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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평점 :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의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의 손택이 박사학위를 받지 못 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는 손택이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대학 세계에 속한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147쪽) 논문을 마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고, 박사학위를 받으려 계획까지 세웠지만, 결국 손택은 박사학위를 받는데 실패했다. 나중에 제안 받은 수많은 강사 직, 명예 박사학위, 교수 직도 대부분 거절했고, 진짜 박사학위를 너무 존중하기에 명예 박사학위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그의 에세이적인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가 기본적으로 상반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박사학위나 대학교수의 직함보다 훨씬 더 강렬한 아우라가 그에게는 있었다. 1963년 가을, 손택의 출판인은 소설 『은인』의 뒷표지 전면에 케네스 버크와 한나 아렌트의 찬사에 가까운 소개말 대신 스물 아홉이었던 손택의 사진을 실어 출간했다. 흑백 사진은 해리 헤스가 찍었는데, 멋스럽게 자른 새카만 단발머리를 하고 현대적인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기막히게 호화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 여성을 담고 있었다(139쪽). 니체를 말하는 하버드대 출신의 31세의 여성. 미모의 여성. 지성미를 발산하는 손택은 그렇게 유력 신문사의 후광에 힘입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저자는 이를 “지적인 주체와 대상화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의 공생’이라고 평한다.(139쪽) 평생 동안 손택은 그런 대중적 관심의 중심에 있었고,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위해 그런 평판과 명성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명성이란 결국 인정의 문제다. 인정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그런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을 때에만 나는 비로소 ‘그런 사람’이 된다. 박사 학위조차 갖지 못한 손택이 가부장적이고 비평과 비난이 공존하는 주류 예술 문화의 중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었던 건, 작가로서의 그녀의 천재적 역량과 지적이면서도 독보적인 그녀만의 매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수많은 평론가들과 매스미디어, 대중의 호의와 적의를 오가는 절대적이고 폭발적인 ‘관심’이 존재했다.
이미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NBC에서 가진 에드윈 뉴먼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예술가에게든, 언론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굉장히 파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제나 골칫거리죠. 그게 긍정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관심의 정도라는 걸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하니까요. 자기 작업을 외부인의 시선에 비추어 생각하기 시작하죠 –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 인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죠. (…) 그러면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237쪽)
이 두 가지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실제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가 내면의 어떤 점에 대해 환호하고 열광하지만, 다음 순간 예술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점점 예술가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할 테고, 결국 사람들은 그를 외면한다. 대중적 관심은 곧 영향력이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실제로 ‘중요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손택은 어떻게 했을까.
많은 선배 작가처럼, 손택도 문학을 향한 첫 번째 시도로 일기를 꾸준히 썼다. “게으름 외에는 그 무엇도 내가 작가가 되는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 글쓰기가 왜 중요할까? 그 주된 이유는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갖고 싶을 뿐, 꼭 써야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안 될 건 또 뭔가? 자존감을 약간만 쌓으면 – 이 일기가 기정사실화하듯 – 꼭 써야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02쪽)
결국에는 내 안에 사람들에게 전해 줄 만한 무언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무언가가 있는가의 문제인데, 손택은 그것을 이렇게 해결한다. 자존감을 쌓음으로써, 꼭 써야 할 말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그리고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얻음으로써.
손택은 그렇게 존재했다. 알려진 게 아니라 선포된 채로. 스스로의 힘으로. 혼자.
손택의 절대적이고 냉혹한 분노는 흔히 인용되는 서양문화 전반을 향한 비판에서 절정을 맞는다. "진실은 모차르트, 파스칼, 불 대수, 셰익스피어, 의회정치, 바로크양식 교회, 뉴턴, 여성해방, 칸트, 마르크스, 발란친의 발레가 이 특정 문명이 세계에 초래한 것을 속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인들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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