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고, 자식은 안 이뻐도 이쁘다. 큰애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의젓해서 알록달록 깜찍한 옷이 안 어울렸는데, 둘째는 6학년이 된 지금도 아기 같다. 막내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아직도 멀쩡한 의자를 나두고 꼭 아빠 위에 앉으려 해 실랑이를 벌인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설명하다가 유발 하라리는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감정 하나만큼은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듯한데, 바로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감이다. … 포유류 새끼들은 어미와 유대감을 느끼고 어미와 가까이 있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야생에서 어미와 유대를 맺지 못한 새끼 돼지, 송아지, 강아지 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최근까지 인간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포유류 새끼들은 어미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므로, 어미의 사랑과 어미-새끼 간의 끈끈한 유대는 모든 포유류가 공유하는 특징임은 명백하다. (128)


이 부분을 읽고는 남편에게 말했다. 새끼를 낳은 후에 생긴다는 모성이 내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포유류 새끼가 어미에게 애착심을 느끼는 건 맞는 것 같다. (둘째를 가리키며) 쟤는 어미가 아니라 아빠에게 애착을 느끼는 것 같으니, 아직 새끼니까, 포유류 새끼니까,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해라.


그랬던 아이가, 요 며칠 친구네 집을 순례하길래, 내일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라고 하니, 주문이 여러가지다.


첫째, 아이들이 왔을 때 현관 쪽으로 나와 반갑게 맞이하지 말라는 거다. 우리 집은 사람이 들어오면, 그대로 멈추고 현관 쪽으로 나가, 들고 온 것을 받아주고, 뽀뽀하고, 안아주는 게 일상인데, 그걸 하지 말라는 거다. 친구들이 집에 들어오면 안쪽에 있다가, “그래, 너희들 왔니?”하고 인사하라는 거다. “어머~~~~~~!!!!!!!! 우리 아롱이 친구들 왔구나!!!! 어서 와, 어서 와!!” 이러지 말라는 거다.


둘째, 떡볶이는 매워야 된다는 거다. 친구네 집에서 먹은 떡볶이가 너무 매워 자기는 먹지도 못 했는데, 그래도 떡볶이는 매워야 된다는 놀라운 주장이다.


셋째, 자기 방의 장난감들을 어떻게 하냐는 고민이다. 우리 집에는 5세 어린이도 놀만한 장난감이 몇 개나 있는데, 이제서야, 6학년이 되어서야, 예비 중학생이 되어서야, 놀러간 친구들 방에는 침대와 책상, 의자 그리고 책만 있지 장난감이 없다는 걸 발견한 거다. 이 장난감들한숨을 한 번 쉬고는 학교로 향한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끝없이 요구하기에, 계속 도와줘야 하기에 힘들 때도 있다. 엄마, 아빠도 사람인지라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Time out!”을 외치고 싶다. 그랬는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그렇게 붙어 앉고, 끌어안고 엄마 품에, 아빠 품에 꽁꽁 쌓여있던 포유류 새끼가 이제 막 알게 된 거다. 집에서는 자기가 아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말이다. 친구들이 알면 안 되기에, 자기가 아기라는 걸 알면 안 되기에, 집에 들어왔을 때 너무 반갑게 맞이해서는 안 되고, 떡볶이는 매워야 하고, 방에는 장난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큰애가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할 때는 몰랐는데, 아기 같던 둘째가 이제 다 컸다며, 매운 떡볶이여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한편으로는 우습고, 한편으로는 기특하다.


우당탕 떡볶이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하랴 게임하랴 마냥 행복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학원 시간에 맞춰 서둘러 일어선다. 가방을 둘러매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혼자 남은 포유류 새끼를 본다. 이제 아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제법 커버린 내 새끼를 본다.


매운 떡볶이를 해 줄게. 매운 떡볶이, 아주 매운 떡볶이를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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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2-09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워......매운 떡뽂이래 ㅋㅋㅋ

무엇보다 제목 센스 좀 보소. ^-^b

단발머리 2018-02-10 08:52   좋아요 0 | URL
평소보다 맵게 만들었는데 맵다고 말한 아이는 한 명도 없더라구요. 안 매웠나봐요ㅠㅠ

제목 센스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배웠네요.
syo님, ^-^b

유부만두 2018-02-0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비슷해요, 우리집 막둥이도요!!!
불닭볶음면 먹으면서 얼마나 물을 마시는지요!

단발머리 2018-02-10 08:53   좋아요 0 | URL
저희는 불닭볶으면까지 진도 나가려면 아직도 멀었지요!
물+우유+아이스크림까지 대기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icaru 2018-02-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응!! 둘째들이란 !!

