는 않네요. 숙소 앞의 밤송이를 보여주며 딴 생각에 빠지도록 자꾸 유도합니다. 아이는 어제 본 노을이 생각난지 "오늘은 구름이 하얘. 빨갛지가 않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아침을 서둘러 먹이고 새로운 어린이집에 데려갔어요. 아이는 "여긴 내 친구들 없어. 사랑반 선생님 보고 싶어"라며 울먹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어린이집 문앞에서 눈물을 터뜨립니다.

 

어린이집 새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달래줍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선생님에게 꼭 들러붙어 있네요. 원서접수를 쓰는 동안 아이는 눈물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무룩한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표정에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혹시나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을까봐 겁이 덜컥 났어요. 당장 달려가 아이를 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이곳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겨우 진정한 아이를 다시 울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대신 오늘은 점심만 먹이고 다시 데려가기로 했어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어린이집에 다시 왔습니다. 아이는 방금 낮잠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깨고 나서 저에게로 왔습니다. 방금 잠에서 깬 것 때문인지 몰라도 좋아하는 표정도 없이 무뚝뚝하네요. 또한번 겁이 났어요.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려 이야기를 자꾸 건넸습니다. 조금씩 대꾸하기 시작합니다. 휴~ 다행입니다. 아이가 떼 쓰는 것도 다행입니다. 아이가 보채는 것도 다행입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아빠 사랑해?" "응, 사랑해" "그럼 뽀뽀" 아이가 뽀뽀를 해줍니다. 마음이 사르르 녹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 염소에게 데리고 가 먹이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피부에 뭔가 토돌토돌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열도 조금 있는 것 같구요. 병원에 갈까 망설였습니다. 조금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녁시간이 됐는데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나 봅니다. 밤이 깊어가니 아이의 몸이 뜨거워집니다.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시골에서 응급실이라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몸이 더 뜨거워지면 아무래도 병원으로 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이곳저곳 주물러 주며 몸 상태를 체크해봅니다. "많이 아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프면 안돼. 씩씩해야지, 우리 아가는 그럴 수 있지?" "응" 대견스럽게도 아이가 아빠를 보며 웃어줍니다. 크게 보채지도 않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오늘밤 더이상 열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가야 부디 잘 견뎌내렴. 이렇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지 말아줘. 네 옆엔 항상 내가 있을거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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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연일 뜨거운 날씨

 

오늘 한 일 - 감자밭 후작으로 배추 정식(불암 3호, 토종 괴산, 구억리, 청갓 등)

 

"후루룩 국수 안 사주면 다음주부터 안 나올거유"

농담처럼 건네는 할머니의 말씀엔 독기가 조금 서려 있다.

"아침 참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면서 말이야"

사실 아침밥을 챙겨드시지 않고 아침 6시에 일을 하러 나오시는 할머니들에게 참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품을 산 첫날부터 이미 농장 사정을 말씀드려온 터였다. 할머니들도 이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처음엔 두유와 빵이었지만 두유 대신 미숫가루라도 타 드리려 노력했다. 미숫가루를 타 온 첫날엔 굉장히 만족스러워 하셨다.

"이거라도 먹으면 그래도 든든해"

그러던 할머니들께서 점차 요구하시는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방울토마토의 열과를 따지 못하도록 주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요구사항이 늘어난듯 느껴진다.

 

시골에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할머니들께선 초반기 눈치를 조금 보며 일하셨다. 그러다 농장에서 사람을 잘 구하지 못한다는걸 아시게 되자 점차 '갑'의 자세로 변하셨다.

"품삯도 올랐어. 다른데선 5천원을 더 받아"

그래도 다른 할머니 한 분은 꽤 상식적이시다.

"다른 사람들이 받으니까 받지만 미안스러워. 밭주인은 빚더미에 올라 죽네 사네 하는데 일꾼들이 돈 5천원 더 안주면 일 안한다고 하니..." "그래도 받을 건 받아야제. 망하는 건 우리 사정이 아니잖여."

나도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의 진통까지 겪으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받고 신장시키려 애쓴 적이 있다. 노동자로서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었다. 못내 당하고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노동자가 갑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갑이 되었다고 해서 갑 행세를 하는 것엔 반대다. 누가 갑이 되었든 갑이 된 자는 그 위치의 이권을 마음껏 누리려 해서는 안된다. 갑은 갑이 아닌듯 을과 함께 갈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의 위치는 갑도 을도 아니다. 할머니들을 내가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품삯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흙살림에게 잘 보이려 할머니들을 윽박지르며 일하도록 채찍질 할 필요도 없다. 할머니들이 일하면서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잘 해결해 드리고, 다른 한 편으론 흙살림에서 필요한 일을 잘 마무리 짓도록 함께 일하면 된다. 손해를 본다거나 복종을 한다거나 하는 손익이나 힘의 싸움에서 벗어나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게 최고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장을 차는 순간 확 바뀌고 만다. 할머니들의 '갑' 행세를 보자니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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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날씨 뜨겁다 뜨거워

 

 

별 도장이 찍힌 방울토마토. 그래 넌 나에게 별이다. 희망을 품게 만드는...

 

 

오늘도 방울토마토 수확 작업을 했다. 일주일에 두번 꼴이던 수확이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5개 하우스 중 두개 동 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3개 동은 병충해로 건질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끝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진 수확한 토마토를 E마트나 대전에 있는 흙살림 직영 매장 '농부로부터'에 납품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농장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기회가 생겼다. 회장님의 인심으로 납품가보다도 싸고 일반 마트의 절반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이었지만 뿌듯했다. 한번 맛보기로 먹어본 방울토마토가 맛있다며 너도나도 사가겠다고 줄을 서는 모습에 흥이 절로 났다. 덤을 퍼주고도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여름 내내 피땀흘려 키운 토마토를 헐값에 내놓는다는 아쉬움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회장님에게 다소 질타가 섞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투정이었다. 소비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직접 키운 토마토를 판매하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

요즘은 포장을 하면서 생산자의 사진을 올려 소비자와의 간접적 만남을 추구한다. 사진만으로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쌓아갈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 대면보다는 아무래도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직거래가 꼭 좋은 건만은 아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산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팔리는지를 모르고 생산하는 것과는 천연지차다. 로컬푸드의 정신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로컬 푸드도 매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한 발 더 나아간다면 농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굴을 맞대는 교류를 통해 탄탄한 믿음을 쌓아가고 인간적 풍취마저도 풍겨나도록 말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으로써 노동의 소외도 말끔히 없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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