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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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훈의 문체에 대하여, 그리고 그 글에 대하여 칭찬하는 글을 여기저기서 본다. 난 개인적으로 문체에 대한 감이, 또는 인식이 전혀 없어 아직 누가 어떤 문체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분별을 잘 못한다. 영화라면 또는 음악이라면 어느 정도 감독과 작곡가에 따라 어떤 색깔을 찾아내곤 하지만 영 글은 잼병이다. 그래도 문체는 잘 모르지만 "어 이거 굉장히 잘 썼는데" 따위의 어설픈 평을 감히 내뱉곤한다. 최근 읽었던 책중에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라는 글이 기억 속에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접하게 된 김훈의 이 책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정말 청산유수라는 느낌이다.

감정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그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작가의 생각대로 또는 마음대로 나의 생각과 마음이 같이 흘러간다. 정말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 강까지 이르는 마냥 기분도 생각도 푹 젖어버린다. 그러나 잠시 물에서 발을 떼 흙으로 나오는 순간 그 시냇물의 근원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게 된다.

밥벌이의 고단함과 신산스러움, 대학 졸업식장의 아수라장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정말 공감이 간다. 하지만 왜 밥법이가 고단해야지만 하는지, 졸업식장 행사에 졸업생은 없는지를 잠깐만 생각해보면 그의 논지를 따라가는 것이 불편해진다. 즉 그의 청산유수같은 말은 저 산꼭대기로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중류에서 섞이는 다른 시냇물과 같은 것이다. 즉 그가 바라보는 생각의 근원과 내가 바라보는 생각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정말로 밥벌이는 고단해서는 안되지만 현재의  밥벌이가 고단하지 않는 자는 실은 고단한 밥벌이를 하는 사람에게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며, 졸업식장에 졸업생이 없는 것은 학교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줬는지 학생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하며, 스승이라고 느낄 수 있는 애정어린 교수를 또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를터이다.  즉 그의 감정과 논리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흘러가지만 난 현실이 현실이게 된 과정을 못내 인정할 수 없기에 그 물줄기의 근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이 정말 잘 쓰여진 것 만큼 위험의 수위도 커짐을 느낀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오히려 그 희생자들에게 가 있을 수도 있음을 상상하면 못내 그의 글의 날섬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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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림일기
오세영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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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의 <간판스타>가 희생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는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처럼 줌인과 줌아웃, 패닝으로 짜여진 만화의 한컷 한컷은 글보다도 훨씬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몽타쥬 기법과 같은 장면의 충돌없이도 서서히 감정을 격앙시키는 컷의 구성은 탁월하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사회적 제도, 역사의 흐름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러나 그것은 누구를 향해 폭발되어지는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판 어머니의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원시인처럼 거친 근육으로 표현되어진 경쟁사회속의 타인들, 끌려가는 아버지때문에 또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들때문에 토악질을 해대야 하는 주인공,  가난하기에 왕따 당하는 딸을 위해 손을 꼭 쥐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어머니 등등. 주먹을 뻗어 닿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결국 분노를 터뜨릴 대상이 되어 버린다. 가족과 동료를 향한 거침없는 분노. 실은 세상을 향한 분노여야 옳다. 그렇기에 한 컷 만화 속의 뒤틀어져버린 관계들은 더욱 서글프게 다가온다. 

누가 우리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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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스타 -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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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가난한 사람들의 지난한 삶들이 녹아 있는 만화책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아가씨, 쓰레기 리어카를 끄는 청소부 아저씨, 운수도 무지하게 나쁜 택시운전사, 일약 등단과 돈을 한꺼번에 쥐고자 했던 룸펜, 딸로 태어난 설움을 간직한 막내딸 끝지 등등.

흔히 밑바닥 인생을 읽어가다 보면 그들을 그 자리에 서게 만드는, 그리고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늪과 같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먼저 느끼게 마련인데, 간판스타는 오히려 눈물을 머금게 만든다. 그 굵직한 필체의 그림 속에서 이렇게도 연약한 마음의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다.  경숙이, 황씨, 끝지가 보여주는 희생적인 삶, 자신을 버림으로써 가족을 살리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에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중엔 희생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터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 주위엔 바른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눈물을 머금는 것도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주위엔 정말로 희생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만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실재한다면 희생이란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져버리지 않겠는가? 희생은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다. 못난 사회를 아름답게 가려보기 위해 수많은 미담을 만들어낸다. 사회 자체가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라질지 모른다. 난 더 이상 황씨나 경숙이와 같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마음은 영원히 간직하되 그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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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4-2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덕의 강요.악덕보다 더 싫은 것입니다.왜 약자에게만 예절과 미덕을 강요하는지...
잘 읽고 갑니다.
 
