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위험 - 글쓰기에 대하여 철학의 정원 40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그린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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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까지 와서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그건 안사라지는 것 같아요.” 

라고 내가 좋아하는 말하는 장강명이 말했다. (부연 나는 쓰는 장강명은 싫은데, 말하는 장강명은 좋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NyXr8FHufqM)


“(50) 나는 글쓰기라는 매우 거대한 의무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의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글쓰기는 의미가 없는 것, 있을 법하지 않은 것, 거의, 다른 어떤 것보다 불가능한 어떤 것, 여하튼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을 무엇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도달하고, 아마도 우리가 첫쪽을 쓸 때일까요? 천 번째 쪽을 쓸 때? (…) 그런데 우리가 자신에게 부과한 이 작은 분량을 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실존에 대한 일종의 사면을 행하게 됩니다.* 이 사면은 하루의 행복에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행복한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에 달려 있으며 약간은 다른 어떤 것, 곧 실존의 행복입니다. (…) 이다지도 허무하고 허구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이고 자신을 향해 침잠하는 이 몸짓, 다만 아침 나절을 할애해 탁자에 앉아 빈 종이 몇장을 채우는 이 몸짓은 어떻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 대한 축복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요?” 


실존에 대한 사면으로 서의 글쓰기. 


오랫동안 쓰고 있는 나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었다. 그런 자세로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썼던 건 일기였으니까. 800페이지는 족히 넘는 두꺼운 갱지 노트를 사서 이걸 다 쓸거라고 마음 먹었다. 불행 일기장. 그래, 불행하다고 느낄 때 마다 여기에 글을 쓸거다.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시작하며서 조건을 붙였다. 반성하지 않는다. 이 일기장에 만큼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지, 다 이해해.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고 모든 일 들을 다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이면서 정작 나한테는 안해줬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해. (누구를 위해서?) 어쨌든 그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그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믿으면서— 굴었던 적도 있다. 그러고 나서 자꾸 반성을 했다. 왜 이렇게 노력했는 데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닌지 내일의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당연히 오래 못갔다. 30년도 못살았는 데, 더는 이렇게는 못산다고 몸이 먼저 알려줬다. 


무기력 속에서 불행 일기를 쓰는 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을 거다. 내가 이렇게까지 허접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긁어팠다. 글을 쓰면서 반성하지 않는 것은 참 힘들었다. 어찌저찌 분노하고 슬퍼하고 짜증을 내다가도 결국에는 반성을 해버리더라. 종국에는 아, 그래 이게 나인가보다 했다. 그렇다면 대충하는 반성은 아니어야지. 나 자신을 충실하게 해부한 반성문 같은 800페이지의 불행 일기장을 끝끝내 다 쓰고 난 후에야, 나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착한 딸. 아디오스. 대략 30년치의 인생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것은 매우 가슴 아프지만 사실은 후련한 일. 

나는 나한테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고, 룰루😎 사는 게 재밌다.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쓰는 것에 홀딱 빠진 채로, 이 나르시시즘을 즐길 때(!) 안녕과 행복을 느낀다. 안써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써본 사람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아니 쓸 수 없으니 주저 말고 쓰시기를. 어떻게든 혼자가 될 시간을 확보해서 악착같이 써보시길.


자 그렇다면 이제 푸코의 글쓰는 법을 알아보자(응?).

“(27) 내게 글쓰기란 죽음에, 아마도 본질적으로 타인의 죽음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글을 쓴다는 것이 타인을 죽이거나, 타인에 반하여, 타인의 실존에 반하여, 타인의 현존을 제거하며, 내 앞에 절대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을 열어 주는, 어떤 결정적인 살인적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혀 아니지요. 내게 글쓰기란 물론 타인의 죽음과 연관된 어떤 일,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이미 죽어버린 존재로서 이해되는 타인의 죽음과 연관된 어떤 일입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여? 조금만 더 읽어봅시다. 


“(28) 사람들은 나의 글쓰기 안에 자신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사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순진한 편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사람들이 이미 죽어있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얔ㅋㅋㅋ 이게 더 이상하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좀.. 스포될까봐.. 여기서 더 인용하진 않겠사옵니다만... 뒤에는 더한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푸코 개웃김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뭐가 웃겼는지 너무 말하고 싶은 데… 읽고 계신 분들 있는 것 같아서 암튼 푸코의 유머는 29페이지에서 폭발합니다. 이웃님들아ㅋㅋㅋ 혹시 저와 같은 포인트에서 빵 터지시면 댓글 좀 달아줘요. (나만 웃겨? 또 나만 웃긴거야?) 


