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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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일본의 연예인 하루카 요코가 도쿄대 우에노 지즈코 교수에게 페미니즘 수업을 들으면서 보고 배운 일들을 엮은 책이다일본 방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여러 명의 패널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논쟁하는 ‘토크쇼’ 형식인 듯하다여성 혐오적인 발언조차 남녀 개인의 ‘의견’  하나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본 연예계에서그녀는 논쟁을 이기는 ‘기술 배우기 위해 우에노 지즈코 교수에게 찾아간다. 




첫번째 감동 포인트는 우에노 지즈코 교수일본 최고의 페미니즘사회학 연구가인 우에노 교수에게 배우기 위해 도쿄대에 가기로 선택한 왕복 6시간의 고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최고에게 배우겠다그것을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겠다이게 바로 감동 포인트 1번이다. 



두번째 감동 포인트는 우에노 지즈코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임무를 찾아냈다는 페미니즘의 선두에 서서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달리는 우에노 지즈코(277). 전문적이되 일상과의 괴리를 피할  없는 우에노만의 위치가 분명 존재하듯그녀가 사용한 숱한 말들을 어떻게  것인가는 자신의 임무자신이  일임을 자각했다는 우에노에게는 우에노의 일을 맡기고나머지는 나의 문제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여기가 감동 포인트 2 지점이다. 




마지막 감동 포인트는 역시나 공부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글을 읽는다는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의 상황이 우리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그녀의 이런 표현 때문이다. 





히라가나가 거의 없는 단어는 내게 중국어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웃음 나올 만한 부분이 없으니 읽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나는 주변에서 흔히   있는 책들이 얼마나 일반 독자 중심으로 쓰였는지그와 동시에 논문이 얼마나 연구자의 문제의식 중심으로 쓰여 있는지를 깨달았다. (41) 





일반 독자이며 평소에 논문 읽는 일이 없는 한국인이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일본의 일반 독자의 경우 한자어 때문에 논문  연구자들의 글을 읽는 일이 우리보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이를 ‘다른 일본어라고 표현한다자신과 타자의 관계성을 질문하고 답할 때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많은 어휘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1 동안   2년치 문헌까지 포함해서 3년치 문헌을 한꺼번에 읽었다 상자 분량이다. 


 읽었다어디서든 읽었다스키를 타러 가서도 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었고친구와  때도 틈이 나면 읽었고신칸센으로 이동하는 왕복 여섯 시간 동안 읽었다한번은 신칸센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맥주를 마시고 도시락을 먹고 잠깐 자기도 하다가도착한 뒤에도 계속 책을 읽는 나를 보더니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그렇게 공부해야 텔레비전에 나올  있는 거요?”

어쨌든 나는 매일 읽었다. (63) 






공부를 하다 보면 일본어로  논문  아니라 영어 논문도 읽어야 한다그녀는 계속해서 읽는다. 1, 2 그리고 3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있는 일이다공부하는  모든 열정을 쏟아야만   있는 일이다그런데 그녀는 간사이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낮에는 강의를 듣고밤에는 토론을 하고밤새워 논문을 읽으면서 그렇게 3년을 버텼다물론 나중에는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자기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말할  있게 됐다세상을 향해다른 사람들을 향해. 

  



제목 < 읽었다>  가지를 포함한다하루카 요코의 열정을 보여주는 서술이고게으른 나의 희망을 표현하는 서술이다. 

 읽었다. 늘, 읽었다.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숱한 말을 탄생시켰다. 그 말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 문제이며 각자의 과제다.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조건적인 기대야말로 ‘여자다움‘ 의 구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에게 욕을 퍼붓는 배경에는 결혼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수동적이기를 고집하는 마음이 있다. 모든 걸 다 페미니즘에 기댈 게 아니라 자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는 각자 자기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말로표현해서 이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건가?

