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책으로 <침묵의 시간>을 읽었는데 짧으면서 강렬한 이야기에 빠져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 또한 짧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지 한번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인생은 한판 연극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막이 오르면 언젠가는 막이 내리고 지나간 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연극과 같은 인생이 미로에 갇혀 허우적 거리고 있다.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미로에 갇힌 인생처럼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오게 되고 한번 빠져들면 어떤 길이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게 유랑극단의 연극 <미로>와 함께 감방 동료로 만난 대학교수 클레멘스와 사기꾼 하네스의 연극은 시작되었다. 부적절한 관계를 했던 여제자에게 차등의 점수를 주었다는 이유로 감방에 오게 된 '슈투름 운트 드랑'의 교수 클레멘스는 길에서 가짜 교통경찰을 하며 돈을 받던 하네스라는 사기꾼과 함께 감방 동료가 되는데 그는 도통 아무일에도 흥미가 없는 듯하다가 감방에 유랑극단이 오고 나서부터 생기를 찾는다.

 

유랑극단이 감방에서 행할 연극은 <미로>이다.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미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이 같은 미로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단다. 연극이 상연되고 십여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에 하네스와 그의 친구들은 바쁘게 움직여 모두 유랑극단 버스에 올라탄다. 하네스를 따라 클레멘스 교수도 올라타게 되고 그들은 유유히 감옥의 문을 벗어나게 된다.유랑극단 단원이라도 된 듯 말이다. 그들이 탈출한 것을 감옥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자유를 느끼며 달리고 달리고 그러다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그뤼나우'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은 패랭이꽃으로 유명해진 도시이며 거기에 발맞춰 문화적으로 함께 발전하려고 발돋움하고 있는 중인데 마침 '유랑극단'이 마을을 찾아와 준 것이다.그러니 얼마나 대환영이겠는가.그들은 죄수들이지만 그뤼나우마을에서는 '유랑극단' 단원이 되어 합창도 하고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그런가 하면 그동안 조용하던 하네스의 지휘아래 그들은 하나가 되어 그 마을에 안착하여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기로 한다. 클레멘스는 강의를 하고 하네스는 박물관을 맡게 되고,그런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정말 연극처럼 가능하게 되고 마을은 더욱 그들로 인해 활기를 찾게 된다.

 

좋은 것은 때가 있는 법,미리 떠났어야 했는데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다. 그들의 노고에 상을 수여하기로 한 것, 그들은 이왕에 상까지 받고 멋지게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의견을 일치한다. 그런데 상을 받는 자리에 교도소장도 있고 자신들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뭐야 이곳 그렇다면 교도소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래도 주는 상을 받고는 떠나려 하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버스,유랑극단이 되어 그뤼나우 마을에 왔듯이 유랑극단의 버스를 타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교도소측과 그뤼나우 마을이 함께 쓴 각본이었을까.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시나리오에서 자신들은 그것이 교도소를 떠나 정말 자신들이 쟁취할 수 있는 자유를 찾은 듯 그렇게 누군가가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트루먼 쇼를 하듯 가뤼나우 마을에서 한판 연극을 벌였던 것인지.

 

그뤼나우에서 만끽했던 자유 때문인지 하네스는 다시 잠잠한 생활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적응을 하지 못해 자살을 하기도 하고 탈출을 하기도 한다. 탈출을 할거라고 생각한 대장격 '사기꾼 하네스'는 탈출 대신 클레멘스와 함께 남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낼 것을 택한다.그가 왜 남은 시간을 '견뎌내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다시 돌아간 감옥에 다시금 유랑극단이 찾아 오고 감옥에서 상연한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그렇다,미로와 같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 지금까지 빨리빨리 결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사기를 치며 살았다면 클레멘스 교수와 함께 하면서 하네스는 '인생은 견디어 내는 것,고도를 기다리듯 기다리며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시간들도 잘 견디어 왔다.탈출과 다시 감옥행을 반복하고 세상에 나아가서는 자신의 자리 하나 번듯하게 없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지만 클레멘스와 함께 하면서 그는 '인생'이란 것을 배우게 되고 들여다 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치려고 해도 '미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의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희망'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비록 세상밖에 자유가 있다가 해도 그 또한 연극과 같은 세상이다.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새장을 벗어나 잘 살 수 있을까.감옥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진 감옥,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많겠지만 지금까지 무척 많은 미로속을 거닐어 왔다. 답이 없는 듯한 미로 속에서 희망도 없이 길도 없이 그저 허우적 거리며 살아 왔다면 이젠 미로가 안개가 걷히듯 무언가 살짝 보이기 시작이다. 클레멘스 교수가 그뤼나우 마을에서 택한 강연은 '판타지'이다. 이 이야기 또한 판타지적이면서도 연극적이고 그런가 하면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심오함이 함께 하는 이야기다. 대학교수 였던 클레멘스도 참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렇게 하는 속에서 제자들이 그를 찾아 오기도 하고 그는 자신이 결코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사기꾼 하네스는 인생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견디어 내야 할까. 그래도 인생은 견디어 내야 한다. 그것이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의지하면서라면 좀더 쉽지 않을까,그렇다 하네스는 인생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일장춘몽과 같았던 유랑극단을 타고 그뤼나우 마을에서 느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남은 시간들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듯 이겨낼 것이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인생이란 그런것 같다. 견디어 내고 기다리고,그러다보면 뜻하지 않은 희망도 만나게 되고 좀더 둥글둥글 세월을 받아 들이게 되는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속도위반을 하여 먼저 간다고 해도 모두가 가는 끝은 똑같은 인생인데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는 미로속과 같다 해도 견디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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