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는 프랑스어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같이 공부해보자는(정확히는 가르쳐 주겠다는) 친구의 제안에 나는 아---데도 모르는데 괜찮아?”하고 물었는데, ‘---가 아니라 ---로 물어야 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평생 동안 영어가 어려웠고 지금도 못 하지만, 적어도 프랑스어만큼은 아니니까. 프랑스어 책을 펼칠 때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의 경험이 놀랍고 신기하다. 마음이 겸손해지고 차분해진다. 프랑스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을 듯 하다. 왕초보 프랑스어라든가, 기초 프랑스어 100일이라던가, 슬기로운 프랑스어 생활이라던가. 아니면 프랑스어 만만세라든가.

 

 

이 책은 비연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이다. (이 자리를 빌어 비연님! 땡큐요^^) 엘리자베스 길버트에 대해서라면 호불호가 나뉠 텐데, 나는 좋아하는 쪽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도 좋았지만, 『결혼해도 괜찮아』에서 전작의 전 세계적인 대성공 이후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강요할 때, 사람들이 요구한 무언가에 스스로를 맞춰가고 싶을 때, 나는 아직 글 쓸 준비가 안 되었네, 하며 토마토 키우기에 집중하는 장면에서 내 사랑은 더욱 확실해졌다.  

 


Ideas are a disembodied, energetic life-form. They are completely separate from us, but capable of interacting with us – albeit strangely. Ideas have no material body, but they do have consciousness, and they most certainly have will. Ideas are driven by a single impulse: to be made manifest. And the only was an idea can be made manifest in our would is through collaboration with a human partner. (35p)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받아 들일만한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그녀의 주장은 흥미롭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한다. 자신에게 찾아왔던 영감을 무시했을 때 그 아이디어가 자신의 소설가 친구에게 옮겨갔던 일 말이다. 그녀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듯 싶다.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의 아이디어가 볼키스를 통해 그녀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옮겨졌다는 말을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 그래서 제목이 매직?’

 

다음 챕터에서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살고 있던 과학자들이 어떻게 동시에 같은 내용의 발견을 할 수 있었는지 말하려는 듯 싶다. 앨프레드 윌리스라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학자는종의 기원』의 등장을 촉진시킨 사람이다. 윌리스는 종의 진화에 대한 간략하고 개념적인 논문을 학회에 제출했는데, 논문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던 다윈의 스승은 윌리스의 논문이 다윈과 같은 생각을 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다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다윈의 주장과 연구가 윌리스와 같은 학보에 실리도록 권했다. 다윈은 떠밀려 출판함으로써, 간신히 자신의 연구와 주장의 소유권을 영원히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양자오의 『종의 기원을 읽다』에서 읽은 내용이다.

 

 


영어로 말해야하는 밤인데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된 책을 읽는다. 일요일마다 재활용을 정리해 내놓는데, 일요일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월요일 다음에는 목요일이고, 그 다음은 토요일이다. 그리고 재활용의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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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1-1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저 위에 저게 저라니. 부끄..

단발머리 2020-11-15 21:52   좋아요 0 | URL
부끄러워하실 일 아니시고요 ㅎㅎㅎㅎ 자랑스러워 할 일입니다요! 🤗

다락방 2020-11-1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프랑스어 공부 시작하셨으니 저도 베트남어 시작할까요... ㅠㅠ

단발머리 2020-11-16 10:04   좋아요 0 | URL
어차피 한동안 여행은 어려울 것 같아요 ㅠㅠㅠ 특히나 외국은요.
구체적인 목표는 있지만 부담은 전혀 없는 상태라서요. 전 프랑스어를 가볍게 보고 있습니다.
다락방님 베트남어 시작하신다면 제가 또 화이팅을 어마어마하게 보내드리지요. 같이 가시지요, 다락방님!

수이 2020-11-16 10:15   좋아요 0 | URL
해요해요 락방님, 베트남어 공부 응원해요, 그리고 나중에 베트남 여행 가자가자💜

다락방 2020-11-16 10:16   좋아요 0 | URL
아이참..여성학 책 같이읽기도 해야 하고 치아바타도 구워야 하는데 베트남어까지....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혼란스럽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0-11-16 10:17   좋아요 0 | URL
가자가자가자!!!!

단발머리 2020-11-16 10:19   좋아요 0 | URL
여성학 책읽기도 치아바타도 우리로선 포기할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베트남어는 짬짬이 시간을 이용해야할듯 합니다 🤔

수이 2020-11-16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프랑스어 공부 응원해요, 하루 두 문장만 옹알옹알하기 추천드립니다!!