자기는 자기에 대한 언설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 앞의 책

자기를 가시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하기를 포기해도 말로 사고한다. 감정도 말로 지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구축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76)

물론 우에노 지즈코의 책은 전문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과 ‘일상‘ 사이에는 괴리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소외감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의 선두에 서서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달려왔다. 무엇을 더 바라야 할까?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손을 잡아 달라는 걸까? 나는 말을 모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르쳐 달라는 걸까?

우에노 지즈코는 우에노 지즈코 자신의 의지로 달리고 있다. 나머지는 우리 문제다. 우에노 지즈코에게 거리를 느낀다면 따라잡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에노 지즈코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옳다고 믿는 곳으로 스스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호소하고, 외치고, 매도하기에 앞서 여기까지 길을 개척해 온 과거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기려고 한 것들을 배우고,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과 그 원통함까지 이어 가길 바란다. (277)

사람은 겸허해지지 않고서는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길을 먼저 걸은 이에 대한 감사와 그들이 남긴 원통함이 나를 분노하게 하고, 공진하게 하고, 공부하기를 촉구한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사용하려고 한다.

나를 위해, 내가 달린다. 그 모습을 보고 좇아와 줄 사람이 있을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만으로도 바쁜 연예인이니까, 하고 잘라 말하는 내가 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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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5: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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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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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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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6: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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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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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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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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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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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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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0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읽읍시다, 단발머리님. 늘 읽는 것만이 답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의 저자처럼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아 대학원을 포기하는 게 맞다 싶어요. 남들 한 번 읽을 때 세 번 읽고 자정부터 새벽 여섯시까지 커피 들이부으며 공부하고.. 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열정이죠! 전.. 전.. 그렇게 못할겁니다 단발머리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지금이 최선이라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저 읽기만, 늘 읽기만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19-12-10 16:09   좋아요 1 | URL
저같은 경우, 늘 읽었다,라고 말하기는 많이 부끄러운 삶이죠. 그래도 다시 한 번, 늘 읽었다,를 추구하려 합니다.

이 책 저자는 사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랬잖아요. 초인적인 힘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무일도 안 하고 공부만 해도 어려울텐데. 그것도 한참 젊을 떄 말이죠. 저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우리, 꾸준히 같이 읽자구요!!!

공쟝쟝 2019-12-1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 저도 요즘 단발머리님이 추천하신 책 (공부하는 여자) 읽는데, 요 책도 나오더라구요... 어쩐지 반갑..*

단발머리 2019-12-11 08:54   좋아요 1 | URL
오오~~ 미네님의 <여자-공부하는 여자> 읽고 계시군요. 그 소식 진짜 반가운 소식이네요.
혹시 소문 들으셨나 몰라요~~ 제가 <제2의 성>을 다 읽었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12-11 21:35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런 애잔하고 기쁜 소식이!! 근데 비연님은??ㅋㅋㅋㅋ (전 열심히 일하며 오만원 버는 중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12-12 08:58   좋아요 0 | URL
기쁜 소식이죠! 이번달에 크리스마스가 있는것도 우연이 아니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앗! 어제오늘 댓글 주고 받았는데, 비연님께 정확히 자랑을 못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분도 아실거예요. 이제 20여일 남았다는 것을요!
 
파란 2 -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 2
정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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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승하하기 보름 전인 1800 6 12. 정조는 갑작스레 다산의 집으로 서리를 보내 내각에서 간행한한서전』  다섯 부에 제목을 쓰라고 명한다. 





당시 정조가 내린 말은 이랬다. 


오래 서로 보았구나. 책을 엮을 일이 있을 게다. 즉시 들어오게 해야 하겠지만 주자소가 벽을 새로 발라 지저분한 상태다. 월말쯤 들어오거든 경연에 나오너라.” (319) 




정조가 분에 넘치게 다산을 아꼈는가, 다산이 사랑받을 만했는가를 굳이 밝혀보자 한다면, 다산이 사랑받을 만했다,  표를 던지고 싶다. 임금 마음대로만 정치할 없는 시대에, 평생 계속되었던 다산에 대한 탄원과 상소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한결같이 다산을 아꼈다. 특별히 아끼고 사랑해 모든 사람들이 정도였다. 공인된 애정에 부응하듯 다산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모두 기대 이상으로 처리했다. 다산의 보고를 받을 때마다 정조는 크게 기뻐했다. 



