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다니엘 코엔 지음, 주명철 옮김 / 시유시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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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 (5월 30일) 프랑스에서는 유로 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해 부결됐다. 프랑스 국민들은 유로헌법이 통과함으로써 유럽이 하나가 되면, 값싼 노동력의 동구권 노동자가 대거 유입됨으로써 그나 저나 높은 실업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다. 즉 세계화로 인한 직격탄이 노동자들에게 쏟아짐으로써 선혈이 낭자할듯 하니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세계화라는 용어의 정의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화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계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인 10여년 전부터 이런 생각은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장해 왔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세계화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당혹감을 안겨준다. 저자의 주장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이해되어지고, 설득력을 지녔다면, 아마도 이 투표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중이라는 것이 과연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감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앞으로 계속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국민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사뭇 궁금하다. 

아무튼 저자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주장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향해가고 있긴 하지만, 일단 저자의 주장을 한 번 들어볼만한 값어치는 있을듯하여 계속 읽어나가 보기로 하겠다.

책의 제목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은 마치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세계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세계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가, 실제로는 결과가 원인이고, 원인이 결과인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며, 불평등 또한 인과관계의 잘못된 추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예로는 신석기 인류가 정착을 하게 된 것이 식량부족으로 인한 농경사회로의 진입때문이 아니라, 정착후 종교정신과 맞물려 농경사회로 진입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다. 정착촌과 곡식의 흔적중 어는 것이 더 오래되었는가 하는 과학적 증거물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먼저 전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아프리카를 예로 들며, 그곳은 여성에 대한 착취, 농촌에 대한 착취, 엘리트 집단의 부정부패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아시아 4용이 성장한 배경에는 절약의 정신, 투자와 노동을 통한 무역 수출정책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계가 아닌 한 국가를 바라보았을 때 10,20년 전 보다 계층간 수입차가 훨씬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세계화와 3차산업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값싼 노동력이 들어오게 됨으러써 선진국의 경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여기에서는 프랑스가, 후진국들과의 무역이 전체 무역량의 3%를 겨우 차지할뿐이며, 노동력의 유입또한 그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의 유입이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들다거나, 빈부격차를 크게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일자리수도 없어지는것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물론 조금 못 미치기는 하지만) 실업률이 높아질수밖에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일자리 부족은 <선별적 짝짓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선별적 짝짓기란 예를 들자면, 조용필이 공연을 할 때 최고의 세션과, 최고의 음향, 최고의 무대팀을 이용해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내어,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최고는 최고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일을 만들어가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짝을 지어 일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최고의 짝들은 나머지 그룹이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며, 점차 그 수익의 차이를 벌려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전처럼 하나의 큰 조직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 쪼개진 것들이 하나로 모여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생산조건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근거로는 마이클 크레머의 오-링 이론을 들고 있다. 원과 같은 연결고리들로 이루어져서 하나의 커다란 생산품을 만드는, 따라서 포드주의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화석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선별적 짝짓기는 단순히 국가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향하며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불평등이 공고화 되고, 이것이 세계로 확대되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선 대중들이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정치적 지도자들 또한 정치적 도덕성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를 가진 대중들이 정치적 행동을 행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런 불평등의 확대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듯 싶다.

저자의 생각들과 근거가 기존의 관념들을 깨뜨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띠워준다는 점에서 책을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성장률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이 실제적인 생산증대로 인한 부의 창출이 아니라, 세계적 투기 집단의 투기를 통한 단순한 화폐의 창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또한 불평등의 완화라는 생각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인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체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없어 보인다. 인간적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없이 일단 커져가는 불평등과 불신의 추세만을 늦춰보자는 미봉책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미봉책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적 삶을 향한 단계적 실천행위로서, 초입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동양식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무리없이 받아들을수도 있을듯하다.

(세계화나 경제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현실에 대한 구체적 돋보기도 들이대지 않은채 오직 꿈만 거창한 망상가의 지껄임이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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