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조절장치라는 게 있다. 에어콘의 작동이라든가, 다리미의 열 조절 등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자동조절장치 덕분이다. 인간의 감정도 이런 자동조절장치가 작동한다고 한다. 희노애락의 급격한 변화가 주는 감동의 물결은 평균 2년 정도면 평소와 다름없는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애인을 잃은 슬픔도, 아이를 얻은 기쁨도 기껏해야 2년이라는 의미도 된다. (직장을 잃는 것이 가장 강도가 세서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더스틴이라는 청년이 화제다. 어렸을 적 병으로 팔다리를 모두 잃었다. 그래서 토르소맨으로 불리운다. 그런데 이 청년이 레슬링을 한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주대표를 뽑는 대회에서 3위에 입상, 꿈에 그리던 대표가 됐다. 팔다리가 없는 몸뚱아리만으로도 레슬링이 가능하다는 것조차도 놀라운데 일반인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더스틴보다도 더스틴과 경기를 했던 상대선수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더스틴과의 경기에서 지고 난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더 안타까워보인 것이 무엇때문이었을까. 그들은 혹시 다른 패배보다도 더욱 큰 쓰라림을 맛본 것은 아니었을까)

더스틴이 이정도 성과를 올리기까지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그를 가르치는 코치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더스틴을 생활하도록 해주고, 트레이닝 코치, 그리고 여자친구,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모의 도움으로 그는 밝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는 그가 팔다리를 잃은 후 절망에서 빠져나오는데 큰 힘이 됐다. 팔다리가 없다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독려했던 것이다.

더스틴이 레슬링을 시작하면서 코치는 다른 선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더스틴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우리 팀 내에서 베스트 3안에 들 것이라고. 이렇게 확신했던 이유는 더스틴의 땀방울 때문이었다. 코치는 더스틴이 연습한 후에 매트는 마치 작은 호수를 떠올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어려움에 부닥치면 쉽게 좌절한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체념의 감옥 속에 가둔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극한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의 기복마저도 우리의 몸은 자동조절장치로 제어한다. 체념이 더이상 길어지지 않도록 우리 몸은 스스로 힘을 만들어낸다. 스스로 감옥에 집어넣지 않았다면 말이다.

더스틴은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더스틴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스틴이 누리는 행복은 가능할 수 있다. 마음 속에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그 희망의 불꽃을 함께 지켜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때론 그 희망이 족쇄가 되어 그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희망은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운명이고 숙명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동조절장치를 믿어보자. 그리고 수많은 땀방울의 힘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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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블리치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블리치 2기가 끝났다. 블리치 2기는 소울 서사이어티와 현세에서 사신의 역할을 맡았던 이치고를 중심으로 바운트라는 인간도 신도 아닌 종족의 탄생과 복수를 다루고 있다.

재패니메이션의 일반적인 특징인 대결구도를 통한 성장의 모습은 이치고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개인을 넘어선 끈끈한 동료애 또는 가족애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덤이자 주제가 된다. 이런 전형적인 구도에도 불구하고 109편에 달하는 블리치를 지켜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바운트는 인간으로부터 악마라 불리며 소외를 받는다. 이들은 소울 서사이어티의 실패한 과학실험 때문에 비극적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소수자로서의 핍박받는 삶을 계속 영위해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또는 소울 서사이어티와 인간에 대해 복수를 꾀할 것인지...

이치고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치고 또한 일반 인간과 다른 소수자다. 그래서 그는 바운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길은 다르다. 어떻게든 화해하고 함께 가려 한다.

블리치2의 전체적인 구도는 소수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이치고의 성장에 있다. 아이가 기어가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걷는 것을 보는 것의 기쁨, 말을 배우는 것의 신기함. 성장은 이런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대부분 성장을 말하는 작품은 흥미진진하다. 이치고는 영혼을 내걸고 성장한다. 또 목숨을 내걸고 성장한다. 성장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성장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보다 똑똑해지고, 보다 강해지고, 보다 지혜롭고... 그러나 그 성장의 과정은 생략해버리고 싶다. 그러나 블리치2는 성장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치고를 응원하고 그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대는 그 무엇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희생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만화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장이라는 것이 결코 달콤한 열매만을 주는 것이 아니지만 그 성장을 통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늘어나는 것이지만, 결코 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터팬의 욕망과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 그 가운데서 우리는 흔들린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치고가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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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새가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아침 단잠을 깨우는 새의 노래는 경쾌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안테나.

그 속엔 사람을 유혹하는 수많은 영상과 음악, 소리가 섞여 있다.

그리고 리모컨 하나로 우리들 앞에서 거침없이 토해낸다.

그러나 그 안테나 위에서 새는 오직 하나의 음성만을 고집한다.

그리고 그 소리는 노래가 되어 달콤한 소리로 다가온다.

비록 아침의 단잠을 깨우지만

정보의 홍수와 쓰레기 사이에서 흘러넘치는 전파의 분출보다 달콤하다.

....................

새처럼

그렇게 수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위에서도

오직 달콤하게 노래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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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디자이너 최윤희씨는 "행복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다"고 하네요.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다보니 행복해지더라는 것과 일맥상통하겠지요.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하지 말고 마음가짐을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진리.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일면 수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고개를 젓게 됩니다.

먼저 이렇게 비갠 뒤 상큼한 하늘을 보면서도 마음은 왔다갔다 합니다. 즐겁게 바라보면 파란 하늘이지만 괴로운 심정으로 바라보면 멍든 하늘이 될테죠.

맞아요. 정말 그래요. 내 마음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지금, 난 현실을 바꿀 필요가 없겠지요. 인도의 불가촉천민을 비롯해 카스트 계급으로 인해 피해를 또는 어려움을 겪는 계층들이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실적 차별을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고통과 인내를 감수하는 일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행복과 변화 사이의 수많은 층들을 만납니다. 누군가는 변화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금상첨화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불행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활할지도 모릅니다.

행복과 변화 사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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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선 친구란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시간이 지나면, 즉 오래되면서 찰떡같이 붙어있던 것들도 느슨하게 멀어지곤 한다.

둘 사이를 꽉 맺어주던 접착(제)의 힘이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또 오래되면 녹이 슬고, 끊어지고, 쇠퇴하고...

그렇게 스러져간다.

가까우면서 또 오래 사귀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세월이 더께처럼 정을 쌓아주면 다행이겠지만

세월은 그렇게 자꾸만 멀어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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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8-06-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에 서글픈 적은 없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