필생의 염원인 수원 화성을 준비하면서 정조가 내려준기기도설』 참고해 기중기를 설계하고, 공사에 필요한 유형거 등의 제작 도면을 제작 단가까지 적어 보고서를 올렸다(102).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레 부위의 목재를 어떤 나무로 것인지 조차 조사했고, 합리적 인건비 지급 방법까지 보고서에 세세하게 적었다. 정조의 뜻을 알고 금정찰방 시절에 지도자급 천주교인을 여러 검거했고, 봉곡사에서는 학술 세미나를 열어 성호 이익의 저술을 정리해 유학자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했다.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했고, 좌천되어 발령받은 황해도 곡산에서도 확실한 일처리로 곡산 근방 백성들의 인심을 크게 얻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다산의 세상은 그대로 암흑 천지가 되고 말았다. 




1822, 회갑을 맞은 다산은 광중본 <자찬묘지명> 끝에 다음과 같은 명을 실었다. 










하주지총, 임금에게 입은 은총과 하천지총, 하늘에서 받은 사랑. 저자는 이것이 다산의 하늘이었던 정조와 은총과 천주의 사랑이라 보았다. 




23세의 나이로 처음 이벽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이듬해인 1785 명례방에서 천주교 집회를 갖던 추조에 적발되었을 , 다산은 자리에 있었다. 이벽과는 사돈 간이고, 조선 영세자인 이승훈은 친누이의 남편이었다. 1787 정미반회사건은 다산이 직접 당사자였고, 가성직제도하에서는 10인의 신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1인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89 북경에 보낸 이승훈의 편지도 이승훈은 다산이 것이라 주장했다.(374) 1801 책롱 사건을 일으킨 정약종이 친형이고, 황사영 백서 사건의 황사영은 다산의 조카사위였다. 조선을 휩쓴 피바람 속에 다산과 그의 정약전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배교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여러 그것이 다산의 진심이었을까 의심한다. 책을 마친 지금은 나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다산만 아는 일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다산의 배교가 진심이었는지  없는 일이다. 




기독교인이라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산다. 예수님께도 죄송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기독교와 가장 가깝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멀리 있는 천주교의 일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땅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나라에서 들려온 희한한 이야기에 어떻게 마음이 동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며, 어떤 용기로 자신의 삶을 모두 던지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계 교회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없는 서적을 통한 회심, 자생적인 신앙 운동에 크게 감동했다. 



파란. 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가지 어려움이나 시련. 다산의 삶과 한국 교회. 이름을 지었다. 파란이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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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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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탔다. 고등학생 명이 앞에 섰다. 같이 노래방을 가는 길이다. 노래를 오래오래 부르자고 이야기한다. 이젠 뻔히 아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초등학생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을 제일 많이 애들은 중학생이고, 제일 잘하는 애들은 고등학생이다. 앞의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이다. 바로 앞에 있는 아이는 왼쪽 귀에 귀찌를 4 했다. 오른쪽 귀에도 귀찌 4. 옆에 아이는 귀찌 4, 구멍은 3.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귀찌를 했다. 맞은편의 아이는 개만 했다. 형태의 달라붙는 귀찌를 했다. 이런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의 외모를 단속하는 강력한 힘은 학교에서 내려오는 꾸밈 금지 규칙이 아니라 또래와 미디어로부터 형성되는 꾸밈 압박이기 때문이다. (110)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같은 중학교를 다니는데, 큰아이가 다닐 때만 해도 아이들은 피부화장에 틴트 정도를 기본으로 생각했다. 검사가 집중되는 주간에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피해 도망다니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물론 벌점 대상이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이루어진 학생 용모와 복장에 대한 설문 조사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학부모와 교직원은 마음이었으나, 학생들은 일치단결하여 색조화장을 포함한 전면적인 화장 허용과 갈색계통의 염색 허용, 체육복 등교 등의 쾌거를 이룩해냈다. 체육복 등교는 언제나 환영이다. 학교에 가는데 정장에 가깝게 디자인된 교복을 입을 필요가 어디 있나. 하지만, 체육복 입고서도 퍼펙트 신부 메이크업으로 하교하는 환한 얼굴의 중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 없다. 




