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연수가 좋았는데, 일단은 그의 이름이 좋았다. 남자인데, 김연수. 연수. 김.연.수. 김연수를 읽는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책 맨앞쪽의 사진을 보면, 그의 이름과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 제목도 아주 예쁘다.
너무 예쁘지 않나. 그의 소설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 했는데, 나는 그 이유가 내가 그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산문을 사랑하게 된 지금, 그 이유는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쳐다보게 된 건, 김중혁 때문이었다.
나는 소설가 김중혁의 소설보다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를 먼저 읽었는데, 곧바로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중혁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김동현 선수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73p)
버티다 보면.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그의 말은 2011년 말, 내가 들었던 최고의 위로였다. 내가 버텨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난 정확히 모르고 있었고, 내가 잘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었지만,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눈에 힘을 빼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재능이 생길 수도. 그리고 내가, 내가 원하는 뭔가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너무 작아 희망이라는 글씨가 너무 커보이는 그런 희망이, 아주 조그마한 희망이 생겼다. 2011년에, 나는 그렇게 김중혁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김연수 김중혁의 대꾸 에세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을 읽었다. 이 책은 끝까지는 읽지 못 했다. 남자애 둘이 (하는 폼이 딱 남자 애들이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주거니 받거니, 왔다리 갔다리 대꾸하는 품새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집 앞 퓨전 음식점 <국수나무>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던 교복차림의 남학생 두 명이 생각나 나는 자꾸 혼자 웃었다.
그리고, 이 책. 이 책을 만났다.
(그러니까, 저 위의 쓸데없다면 쓸데없고,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이야기들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화려한 헌사라고나 할까. 나는 당신을 이렇게 만났어요. 나는 당신을 이렇게 알아왔어요. 나는 당신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라는)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번역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비례해서 하루는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런데도 꾹 참고 번역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소설을 번역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몰라.’ 그런 생각은 나를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끌었으므로 되도록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34-5쪽)
시간은 흐르고, 번역은 힘들어지고.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번역을 업으로 삼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영어실력도 영어실력이지만, 번역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끈기가 필요하다. 아니, 끈기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할 거다. 끈기보다 더 강력한 힘, 뚝심?
영문과 출신으로 전공을 살려 번역일에 ‘매진’하던 스물 여섯의 김연수는 생각한다. 이걸 다 번역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무리 방황이 젊음의 특권이라 하지만, 젊음이 가장 환하게 빛나는 그 때, 바로 그 때에는 그 젊음이 너무나 버겁다. 지금, 김연수는 한국의 젊은 작가 중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명임이 분명하고, 그의 신작은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받지만, 스물 여섯의 김연수는, 번역할 책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미국 지도를 들여다보는 김연수는, 방황하고,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가 지금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나는, 스물 여섯의 김연수처럼 고민했던가 생각해 본다.그가 품었던 스물 여섯의 질문이 내겐 있었던가. 그 질문이 내게 있었던가.
내가 원하는 삶이란 게 뭘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란 게 뭘까.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그렇게 잠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자, 여기 테이블 앞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야.’ 그런 심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도 그 시간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53쪽)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도 생각나는 시간들. 그 시간은 유명한 관광지에서의 시간도 아니고,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의 시간도 아니고, 화려한 도시 속에서의 시간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혼자서 잠깐 앉아 있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도록 하는 시간이다. 기억나는 시간은 그런 시간인가 보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
그 밤에 나는 “인생은 너무나 길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에요.” 그런 말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13년 전에만 해도 나는 2010년이 되어서도 내가 소설을 계속 쓰리라는 걸, 더구나 <7번국도>를 다시 써서 출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독자들과 만나게 되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인생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길다. 그러고 보니 예측한 대로 삶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69-70쪽)
그가 말하는 이 소박한 이야기를, 이 절절한 진실을 빨리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놀라움의 연속인 이 한번뿐인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예측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때, 그 때 나는 스물 아홉이었다. 스물 아홉.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회사 이름을 대면 사람들이 우와~하고 부러워하던 회사는 아니었고, 월급이 그렇게 많은 회사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직무에 관한한 남녀 차별이 없었고, 자기가 맡은 일만 확실하게 처리하면, 즉, 고객으로부터 직접적인 항의만 받지 않는다면, 업무량을 본인이 조절해 가며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고객이 외국 회사인지라, 항의하는 일은 드물고, 항의할 일이 생겼다면 그건 정말 큰 일이다. 사건을 놓쳤거나, 사건이 죽었거나.)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거의 마음대로, 내 맘대로), 퇴근시간이 정확했다. (우린 육땡땡이라 불렀다.)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육아’였다. 친정과 시댁에서 서로 애를 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신랑과의 오랜 대화 끝에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자’는데 합의했다.