단발머리 2020-11-16 10:18   좋아요 0 | URL
오늘의 동영상이 저를 부르던대요 ㅎㅎㅎㅎㅎ 공부 밀리고 있어서 옹알이를 자꾸 내일로 미루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8)

 


1976 69, 이삿짐을 정리하던 다나는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속으로 떨어지고, 몇 분 뒤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뒤, 현기증과 함께 다나는 다시 과거로 끌려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다나는 자신이 무슨 이유로 과거로 끌려가게 됐는지 추측하다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조상 루퍼스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인종문제가 해결된 시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시대는 공개적으로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 제지를 받게 된다. (미국의 백인경찰은 예외인 것 같아 보이지만...) 흑인 여성인 다나가 1815년을 산다고 할 때, 그녀는 노예로서만 존재한다. 자유민 흑인의 서류를 빼앗아 버리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이 일상적인 시대였다. 남자의 옷을 입고 백인처럼 말하는 똑똑한 흑인여성은 매순간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1970년대. 인종간의 결혼이나 동거가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존재한다. 다나를 그녀의 남편 케빈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1800년대와 흑인 여성 다나와 백인 남성 케빈이 함께하는 1970년대의 현실.


 














첩과 번식용 여자라는 역할은 노예제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골적인 성매매 형태로 발전했다가장 예쁘고 ‘백인에 가까운’ 노예를 뉴올리언스 시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용도로 팔았다이때 쓰인 무신경한 용어가 ‘팬시걸이었다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인-노예 관계의 도착 환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258)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의 역사를 고려하자면, 백인 파트너를 선택하는 흑인여성 개개인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흑인여성에게 이 고통스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인 주인/노예 관계를 상기시키기에 흑인집단의 아픈 곳을 다시 헤집는 것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282)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파농은 백인여성의 사랑을 갈구한다. 백인여성의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기에. 백인 여성의 사랑만이 그를 백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기에.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의 결합은 성공의 상징, 취향의 문제, 또는 사랑에 의한 선택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백인남성과 흑인여성의 결합은 오랜 노예제로 인한 흑인여성의 성적착취를 상기시킨다. 노예시장에서 성적인 용도로 판매되었던 팬시걸, 백인농장주가 아끼는 노예첩을 떠오르게 한다. 아픈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구속한다.

 


루피, 제발! 샘은 자기 동생들에게 글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야. 그게 다야!”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겨우 그에게서 잠시 몸을 떼어냈을 때 울고 있던 여자들 중 젊은 쪽이 나를 보았다.


이 창녀!” 여자는 빽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노예행렬에게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다가왔다. “이 쓸모 없는 검둥이 창녀야, 왜 우리 오빠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 거야!” (464)

 


내가 흑인여성이라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백인남성이라면. 내가 사랑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무식하거나 가난할 수 있다. 운전솜씨가 형편없거나 현재 무직 상태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보여지지 않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옆의 남자가 백인이라는 사실은 감출 수가 없다. 그의 하얀 피부를 숨길 수가 없다.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이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조차 내 옆의 남자와 나의 관계를 의심하고 추측한다. 어쩌면 평생을,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에 상관없이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심사대상이 된다. 단지 그들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그 피부색이 의미하는 무엇 때문에.

 


흑인여성과 백인남성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라면, 역시 노아를 빼 놓을 수 없겠다. 트레버 노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내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있을 때,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Born a Crime. 태어난 게 범죄. 사랑한 게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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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1-1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사두었다죠...................=.=; 읽고 싶어지는.

단발머리 2020-11-13 18:42   좋아요 0 | URL
금요일 밤이니까요. ㅎㅎㅎㅎㅎ 하시던 일 마치시고 야구와 맥주와 책의 꿀조합을 기대합니다.

수이 2020-11-1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은 독서에세이에서 나온 구절인데 유대인과 유대인 아닌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냐고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가슴팍에 별을 달았느냐 아니냐 그 차이밖에 없다고 그런데 그 노란 별로 모든 게 달라진다고_ 그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인간이란 대체 언제까지 어리석어야만 하는 걸까요. 앗 저 [태어난 게 범죄] 막 왔는데 읽어볼래요!!

단발머리 2020-11-13 18:51   좋아요 0 | URL
수연님 댓글 읽으니까 닥터수스의 <Sneetches>가 생각나는데요. 아이들 동화에서 이 주제를 다뤄요. 스니치 마을에서 가슴팍에 작은 별을 단 스니치들이 있는데 (하필 별.....) 그 스니치들이 별 없는 스니치들을 무시해요. 맥빈이라는 장사꾼이 나타나 별 없는 스니치들에게 3달러 받고 별 달아주는 사업을 벌이니까, 원래 별 있던 스니치들이 실망해요. 맥빈이 다가가서 3달러 내면 별 떼어준다고 그래요. 저쪽이랑 달라 보여야 되니까요. 그래서 이 쪽에서 별달고 저쪽에서 별 떼고 달고 떼고 달고 떼고. 맥핀은 부자가 되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이를 만들어내서 결국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살펴봐야할 거 같아요.

