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 외 옮김 / 창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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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물이 흘러흘러 폭포를 맞이한다. 그 강물에 배를 띄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폭포로 떨어지거나, 첨단 장비를 동원해 하늘 위로 솟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평평한 세계에선 모두가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강물은 자본주의라는 강물이요,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은 무선 통신 등의 신기술이 이루어놓은 세계화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무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이 책은 그래서 다분히 미국적이다.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세상이 평평해질 수 있는 희망을 보고, 9월 11일 테러를 지켜보면서 또한 벽이 쌓일까 두려워 하는 저자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보호주의를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애써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에 앞서 왔고, 또 앞장 설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 거스를수 없을 것 같은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폭포가 아닌 평원으로 길을 내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로 나는 꿈이 아니라, 다른 물길을 터, 평원에 물을 적시겠다. 즉,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말고도, 그것의 여러가지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만한다면, 폭포를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하기로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순진한 건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전부 허구라면 모를까,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 세계화가 가져온 부정적 통계치나 사실 관계를 무시한채, 또는 그것에 대해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폐쇄적 국가 체제나 문명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체제만을 유일한 삶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잡설은 일단 그만두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세계가 평팡하다는 것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델 노트북을 구입할 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구매자의 손으로 들어오는지를 살펴본다면 가히 세계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동남아 공장에 주문장이 떨어지고, 주변 부품 공장서 2시간마다 필요한 부품이 공급된다. 그 부품이라는 것은 중국에 공장을 둔 인텔, 한국을 기반으로 하는 메모리칩과 보드, 대만에 공장을 갖추고 있는 모니터(?) 등등 국경을 초월한다. 완제품은 전용 항공기로 미국에 실려오고, 포장이 끝나면 UPS와 같은 택배회사가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이 기간은 부품의 공급이 수월하면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평평해진 세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10가지 동력 때문이다.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의 탄생 2. 넷스케이프의 출현 3.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4. 오픈 소싱(공개된 정보들) 5. 아웃 소싱 6. 오프 쇼어링(공장의 해외 이전) 7. 공급 사슬(예, 월마트) 8. 인소싱(예, UPS의 재고관리 서비스) 9. 인포밍(개인이 공급 사슬을 구축할 수 있게 된것) 10. 스테로이드(무선 통신 신기술) 

위의 동력이 작동한 세계는 평평해졌고, 보다 평등하게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게됐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저자의 생각은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는데(단순화라는 함정에 빠질지라도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아웃소싱과 업무의 세분화다. 일을 쪼갤수 있는데까지 쪼개고 쪼개서, 아웃 소싱 할 수 있는 것은 아웃 소싱하고,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자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분할은 소비자에게는 값싼 제품을, 노동자들은 많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일을 미국인이 했으면 하고, 그 일은 이제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므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희망과 용기다. 누군가가 언덕 위에 거대한 집을 짓고 살고 있다면, 나도 그 집에서 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먹고 살아야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는 증오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증오는 바로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이 과거의 영화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느끼는 좌절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것이 바로 9.11의 속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평평한 세계 속으로 발을 딛지 못하는 나라들은 석유자본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며, 그들의 정치제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이 식랑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잉여 인력으로 교육을 통해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먼저, 언덕 위 거대한 집부터 이야기해보자. 내가 그 곳에서 살거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방법밖에 없는가? 다같이 그 언덕에서 살면 안된는가? 저자는 차별을 줄이는 방법 또한 평평화된 세계 속에서 논의를 통해 보다 더 빨리, 현실화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공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칼을 가지고, 도둑이 될지, 의사가 될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칼과 병자 앞에 놓인 사람에게 주어진 칼이 어떻게 쓰일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개인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처한 환경 또한 무시못할 요소다. 저자는 평평한 세계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줄 것이므로, 도둑은 사라질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 어디 국민 1인당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어지던가?  

저자가 말한 선순환을 한번 생각해보자. 배고파 굶어 죽는 나라와 1차 농수산품 수출국의 이름이 대부분 같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수출로 이루어진 수익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 다국적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일의 세분화를 통한 아웃소싱의 자유로운경쟁은 또 어떤가? 1차 2차 3차 산업으로의 변경을 한번 보자.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1차 산업에 보조금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보조금 덕분에 세계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농산물과 곡물 메이저는 저개발국가의 1차 산업을 유린한다. 도대체가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상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조금을 그들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서 마치 자유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이 진짜 평등하게 열려진 환경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경쟁일까?