객주 1 - 한국만화대표선
김주영 원작, 이두호 글.그림 / 바다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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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순간순간들이 역사를 만드는 밑거름이라는 건 이론적으로 알겠으나, 진짜 발로 걷고 손으로 만져지는 삶 속에선 도대체 어디에 역사가 흐르고 있는지 발견할 수가 없다. 물론 촛불집회와 같은 거대한 물결속에선 이것이 역사의 한 장이 될것임을 알 수 있으나 일상속에선 안갯속일 따름이다.

객주의 천봉삼이라는 주인공은 역사에서 한발짝 비켜 서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지 않는다해서 그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개인적인 삶이 거의 완벽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반듯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흥선대원군과 민비의 싸움에서 유필호와 이용익이라는 인물의 선택중 어느 한 곳도 편을 들지 않고 그저 자신의 보부상 무리들을 꾸리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의 삶이 일관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리를 지키는데 목숨을 바칠 정도로 헌신하고 있었기에 딱히 그를 욕할 순 없지만 어찌보면 그는 방관자일 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역사가 그냥 스쳐가는 흐름이 아니라 계속해서 선택의 순간을 강요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다. 개인적 삶으로서는 완벽하다 하겠지만 사회적 삶으로서는 낙제다. 낙제인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문득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는 그를 옹호하고 싶다. 아니 옹호를 넘어 자신의 패거리에 얽매여 의리를 지킨다시고 목숨을 갖다바치는 것도 피해 그저 저만치 벗어나 있는 삶을 동경해마지 않는다.

그 옛날 임금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산 속 깊은 곳에서 누추한 삶을 살았던 화전민들을 떠올리며 차라리...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또한 내가 정말 가끔씩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는지 떠올려보면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삶, 그리고 그 의지가 되어주는 삶 또한 내가 꿈꾸던 삶은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사람만이 희망이고 또한 절망이다.

진정 괴로워하지 않는 삶이란 없는 것인가?

2. 만화속에선 폭력이 난자하다. 잘못에 대한 처절한 응징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꾸 등장하는 고문의 현장은 책장을 빨리 넘기게 만든다. 죄를 고백하라며 치는 곤장들. 우리는 그 곤장이라는 장면에 얼마나 익숙해있는가? 그것처럼 폭력적인 것이 어디있다고? 나 같으면 고문을 1분도 못 넘기고 다 불어버릴것 같다. 그래서 난 폭력을 절대 반대한다. 나의 절대의지나 의사를 꺾고 자신의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가하는 힘의 우월성. 난 그 힘에 반대한다. 지금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화폐의 힘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왜 사람들은 타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하고자 하는가? 차라리 인형을 만들어 갖고 놀아라. 로버트를 만들어 조정하라. 사람을 꼭두각시 취급하지 않는 세상, 따라서 천봉삼은 역사의 물결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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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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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글을 읽다보면 점점 내 몸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제기랄. 자신을 B급이라 표현하는 저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난 C급이나 되려나? 자신의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부단히도 고달픈 삶인가? '양심의 가책, 흥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겠어' 라며 저지른 수많은 위선들. 그리고 조금만 참으면 될 줄 알았지만 끝끝내 마음 한 귀퉁이에 남아 어느 순간 고개를 치켜드는 부끄러움. 그러나 그 부끄러움마저 잠시 나의 양심을 마스터베이션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지리한 일상.

지적 허황에 헤매이다, 결국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는 가난한 삶.

적십자 공익광고의 박수홍이 사랑은 동사라고 말하는 것을 새삼 내 삶의 전체에 대입하고 싶어진다. 내 삶은 언제나 접속어에 그치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같이 얼마나 많은 핑계를 대며 살아왔던가. 그리고 그 수많은 핑계들을 위해 머리속에 기억해둔 글과 말들. 그건 정말 마스터베이션이었을 뿐이다. 내 양심에 내 이성에 들이미는 칼들을 무디게 만드는 마스터베이션의 순간순간들.

난 김규항의 말대로라면 좌파로 살기엔 힘든 사람이다. 나 혼자만의 양심마저도 쉽게 지켜내지 못하는 삶이 다른 사람의 양심까지 지켜내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C급 좌파도 못 되기에 그저 나 혼자만의 양심이라도 지켜낼 줄 아는 삶을 살기위해 무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아이들이 있게 된다면 좌파로 돌아설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과 천민 자본주의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규항의 B급 정신은 A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속에서 정말로 자신의 마음 속까지 비춰주는 소중한 거울임을 책을 읽으면서 확인한다. 이런 B급이라면 A+가 무에 필요하겠는가? 세상이 B급의 양심이라고 갖길 바라며 C도 못되는 난 눈뜬 삶을 살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제발 이 마음, 변치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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