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새벽 3시. 왜 이렇게 덥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이마에 손을 대보니 뜨겁다. 냉동고에서 아이스팩 하나를 꺼내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시원하니 좋았다. 하지만 손이 시렸다. 아이스팩을 내려놓으니, 이마가 문제. 시린 손으로 다시 아이스팩을 이마에 올려두었다.
이제 새벽 4시. 웬만큼 더워도, 온 세상이 열대야로 들끓어도 한 번도 깨지 않는 내가, 내 속에 가득한 열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앉았다가 모로 누웠다. 아이스팩을 이마에 대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새벽 4시. 주님께 드리는 새벽의 기도, 시편 42편.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하는데, 그날은 새벽에 기도를 했으니, 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양쪽으로 쭉 뻗는다. 그래봤자 110도. 북플에 들어가서는 이런 책을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책 소개, 책 속 문장을 읽게 된 거다.
“다 와서 좀 헤맸어요.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하는 내게 손님은 “이거 단건 배달 아닌가요? 어플로 보니까 박달동 갔다가 오신 것 같던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항의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 일 이후 나는 묶음 배달을 완전히 포기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치킨에 대한 순정으로, 피자에 대한 사랑으로, 수제버거에 대한 로망으로 배달이 오기만을 설레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 집만 가자. 그게 덜 위험하고, 나도 마음 편하다. 나는 고객의 ‘설렘’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 (「한 번에 한 집만」)
인문학 박사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입니다>에서 이미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당 강의료 3만 5천 원에, 신문과 잡지의 고료를 다 합해도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도 또 들어도 뜨헉! 이다.
위에 인용하지 않은 김밥과 떡만둣국 이야기도, 위에 인용한 '한 번에 한 집만' 이야기도, 배달이라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그 특별한 일상의 기록이 이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이 일들을 대신 해주는, 이 고마운 사람들을 하찮게 대한다. 툭하면 협박하고, 툭하면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고된 노동의 대가는 열두 시간 노동에 202,290원. 시집 50권 팔아서 40,240원 수입보다는 낫겠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위험도나 안정성을 고려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단지 "건강한 몸으로 길 위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작가의 말이 메아리친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뭉클해지는 마음.
그 새벽에는 그랬던 거 같다. 이렇게 열이 치솟고 (감기 걸려도 열 안 나는 타입), 온 몸이 두들겨맞은듯 아프고 휘몰아치는 기침 때문에 허리까지 울리는데도 나는 출근을 해야 하나. 물어보니 답은 '해야 한다' 였다. 나는 계약직에 더해 일용직이고, 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다. 몸을 일으켜 출근해서 '내 몸'을 직장에 갖다 놓아야했다. 어찌 되었든 일단 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출근하려는 나'를 기특히 여기려는 찰나에 내가 읽은 글이 이 책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였다. 다들 열심히 살았고 또 그렇게들 살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내 아픔과 고통이 덜하다는 뜻이 아니라(마이 아파요ㅠㅠ) 각자 어려움과 고통, 실망과 실패를 안고 또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서둘러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친구에게 퇴근의 맛(바람돌이님의 고견) 못지않은 출근의 힘에 대해 말했더니, 친구 왈, '뭔가 짠하지만 ㅜㅜ 세상에 단발님을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테니 저라도 어엿삐 ㅜㅜ 여겨.... 대신 건강주스를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것이다. 세상에 나를 짠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내 어려움과 고통이 작아서가 아니라, 각자 삶에 드리워진 고생과 고통과 어려움과 난관이 이처럼 다종다양한 것이니.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였고. 내일은 토요일이다.
퇴근의 맛은 일단 이따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