저자가 우려한 석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도 그렇다.  세계 에너지 소비의 40%를 쓰고 있는 미국은 선진국의 환경 기술에 유리하다는 그 교토의정서마저도 체택하고 있지 않다. 석유로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메이저 오일 컴퍼니가 어느 나라에서 돈을 벌어먹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웃 소싱으로 나뉘어진 일자리에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아웃 소싱의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다 높은 단계를 차지하기 위해 아마도 미국은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할 것이다. 또는 경제적 압박으로 표준화를 이끌지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 본것인데, 비디오가 맨 처음 나온 시절, VHS 형식과 베타 캠 형식에서 그 질적 측면에서 베타 캠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의 기술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 표준화로 VHS를 택한 것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지상파 DMB에 목숨을 걸고 전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세계 표준화에 한발 앞서겠다는 생각일터인데, 그것 또한 미국과 호흡을 딱딱 맞추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HD표준 방식을 미국식으로 채택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진짜로 열린 세계, 평평한 세계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일자리들이 플러스적 생산을 가져온다면 모를까 대부분 제로섬의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아웃소싱 덕분에 웃는 사람들 한편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쪽이 생길 것이다. 바로 1차 산업이 곡물 메이저의 볼모로 잡혀있는 나라들처럼 말이다. 아웃 소싱의 마지막 단계가 누구의 볼모로 잡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나마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좋은 것이라 여겨질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라다르크라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보면 알 수있다. )

일단 갖추어진 막강한 힘을 순순히 포기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9.11은 이슬람 문명권의 자격지심보다도 오히려 미국의 끝없는 욕망때문이다. 열려진 세계에선, 누구나 다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라이트 급이 헤비급을 싸워 이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하늘의 별이야 운 좋으면 딸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비급이 핸디캡 없이 라이트급과 싸운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유 경쟁은 실은 폭력의 권장이다.

그 논조나, 전제가 어찌 돼었든,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나마 평평화된 세계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가 서로 평평해 얽히고 설켜 있을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한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게 평평한 세계는 평평한 세계를 돌리는 태엽의 일부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기엔,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달콤한 돈에 취해 있으므로.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전쟁이 경제와 연관되기는 하나, 그것이 꼭 필수인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평평화된 세계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얼르고 있는 무한경쟁 속에 감추어진 힘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싶다. 그리고 꼭 무한 경쟁만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평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토대 또한 탄탄히 다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세계가 진정 평평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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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일지 짐작은 했는데 역시나 이런 책이었군요.
리뷰를 보면서 열이 슬슬 오르고...이거 베스트셀러라는데 이 책보고 다들 감동하시면 어쩌나...

하루살이 2006-02-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편에서 보니까 이렇게 생각한거고, 나름대로 세계의 흐름이나,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무 분개하진 마세요^^.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요...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 해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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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스트레스를 간혹 대형할인마트에서 먹을것 사들이는 재미로 푸는 나 자신에 대해 한심해하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은 표지의 사진이 보여주듯 키즈마케팅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하지만 쇼핑중독의 문제가 꼭 어린이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이 책이 전체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린이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유는 아마도 <유년기의 자연화>라는 측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인듯 싶다. 발달이론 중 하나인 <토들러 단계>에서 자연화란 사회적으로 습득된 특징이 인간의 본성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의 소비욕은 타고난 본성으로 간주되고 있다.(65쪽)

그러나 사실 소비라는 것은 본성이 아니다. 하지만 본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자본주의에 편입되어 어렸을적부터 훈련되어져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사회적 문화적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소비는 특히 영상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마케팅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욕구가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텔레비전을 장시간 시청한 사람들일수록 지출이 높고 저축이 낮다는 통계(95쪽)를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다. 텔레비전속에 비처지는 간접광고와 직접광고는 영아들이 광고와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트윈세대에게는 끝없이 그 욕구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단순히 어른들의 솔선수범으로 낭비를 줄인다거나,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에 현실의 문제점이 있다. 즉 아이들은 <조르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고, 어른들은 그 조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항복하기 마련인 것이다.

소비욕구가 증대하는 것, 즉 소비문화 심취가 위험한 것은 우울증, 불안증, 자부심 저하, 심신증의 중대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과 텔레비전 시청 시간, 소비문화와 부모 자식간의 관계, 심리적 복지의 문제는 단순한 연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라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한다. 즉 소비문화 심취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비문화에 심취함으로써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부심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가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푼다는 나의 생각은 어찌보면 그 인과관계가 거꾸로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듯싶다. 쇼핑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오히려 점차 그 심리적 불만족의 정도가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해두어야만 할지도...