노아는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책친구는 장강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 읽는다. 나는 장강명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책을 아직 한 권도 사지 않았다. 누가 진짜 장강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좋아한다는 것, 작가를 좋아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 무슨 뜻인가.

 

워낙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 말하기 심히 부끄럽지만 장강명의표백』은 정말 대단했다. 자살에 대해 이토록 치밀하고 날카롭게 서술할 수 있다니.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이 책은 반드시 한 번 더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책 중간에 <내 인생의 책>이라는 파트가 있는데 저자가 꼽은 인생책 첫번째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을 비판하기 위해악령』을 썼다고 하는데, 저자는 오히려 그 책을 읽고 성당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표백』이 어떻게 『악령』과 닿아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읽고 싶어요>가 아니라, <읽어야 해요>에 악령』도 넣어둔다.

 


나는 인세로 먹고살고 싶었다(25)는 고백부터 시작해 잘생긴 작가 책이 잘 팔린다는 출판 관계자들의 푸념을 읽을 때 괴로웠다. 이런 상황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 아주 작은 책임이지만. 나는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는다. 줄을 쳐야만 하는 책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고, 페미니즘 책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 읽지 못한 책들이 산과 같다. 도서관의 책, 특히 도서관의 모든 새 책들을 다 내 책이라 생각하고 살고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아니 잘 팔리는 작가로 손에 꼽힐 만한 장강명 정도의 작가조차 인세만으로 생활하기 힘들다는 건 정말 모순적이다. 지금까지 몰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새로운 정보를, 상쾌한 깨달음을, 기쁨과 슬픔을, 그것도 한글로 전해주는 이렇게 소중한 작가들이 책 쓰는 것만으로 살 수 없다는 현실. 안타까움을 넘어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건, 지역에 공공도서관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것과 독자들이 책을 많이 구입해야 한다는 정도인데 이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인가를 생각하면 또 다시 암울해진다. 평소에 진짜 책을 사지 않는 사람, 이를 테면 일년에 책을 한 두 권 사는 사람마저 사는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땅 파서 먹지 않는 이상(적어도 자기 땅이 있어야함) 다음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생활 여건은 마련되어야 한다. 다 자기 좋아서 하는 일 아닌가,라고 말하기에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너무 크고 또 소중하다. 작가를 포함해 예술가들에게 지급되는 지원금 혹은 장학금 혹은 후원금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되기를 바래본다. 어제만해도 책상자가 두 개나 배송되었지만, 나역시 더 활발한 책구입을 새삼 다짐해본다. 

 


책은 대화가 뒷담화로 번지지 않게 해주는 무게중심이 되어준다는 것이나(100), 책을 많이 읽으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까(154)의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책 한 번 보내봐, 읽어줄게하며 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아차차, 깜빡했네요,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고 그런 사람과는 연락을 영영 끊는다는 이야기는 통쾌했다. 연락 끊어야한다, 반드시.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많지만 이 책을 직접 읽으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고. 눈에 들어온 이 문단을 이야기하고 싶다.

 


군대에 있는 동안 나가지 못했던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 모임에도 다시 나갔는데, 거기서 누가 <블랙 달리아>라는 끝내주는 소설이 나왔다며 읽어보라고 했다. 월드와이드웹이 막 보급되던 때였고, 네이버도 알라딘도 없던 시절이었다. 괜찮은 책은 늘 그렇게 사람에게서 추천받았다.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그런 추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159)

 


여기의 알라딘은 어떤 알라딘일까. 지니 나오는 알라딘이 아닌 건 확실하고. 아마도 알라딘. 지금 이 알라딘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알라딘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중고서적 매장을 가진 알라딘이 아닌 듯 하다. 뒤의 문장으로 추측해보건대, 이 알라딘이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믿을만한 책 추천이 가능한 곳, 즉 알라딘 서재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장강명은 알라딘이 없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건 이후에 알라딘이 있는 시절이 있음을 뜻한다. 알라딘이 없던 시절 그리고 알라딘이 있는 시절.