그러고 나니,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단 한 번도 전업주부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다. 상상 속의 나는 언제나 가방을 들고 (이왕이면 명품이길, 명품이었기를~~), 힐을 신고 (7cm 내외), 그리고 바삐 출근을 하고 있다 (지하철로). 모닝커피를 마시며 오늘 처리할 일을 확인하고, 오후에는 서신을 마무리하고, 팩스를 보낸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나는 다른 세계, 다른 우주에 서 있는 거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시간, 그 많은 시간이 너무나 버거웠다. 나는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큰 애를 어린이집에 잠시 맡기고 돌아서서 문화 센터로 운동을 하러가는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저렇게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운동하러 갈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 직업 선택란에서는 자꾸 망설여졌다. 스트롤바를 내려서 “주부”를 찾는 내 모습이 웬지 바보같았다. 이건 전업주부는 바보라거나, 전업주부라는 게 창피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전업주부’인 내 모습이 어색했다. 받아들이기 싫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첫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학교에서는 “청소”를 하러 학교에 오라고 했다. 나는 공부를 하라고 첫째를 학교에 보냈는데, 학교에서는 공부를 가르칠테니, 나보고 학교에 나와 교실을 청소하라고 했다. 아이들 등하교를 돌봐주는 녹색 어머니회에도 들어가야 했다. 녹색을 서야하는 날에는 둘째를 친정엄마에게 맡겼고, 청소를 하러가는 날에는 둘째 먹일 사탕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에게 한탄했다.
“왜, 왜 집에 있는 게 죄야? 집에 있는 엄마들이 노는 줄 알아? 왜 애들 교실 청소를 내가 해야 돼? 우리집 청소도 잘 안 하는데. 어? 집에 있는 엄마들도 바뻐. 바쁘다구.”
그렇게 답답했던 4-5년이 지났다. 이제 ‘나의 생활’이라는 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거였다. 난 제3의 성 아줌마였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렸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전업주부 생활 7년이 넘다 보니, 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전업주부도 나름의 특장점이 있는데, 그건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을테니 여기서는 소개하지 않겠다.
인생은 예측한 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내가 예상한 대로,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 내 스스로 현실에 안주하고, 어느 정도 포기한 면도 있겠지만, 여하튼 나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게 됐다. 그래서, 첫째 아이 임원모임에서 00구청 00과에서 일하고 있다는 엄마를 만났음에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이 부러워 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음, 3-4일을 그 엄마가 부럽다고 신랑에게 이야기하고, 또 3-4일을 나도 회사를 그만두지 말걸 하는 한탄과 원망, 푸념과 탄식을 신랑에게 가차없이 쏟아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이게 네 할 일’이라고 하는 일들은 여전히 하기 싫다. 일단은 잘 하지 못한다. (‘잘하고 싶지도 않다‘라고 쓰려했으나, 그랬다가 완전 직무유기라 그냥 이렇게 넘어간다. 그런데, 벌써 쓰고 말았네. 사실, 잘하고 싶지 않다.) 집에는 항상 먼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청소하고 뒤돌아서서 쳐다봐라. 바로 먼지가 앉아 있다. 청소는 기본의 범위에서 처리한다. 음식은, 요즘 ‘1일 1식’ 모르나. 간단히 소박하게 먹는 게 장수의 비결이다. 식사는 간단하게 차린다. 아이들 공부는, 원래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다.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해 주고, 숙제는 잘 챙겨서 하라고 ‘말해준다’. 대신, 학교 갔다 와서 쫑알쫑알 떠드는 얘기들은 주의깊게 들어준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책 읽는 속도는 거북이처럼 느리고, 무지개처럼 특별하고 멋진 생각도 떠오르지 않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책을 읽고 감상을 쓰고, 그 책에 나온 또 다른 책을 찾고 책을 읽고 감상을 쓰고, 그 책에 나온 또 다른 책을 찾고 책을 읽고 감상을 쓰고...
그게 내가 찾은, 내가 하고 싶은, 내 일이다.
인생은 길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은 초등학생 학부모, 중학생 학부모, 고등학생 학부모, 대학생 학부모일 테지만, 또 모르지 않겠는가.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런지. 그건 나도 모르니까.
여기는 아파트 상가에 새로 생긴 커피숍 이디아. 지금은 옆자리에 앉아 열씸히, 정말 열씸히 수다떠는 네 명의 엄마들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언젠가 내가 이 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수도. (지금 그립다. 이 아침, 모닝 커피 한 잔~)
내가 가장 열심히 일한 회사였다. 집에까지 일거리를 들고 가는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출퇴근 시간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하지 않겠는가! 신간 서적을 읽고 글을 쓰면 돈을 준다는데 누가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그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가장 많이 놀았다. 어떨 때는 내가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출근과 퇴근의 구분도, 집과 회사의 차별도 없는 직장 생활의 열반을 경험했다. (102쪽)
바로 여기다. 여기가 바로 내가 원하는 직장이요, 내가 경험하고픈 직장 생활의 모형이다. 나도 이런 곳에 취직하고 싶다. 자택근무도 가능하다면 좋을텐데, 아, 정말 취직하고 싶다. 이런 곳이라면 백 번 취직하고 싶다.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204-5쪽)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일단은, 성실하게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일을 해보자, 결심해 본다. 불끈!
김연수의 다른 책들도 좀 찾아본다. 나는 김연수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