이런 심리적 복지 측면에서 만족과 행복의 열쇠는 보다 많이 획득하는 것보다 보다 적게 바라는 데 있다.(242쪽) 문제는 마케터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다 많이 획득하라고 부추긴다는데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강력히 찬성하게 되고, 그 정도가 강할 수록 삶의 질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243쪽) 또한 이런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 마약 복용에 보다 쉽게 빠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들 또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것이 더욱 큰 문제점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물질주의와 무능력이 서로 악순환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244쪽)

이런 문제점들은 직접 상품 마케팅을 담당하는 전문가들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업계의 도덕적 무책임에 있다.(261쪽) 광고대행사들은 기업고객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기업들도 도덕적 책임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린이들의 이익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항상 압도하고 있다.(262쪽)

즉,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필요없는, 또는 해가 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와, 또한 그것들의 불필요성을 잘 알지만 아이들에게 팔려나가도록 아이들을 이용하는 마케터들을 양산하는 현실에서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텔레비전을 꺼야만 한다. 특히 텔레비전이 위험한 것은 광고를 할 수 있는 독점적 대기업들만이 조작된 이미지로 아이들을 유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의 물결을 거부하고, 아이들의 일상속에 파고 들어가는 마케팅의 접근을 금지시켜야 한다. 현재 미국처럼 심각하진 않다 하더라도 학교내의 자판기나 학원 등에서 쏟아지는 홍보물로부터 자유롭도록 정책을 만들어가야 하며, 음식이나 장난감 등 잘못된 광고에 대한 제재를 가하도록 압력을 줘야한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비밀이 없는 공개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EBS 기획으로 꾸며진 텔레비전과 인간에 대한 기록에서 일주일간 텔레비전을 끄고 살았던 5개국 50가정들이 모두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가족들간의 시간이 많아져 즐거웠다고 말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험을 위해 텔레비전을 끄고 살았지만 앞으로도 텔레비전 없이 살고 싶다는 그네들의 소망을 우리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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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0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살이 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것을 사들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는 ^^

지난 주 다큐멘타리페스티벌 프로 중에서 텔레비전 혁명인가 뭐 그런 게 있었는데요... 보셨어요... 그 중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오지마을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변화를 보는 것이었어요. 주로...그 날은 텔레비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보여 주더군요...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드라마는 너무 재밌고 이런 식으로 포커를 맞추던데... 사실...그들이 텔레비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왜 안 들겠어요... 저렇게 멋지게 옷을 입고 근사한 도심지에서 살고 싶다. 이뻐지고 싶고 멋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이요...

하루살이 2005-09-0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 흐흑, 저도 가끔 스트레스 풀려고 먹고 있는 제모습에 놀랍니다.
아~그리고 텔레비전이 가져오는 동경이라는 측면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라다르크 사람들이 서구 여행객들과 텔레비전 속에 비쳐진 문명을 보게됨으로써 겪게되는 변화의 모습이 그려져 있죠. 이 책은 그 변화의 과정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답니다.(읽으셨는지도 모를텐데 괜히 아는척 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
주강현 / 한겨레출판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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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장을 다 덮고나서 한참을 아쉬워했다. 원래 생각했던 무엇인가를 만족할만큼 얻지 못한 탓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금줄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해 쓰여졌다는 부제가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록 금줄없이 태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금줄이란 것을 주위에서 간혹 보면서 자란 세대다. 그래서 어떤 숨겨진, 즉 책 제목의 수수께끼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비의나 감추어진 문화양식들을 책에서 찾아내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자라고 조금 더 젊은 세대였다면 책의 내용들이 보다 더 새삼스럽게 다가왔을련지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너무 생소해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굿, 남근과 여근의 풍속, 금줄, 미륵, 흰 옷, 개고기, 숫자 3, 돌하르방, 솟대, 서낭당, 광대, 구멍, 똥돼지 등은 주위에서 어느 정도 보아왔고, 관련된 이야기들도 그럭저럭 들어오던 터라 낯익다. 실은 우리의 문화가 낯익는게 타당한데, 이러한 것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 책이 쓰여진 이유가 될 터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와 복원을 주장할 수는 없다. 세월의 부대낌 속에서 부침은 있게 마련이지 않던가? 따라서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가 일상에서 뜻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왜 그토록 안타까운지에 대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사람이기 ‹š문이었을까? 일상에서 뜻한바는 알겠지만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화들이 사라지는 과정이 안타깝고 분명 지켜내야 할 유산이 있다는 것도 확신하지만 말이다. 즉 바로 이 부분이 책을 덮고 나서 느꼈던 막연한 실망감을 불러온 것 같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에 남겨져 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침향이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바다에서 떠오르는 나무들. 그 나무가 떠오를 때 세상은 변해있으리라는 기대. 미륵과 함께 현실을 견뎌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자 했던 민초들의 소원이 담긴 그 침향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도 찾지 못한 침향터를 알려주는 비목들이 한반도 곳곳에 감추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흥분이 된다. 그리고 머지않은 어느 순간 그 침향이 바다 위로 떠오를 것을 상상해본다. 아직도 세상은 침향을 묻어야 하고, 그 침향이 떠오르기를 기대해야 할만큼 나아갈 길이 멀다. 다만 남몰래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던 변혁의 꿈을 이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침향의 꿈도 조금은 퇴색되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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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0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삭혀진 글맛이 나네요~

