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우리 세대야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혼 후에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여자 사람이 많았던 때도 있었다. 나에게는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한계치가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에 ‘현모양처’에 대해서는 꿈꿀 시간이 없었다. 다행이다. 행복한 결혼식, 사람들의 환영 속에 손을 흔들며 떠나는 신혼 부부, 외국 항공권과 공항. 거기까지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상상해 보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콩깍지 상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갈등의 요소가 무수히 있다 하더라도 아무튼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 모든 갈등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다. 갈등의 폭발은 ‘아이’와 함께 온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다.
사랑과 결혼의 너머에서 아이를 만나리라는 것, 그리고 내 이름이 ‘** 엄마’로 바뀌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건, 그만큼 내가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무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알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25/pimg_7981871741442747.jpg)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25/pimg_7981871741442748.jpg)
나는 엄마지만,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도 있다. (66쪽)
작년에 아롱이 엄마 모임에 갔을 때다. 엄마들이 삼삼오오 반대표 아이네 집에 모였고,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저 쪽 끝에서부터 한 명씩 자신을 소개하는 걸 듣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56개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내 차례였다.
“아.... 네... 저는 ***이라고 합니다.”
순간 이 평범한 문장을 듣고 있던 56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크게 동요하는 걸 느꼈다. 나도 놀랐고 56개의 눈동자들도 놀랐다. 센스 있는 대표 엄마가 정리를 해 주었다.
“아~~ 그래. ** 엄마, 멋지다. 소개할 때 우리, 자기 이름도 말하자~”
다른 엄마들은 모두 자신을 “** 엄마”라고 소개하고 있었던 거다. 물론 학교 반모임이니까, 아이들 때문에 만난 것이니까, 그렇게 소개하는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잠시 정신을 놓고 딴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말해 버린 거다. “네, 저는 ***입니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도 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에 도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절망할 때가 많다. 동시에 ‘엄마’가 아닌 나를 의식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엄마’로서 괜찮은 건지 자꾸 묻게 된다. 이게 틀린 건 아닌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내가 가진 고민은 ‘마이코’의 것과 같다.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를 의식하고 있는 ‘마이코’의 고민 말이다.
수짱의 고민은 조금 다른데, 그의 고민 역시 ‘엄마’에 대한 것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25/pimg_7981871741442751.jpg)
‘엄마’가 되는 인생과 되지 않는 인생 (101쪽)
‘엄마’가 되지 않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는 스스로의 삶이 괜찮은 건지, 그런 자신이 왜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수짱은 생각하고 고민한다. 서둘러 답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수짱의 모습이, 마스다 미리의 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25/pimg_7981871741442752.jpg)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625/pimg_7981871741442753.jpg)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여전히 ‘나’라는 생각(128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속삭임이
자유를 준다.
편안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