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하루에 단지 몇 시간만 독서에 할애하는 보통 독자의 관점에서, 평균 분량의 작품 하나에 4일은 걸린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프루스트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작품을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리지만,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는 걸작들도 있다. 그러므로 평균 4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실린 모든 작품에다 4일을 곱하면 65,400일이 된다. 365일로 나누면 거의 180년이 된다. 이런 계산은 틀림없다. 그 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을 읽지 못했는가’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31쪽, 이책 35쪽

 

인류 최고의 유산 고전(古典)을 대할 때,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아직 읽지 않은 그 책들을 대할 때, 나는 여러 가지 변명을 댄다.

1) 집에 책이 많지 않았어요.

2) 고등학교 도서관이 변변치 않았어요.

3) 집 근처엔 도서관이 없었어요.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엔 고등학교 시절 그가 지방의 단골서점에서 책을 주문해서 읽던 이야기, 교보문고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의 아름다운 서점 방문기 앞에 내 변명은 설 자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서울에서, 그것도 집 앞에서 버스 한 번이면 교보문고 앞에, 정확히 바로 앞에 내릴 수 있는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초등 6학년때 교회오빠의 안내에 따라 교보문고를 첫 방문했을 때의 감격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만, 오직 책읽기만을 위해 교보문고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는 것. 그것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내가 책읽기를 좋아했던 만큼이다.

그래서, 위의 구절은 참 의미 깊은데, 꼼꼼하게 외우리라 생각하며 따로 정리해둔다. “물론, 유명한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이 말 뒤에 써 먹을 수 있겠다.

결국 내가 좋은 서평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직함이다.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정직할 것. 좋아하는 책에 사랑을 고백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참을 수 없는 책에 불평하기를 망설이지 않으며 쓸데없이 공정한 체하지 않는 것. (381쪽)

나는 아직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 대답은 너무 뻔하다. 좋은 ‘서평’ 이전에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것. (382쪽) 

좋은 서평 이전에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좋은 서평은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이면, 좋은 서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서평자’는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인데, 좋은 책은 좋다, 좋지 않은 책은 좋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이게 잘 안 되는데, 사람들이 ‘와아~ 좋아.’하는 책을 읽고 스스로 ‘그 책은 별로야’고 생각되어도, ‘난 별로던데.’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속절없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내 독서력이 이렇게 형편없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더 열심히, 더 꼼꼼히 읽어야겠다.’ 그래서, 어떤 책에 대해 ‘그 책은 별로에요. 게다가 이런 이런 점은 정말 이상하구요. 저자는 제목을 잘못 정한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그 책의 저자도 아닌데.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그 책 좋았는데, 저 사람은 별로였구나.’ 이렇게 쿨하게 지나갈 수가 없다. 나는 지은이가 말하는 ‘좋은 서평자’가 되기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

이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지은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 윌리암 진서의 말은 핵심을 짚었다. 어떤 글이든 그 글을 읽는 진짜 이유는 글쓴이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책을 좋아해서 출판 관련 일을 하면서도 결국은 ‘책’ 그 자체와는 멀어지는 것 같아 싫어진다는 그의 이야기들, 마감을 앞둔 초조한 저녁, 문학을 사랑했던 대학 시절, 회한에 젖게 하는 친구들과의 만남, 술이 있는 저녁 그리고 계속되는 그의 책사랑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다 읽었다. 그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그는 이런 재미있는 책을 낼 만큼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매력적인 책을 낼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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