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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의 연애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우리 세대야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혼 후에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여자 사람이 많았던 때도 있었다. 나에게는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한계치가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에 ‘현모양처’에 대해서는 꿈꿀 시간이 없었다. 다행이다. 행복한 결혼식, 사람들의 환영 속에 손을 흔들며 떠나는 신혼 부부, 외국 항공권과 공항. 거기까지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상상해 보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콩깍지 상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갈등의 요소가 무수히 있다 하더라도 아무튼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 모든 갈등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다. 갈등의 폭발은 ‘아이’와 함께 온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다.
사랑과 결혼의 너머에서 아이를 만나리라는 것, 그리고 내 이름이 ‘** 엄마’로 바뀌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건, 그만큼 내가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무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도 있다. (66쪽)
작년에 아롱이 엄마 모임에 갔을 때다. 엄마들이 삼삼오오 반대표 아이네 집에 모였고,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저 쪽 끝에서부터 한 명씩 자신을 소개하는 걸 듣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56개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내 차례였다.
“아.... 네... 저는 ***이라고 합니다.”
순간 이 평범한 문장을 듣고 있던 56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크게 동요하는 걸 느꼈다. 나도 놀랐고 56개의 눈동자들도 놀랐다. 센스 있는 대표 엄마가 정리를 해 주었다.
“아~~ 그래. ** 엄마, 멋지다. 소개할 때 우리, 자기 이름도 말하자~”
다른 엄마들은 모두 자신을 “** 엄마”라고 소개하고 있었던 거다. 물론 학교 반모임이니까, 아이들 때문에 만난 것이니까, 그렇게 소개하는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잠시 정신을 놓고 딴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말해 버린 거다. “네, 저는 ***입니다.”
나는 엄마지만,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도 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나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에 도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절망할 때가 많다. 동시에 ‘엄마’가 아닌 나를 의식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엄마’로서 괜찮은 건지 자꾸 묻게 된다. 이게 틀린 건 아닌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내가 가진 고민은 ‘마이코’의 것과 같다.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닌 나를 의식하고 있는 ‘마이코’의 고민 말이다.
수짱의 고민은 조금 다른데, 그의 고민 역시 ‘엄마’에 대한 것이다.
‘엄마’가 되는 인생과 되지 않는 인생 (101쪽)
‘엄마’가 되지 않는 인생이 될지도 모르는 스스로의 삶이 괜찮은 건지, 그런 자신이 왜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수짱은 생각하고 고민한다. 서둘러 답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 수짱의 모습이, 마스다 미리의 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여전히 ‘나’라는 생각(128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작은 속삭임이
자유를 준다.
편안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