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글을 쓸 의무가 있다
애플 티비 <파친코>가 막 개봉했을 때였다. 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 토크쇼의 사회자가 배우 캐스팅에 대해 물었다. 감독이 말했다. "선자 역과 한수 역에 각각 3명의 결선 진출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함께 오디션을 보며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찾으려 했다. ...... so you have incredible, incredible actors, but the question is who has that magic touch with one another."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브리저튼 시즌 2>의 케미스트리 리딩 중에, 시즌 1에서 앤소니 역이 확정되었던 조나단 베일리(1인 1조나단, 죄송하고 감사합니다)가 ‘이 사람이 케이트다(시몬 애슐리)’라고 말해 다른 참가자들의 케미스트리 리딩을 진행하지 않고 배역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파친코의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케미스트리 리딩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근사한가, 는 아닌 듯 싶다. 두 사람이 어떤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내는가. 함께 하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어떠한가. 말 그대로 매직. 마법 같은 순간의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알라딘서재 고인물이며, 떠오르는 북튜버 샛별이고, 나의 똑똑이 친구인 쟝쟝님이 푸코의 책을 읽고 페이퍼를 올린 것을 보았다. 옆 동네 도서관에서 상호대차해 두었던 책이 마침 옆에 있었다.
좀.. 스포될까봐.. 여기서 더 인용하진 않겠사옵니다만... 뒤에는 더한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푸코 개웃김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뭐가 웃겼는지 너무 말하고 싶은 데… 읽고 계신 분들 있는 것 같아서 암튼 푸코의 유머는 29페이지에서 폭발합니다. 이웃님들아ㅋㅋㅋ 혹시 저와 같은 포인트에서 빵 터지시면 댓글 좀 달아줘요. (나만 웃겨? 또 나만 웃긴거야?) (from 쟝쟝님 서재, ‘당신은 글을 쓸 의무가 있다’ 일부분)
나도 좀 웃겨서 쟝쟝님과 같이 빵 터지고 댓글도 좀 달고 싶은데, 아… 어디요? 어디에 웃음 포인트 있는 거에요? 27쪽, 28쪽, 29쪽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 나는 웃지 못했다. 웃고 싶었다. 나도 푸코 읽고 웃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웃지 못했다. 개웃기다고 ㅋㅋ를 연발하는데도, 웃지 못했다. 나만 웃겨? 자꾸 물어서, 네, 쟝쟝님만 웃겨요, 라고 답하고 싶었다. 쟝쟝님은 푸코랑 같이 웃고 있는데, 나는 웃지 못했다. 진심으로 원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푸코를 읽고 웃을 수 있다는 건 쟝쟝님의 정신 건강에, 지식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와 동시에 푸코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당신을 기억해주는 사람, 당신의 웃음 포인트를 알아채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 대한민국, 알라딘 서재에.
결국 우리가 머물 수 있고, 우리 몸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집,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땅, 유일한 진짜 조국은 분명 이 언어작용,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이 언어작용입니다. 따라서 내게 관건은 이 언어작용을 다시 되살리는 것, 내가 주인이 되는 동시에 그 은밀한 부분을 알게 될, 언어로 된 일종의 작은 집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이유라고 믿습니다. (19쪽)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사회에 뿌리 깊은 듯하다.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침묵은 금이다’ 보다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가 인생의 지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내가 친애하는 선생님께서 강연 중에 말씀하셨다. “그러니까요. 살을 섞지 말고 말을 섞으세요. 말을 섞으면… (잠시 멈춤) 잊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거죠.”
나도 푸코랑 케미스트리 리딩하고 싶다. 하지만 내게는 어려울 듯싶어, 한 치의 아쉬움 없이 푸코를 쟝쟝님에게 하사한다. 플라톤 반사했고, 데리다 반사했고, 들뢰즈 반사했다. 정희진 선생님은 한결같이 추앙하니까 케미스트리 리딩의 상대역이 될 수 없고. 가장 최근에 마음이 통한 사람은 시그리그 누네즈. 그리고, 또 굳이 찾아보자면. 음, 조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