 


소소하고 작은 여러 기술적인 문제를 소홀히 대하는 알라딘을 보면 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놓고 불평하지 않는 건 이 곳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고, 이 곳에서 읽을만한 좋은 책을 추천받기 때문이다. 알라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책을 보는 관점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배웠고, 책을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바로 옆에서 구체적으로 보았다. 책 이야기를 해도 되는, 책 이야기만 해도 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책 이야기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번지는 것에 당황했다. 우리가 너무 수다스럽고 사생활 털어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궁금했다. 그러다 머지않아 이게 여러 독서 모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97)

 


장강명이 <, 이게 뭐라고?!> 팟캐스트 팀원들과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한 독서모임을 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 곳에서도 일어난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책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았던 내밀한 기억과 슬픔, 서운함과 아쉬움, 후회와 결심 그리고 먹먹한 그리움을 말하게 된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한 사람이 듣는다. 한 사람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댓글을 단다. 이 모든 일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가상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만의 새로운 우주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라딘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책을 많이 사야겠군) 알라딘 시절이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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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123q34 2020-11-0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단발머리님 안녕하세요 이책 나왔을때 눈에 띄긴 했는데 안 읽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밀리에 검색해서 앞부분 조금 보는데 전자책 대여 이야기가 딱..ㅋㅋ 저는 알라딘 서재 많이는 안 써봤지만 가끔 책 사고 설문하라고 하면 꼭 서재기능 때문에 내가 너희 알라딘에서 주문하는거야~ 라고 써요.(물론 존댓말로ㅋㅋ) 오래오래 지속되는 전설속 아름다운 알라딘 시절을 오래오래 누리세요♡

단발머리 2020-11-07 12:13   좋아요 1 | URL
저는 장강명 작가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도 좋더라구요. 폼 잡지 않아서 좋고 또... 제가 이런 말 하면 부끄럽지만 젊은 감각이 느껴져서 좋아요. 알라딘에게 서재 기능때문에 이용한다고 말하는 건 중요한 거 같아요. 저도 자주 말하기는 하는데, 알라딘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ㅎㅎㅎㅎ
전설로만이 아니라 추억뿐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 오늘의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았음 좋겠어요.
알라딘 시절 포에버! 알라딘 시절 화이팅! 하고 싶네요*^^*

다락방 2020-11-07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언행일치는 저 뿐인가요. 저는 장강명 안좋아하고 안사는 사람.... 아아, 역시 언행일치는 저뿐이에요. 그렇지만 단발머리님의 이 글을 읽으니, 장강명을 다시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확히는 장강명을 다시 읽는다기 보다는, ‘이책은 읽어볼까‘ 하게 된달까요. 특히 알라딘.. 얘기가 나온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쓰면서 깨달았는데 저는 국내 남자작가 다 싫어하네요 ㅋㅋ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김봉곤도 책 읽고 싫어했고 장강명도 책 한 권 읽고 이제 안읽어도 되겠다 했는데, 박상영은 시도도 하지 말자,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너무나 잔인한 독자인것입니다. 한국 남자작가들에게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저도 알라딘이 오래 지속이 되고 이곳에서 단발머리님처럼(!) 좋은 책 친구 끊임없이 만들고 다정하게 지내고 싶어요. 책 얘기 자연스럽게 하면서 교류하는 곳은 저도 알라딘밖에 몰라요. 오래오래 다정하게 책친구 합시다, 단발머리님. 다른 친구들은 뭐 읽나, 뭐 좋아하나, 뭐 싫어하나 보면서요. 히힛.

단발머리 2020-11-07 14:2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진정한 언행일치의 화신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저도 언행일치하려면 장강명을 조금 더 사야겠어요. 전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랑 아... 소설은 이거 하나네요. 나머지는 에세이?! <5년만의 신혼여행>이랑 <한국이 싫어서> 읽었거든요. <당선, 합격, 계급>도 반 정도 읽었구요. 전 작가의 이력이 특이해서 더 관심있게 봤어요. 보통의 문법을 뛰어넘은 사람이라 글에서도 그런 걸 느끼고 싶었구요.

저도 이 곳에 와서 다락방님 만나게 되서 좋아요. 책 취향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권해주는 책이라면 나도 읽어볼까? 하는 곳은 역시 알라딘 밖에 없지요.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욕하는 책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전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오래오래 다정해요! 우리 다정 포에버!!!

수이 2020-11-07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강명 읽는다 읽는다 하고 안 읽었어요. 그러니 읽어봐야겠어요. 장강명 읽고 좋아지건 안 좋아지건 저도 이곳에서 만난 단발머리님과 바로 위에 계신 다락방님과 더덕단 멤버들과 막 친해질랑말랑하는 난티나무님과 저 머나먼 미국에 계시는 언제나 롤모델인 라로님 등등 다른 분들과도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서로 닉네임만 아는 사이인 이웃들에게도 다정하게 대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다 행복해지도록 하자!!!