주강현 하면..
왼손과 오른손이라는 책 생각만... 제가 왼손잡이라..뭐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 그렇지만...흠..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걸로 보아선.. 읽기에 실패했던듯 합니다.

하루살이 2005-09-0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내용이 잘 기억안나는게 주강현 씨 글의 특징일지도...(농담? 혹은 진실?)^^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일요스페셜 팀 취재, 정혜원 글 / 거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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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업이라는 말이 그 사라진 곳을 채우고 있다. 그나마 자신의 직업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것도 행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이직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떠밀려 선택되어지게 마련이다. 즉 직장이 자아실현의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위한 생산공장 그 이상의 것이 아니게 되 버린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런 모양새로 다가오기 시작할때 과연 나는 얼마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야망을 지니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소시민들에게 그곳은 그저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고 훌훌 털어내버리고 싶은, 그래서 결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감옥보다 못한 어떤 곳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내 모습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회사는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회사가 사람을 자산의 중심에 놓지 않고, 그저 비용의 일단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도 사람도 모두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그런 세상의 변모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희망을 말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유한킴벌리. 4일 일하고, 4일을 휴식하며, 수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는 회사. 평생고용을 보장하고, 사람들 또한 평생직장으로 삼고싶어하는 곳.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이 실현되어지고 있으며, 회사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곳. 그저 부럽다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정말 부러운 곳이 대한민국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회사는 저절로 생겨났을까?

회사는 경영진만으로 또는 회사원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갈등의 노사관계. 노사는 회사를 구성하는 중요요소이면서도 항상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태생이 그렇다고 할수도 없을텐데 왜... 유한킴벌리의 노사관계는 정말 모범적이다. 노조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믿기보다는 경영진을 더 믿을수 있을정도로 신뢰관계가 돈독하다. 이런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유한킴벌리 또한 다른 회사들처럼 극한의 노사관계 대립을 거쳐왔다. 우리가 지금은 부러워하는 4일 교대를 위한 4개조 2교대의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도 큰 어려움이 따랐다. 맨처음 이것을 도입하고자 했을 때는 노사가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이였기에, 조 개편으로 인한 남은 인력에 대한 처우, 그리고 인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다. 타회사들이 사람을 자르기 시작할 때 유한킴벌리는 일이 없어서 놀아야 하는 절반의 인력에 대한 고민에 처하게 됐고, 노조는 할 수 없이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피하기 위해 4교대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경영진은 여타 다른 경영진처럼 뒤에 칼날을 숨기는 비열한 형태를 보이지 않고 정직하게 노조와 상의해 인력을 재편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회사를 전적으로 믿게 되고, 그런 믿음 속에서 생산력은 극도로 올라가게 된다. 흔히 생각하듯 인력으로 인한 비용의 증가가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극대화를 통해 오히려 이익을 더욱 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영진은 매달  회사의 재무구조를 노조집행부에 설명하고, 평노조원들은 2,3개월에 한번씩 사내 랜을 통해 언제든지 자유롭게 회사의 경영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노사갈등의 큰 원인중의 하나인 임금 문제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투명경영과 도덕경영을 통한 노사의 신뢰가 바탕이 됐을때 지긋지긋한 봉급쟁이가 아닌, 일하고 즐길줄 아는 빵과 장미를 모두 지닐 수 있는 참자아를 만들어가고, 그 참자아를 통해 회사 또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는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 씨앗이 어서 빨리 자라 대한민국 모든 회사들 속으로 뿌리를 내려 행복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희망이 나 혼자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낄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중심부에 서 있기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경영진과 정부가 깨우치지 않는한 아무리 노동자가 목소리를 드높이더라도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유한킴벌리 또한 그 첫발은 경영진이 내디뎠다. 물론 희망을 이루어낸 것은 노사가 함께였지만 말이다. 다른 회사들이 그런 희망을 실현하려면 실제로 그 첫발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현실의 비극 또한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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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다니엘 코엔 지음, 주명철 옮김 / 시유시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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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 (5월 30일) 프랑스에서는 유로 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해 부결됐다. 프랑스 국민들은 유로헌법이 통과함으로써 유럽이 하나가 되면, 값싼 노동력의 동구권 노동자가 대거 유입됨으로써 그나 저나 높은 실업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다. 즉 세계화로 인한 직격탄이 노동자들에게 쏟아짐으로써 선혈이 낭자할듯 하니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세계화라는 용어의 정의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화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계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인 10여년 전부터 이런 생각은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장해 왔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세계화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당혹감을 안겨준다. 저자의 주장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이해되어지고, 설득력을 지녔다면, 아마도 이 투표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중이라는 것이 과연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감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앞으로 계속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국민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사뭇 궁금하다. 

