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8)

 


1976 69, 이삿짐을 정리하던 다나는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숲 속으로 떨어지고, 몇 분 뒤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뒤, 현기증과 함께 다나는 다시 과거로 끌려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다나는 자신이 무슨 이유로 과거로 끌려가게 됐는지 추측하다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조상 루퍼스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인종문제가 해결된 시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시대는 공개적으로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을 경우, 제지를 받게 된다. (미국의 백인경찰은 예외인 것 같아 보이지만...) 흑인 여성인 다나가 1815년을 산다고 할 때, 그녀는 노예로서만 존재한다. 자유민 흑인의 서류를 빼앗아 버리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이 일상적인 시대였다. 남자의 옷을 입고 백인처럼 말하는 똑똑한 흑인여성은 매순간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1970년대. 인종간의 결혼이나 동거가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존재한다. 다나를 그녀의 남편 케빈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1800년대와 흑인 여성 다나와 백인 남성 케빈이 함께하는 1970년대의 현실.


 














첩과 번식용 여자라는 역할은 노예제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골적인 성매매 형태로 발전했다가장 예쁘고 ‘백인에 가까운’ 노예를 뉴올리언스 시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용도로 팔았다이때 쓰인 무신경한 용어가 ‘팬시걸이었다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인-노예 관계의 도착 환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258)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의 역사를 고려하자면, 백인 파트너를 선택하는 흑인여성 개개인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흑인여성에게 이 고통스런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인 주인/노예 관계를 상기시키기에 흑인집단의 아픈 곳을 다시 헤집는 것이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282)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파농은 백인여성의 사랑을 갈구한다. 백인여성의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기에. 백인 여성의 사랑만이 그를 백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기에.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의 결합은 성공의 상징, 취향의 문제, 또는 사랑에 의한 선택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백인남성과 흑인여성의 결합은 오랜 노예제로 인한 흑인여성의 성적착취를 상기시킨다. 노예시장에서 성적인 용도로 판매되었던 팬시걸, 백인농장주가 아끼는 노예첩을 떠오르게 한다. 아픈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구속한다.

 


루피, 제발! 샘은 자기 동생들에게 글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야. 그게 다야!”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겨우 그에게서 잠시 몸을 떼어냈을 때 울고 있던 여자들 중 젊은 쪽이 나를 보았다.


이 창녀!” 여자는 빽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노예행렬에게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다가왔다. “이 쓸모 없는 검둥이 창녀야, 왜 우리 오빠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 거야!” (464)

 


내가 흑인여성이라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백인남성이라면. 내가 사랑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이 무식하거나 가난할 수 있다. 운전솜씨가 형편없거나 현재 무직 상태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보여지지 않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옆의 남자가 백인이라는 사실은 감출 수가 없다. 그의 하얀 피부를 숨길 수가 없다.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이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조차 내 옆의 남자와 나의 관계를 의심하고 추측한다. 어쩌면 평생을,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에 상관없이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심사대상이 된다. 단지 그들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그 피부색이 의미하는 무엇 때문에.

 


흑인여성과 백인남성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라면, 역시 노아를 빼 놓을 수 없겠다. 트레버 노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내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있을 때,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Born a Crime. 태어난 게 범죄. 사랑한 게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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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1-1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사두었다죠...................=.=; 읽고 싶어지는.

단발머리 2020-11-13 18:42   좋아요 0 | URL
금요일 밤이니까요. ㅎㅎㅎㅎㅎ 하시던 일 마치시고 야구와 맥주와 책의 꿀조합을 기대합니다.

수이 2020-11-1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은 독서에세이에서 나온 구절인데 유대인과 유대인 아닌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냐고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가슴팍에 별을 달았느냐 아니냐 그 차이밖에 없다고 그런데 그 노란 별로 모든 게 달라진다고_ 그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인간이란 대체 언제까지 어리석어야만 하는 걸까요. 앗 저 [태어난 게 범죄] 막 왔는데 읽어볼래요!!

단발머리 2020-11-13 18:51   좋아요 0 | URL
수연님 댓글 읽으니까 닥터수스의 <Sneetches>가 생각나는데요. 아이들 동화에서 이 주제를 다뤄요. 스니치 마을에서 가슴팍에 작은 별을 단 스니치들이 있는데 (하필 별.....) 그 스니치들이 별 없는 스니치들을 무시해요. 맥빈이라는 장사꾼이 나타나 별 없는 스니치들에게 3달러 받고 별 달아주는 사업을 벌이니까, 원래 별 있던 스니치들이 실망해요. 맥빈이 다가가서 3달러 내면 별 떼어준다고 그래요. 저쪽이랑 달라 보여야 되니까요. 그래서 이 쪽에서 별달고 저쪽에서 별 떼고 달고 떼고 달고 떼고. 맥핀은 부자가 되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이를 만들어내서 결국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살펴봐야할 거 같아요.

노아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