단발머리 2020-11-07 14:22   좋아요 0 | URL
저는 친한 이웃분들 넘 좋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도 좋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은 더 좋아요.
제가 이 곳을 좋아하지만 결국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오랫동안 알라딘 이웃분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사이좋게*^^*

비연 2020-11-0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책 지난번에 책방무사에서 사온 <책, 이게 뭐라고> 달랑 한 권 있는데.. <악령>이 인생 책이라 한다니 급관심.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 (사실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흥미가 생기네요 ㅎㅎㅎㅎ 얼른 읽어야겠네요^^

다락방 2020-11-07 13:48   좋아요 0 | URL
악령 사고 싶은데 제가 이미 샀을까봐 쫄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07 14:14   좋아요 0 | URL
네네. 저도 이름만 아는 작품이라서 몰랐는데, 장강명은 데뷔작이 이 작품에 기대서 쓴 거라고 하니까 <악령> 좋아하신다면 <표백>도 좋아하실 거 같아요. 최근에 리커버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인생책이라 말하는 작가라면 흥미가 안 생길수가 없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07 14:15   좋아요 0 | URL
위의 제가 <악령> 열린책들걸로 상권만 링크해두었는데 세 권이더라구요. 세 권이면 금방 찾을 수 있을거예요.
전 다락방님 댁에 <악령> 있다에 1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20-11-07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1인인데 지난 5월인가?
EBS 강연 프로에 나온 거 보고 급관심이 가더군요.
얼굴이 벌개지도록 글 쓰기에 관한 강연을 하는데
내용은 의외로 쉽게 풀지는 못한 것 같은데 태도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뭐 그런 것들이 오히려 마음을 끌더군요.
물론 그전에 TVN에도 나고기도 했지만.

진짜 알라딘은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서재를 통째로 날리게 생겨서 전화를 했더니
그래서 뭘 어쩌라구요? 하는데 난감하더군요.
뭘 어째야 좋을지 모르는 고객에게 그런 물음이 메아리처럼 돌아오는데
알라딘이 지니를 키우는 건 아니지 싶더군요.
그럼에도 저도 알라딘이 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쓴 페이퍼며 리뷰를 어딘가로 옮겨야 할 텐데 그짓을 어떻게 하라고.
분명 예전만큼의 재미나 열정은 없지만 서재는 정말 소소하게 나누는 공간이어서
어느 날 없어지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0-11-15 16:21   좋아요 0 | URL
최근에 칼럼도 많이 쓰고 팟캐스트에, 방송에 장강명씨를 자주 볼 수 있었죠. 얼마전에 알라딘 티비에도 나왔구요.
장강명씨가 책에 쓴대로, 인세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가능할까요 ㅠㅠ)

알라딘이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좀 많죠. 얼마 전에도 북플에 오류가 있어서 이웃분이 연락하시니까 그래도 나름 빠르게 수정하더라구요. 그런데 알라딘과는 또 별개로 알라딘 서재에서 이웃분들 글을 읽고 소통하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라서요.
저도 이 공간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일단은 제가 알라딘에서 책을 좀 많이 사고.. 그래야겠지요? ㅎㅎㅎㅎㅎ

2020-11-07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15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0-11-0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알라딘이 배터지도록 책을 팔아주는 건 힘들지만, 단발머리님의 친구인 syo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그다다다다다다다다음 날도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0-11-15 16:12   좋아요 0 | URL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음날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셨으니까,
겁나게 든든하네요. 고구마 10키로 정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0-11-0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명씨 단발님이 좋아한대요 (소문내기)~ 저는 안좋아해요~~~~~~~~~

단발머리 2020-11-15 16:11   좋아요 0 | URL
강명씨~~~~~제가 강명씨 좋아해요. 이제부터 책 많이 살께요.
여기 위에 쟝쟝님은 강명씨 안 좋아한대요. 괜찮아요. 강명씨 책은 다 사는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0-11-1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애정하는 작가는 아이지만
그럭저럭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원픽이 아닌지라 다른 책
들에 여전히 주력하고 있지만요.

그냥 시간이 나면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단발머리 2020-11-15 16:10   좋아요 0 | URL
전 장강명을 애정하는 관계로다가 레삭매냐님이 장강명을 좋아하시면 좋겠네요.

시간 나시면 함 도전해 주세요^^ 전 <표백>과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을 좋아합니다.

레삭매냐 2020-11-15 17:38   좋아요 0 | URL
장강명의 뭔 책을 읽었나 검색해
보니... 무려 5권이나 읽었네요.
생각보다 많이 읽었네요.

<표백>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그리고 <산 자들>.

<산 자들>은 읽고 나서 팔았나 봅니다...

D일보 기자 출신이라는 그의 원죄(?)
때문인지 왠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머언~
작가라는 느낌이...