아무튼 저자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주장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향해가고 있긴 하지만, 일단 저자의 주장을 한 번 들어볼만한 값어치는 있을듯하여 계속 읽어나가 보기로 하겠다.

책의 제목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은 마치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세계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세계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가, 실제로는 결과가 원인이고, 원인이 결과인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며, 불평등 또한 인과관계의 잘못된 추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예로는 신석기 인류가 정착을 하게 된 것이 식량부족으로 인한 농경사회로의 진입때문이 아니라, 정착후 종교정신과 맞물려 농경사회로 진입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다. 정착촌과 곡식의 흔적중 어는 것이 더 오래되었는가 하는 과학적 증거물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먼저 전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아프리카를 예로 들며, 그곳은 여성에 대한 착취, 농촌에 대한 착취, 엘리트 집단의 부정부패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아시아 4용이 성장한 배경에는 절약의 정신, 투자와 노동을 통한 무역 수출정책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계가 아닌 한 국가를 바라보았을 때 10,20년 전 보다 계층간 수입차가 훨씬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세계화와 3차산업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값싼 노동력이 들어오게 됨으러써 선진국의 경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여기에서는 프랑스가, 후진국들과의 무역이 전체 무역량의 3%를 겨우 차지할뿐이며, 노동력의 유입또한 그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의 유입이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들다거나, 빈부격차를 크게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일자리수도 없어지는것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물론 조금 못 미치기는 하지만) 실업률이 높아질수밖에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일자리 부족은 <선별적 짝짓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선별적 짝짓기란 예를 들자면, 조용필이 공연을 할 때 최고의 세션과, 최고의 음향, 최고의 무대팀을 이용해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내어,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최고는 최고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일을 만들어가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짝을 지어 일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최고의 짝들은 나머지 그룹이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며, 점차 그 수익의 차이를 벌려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전처럼 하나의 큰 조직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 쪼개진 것들이 하나로 모여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생산조건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근거로는 마이클 크레머의 오-링 이론을 들고 있다. 원과 같은 연결고리들로 이루어져서 하나의 커다란 생산품을 만드는, 따라서 포드주의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화석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선별적 짝짓기는 단순히 국가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향하며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불평등이 공고화 되고, 이것이 세계로 확대되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선 대중들이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정치적 지도자들 또한 정치적 도덕성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를 가진 대중들이 정치적 행동을 행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런 불평등의 확대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듯 싶다.

저자의 생각들과 근거가 기존의 관념들을 깨뜨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띠워준다는 점에서 책을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성장률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이 실제적인 생산증대로 인한 부의 창출이 아니라, 세계적 투기 집단의 투기를 통한 단순한 화폐의 창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또한 불평등의 완화라는 생각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인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체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없어 보인다. 인간적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없이 일단 커져가는 불평등과 불신의 추세만을 늦춰보자는 미봉책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미봉책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적 삶을 향한 단계적 실천행위로서, 초입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동양식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무리없이 받아들을수도 있을듯하다.

(세계화나 경제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현실에 대한 구체적 돋보기도 들이대지 않은채 오직 꿈만 거창한 망상가의 지껄임이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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