탈코르셋이 페미니즘 확산의 가장 효과적인 운동이 되리라는 동의한다. 전쟁은 항상 여성의 위에서 일어난다. 정결하지 않은 , 혐오스러운 몸의 대상은 여성의 몸이었다. 임신과 출산이 강제되는 것도 여성의 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임신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여성몸의 소유권이 남성에게 있어왔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전시강간은 일부 군인들의 탈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장려되는 효과적인 전쟁 시나리오 중의 하나였으며, 강간은 여성을 움츠려 들게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이별을 선언하는 여성은너와의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 나체 사진을 유포시키겠다라는 협박에 수도 없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며, 다이어트, 성형, 미용, 화장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모든 전쟁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여성의 몸이다. 탈코르셋은 여성의 위에서 이루어진다. 



탈코르셋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선택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아닌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너무 소극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외모를 포함해 아름다운 외연의 추구가 인간만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의무가 의무가 아니기 위해서는 이상 기본값이 기본값이 아니어야만 한다. 각자의 원판 위에 선택지를 하나 추가한다 해도 디딘 판을 교체하기 전까지 의무는 선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이 사회로부터 언제 자신에게 부여되었는지도 모르는 의무를 수행해 다시금 값을 공고히 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설정된 기본값은 사회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시작은 꾸밈의 중지이다. 일상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꾸밈의 중지가 사회운동이 되는 까닭이다. 내가 꾸밈을 중지한 이후에 비로소 사회가 여성 개인에게 부여한 기본값을 인식하고 그것의 재조정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듯,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얼굴에 부여된 기본값의 사회적 재조정을 꾀한다. (43)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서 탈코르셋 운동은 코르셋을 벗어버리는 있다. 서양 여성 복식의 일부로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내장을 파열시켰던 도구인 코르셋(119)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의 몸에 강요되었던 모든 종류의 고통을 거부한. 주머니가 없는 인형옷 같은 여성복, 길이도 밑위도 짧은 불편한 여성용 바지, 청순한 여성의 필수아이템 머리카락, 죽을 같은 고통을 매번 선사할 뿐만 아니라 기형적 변형을 일으키는 하이힐, 건강에 치명적인 마스카라, 안구건조증을 유발하는 렌즈 착용,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살인적 다이어트. 



페미니즘 담론 중에 어느 것이 쉬울까마는, 외부의 실천을 표방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쉽지 않다. 탈코르셋을 타인의 외형은 그것만으로도 여성들의 외모/꾸밈 강박을 직면시킨다.(228) 탈코르셋 하지 않은 사람은, 탈코르셋 사람을 보고의지를 가지고 꾸미지 않기로 선택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스스로의 용기 없음을 알아차린다. 



가부장제의 존속을 가능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낭만적 이성애에 기반한 결혼과 가정이다. 이성애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구분/구별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각종 꾸밈이다. 여성임을 드러내는 몸가짐, 외양, 말투. 견고한 성을 부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무기가 탈코르셋이다. 





나의 인지부조화는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는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어가면서 했던 고민들이 다시 뿌옇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혼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있을까. 크리스찬이어도 페미니스트일 있을까. 사회적으로 고용되어 급여 받는 일을 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있을까. 



답을 찾을 없었던 숱한 고민의 밤에 더해, 다른 물음이 내게 묻는다. 탈코르셋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있을까. 