궁금하기는 한데... 손에 닿지 않으면
아무래도 ㅋㅋ 얻어 걸리면 읽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0-11-15 17:44   좋아요 0 | URL
우아아아아아!! 정말 많이 읽으셨는데요. 무려 5권이나 읽으셨군요.
전 <산 자들>이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찾아봐야겠어요.
최근에 바깥 활동이 많기는 했는데 소설 쓰는데 힘을 쓰고 싶은 듯 보였어요.
새로운 소설로 만나게 되기를 전, 기다리고 있습니다. 레삭매냐님께도 얻어 걸리는 일이 있어야 할텐데요 ㅎㅎㅎㅎㅎㅎㅎ

moonnight 2020-11-1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장강명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어요. 단발머리님께서 말씀하신 <표백>부터 시작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0-11-15 17:33   좋아요 0 | URL
<표백>이 데뷔작인데 전 그 강렬함이 좋더라구요. 에세이 <한국이 싫어서>랑 <5년만의 신혼여행>도 좋구요.
글쓰기 관련한 에세이도 곧 나온다고 하대요.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강명씨! 보고 있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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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의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의 손택이 박사학위를 받지 못 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손택이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대학 세계에 속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147) 논문을 마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고, 박사학위를 받으려 계획까지 세웠지만, 결국 손택은 박사학위를 받는데 실패했다. 나중에 제안 받은 수많은 강사 직, 명예 박사학위, 교수 직도 대부분 거절했고, 진짜 박사학위를 너무 존중하기에 명예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그의 에세이적인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가 기본적으로 상반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박사학위나 대학교수의 직함보다 훨씬 더 강렬한 아우라가 그에게는 있었다. 1963년 가을, 손택의 출판인은 소설 『은인』의 뒷표지 전면에 케네스 버크와 한나 아렌트의 찬사에 가까운 소개말 대신 스물 아홉이었던 손택의 사진을 실어 출간했다. 흑백 사진은 해리 헤스가 찍었는데, 멋스럽게 자른 새카만 단발머리를 하고 현대적인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기막히게 호화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 여성을 담고 있었다(139). 니체를 말하는 하버드대 출신의 31세의 여성. 미모의 여성. 지성미를 발산하는 손택은 그렇게 유력 신문사의 후광에 힘입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저자는 이를 지적인 주체와 대상화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의 공생이라고 평한다.(139) 평생 동안 손택은 그런 대중적 관심의 중심에 있었고,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위해 그런 평판과 명성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명성이란 결국 인정의 문제다. 인정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그런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을 때에만 나는 비로소 그런 사람이 된다. 박사 학위조차 갖지 못한 손택이 가부장적이고 비평과 비난이 공존하는 주류 예술 문화의 중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작가로서의 그녀의 천재적 역량과 지적이면서도 독보적인 그녀만의 매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수많은 평론가들과 매스미디어, 대중의 호의와 적의를 오가는 절대적이고 폭발적인 관심이 존재했다.

 


이미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NBC에서 가진 에드윈 뉴먼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예술가에게든, 언론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굉장히 파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제나 골칫거리죠. 그게 긍정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관심의 정도라는 걸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하니까요. 자기 작업을 외부인의 시선에 비추어 생각하기 시작하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인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죠. (…) 그러면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237)

 


이 두 가지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실제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가 내면의 어떤 점에 대해 환호하고 열광하지만, 다음 순간 예술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점점 예술가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할 테고, 결국 사람들은 그를 외면한다. 대중적 관심은 곧 영향력이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실제로 중요한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손택은 어떻게 했을까.

 


많은 선배 작가처럼, 손택도 문학을 향한 첫 번째 시도로 일기를 꾸준히 썼다. “게으름 외에는 그 무엇도 내가 작가가 되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 글쓰기가 왜 중요할까? 그 주된 이유는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갖고 싶을 뿐, 꼭 써야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안 될 건 또 뭔가? 자존감을 약간만 쌓으면 이 일기가 기정사실화하듯 꼭 써야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02)

 



결국에는 내 안에 사람들에게 전해 줄 만한 무언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무언가가 있는가의 문제인데, 손택은 그것을 이렇게 해결한다. 자존감을 쌓음으로써, 꼭 써야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그리고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얻음으로써.


 

손택은 그렇게 존재했다. 알려진 게 아니라 선포된 채로.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손택의 절대적이고 냉혹한 분노는 흔히 인용되는 서양문화 전반을 향한 비판에서 절정을 맞는다. "진실은 모차르트, 파스칼, 불 대수, 셰익스피어, 의회정치, 바로크양식 교회, 뉴턴, 여성해방, 칸트, 마르크스, 발란친의 발레가 이 특정 문명이 세계에 초래한 것을 속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인들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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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6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6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6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16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단발머리가 아니다. 나는 곱슬머리다. 그냥 곱슬머리가 아니라, 숱이 많고 머리카락이 굵고 두꺼운 초강력 곱슬머리다. 내 머리카락 만지다가 놀라는 미용사들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이 세상에 매직 스트레이트 펌’(일명 매직)이라는 게 등장했다. , 매직이란 얼마나 놀라운 단어인가. 나는 학교 미용실에서 그 신기하다는 매직을 했는데, 내려가는 길에 만난 친구, 대학생활 4년 동안 수업과 점심을 함께했던 친구가 나를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는 놀란 눈으로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중얼거렸다. “, 취직, 되겠다.”