이 대담집에서 푸코는 현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무언가를 되살리기 위해서 쓴다거나 삶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을 ‘죽은 후’에 쓴다고 대답한다. 과거가 죽었기 때문에 쓴다.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어버린 무엇인가의 진실을 드러내는 시체 부검이 자신의 글쓰기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조금은 비틀렸지만 묘하게 타당한 푸코 특유의 윤리 감각. 어쩌면 시시각각으로 이슈가 휘발되고 갖가지 정서들이 즉각적으로 몸을 훑고 지나가는 요즘과 같은 과잉연결 시대에 필요한 글쓰기 일지도 모르겠다고. 


음… 헌데 이건 조금 크게 본 것이고 나를 변호하기 위한 글을 좀 더 써보자면. 


나 역시 현재보다는 과거를 쓰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삶의 해석권을 내게 가져오려고 한다. 나는 감정 전염이 싫다. (쓰고 보니 이상하네 감정이 전염병도 아니고…. 예, 제가 바로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는 로봇 intj입니다ㅋㅋㅋ) 무엇을 느끼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껴야 할것만 같은 상황이 싫다. 아마도 내가 그것에 매우 취약한 성분으로 구성된 종류의 인간이라서 그럴거다. 내가 쓰는 건 일기랑 일기와 다를 바 없는 독후감이 전부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그것들이 대체로 다 끝난 후에라만 글을 쓸 수 있는 몸 상태가 되고, 그걸 쓰지 않으면 매우 힘들어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 대해 쓰면서 드러나는 진실이란 결국 특정 시점의 ‘나’에 대한 진실 일 수 밖에 없고. 그건 나를 발견하는 것임과 동시에 나의 병을 드러내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지나간 것. 내가 느낀 것. 그게 정말로 내 느낌이었는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감정에 언어를 입혀 적어두는 것은 거리두기를 하기 위함이다. —“(58) 일종의 맹목적 과업을 묘사하고 윤곽을 그려 내고 명확히 하는 일, 우리를 멀리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무엇인가를 다시 포착하는 일... 이런 비가시성. *너무나도 가시적인 것의 이런 비가시성. 너무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이런 거리두기*”— 그렇게 써두고 주입해놔야 비슷한 투사나 전염이 일어났을 때 이거 맞아?하고 나한테 물어볼 수(라도) 있어진다. 어떤 사건들을 적어도 예감하면서(?) 당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덜 아픈 건 아니지만. 배우는 거지 뭐, 내가 얼마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인지. 나라는 심란하게 너덜거리고 빈틈많은 성긴 존재의 실체를… 까먹으면 안된다. 못 살아남아. 나 자신을 사유하지 않은 채 눈 딱 감고 믿어버리기엔… 세상이, 너무, 험해…


암튼,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나도 알아 내가 중증인 거) 하지만 추천할 수가 없… (이런 사람 좋아한다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락방은 영혼의 소울메이트 크리스토퍼인데 나 정말 영혼의 소울메이트 미셸 푸코인거냐… 진짜 인정하기 싫어 죽겠는 데 푸코 조롱하기를 끊을 수가 없다… 하… 그만해… 근데 정말 푸코 나만 웃겨요???


“(25) 나를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독자들이 나의 글쓰기 안에 어떤 공격성이 존재한다고 즐겨 상상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정말 특별히 누군가를 공격한 적이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ㅋㅋㅋ원래 인간은 믿고 싶은대로 믿는 다지만ㅋㅋㅋㅋㅋ님하ㅋㅋㅋㅋㅋㅋㅋㅋ) 내게 글쓰기는 특히나 부드럽고 조용한 어떤 행위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저기요…?ㅋㅋㅋㅋㅋㅋ) 내가 글을 쓸 때 나는 마치 내가 벨벳을 쓰다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뭬....뭬야?ㅋㅋㅋㅋㅋㅋ벨..벳ㅋㅋㅋㅋㅋ? 누가 벨벳을 님처럼 쓰다듬냐고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같은… 


페이퍼를 왜 쓰고 있냐면, 엊그제 나의 글쓰기를 독려해주고 지지해주는 대천재님을 만나서, 똠양꿍에 소주를 마시며, 글을 쓰자! 우리 글을 쓰자! 라고 다짐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단단한 격려이고 나를 쓰게 해온 독려이면서 또 누군가를 쓰고 싶게 만들고 싶다는 모처럼의 오지랖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전염. (ㅋㅋㅋㅋ 이 감정 전염은 싫지 않았닼ㅋㅋㅋ🤭) 


암튼, 나도 해주고 싶어서요. 