탈코르셋 운동이 문제에 맞서 직접 행동하자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기조를 이어받은 운동이라는 점은 이부분에서 특히 시사적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안기는 고통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신의 마음밖에 없어 마음먹기를 달리함으로써 문제를 받아들이던 여성은2015년 이후 기존의 접근을 버리고 직접 행동을 취했다. 이와 같은 행동주의는 규범적 여성성에 대해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접근 대신 탈코르셋이라는 외부의 실천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강박증 치료에는 행동치료가 쓰이고 있다. 지속적 행동으로 일어나는문제는 행동으로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강박증 치료에서는강박행동을 다르게 생각하는 대신 강박행동을 참는 반응예방법과 두려움을 직면하는 노출치료의 결합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6쪽)

탈코르셋이 치료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의 기조로 일어난 행동주의가 여성 개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치료하는 데 가장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설명될 수 있는 까닭이다. 혜민은 두려움을 직면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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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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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과거의 기억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의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을 ,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있을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는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믿을 없었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없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의 정점은 민족 전체를 전멸시키기 위한 계획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데 있다. 유대인들을 향한 감정적 증오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했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유대인이라면 명도 남김 없이 모두 죽어야 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유대인을 화로 속에 넣어야 했던 것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위 종족인 유대인, 인간 이하인 유대인들이 모든 굴욕에 굴복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에서조차. 반면, 모든 SS 일상적인 임무로 기꺼이 학살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입증된다. … 사실 특수부대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배 민족인 우리는 너희들의 파괴자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원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너희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 것처럼.” (61) 





인간이 인간에게 모욕을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독일인들은 포로들에게 시험했다. 되는 대로 혹은 아무렇게나, 아니라, 최대한의 모욕을 주기 위해, 죽되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가능한 모든 조처를 다했다. 수용소에 처음 도착한 포로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급격하게 바뀐 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했다. 반항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들만이, 내일을 위해 빵을 숨겨둘 계략을 가진 자만이 지옥 같은 생활을 감당할 있었다. 



책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대우하는 처참한 방법들과 인종주의에 근거한 잔인함, 독일 민족 특유의 완벽성에 대해 보여주지만, 프레모 레비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상이다. 생존자로서, 프레모 레비는 자신이 어떻게살아남았는지 돌아본다.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구조된 자들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97) 





그는 진정한 증언을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한다. 살아야 사람이 죽었고, 죽어야 사람이 남았다고. 나은 사람이 죽었고, 못한 사람이 남겨졌다고. 이로 인한 철저한 죄책감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수용소에서 해방된 40여년이 지난 시간에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그의 당부는 개인적인 증오의 범위를 넘어선다. 해방 재판에 넘겨진 범죄자들의 변명, 어쩔 없었다는 그들의 변명은 온당한 것인가. 독일은, 독일 민족은 어쩌면 그토록 방향으로 미친 폭주를 계속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마찬가지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독일 국민들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때문에, 근시안적 타산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애초에 히틀러 대장의아름다운 말들 받아들였다. 히틀러에게 행운이 따른 동안에 그를 추종했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를 지지했다. 그러다 히틀러의 파멸이 그들을 휩쓸어버렸고, 그들은 죽음과 비참함, 회환으로 괴로워하다가 부도덕한 정치놀음의 결과로 재활했다. 바로 그런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것이다. (252) 





나는 주로 식탁에서 읽고 쓴다. 커피를 타서 옆에 놓고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 책장을 넘겨 이제 책을 읽었다. , 괜찮네. 좋은 지적 자극이 됐어, 라고 말하며 잊어버리기엔 책은 너무나도 무거운 질문을 남겨준다.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가.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긍정할 있는가. 살아남은 자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어간 자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있는가. 역사의 실수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있는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있는가. 우리는,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내가 속한 거대한 집단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갈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도대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는 누구든지 감히 심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추론적 실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수개월을, 수년을 게토에서 만성적 배고픔과 피로, 혼잡한 난리통과 굴욕감에 시달렸다고 상상해보라. 자신의 주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소식을 받거나 보내지도 못한 채 세상에서 잘려져 나갔다고 상상해보라. 결국에는 화물열차의 객차마다 80명, 100명씩 실려 무턱대고 미지의 곳으로 며칠 밤낮을 잠도 못자고 여행한다고 상상해보라. (68쪽)

