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우드 클리닉 아이들 마음이 자라는 나무 30
테레사 토튼 지음, 김충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정말 뉴스를 접하는 것이 두렵다. 너무도 세상이 무섭고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식들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는가 하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을 놓고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기가 정말 무섭다,그것도 딸들인데.왜 이렇게 사회가 삭막해져 가고 묻지마 살인에 위아래를 무시한 성폭행이나 그외 일들이 왜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지.마이클 샌덜 교수는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논하고 있지만 정말 정의와 도덕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뉴스속 사건들이 자꾸만 마음을 상하게 한다. 얼마전에 본 어느 프로의 이야기 속 이야기, 새아빠가 딸을 범하여 자식을 낳고 그런 남편을 잡아갔다고,아니 자신의 딸이 재혼 남편의 애를 낳았는데도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 판단을 못하고 남편을 원하고 처벌을 한 경찰을 욕하는 엄마,그런 부모 밑에서 새아빠의 아이의 손을 잡고 양쪽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상한 가족의 뒷모습이 자꾸만 맘을 아프게 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그리고 주위 사람들 또한 왜 그 사건을 이슈화 한 프로를 뭐라 하는지.도덕이 도대체 어디로 이탈을 해 간 것인지.

 

리버우드 클리닉에 오게 된 대니,그는 자신이 왜 알콜중독이 되었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 끔찍이 아기는,자신이 보호자라도 되는 듯 늘 감싸던 동생 켈리가 어떻게 된 줄도 모르고 동생과 함께 하던 놀이만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속 아빠는 사회적으로는 반듯한 변호사이고 어디 흠하나 없는 듯 하지만 완전무결,늘 최고를 외치는 그는 자식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용서 못하고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엄마였다면 대니와 켈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자신이 왜 알콜중독이 되었는지 그토록 보고 싶은 켈리의 소식을 늘 궁금해 하면서 리버우드 클리닉에서 새로운 친구인 룸메이트 스크래치와 케빈을 친구로 클리닉 생활에 점점 적응해 가는 대니,그녀가 점점 병원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마주하는 과거는 놀랍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쩌면 아버지의 폭력과 잣대로 인해 동생 켈리가 죽은것,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 밑에는 아버지의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그런가하면 스크래치는 새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그 끔찍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만의 룰이 있고 그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스크래치도 점점 대니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간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또 다른 친구 케빈,그는 동성애자라는 말에 부모로부터 등떠밀려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의 집안은 광적인 기독교집안,하지만 그는 동성애자다 부모는 그런 아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어서 클리닉에 넣은 것이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양.클리닉에 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있지만 그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어른들의 잘못이 깔려 있다.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여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여 그들의 영혼에 상처를 내고도 자신들의 잘못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어른들,그런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아픔에 허우적 거리지만 그들은 리버우드 클리닉에서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서로 울타리를 만들어 상처 치유에 나선다. 점점 과거 기억을 찾아 가는 대니,하지만 켈리의 기억에 와서는 막힌다. 사람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면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서 기억을 지워 버린다. 대니가 그렇다.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그 아픔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기억에서 지워 버린 것이다. 실은 켈리가 아버지와 함께 타고 집으로 오다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분명 자신도 모든 것을 지켜 보았지만 받아 들이지 못하고 기억을 삭제해 버리고 아직 동생 켈리가 살아 있다고 기억은 받아 들이고 있다. 그런 켈리가 아버지의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대니, 스크래치와 케빈은 그런 그녀의 아픔을 토해내고 받아 들이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나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장하고 아픔을 치유할 장소를 찾아낸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 들이고 그제서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울음을 토해내는 대니,너무 슬프면 눈물샘도 막히나 보다. 그리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겪고 있는 엄마를 비로소 받아 들이게 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가족에게 버림받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 함께 할 수 있음이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스크래치와 케빈 그외 친구들과도 서로의 아픔을 받아 들이며 타인의 아픔을 보듬으며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청소년들,그들을 아픔으로 내 몬 것은 분명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편견에 의해 상처를 입고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이 서로 토닥이며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는 요즘 사회를 떠들썩 하게 하는 가슴 사건들과 맞물려 좀더 현실에 눈뜨게 한다. 분명 죄를 사람들은 처벌을 받겠지만 죄를 지은 사람보다도 한참 여린 아이들의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 수 있도록 상처 치유가 더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몰라라 하는 어른들, 그런 속에서 스스로 힘을 키우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아이들이 더 나쁜 길로 삐뚫어지지 않고 올바른 길을 모색하여 어른들의 편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이,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반란이 눈물겨우면서도 가슴이 아린다.상처를 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른다.정당하다가고 생각한다.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상처가 다 나았다고 해도 그 상흔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더이상 아이들이 멍들지 않고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길,그런 부모가 되길.분명 부모노릇도 힘들고 자식노릇도 힘들다. 그렇다고 자신의 본분을 잊고 탈선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의와 도덕이 메말라 버린 행동으로 평생 아픔을 남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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