 


나는 워낙 초강력 악성 곱슬이어서 원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없다. 안 되는 스타일이 너무 많고, 불가능에 가까운 스타일이 더 많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매일 매일 머리를 감은 후에 송혜교가 광고했던 분홍색 드라이어를 사용해 만져주면 되는데, 그건 너무 비싸고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못 할 일이다. ‘단발머리라는 닉네임을 쓰면서 실제로 내가 찰랑찰랑한 단발, 상큼한 단발, 예쁜 단발, 고준희 단발을 할 수 없는 이유다.

 




 


현재의 스타일은 나름 내 머리카락에 최적화된 형태인데, 먼저는 머리카락을 매직으로 직모처럼(보통의 머리카락처럼) 보이도록 쭉쭉 펴고, 아래부분에 굵은 웨이브를 넣어주는 거다. 일년에 두 번 미용실에 간다. 보통은 4, 10월 이렇게 가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6월에 미용실에 다녀왔고, 그리고 화요일에 미용실에 갔다.

 


꺼내 주신 가운을 입고 가방에서 핸드폰과 『책, 이게 뭐라고』를 꺼냈는데, 원장님이 갑자기 물으신다. 혹시, 무슨 책 놓고 가지 않았어요? 책이요? 아니요. (저는 책 잃어버리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헤헤) 아니, 누가 책을 놓고 갔는데. 근데, 찾아가지를 않아요? , 그러니까 좀 됐는데. 그냥 책도 아니고 대여책이야. 대여책이요? 혹시 책 제목이 뭘까요? 무슨 무슨 충동? 뭐더라? 잠깐만요. 여기에, 아니 여기 있다. 뜨아아아아아아악!!! 어머, 이건!!!


 

내 책이다.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도서관에서 대출한 후 잃어버려 집을 홀딱 뒤집고, 도서관 3층을 샅샅이(내가)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해 도서관에 변상한 그 책이었다. 근데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책 잃어버리고 어디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정신 없는 이는 바로 나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용실에 와서 책 꺼내는 사람은 좀처럼 없는데, 책 꺼내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씀하셨다고. 그 책을 읽고 페이퍼를 썼던 게 2년 전이다. 일년에 두 번 미용실에 오니까 3회의 미용실 방문을 스쳐 지나고, 이제야 비로소 이 책은 내게로 돌아왔다.

 

파마약을 바르시면서 원장님이 물으신다. 근데, 그게 무슨 내용이에요? 읽어보지도 않았네. 책이 있어도 읽지를 않아, 하하하. , . 그 책은 그러니까, 푸른 수염 이야기 현대판인데요.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가 가난한 여자랑 결혼해서, 잘해 주는 척 하면서 결국에는 여자를 억압한다는 이야기에요. (‘죽인다는 이야기는 뺐다) , 푸른 수염 이야기는 뭐야? , 그러니까, 푸른 수염 이야기는 동화 같은 건데요

 


참 예쁜 목이야.” 진정으로 생각에 잠긴 듯 부드럽게 들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어린 식물의 줄기 같은 목.”


그가 내 뒷목에 키스할 때 그의 부드러운 수염이 스치는 것과 축축한 입술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걸친 의상 중에서 목걸이만 남겨야 했다. 그 날카로운 칼날이 내 드레스를 두 조각냈고 옷은 땅에 떨어졌다. 참수대의 틈새에서 자라는 작은 초록 이끼가 내가 온 세상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광경이 될 터였다.

그 무거운 칼이 휙 하는 소리. (66)

 



원장님께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하나. 아무튼 2년 만에 재회한 책을 꼭 끌어안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10센티 넘게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스타일이 똑같으니 몇 개월 전의 나로 돌아온 듯한 기분인데, 오전 내내 엄마를 기다린 온클 장인 아롱이는 푸들 아니냐며 격하게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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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단발머리님이 어마어마한 곱슬이라니,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일화를 읽으며, 아, 모든 것은 결국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가 어딘지 알고 찾아가는구나... 했어요.