단발머리 2018-02-10 08:54   좋아요 0 | URL
으아~~~ 아직도 귀여워요^^
둘쨰들은 어째 집집마다 비슷하나가봐요~~~

psyche 2018-02-10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 귀여워라. 역시 막내는!
등치는 산만한 저희집 막내녀석도 집근처 아닌곳에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면서 집근처만 오면 옆에도 안선다지요.

단발머리 2018-02-10 08:57   좋아요 0 | URL
이렇게 둘째들이 다 비슷한 거는, 결국 개인보다는 환경의 역할 아닌가, 그런 생각이요.
저 같은 경우 그랬거든요.
좀 더러운 거 만질라치면 첫째한테는 막 달려들어서 빼앗고 안 된다고 했는데,
둘째는..... 뭐,,,, 그게 뭐니? 하고 천천히 묻고, 천천히 달려드는ㅋㅋㅋㅋㅋ
프시케님 막내는 이제 많이 컸군요. 그래도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닌다니
이게 부러운 저는 어쩔까요....

양철나무꾼 2018-02-10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가 원래 저렇게 귀여운가요?
전 하나 밖에 없는데,
그 하나마저 다 키워놔서리~^^

주변에 둘째를 보면 저희 남편의 경우를 보게 되면,
둘째는 고집불통이던데...

암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심하게 시샘폭발 댓글을 남겨봅니다~^^

단발머리 2018-02-10 10:11   좋아요 0 | URL
네네네, 고집불통 맞고요.
말이 안 통하고, 말을 안 듣고, 떼 쓰고, 난리칩니다.

근데, 그런데도 귀여워요.
둘째도 곧 커버리겠죠. 저보다 더 크겠다는 결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시샘폭발 댓글 감사해요~~^^

프레이야 2018-02-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둘째는 좀 그런 데가 있어요 ㅎㅎ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은 포유류 엄마입니다~

단발머리 2018-02-14 08:26   좋아요 0 | URL
이제 명절이라 느끼한 음식이 많을텐데요.
입가심은 매운 떡볶이로 해야할 듯해요.
즐건 설 되시길요, 프레이야님~~~~

보슬비 2018-02-11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넘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둘째들은 다 귀여운것같아요.^^
조카만봐도 둘째가 더 귀엽거든요.ㅎㅎ

단발머리 2018-02-14 08:27   좋아요 0 | URL
네, 이제 6학년 되는데 사실.... 아직도 귀여워요.
보슬비님 여행에 함께하는 조카는, 모델 포즈 조카는
첫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더 귀엽군요 ㅎㅎㅎㅎ

AgalmA 2018-02-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째가 있으면 둘째는 중간에 낀 미운 오리 새끼되는 이상한 포유류 인간 세계-_-)...
한국 사회 생활을 위해 매운 걸 좀 먹을 줄 알아야 되더군요ㅎ 스트레스 쌓여도 매운 걸 잘 못 먹으니 매운 거 먹다 더 스트레스ㅋㅋ;;

단발머리 2018-02-14 08:29   좋아요 0 | URL
AgalmA님 어쩜 이렇게 정확한 지적을~~~ 맞아요, 셋 있는 집의 둘째에게는 또 다른 역사와 사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커버렸을 때는 괜찮은데, 아직 어릴 때, 자기도 어릴 때는 동생을 받아들이기 힘들죠 ㅠㅠ
행복한 막내의 삶을 일순 빼앗기니까요.

저희집은 싱겁고 안 맵게, 그러니까 맛없게 먹고 살아요. 매운 것도 조금씩 연습해야할듯요~~

라로 2018-02-1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둘째도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저리 귀여웠는데, 막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독립심을 강요받은 것인지 아니면,,,,하여튼 그래도 가끔 옛날에 하던 짓을 하긴 해요. 이제 18살이 되는데~~~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저 지금 모텔 방에 앉아서 밖에 나가긴 귀찮고 해서 있는 거 먹는데 매운떡볶이라니!!!!엉엉 딸아이 오면 매운 핫윙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어요~~~유부만두 님, 보슬비 님이 늘 음식으로 고문을 하시는데 단발머리 님은 사진도 안 올리면서 고문을 하시는 기막힌 기술을 갖고 계시는군요!!!ㅠㅠ

단발머리 2018-02-14 08:34   좋아요 0 | URL
라로님의 둘째는 18살이군요. 와우~~~
모텔 방에 앉아서 매운떡볶이를 생각한다면~~~ ㅎㅎㅎ 정말 엉어이네요.
급하게 만들고 아이들 챙기느라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어요.
맛있고 매운 떡볶이를 만들게 되면 사진 올려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