나치는 그 방면에서 대가였다. 이런 것들은 즉각적인 파기력을 가지며, 파괴시키기 전에 먼저 마비시킨다. 격리, 굴욕, 학대, 강제이주를 당하고, 가족 관계가 찢겨지고 세상과의 접촉이 단절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바로 이것이 게토나 임시집결수용소라는 지옥의 전 단계를 거쳐 아우슈비츠에 상륙한 포로들 대부분이 처한 상황이었다. (90쪽)

국가사회주의의 밑그림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일의 오랜 꿈인) 동방 진출, 노동운동의 탄압, 유럽 대륙에 대한 패권 장악, 히틀러가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동일시한 볼셰비즘과 유대교의 전멸, 영국, 미국과의 세계 권력 분할, 정신병자와 쓸데없는 군입들을 ‘스타르타식‘으로 제거함으로써 게르만족을 이상적으로 만드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서로 병존할 수 있었고, 이미 <나의 투쟁>Mein Kampf에 부인할 수 없이 명료하게 드러난 명제들, 즉 오만함과 급진주의, 교만과 철두철미, 광기가 아닌 거만한 논리 등과 같은 몇몇 소수의 명제들에 의해 추론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128쪽)

맨발에 벌거벗은 인간은 온몸의 신경과 힘줄이 잘려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는 속수무책인 먹잇감이다. 비록 배급받는 게 더러운 옷이라 해도, 밑창이 나무로 된 형편없는 신발이라 해도, 의복이란 보잘것없지만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다. 의복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렁이처럼 벌거벗고 느리고 비천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라도 짓이겨질 수 있다고 느낀다. (137쪽)

문신 작업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1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문신의 상징적 의미는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했다. 즉,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 표식이다, 이곳에서 너희들은 결코 나갈 수 없다, 이것은 도살된 운명인 짐승들과 노예들에게 찍히는 낙인이다, 너희들은 바로 그런 것이 되었다, 너희들은 더 이상 이름이 없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이름이다. 문신의 폭력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인 폭력이었고 순전한 모욕이었다.(144쪽)

우리가 받는 질문들 중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오히려 그 질문은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점점 더 집요하게, 비난의 어조를 점점 덜 감춘 채 표현되었다. 그것은 단일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질문들의 집합이다. 당신들은 왜 도망가지 않았나? 왜 저항하지 않았나? 왜 ‘사전에‘ 체포를 피하지 못했나? 이런 질문들은 빠지지 않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한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질문들이 더 주목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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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단발머리님 열심히 읽네요. 저는 이 책을 샀는지 안샀는지 모르겠지만 프리모 레비 책 집에 몇 권 있거든요. 네, 다른 책들처럼... 그냥 ..... 있어요......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지만 또.....

[주기율표] 그것만 읽었네요, 프리모 레비는...


오전에 제가 리뷰 쓴 [돌이킬 수 있는]은 거대한 싱크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거기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의 이야기거든요. 최근에 시몬 베유를 읽은 탓인지, 유대인 학살과 세월호.. 그 모두가 생각났어요.

