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어떤 손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인간에게는 네 가지 계절이 있다고.푸른 봄,붉은 여름,하얀 가을,검은 겨울. 10대가 푸른 봄,즉 청춘이고,20대부터 30대가 붉은 여름, 마흔 쉰이 하얀 가을,마지막이 검은 겨울이죠.' 미와시 바다에 피아노를 치던 아들을 잃었고 아내가 있는 마을로 돌아오고 싶어하던 남편은 객사를 하여 마음감기를 앓았던 키미코,지금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고 있다.그런가 하면 두달전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찾아 온 마음감기로 인해 더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 미와시 해변에 있는 별장과 같은 어머니의 집에 찾아 온 남자 테쓰지는 어쩌면 이곳을 그의 마지막 죽음의 장소로 여기고 찾아 왔다. 아내와는 이혼이 오가고 그런 이유로 딸과도 떨어져 지내며 갑자기 목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질 않는다. 그가 여름휴가를 받듯 하여 어머니의 집을 찾아가던 중에 키미코를 태우게 되면서 둘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산은 저편 하늘 멀리 '행복'이 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키미코는 자신 또한 어린 아들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심한 마음감기를 앓았기에 테쓰지의 마음감기를 알아보았지만 우연히 해변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테쓰야를 구해줌으로 인해 둘은 다시 조우하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놓으니 보따리를 내 놓으라는 것처럼 테쓰야는 키미코를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만 그녀는 패스트푸드만 잔뜩 실고 갔던 그가 안쓰럽기도 하고 테쓰야의 어머니의 집이 너무도 근사한,여자들의 로망인 보물로 가득한 집이지만 방치되어 황폐해 있음을 알고는 자신이 집을 손질도 하고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음악도 듣기 위하여 도우미를 자처한다. 오로지 그녀는 아들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혹은 아들이 들었던 음악들을 듣는 것이었는데 테쓰의 어머니가 남긴 수많은 책과 음반은 그녀를 황홀한 유혹에 빠뜨렸던 것이다.
그동안 아내와는 소원하게 지냈던 테쓰야는 키미코의 따듯한 치유의 손길과 마음 덕분에 나날이 건강을 되찾아 가고 키미코 또한 먼저 간 사람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테쓰야로 인해 상처 치유를 한다. 서로의 아픔을 상대의 아픔을 보면서 다독이고 약이 되듯 상처에 새록새록 새살을 키워 나가던 그들, 그들에겐 테쓰지의 어머니의 집은 그만큼 특별한 곳이기도 하고 미와시가 특별한 곳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어머니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동안의 간극으로 인해 모든 것을 그저 처분하기만 하려던 그는 키미코 덕분에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고 자신의 삶도 되돌아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하지만 그것이 꼭 키미코가 테쓰지에게만 약이 된 것일까? 아니다. 분명 키미코에게도 테쓰지는 약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에 충분한 처방전이고 약이 되었던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배움의 기회도 놓치고 사회에 던져졌던 키미코,하지만 좋은 스승들을 만나 예절도 배우게 되고 험한 일들을 하게도 되었지만 그녀가 가는 곳은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행운이 따를 정도로 그녀는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여인이다. 그렇다면 키미코 당사자에게는 언제 행운이 찾아 올까. 둘은 망설이고 있다.테쓰지는 아직 아내와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키미코는 그런 그녀를 보내준다. 원만한 가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 또한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자신의 인생이 흔들린것을 알기에 테쓰지는 꼭 부부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의 엘리트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테쓰지의 마음은 키미코에게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 자신의 상처도 낫게 해 주었지만 아내에게서 혹은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따사로움,모성애를 그녀에게서 받은 것이다. 자신의 안식처와 같은 그녀를 놓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버린다는 것과 같다. 그 둘을 하나로 연결해 준 것은 '음악',그 중에서도 '라 트라비아타' 춘희가 있었다. 아들이 듣던 음악이기도 하고 테쓰지의 엄마가 즐기던 음악이기도 한 춘희, 30대 마지막 붉은 여름의 끝에서 만난 붉은 사랑,동백의 열정과도 같은 사랑을 다시금 피워 올리는 그녀,그리고 그리고 그 사랑을 보듬어 주고 토닥여줄 테쓰지가 있다.
똑같이 '마음감기'를 앓았기에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더 단단하다. 붉은 여름이 끝에서 만나 사랑이고 여름이라는 계절에 해변 마을에서 만난 조건 없는 사랑이라 더 애틋한가 보다. 산다는 것이 정말 우여곡절을 겪고 힘든 파고를 넘어야 하는 것처럼 둘의 여정을 보면 힘겹다.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둘이 공감하고 아픔을 알아 주고 그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 어찌보면 우린 무늬만 부부이고 무늬만 사랑인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이라고 하여 하나가 되었는데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이혼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다시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힘든 일인듯 하면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을 했는데 젊어서의 사랑은 능력이나 환경을 따지지만 나이가 먹거나 아픔을 한 번 겪어 본 후의 사랑은 '마음'을 선택한다. 서로 다른 두사람이 만나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서로 틀린 것을 나에게 맞추어 나가기 보다는 서로 한발짝씩 양보하고 배려해 주면 좋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조건적으로 안맞는 옷이라도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런 과정에서 마찰음이 나고 아픔으로 이르는,왜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고 하는지. '행복이라는 건 그때, 그 사람, 그 저마다의 것이 아닐까요? ' 우린 파랑새를 너무 멀리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바로 지금 그대 곁에 파랑새가 있다는 것을 볼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