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일을 하게 된다면, 그건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일을 했지만, ‘사회적 고용 관계’에 있지 않은 내가 ‘가정’에서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무임금 노동, 그림자 노동이다. ‘일’이긴 ‘일’이되 ‘일’로써 분류되지 않는 ‘일’ 같지 않은 ‘일’이다.
작년 여름이던가. 권인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안착해서, 그 안에서 일을 하지 않고도 사회적 고용관계를 하지 않고도, 고용관계 속에서 일하지 않고도, 자기의 삶이 보장되는 식으로 가는 방식은 굉장히 근원적으로 (저는) 방해가 되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해요.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 19편: 페미니즘이 불편한 이유>
나는 속상했고, 서운했다. 그 다음 몇 개의 글과 댓글에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변주했다. 그런 식으로라도 내가 화났다는 걸 누구에게든 알리고 싶었다. 나는 사회의 소외 계층, 모든 경쟁과 정보에 뒤쳐진 전업주부 아닌가. 사회적 고용관계를 맺지 않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내게는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 자체가 부정된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이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하면서도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좋아하는 A님이 나를 말려 주셨다.
“권인숙 씨 발언이 어떤 시각에서 나온 줄은 알겠지만 마음 쓰지 마세요. 연대! la solidarite! 연대가 중요합니다.^^”
연대가 중요해요. 그녀가 말하는 연대의 범위와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내가 그 연대의 어느 부분에 속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한 건 아니었지만, A님이 나를 말려준 것이 내내 고마웠다.
알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발언이 어느 순간, 어느 때에든지 먹고 살 만한 ‘중산층 여성의 한가한 넋두리’쯤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4인 가족, 외벌이로 서울에 살고 있는 나는 ‘경제적 활동’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있다. 많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산다.)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주요해서 혹은 정확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일을 해야만 하는 대다수의 일하는 여성들에 비해 내가 놓인 상황은 ‘선택적’이다. 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 13년차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마스마 미리의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속 주인공의 고민은 정확히 나의 것과 맞닿아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
내 월급은 얼마 되지도 않을 거고, 집안일은 똑같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다.
그런대도 내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일을 하고 싶어 할까. 나는 왜 사회적 고용관계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할까. 다들 그래야한다고 하니 그러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많이 생각해야 할 테고, 또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작은 위로라고 한다면, ‘마스다 미리’. 그녀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과 깔끔하고 꾸밈없는 그림들을 통해서다. 답을 찾아가는 내 지루한 여정에 말동무가 생겼다. 다정하고 차분하고 그 와중에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친구, 그런 친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