단발머리 2019-10-04 11:35   좋아요 0 | URL
저는, <프리모 레비의 말>이랑 이 책, 이렇게 두 권 읽었는데요. <죽음의 수용소에서>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요.
살아 온 것이 자랑스럽고, 피해자이며 동시에 영웅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충분히 돕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부분에서,
이런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제게는 무척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쥐>를 읽고 나서 바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머리 속에 끔찍한 광경들이 가끔은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구요 ㅠㅠ

[돌이킬 수 있는]는 장르가 환상소설로 되어 있더라구요. 다락방님 리뷰 읽고 나니까 막 서둘러 읽고 싶어요.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제가^^

다락방 2019-10-04 11:37   좋아요 1 | URL
와 진짜 빠른 단발님.
저는 ‘내가 프리모 레비 읽었는데, 뭐였지?‘ 궁금해서 프리모 레비 넣고 검색했다가 제가 읽은 게 주기율표 라는 걸 알았고, 그러면서 오오, 이런 책이 있었군, 하면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장바구니에 넣었거든요. 제가 오늘 장바구니에 넣은 책을 단발머리님은 이미 읽으셨네요. 아, 진짜 겁나 멋져... 요즘 세상 최고 멋진 분이 단발머리님 이란거, 아세요? 그거 알고 사셔야 해요.

단발머리 2019-10-04 11:42   좋아요 1 | URL
에궁궁.... 아닙니다요~~ 프리모 레비 책 [주기율표], 정말 아름다운 책이잖아요.
프리모 책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그 훌륭한 책을 다락방님은 진작에 읽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프리모 레비의 책을 좋아하지만, [프리모 레비의 말]이라는 인터뷰집은 으흠.... 제겐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를 고려해 도서관에서 먼저 대여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요.

요즘 세상 최고 멋진 분은 다락방님이시고, 그 다음으로는.... 저 할까 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 방이라고 이거 정말, 너무 나대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4 11:45   좋아요 0 | URL
공동1위 어때요?

단발머리 2019-10-04 11: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손해인데, 나는 개이득이니까요.
그냥 나 몰라라 해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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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분노와 애정』 읽고 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적잖이 읽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수전 그리핀의 <페미니즘과 엄마됨> 읽으면서 다시 뜨거워진다. 짧지만 강렬하다. 



수전 그리핀의 글은싱글맘을 위한 신문 기고된 것으로 엄마됨에 관한 페미니스트 이론을 주제로 하고 있다. 끝없는 사랑으로 자녀를 보살피는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해 수전은 말한다. 아이와 엄마는 가난하다. 





여성이 필수품을 얻으려면 아이들의 아버지와 결혼해야만 하고, 아이 아버지에게 이들을 부양할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80) 





여성이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우려 , 아이와 여성은 비난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얻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사는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 가난 속에서 아이를 키울 , 가난한 여성이 아이를 혼자 키울 , 이들의 정신과 신체가 파괴되는 모습이 문학작품에서는 되풀이된다.(81)





엄마됨에 관한 페미니즘 분석에 걸맞는 다른 통찰은 아이의 이익을 가져와야 어머니의 희생이 아이를 파괴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자아를 희생하면 아이도 자아를 희생한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집어삼킨다. 엄마의 평가는 억압이 되고, 엄마의 보호는 지배가 된다. (83) 




정희진 『21세기에는 지켜야 자존심』에서노동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은 혹은 못한,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에서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구조 때문에 계급 고착화가 심화되었고, 강남 부동산 문제나 사교육 문제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226) 지적했다. 엄마의 희생이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엄마의 사랑으로 아이가 억압되는 구조. 서로의 희생으로 서로를 옥죄는 절망적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정답은 없다. 하나의 답을 강제해서도 된다.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때로 돌아가 퇴사하지 않고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겠냐 묻는다면. 아니. 때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꽃처럼 싱그럽고, 별처럼 빛나는 예쁜 아기를, 손으로 키우겠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래야만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고, 어머니의 사랑은 숭고하며,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이가 자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답해 주고 싶다. 그건 거짓말이다. 희생을 전제로 사랑은 포근할 없다. 자신을 버려서 얻게 힘으로 전하는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없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행복을 누려야만 진짜 사랑이다. 특정 시간만큼은 희생하지 않을 없겠지만, 기간을 최소화할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층에 4가구가 사는데, 바로 옆집의 아이가 둘째와 같은 중학교, 같은 학년이다. 옷을 챙겨준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섰더니, 엄마는 얼른 들어가시라, 벌컥 화를 낸다. 엄마가 챙겨주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런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싫어서. 얼른 안으로 들어서며 다시는 현관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현관문을 열고 학교 가는 둘째의 대견한 뒷모습을 바라보지 말아야지. 큰아이 방에 자꾸 들어가지 말아야지. 아이들이 사랑을 귀찮아할 만큼 매달리지 말아야지. 



