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김규항의 글을 읽다보면 점점 내 몸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제기랄. 자신을 B급이라 표현하는 저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난 C급이나 되려나? 자신의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부단히도 고달픈 삶인가? '양심의 가책, 흥 조금만 참으면 되지 않겠어' 라며 저지른 수많은 위선들. 그리고 조금만 참으면 될 줄 알았지만 끝끝내 마음 한 귀퉁이에 남아 어느 순간 고개를 치켜드는 부끄러움. 그러나 그 부끄러움마저 잠시 나의 양심을 마스터베이션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지리한 일상.
지적 허황에 헤매이다, 결국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는 가난한 삶.
적십자 공익광고의 박수홍이 사랑은 동사라고 말하는 것을 새삼 내 삶의 전체에 대입하고 싶어진다. 내 삶은 언제나 접속어에 그치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같이 얼마나 많은 핑계를 대며 살아왔던가. 그리고 그 수많은 핑계들을 위해 머리속에 기억해둔 글과 말들. 그건 정말 마스터베이션이었을 뿐이다. 내 양심에 내 이성에 들이미는 칼들을 무디게 만드는 마스터베이션의 순간순간들.
난 김규항의 말대로라면 좌파로 살기엔 힘든 사람이다. 나 혼자만의 양심마저도 쉽게 지켜내지 못하는 삶이 다른 사람의 양심까지 지켜내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C급 좌파도 못 되기에 그저 나 혼자만의 양심이라도 지켜낼 줄 아는 삶을 살기위해 무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저자처럼 아이들이 있게 된다면 좌파로 돌아설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과 천민 자본주의의 정신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규항의 B급 정신은 A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속에서 정말로 자신의 마음 속까지 비춰주는 소중한 거울임을 책을 읽으면서 확인한다. 이런 B급이라면 A+가 무에 필요하겠는가? 세상이 B급의 양심이라고 갖길 바라며 C도 못되는 난 눈뜬 삶을 살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제발 이 마음, 변치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