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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1973년 서울 출생. 아메리칸발레학교에서 발레리나를 꿈꾸었으며,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영재학교 헌터스쿨을 졸업하고 예일대에 입학하여 프랑스문학을 공부했으며, 마셜 장학금의 지원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1999)를 받았다. 이후 법의 매력을 발견하여 하버드법대(2002)에서 법을 전공했다. 미국 대법원 법률서기, 뉴욕 맨해튼검찰청 검사로 재직했다. 법률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교수직에 지원했고, 2006년 한국계 최초로 허버드법대 교수에 임용되었다. 그리고 4년 만인 2010년 교수단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 아시아여성 최초로 하버드법대 종신교수로 선출되었다. 현재 하버드법대에서 법률교육에 대한 창의적인 교수법과 새로운 발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상은 석지영 교수에 대한 프로필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일대, 옥스퍼드대, 하버드대학이라는 그녀의 스펙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스펙만이 살 길인 것처럼, 벽돌을 쌓듯 쌓고 또 쌓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겐 거의 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렇게 아이를 기르고자 하는 부모들에겐 가히 경외할만한 롤모델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도 한국사람들의 요구에 의해서라고 하지 않던가. 이땅의 부모들이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고싶어하자 그녀가 펜을 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 부모들 또는 청년들은 좌절하리라. 만약 석지영 교수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스펙이었음을 깨우치게 될테니까 말이다.
위의 프로필에서처럼 석교수는 청소년기 피아노와 발레에 빠졌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우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일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을 간파하고 인정한 대학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짜여진 입시 정책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 같으면 애당초 꿈도 못꿀 결과다. 그렇다고 우린 좌절하고만 있어야 할까. 그녀가 대학에 합격한 것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자란 행운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열정 또한 크게 작용했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날리는 스타라 하더라도 1번 자세에서 천천히, 공들여 취하는 드미-플리에로 시작하는 매일의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발레의 모든 것이 기초하고 있는 이런 기본 자세와 테크닉을 익히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하루라도 생략할 수 있는 단계란 없었다. 94쪽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우리가 높이 사는 가치와 소망, 그리고 우리가 선호하는 것을 반영하는 선택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에 뛰어나고자 하는 이에게 지름길이란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매일, 매주, 매달, 매해, 그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학문이든 과학이든 아니면 예술이든 양육이든, 남녀 구별 없이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만 매우 높은 수준에서 그 일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부인할 수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목표가 그렇게 높다면,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259쪽
이런 마음가짐이 그녀를 지금의 위치로 이끈 것이다. 괜찮은 스펙을 쌓기 위한 마음가짐이었다면 진작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자기가 사랑한 일, 그것을 향한 도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다소 늦은(?) 나이에도 대학 공부를 지속했던 것은 흥미와 열정, 사랑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일하며 삶을 건사하고 삶을 건사하며 일을 한다. 일과 놀이는 같이 간다. 일이 가끔 놀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나는 내 일이 존재하지 않는 행복은 상상하기가 매우 힘들다. .. 우리는 생활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생활한다. 여기에 공식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의 추구와 기쁨과 고통과 실망이 함께 어우러지는 일상적인 삶이 있을뿐. 그것은 무척 불완전하다. 우리는 다음날 일어나 다시 생활을 시작한다. .... 그 누구도, 남성도 여성도, 모든것을 가질 수는 없다. 254쪽
스펙의 추구, 안정적인 직업, 높은 수입, 풍족한 가정... 이런 계획이 꿈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꿈 속에 열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 뿐이다. 그렇게 돌다보면 돈이 쏟아지고(많든 적든), 세월은 흘러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마는 멈출 것이다. 석교수가 진짜로 대단해보이는 것은 그녀의 스펙이 아니라, 그녀가 지향하는 자유에 있다. 회전목마 바깥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자유말이다.
내 이야기에서 뭔가 전해진 것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성장이 요구하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내 생의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은 점차 커졌던 자유였다. 즉, 생각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놀 자유. 완벽하려고 애쓰는 이가 자유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프기만 할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발전시키는 단련은 매우 보람차다. 하지만 완벽해서가 아니다. 나는 완벽할 수 없다. 내 아이들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여기 다시 석교수의 말을 적어둔다. 인생은 소풍임을 알려준 천상병 시인을 떠올리며.
나는 즐기고자 한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것을 열망한다. 일을 놀이로 만들고자 한다. 가능한 한 자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으려고 한다. 스스로를 농담거리고 삼고자 한다. 재미는 전염되는 것. 재미만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할 만하다. 재미 없이는 난 살 수 없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물어보라. 너무나 재미있어 내 능력껏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가능하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라.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라.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