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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은 일본의 연예인 하루카 요코가 도쿄대 우에노 지즈코 교수에게 페미니즘 수업을 들으면서 보고 배운 일들을 엮은 책이다. 일본 방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여러 명의 패널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논쟁하는 ‘토크쇼’ 형식인 듯하다. 여성 혐오적인 발언조차 남녀 개인의 ‘의견’ 중 하나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본 연예계에서, 그녀는 논쟁을 이기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우에노 지즈코 교수에게 찾아간다.
첫번째 감동 포인트는 우에노 지즈코 교수. 일본 최고의 페미니즘, 사회학 연구가인 우에노 교수에게 배우기 위해 도쿄대에 가기로 선택한 것. 왕복 6시간의 고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최고에게 배우겠다. 그것을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겠다. 이게 바로 감동 포인트 1번이다.
두번째 감동 포인트는 우에노 지즈코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임무를 찾아냈다는 것. 페미니즘의 선두에 서서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달리는 우에노 지즈코(277쪽). 전문적이되 일상과의 괴리를 피할 수 없는 우에노만의 위치가 분명 존재하듯, 그녀가 사용한 숱한 말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자신의 임무, 자신이 할 일임을 자각했다는 것. 우에노에게는 우에노의 일을 맡기고, 나머지는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 여기가 감동 포인트 2 지점이다.
마지막 감동 포인트는 역시나 공부.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글을 읽는다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의 상황이 우리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녀의 이런 표현 때문이다.
히라가나가 거의 없는 단어는 내게 중국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웃음’이 나올 만한 부분이 없으니 읽는 데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이 얼마나 일반 독자 중심으로 쓰였는지, 그와 동시에 논문이 얼마나 연구자의 문제의식 중심으로 쓰여 있는지를 깨달았다. (41쪽)
일반 독자이며 평소에 논문 읽는 일이 없는 한국인이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일반 독자의 경우 한자어 때문에 논문 등 연구자들의 글을 읽는 일이 우리보다 조금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를 ‘다른 일본어’라고 표현한다. 자신과 타자의 관계성을 질문하고 답할 때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어휘, 더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첫1년 동안 그 전 2년치 문헌까지 포함해서 총3년치 문헌을 한꺼번에 읽었다. 세 상자 분량이다.
늘 읽었다. 어디서든 읽었다. 스키를 타러 가서도 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었고, 친구와 놀 때도 틈이 나면 읽었고, 신칸센으로 이동하는 왕복 여섯 시간 동안 읽었다. 한번은 신칸센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맥주를 마시고 도시락을 먹고 잠깐 자기도 하다가, 도착한 뒤에도 계속 책을 읽는 나를 보더니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그렇게 공부해야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는 거요?”
어쨌든 나는 매일 읽었다. (63쪽)
공부를 하다 보면 일본어로 된 논문 뿐 아니라 영어 논문도 읽어야 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읽는다. 1년, 2년 그리고 3년.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공부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간사이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토론을 하고, 밤새워 논문을 읽으면서 그렇게 3년을 버텼다. 물론 나중에는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자기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을 향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제목 <늘 읽었다>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하루카 요코의 열정을 보여주는 서술이고, 게으른 나의 희망을 표현하는 서술이다.
늘 읽었다. 늘, 읽었다.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숱한 말을 탄생시켰다. 그 말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우리 문제이며 각자의 과제다.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들이 조바심을 내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조건적인 기대야말로 ‘여자다움‘ 의 구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남편에게 욕을 퍼붓는 배경에는 결혼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수동적이기를 고집하는 마음이 있다. 모든 걸 다 페미니즘에 기댈 게 아니라 자신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기는 각자 자기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말로표현해서 이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건가?
자기는 자기에 대한 언설을 통해 구성되어 간다. - 앞의 책
자기를 가시화하지 않으면 페미니즘을 이용할 수 없다. 사람은 말하기를 포기해도 말로 사고한다. 감정도 말로 지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구축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76)
물론 우에노 지즈코의 책은 전문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과 ‘일상‘ 사이에는 괴리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소외감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에노 지즈코는 페미니즘의 선두에 서서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달려왔다. 무엇을 더 바라야 할까?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손을 잡아 달라는 걸까? 나는 말을 모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르쳐 달라는 걸까?
우에노 지즈코는 우에노 지즈코 자신의 의지로 달리고 있다. 나머지는 우리 문제다. 우에노 지즈코에게 거리를 느낀다면 따라잡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에노 지즈코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옳다고 믿는 곳으로 스스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호소하고, 외치고, 매도하기에 앞서 여기까지 길을 개척해 온 과거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남기려고 한 것들을 배우고,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과 그 원통함까지 이어 가길 바란다. (277)
사람은 겸허해지지 않고서는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길을 먼저 걸은 이에 대한 감사와 그들이 남긴 원통함이 나를 분노하게 하고, 공진하게 하고, 공부하기를 촉구한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사용하려고 한다.
나를 위해, 내가 달린다. 그 모습을 보고 좇아와 줄 사람이 있을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일만으로도 바쁜 연예인이니까, 하고 잘라 말하는 내가 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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