그게 빅뱅과 같은 호르몬 대폭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일테니. 예전처럼 붙어있을 수는 없겠지. 지금은 이렇게 약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는 어쩌면 진짜 사랑일 수도. 응원하며 옆에 있어 주기. 약간 떨어져서. 현관문 밖에서는 애정을 자제하고.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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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에 따라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엄마가 마음을 나타내주기를 바라는 아이도 있고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아이 마음은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주면 좋을 텐데, 그걸 나타내지 못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아이 마음 알기 어렵겠습니다 자주 이야기 한다면 조금은 알지... 지금은 부모와 아이 사이가 예전하고 다르기도 하니 이야기도 자주 하겠지요 저는 거의 안 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제와서 부모한테 바라는 건 없지만... 그러면서도 제 마음은 조금 알았으면 하기도 하는군요

엄마가 즐겁게 살아야 아이도 그걸 느낄 거예요 엄마 자신이 희생했으니 아이한테도 그런 걸 바라면 안 되겠지요 이건 어떤 관계에서나 마찬가지군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주기...


희선

단발머리 2019-09-21 08:10   좋아요 0 | URL
아이에 따라 다르기는 한거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 손이 더 가기는 하죠.
제일 나쁜 경우는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랑 같이 있는 걸 힘들어하다가
아이가 또래그룹에 관심을 갖고 부모에게서 심정적으로 독립할 때, 그런 아이와 함께 있자며 아이방으로 돌진하는 경우죠.

아이 키우는 게 어렵죠. 아직도 어려워요. 아이 키우면서 부모가 더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감은빛 2019-09-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엄마를 아빠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큰 아이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아이 엄마가 버는 돈이 저보다 많았기 때문에,
제가 육아휴직(무급)을 받고 아이를 돌보고 아이 엄마는 일을 하러 다녔거든요.
휴직을 마치고 제가 복귀하면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종일반으로 보냈구요.
저처럼 일에 집중해야 할 아이 엄마를 존중해 퇴근후 아이를 데리러가는 일도,
주말에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외 온갖 잡다한 집안 일들도 모두 적절하게 나눠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아빠와도 시간을 보냈어요.
이 사실이 지금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합니다.

이제는 따로 살지만, 아이들이 엄마집과 아빠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도,
엄마에 비해 아빠는 학교 성적에 대해 상대적을 관대한 점(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도,
아이들과 동성인 엄마가 챙길 수 있는 여러 것들과 반대로 아빠만 챙길수 있는 어떤 것들도,
아이들에 대해서는 늘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또 한 편 신기합니다.

이 글에 아이들에 대한 단발머리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어 읽는 사람을 감동시켜요!

단발머리 2019-09-21 08:2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가정 이야기 읽다보니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 가정이 생각나네요. 그 집에서는 아이들이 아빠를 엄마라고 부른다 하더라구요. 감은빛님은 진짜 아이들 육아에 많이 참여하셨던 것 같아요. 여성이 일을 하는 경우에도 육아는 ‘당연히‘ 아내 차지가 되어 버리는데, 감은빛님은 진정한 공동육아 실천자세요^^

전, 아이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빠하고 가까운 사이였어도 아이들이 여자아이들라면 사춘기 때는 잠깐 소원한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에는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아빠하고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만 아이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 같지만, 전 부모도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거라 생각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시간이요.
전 댓글에서 감은빛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느낍니다. 저야말로 감동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