단발머리 2020-11-06 14:31   좋아요 0 | URL
저는 극 강력 곱슬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밀이에요!!!
책을 다시 찾아서 너무 반갑기는 해요. 저는 모른 척 했는데, 그 책은 저를 찾아왔네요. 호호호

다락방 2020-11-06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그리고요 단발머리님.
제가 오늘 점심먹으면서 영화 [북 오브 러브]를 봤거든요. 여주인공이 탕웨이인데 긴 웨이브 머리에요. 그녀랑 채링크로스 84번지 책의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 받던 남자가 그녀를 만났을 때 ˝난 당신이 단발머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와, 너무 단발님 생각났어요! 단발님 우리 모임에서 만났을 때 멤버들이 단발머리님 머리가 심지어 제일 길다고 했었던, 바로 그 날이요! 아, 너무 좋아!! >.<

단발머리 2020-11-06 14:34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단발머리인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중학교 때 학칙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짧은 단발머리인 적이 있었죠. 전 3년 동안 버섯돌이와 바가지를 오갔습니다. 많이 어두웠죠. 그 때가 저의 흑역사이고, 중세이고, 암흑기네요. 제 머리가 좀 길기는 하지만, 일단 단발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기는 합니다. 긴 단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날이었죠. 좋은 시절이었어요. : )

얄라알라 2020-11-0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재밌어요. 읽다 계속 큭큭

단발머리 2020-11-06 21:51   좋아요 0 | URL
잠깐 작은 웃음이라도 전해드렸다면, 그것은 저만의 큰 기쁨입니다 ㅋㅋㅋㅋㅋㅋ

2020-11-06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0-11-06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극강렬곱슬이라니..... 더덕단에는 너무 양파 같은 이들이 많군요..... 오늘도 새로운 모습! 중고딩때 단발님 사진 보고싶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06 21:52   좋아요 0 | URL
저의 양파껍질 탈곡은 계속되오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큰 기쁨 필요하실 때 언제든 알려주세요. 와인 한 병의 위로와 기쁨을 제 중딩 사진으로 전해드리리!!

반유행열반인 2020-11-0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악성곱슬로서 머리 모양의 고충 공감되요. 미용실 가면 단발...안 해줘요. 파마...안 해줘요. 온리 매직만 해주네요. 그리고 저도 지금 책 이게 뭐라고 읽는 중이에요 ㅋㅋ여러 가지 겹치는 페이퍼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11-06 21:54   좋아요 1 | URL
단발 안 되고, 파마 안 되고, 네네... 저는 염색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ㅎㅎㅎㅎ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스타일을 원치않게 고수하게 되네요. 저도 지금 <책, 이게 뭐라고> 읽고 있어요. 장강명이랑 좋은 밤 되시어요!

stella.K 2020-11-06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곱슬인데. 새삼 반갑네요.
어렸을 땐 곱슬이 그렇게 싫었는데 나이들고보니 파마 안 해서 좋더군요.
저는 계절이 한 번씩 바뀔 때마다 한 번씩 가죠.
염색은 두 달에 한 번 정도하는데 그럼 머리가 그나마 좀 차분해져요.
저는 장도연 같은 커트 머리 해 보는 게 소원인데
다들 말리더군요. 관리 어렵다고. 아무래도 이번 생은 어렵지 싶어요.ㅠ

단발머리 2020-11-06 21:57   좋아요 1 | URL
오늘 곱슬 고백의 밤인가봐요. ㅎㅎㅎㅎㅎㅎ 제가 stella.K님 댓글로 추정하건대 단정한 곱슬이신거 같아요. 그래서 염색으로 차분해지시는 것 같아요. 그 점, 진심으로 매우 축하드립니다. 장도연 스타일도 너무 이쁘죠. 하지만 말리시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저는 이번에 미용실 갔을 때는, 짧게 치면 윤택 같아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ㅠㅠㅠ

퍼론 2020-11-0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악성곱슬에 새치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흰머리로 미용실 문제적 고객입니다

단발머리 2020-11-06 21:58   좋아요 0 | URL
전 초강력 악성 곱슬이지만 아직 흰머리의 기세가 그렇게 당당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문제적 고객이라 들어갈 때 나올 때 폴더 인사를 미용실 원장님께 올립니다. 왠지 모르게 화이팅!입니다!

2020-11-07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7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0-11-0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마가 금방풀리는 직모.. 왜 여기서 tmi??? ㅋㅋㅋ 2년만에 재회한 책의 인용부분 괜찮은데요? ㅎㅎㅎ 피로물든 방이라 ㅋㅋ 킵킵!

단발머리 2020-11-16 10:46   좋아요 0 | URL
제 방에서 직모는 질투의 대상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별히 쟝쟝님만 봐줍니다.
<피로 물든 방>의 첫번째 추천인이 마거릿 애트우드에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