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 외 옮김 / 창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강물이 흘러흘러 폭포를 맞이한다. 그 강물에 배를 띄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폭포로 떨어지거나, 첨단 장비를 동원해 하늘 위로 솟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평평한 세계에선 모두가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강물은 자본주의라는 강물이요,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은 무선 통신 등의 신기술이 이루어놓은 세계화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무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이 책은 그래서 다분히 미국적이다.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세상이 평평해질 수 있는 희망을 보고, 9월 11일 테러를 지켜보면서 또한 벽이 쌓일까 두려워 하는 저자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보호주의를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애써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에 앞서 왔고, 또 앞장 설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 거스를수 없을 것 같은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폭포가 아닌 평원으로 길을 내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로 나는 꿈이 아니라, 다른 물길을 터, 평원에 물을 적시겠다. 즉,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말고도, 그것의 여러가지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만한다면, 폭포를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하기로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순진한 건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전부 허구라면 모를까,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 세계화가 가져온 부정적 통계치나 사실 관계를 무시한채, 또는 그것에 대해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폐쇄적 국가 체제나 문명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체제만을 유일한 삶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잡설은 일단 그만두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세계가 평팡하다는 것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델 노트북을 구입할 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구매자의 손으로 들어오는지를 살펴본다면 가히 세계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동남아 공장에 주문장이 떨어지고, 주변 부품 공장서 2시간마다 필요한 부품이 공급된다. 그 부품이라는 것은 중국에 공장을 둔 인텔, 한국을 기반으로 하는 메모리칩과 보드, 대만에 공장을 갖추고 있는 모니터(?) 등등 국경을 초월한다. 완제품은 전용 항공기로 미국에 실려오고, 포장이 끝나면 UPS와 같은 택배회사가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이 기간은 부품의 공급이 수월하면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평평해진 세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10가지 동력 때문이다.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의 탄생 2. 넷스케이프의 출현 3.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4. 오픈 소싱(공개된 정보들) 5. 아웃 소싱 6. 오프 쇼어링(공장의 해외 이전) 7. 공급 사슬(예, 월마트) 8. 인소싱(예, UPS의 재고관리 서비스) 9. 인포밍(개인이 공급 사슬을 구축할 수 있게 된것) 10. 스테로이드(무선 통신 신기술) 

위의 동력이 작동한 세계는 평평해졌고, 보다 평등하게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게됐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저자의 생각은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는데(단순화라는 함정에 빠질지라도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아웃소싱과 업무의 세분화다. 일을 쪼갤수 있는데까지 쪼개고 쪼개서, 아웃 소싱 할 수 있는 것은 아웃 소싱하고,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자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분할은 소비자에게는 값싼 제품을, 노동자들은 많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일을 미국인이 했으면 하고, 그 일은 이제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므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희망과 용기다. 누군가가 언덕 위에 거대한 집을 짓고 살고 있다면, 나도 그 집에서 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먹고 살아야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는 증오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증오는 바로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이 과거의 영화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느끼는 좌절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것이 바로 9.11의 속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평평한 세계 속으로 발을 딛지 못하는 나라들은 석유자본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며, 그들의 정치제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이 식랑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잉여 인력으로 교육을 통해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먼저, 언덕 위 거대한 집부터 이야기해보자. 내가 그 곳에서 살거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방법밖에 없는가? 다같이 그 언덕에서 살면 안된는가? 저자는 차별을 줄이는 방법 또한 평평화된 세계 속에서 논의를 통해 보다 더 빨리, 현실화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공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칼을 가지고, 도둑이 될지, 의사가 될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칼과 병자 앞에 놓인 사람에게 주어진 칼이 어떻게 쓰일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개인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처한 환경 또한 무시못할 요소다. 저자는 평평한 세계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줄 것이므로, 도둑은 사라질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 어디 국민 1인당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어지던가?  

저자가 말한 선순환을 한번 생각해보자. 배고파 굶어 죽는 나라와 1차 농수산품 수출국의 이름이 대부분 같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수출로 이루어진 수익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 다국적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일의 세분화를 통한 아웃소싱의 자유로운경쟁은 또 어떤가? 1차 2차 3차 산업으로의 변경을 한번 보자.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1차 산업에 보조금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보조금 덕분에 세계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농산물과 곡물 메이저는 저개발국가의 1차 산업을 유린한다. 도대체가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상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조금을 그들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서 마치 자유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이 진짜 평등하게 열려진 환경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경쟁일까?

저자가 우려한 석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도 그렇다.  세계 에너지 소비의 40%를 쓰고 있는 미국은 선진국의 환경 기술에 유리하다는 그 교토의정서마저도 체택하고 있지 않다. 석유로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메이저 오일 컴퍼니가 어느 나라에서 돈을 벌어먹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웃 소싱으로 나뉘어진 일자리에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아웃 소싱의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다 높은 단계를 차지하기 위해 아마도 미국은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할 것이다. 또는 경제적 압박으로 표준화를 이끌지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 본것인데, 비디오가 맨 처음 나온 시절, VHS 형식과 베타 캠 형식에서 그 질적 측면에서 베타 캠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의 기술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 표준화로 VHS를 택한 것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지상파 DMB에 목숨을 걸고 전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세계 표준화에 한발 앞서겠다는 생각일터인데, 그것 또한 미국과 호흡을 딱딱 맞추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HD표준 방식을 미국식으로 채택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진짜로 열린 세계, 평평한 세계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일자리들이 플러스적 생산을 가져온다면 모를까 대부분 제로섬의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아웃소싱 덕분에 웃는 사람들 한편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쪽이 생길 것이다. 바로 1차 산업이 곡물 메이저의 볼모로 잡혀있는 나라들처럼 말이다. 아웃 소싱의 마지막 단계가 누구의 볼모로 잡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나마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좋은 것이라 여겨질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라다르크라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보면 알 수있다. )

일단 갖추어진 막강한 힘을 순순히 포기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9.11은 이슬람 문명권의 자격지심보다도 오히려 미국의 끝없는 욕망때문이다. 열려진 세계에선, 누구나 다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라이트 급이 헤비급을 싸워 이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하늘의 별이야 운 좋으면 딸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비급이 핸디캡 없이 라이트급과 싸운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유 경쟁은 실은 폭력의 권장이다.

그 논조나, 전제가 어찌 돼었든,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나마 평평화된 세계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가 서로 평평해 얽히고 설켜 있을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한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게 평평한 세계는 평평한 세계를 돌리는 태엽의 일부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기엔,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달콤한 돈에 취해 있으므로.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전쟁이 경제와 연관되기는 하나, 그것이 꼭 필수인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평평화된 세계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얼르고 있는 무한경쟁 속에 감추어진 힘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싶다. 그리고 꼭 무한 경쟁만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평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토대 또한 탄탄히 다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세계가 진정 평평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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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일지 짐작은 했는데 역시나 이런 책이었군요.
리뷰를 보면서 열이 슬슬 오르고...이거 베스트셀러라는데 이 책보고 다들 감동하시면 어쩌나...

하루살이 2006-02-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편에서 보니까 이렇게 생각한거고, 나름대로 세계의 흐름이나,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무 분개하진 마세요^^.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