당신이 서른이 넘었는 데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시 내가 가져온 푸코의 글쓰기의 의무를 말하는 문장에 감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이 글을 써야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잘 못써도 너무 늦은 것 같아도 일단 썼으면 좋겠다. 당신은 그런 불꽃을 가지고 태어난 거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의무다. 삶이 보내는 신호다. 써야하는 사람은 써야한다. 


잘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쓰기 시작하자. 무엇을 쓰게 될지는 쓰다 보면 알게 되고, 그 글이 데려다주는 곳이 어떤 곳일지는 모르겠지만… 쓰는 당신은 분명히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건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글을 쓸 의무가 있다. 당신을 당신의 글 속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글쓰기의 경험—실존에 대한 사면, 그걸 꼭 해야한다. 왜냐면, 나는 그것 없이는 이제 못 살겠는 몸이 되었으니까. 나만 당할 수는 없다!!! 우리 함께 글쓰기의 저주를... ㅋㅋㅋㅋㅋ


“(32)글쓰기라는 절개 자체를 통해, 죽어버린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 —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바로 그 움직임 자체 안에서만,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글쓰기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던 그 순간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히 진단하는 행위이기나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 아니다. 예외가 있다. 이런 사람은 쓰면 안된다. 오늘 아침 트위터에서 본 짤로 대신한다. ㅋㅋㅋㅋㅋ 당신은 쓰지마라(단호!)!




그러나 우리의 소란스러운 삶을 문자들로 이루어진 불변의 소란스러움 속으로 서서히 흡수시키려는 우리의 시도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은 늘 종잇장 바깥으로 펼쳐질 것이고, 증식될 것이며, 결코 이 작은 직사각형 안에 고정되지도 않을 것이며, 신체의 무거운 부피 역시 결코 종이 표면 위에 펼쳐지기에 이르지도 않을 것이고, 우리가 2차원의 이 우주, 담론의 이 순수한 행렬로 옮겨 가는 일도 없을 것이며, 한 텍스트의 선형성에 다름 아닌 무엇인가가 될 만큼 우리가 충분히 가늘고 섬세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P54

<지식의고고학>은 푸코가 구조주의적ㆍ언어학적 용어인 에피스테메와 언표를 넘어, 니체주의적 담론 분석으로 옮겨가는 이행을 가능케한 분석을 담고 있다. 단적으로 <지식의 고고학>은 -역설적으로, 제목과는 상응/상반 되게도- ‘지식의 고고학‘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넘어, ‘권력의 계보학‘으로 옮겨 가는 이행을 가능케한 저작이다. <지식의 고고학>은 <말과 사물>을 잇는/잊는 책이다.
🤔 68혁명이 있던해 여름과 가을에 이루어진 이 대담은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 사이에 위치해있다. (보다 정확히는 지식의 고고학 초고 대강이 완성되었을 때) 1970년 이후 푸코는 글쓰기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사망 조금 전에 주체화 및 자기테크놀로지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 언급할 뿐이다. (구조주의ㆍ언어학 -> 니체적 진단)
- P78

글쓰기는 이 대담에서 빈 공간, 죽음, 익명, 공간, 언어작용 등과 연결되면서, 결국 푸코가 이듬해인 1969년 2월에 프랑스철학회에서 발표한 글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예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푸코가 발표한 논문의 제명이기도 한 질문의 형식에 주목하라. 논문의 제목은 「저자란 누구인가?」가 아닌, 「저자란 무엇인가?」다.* 이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저자란 저자-기능ronction-auteur 이라는 것이다.이는 전통적인 저자 중심주의도 아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독자 중심주의도 아니며, 양자 사이의 텍스트 중심주의 마저도 아닌, 저자·독자·텍스트 모두가속하는 장, 저자·독자·텍스트 모두를 탄생시킨 장, 저자 독자·텍스트가 서로 동시적 · 상관적으로 생성되는 장, 곧 익명성의 구조, 익명의 언어 작용이 작동하는 체계를 지칭한다. - P86

이제 우리는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언어, 곧 언어작용의 두 갈래, 말과 글의 한 영역이다. *글쓰기란, 글쓰기 행위보다는 차라리 글쓰기 작용이다.* 우리가 읽은 글쓰기에 대한 푸코의 대담은 앞서 말했듯, 이 언어 또는 언어 작용이 부르는 마지막 백조의 노래다.
🤔 언어작용:주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을 통해 주체가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그 작용을 통해 주체가 탄생하는 것 ....구조 또는 체계.. 주체가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주체를 만들어내는 언어작용... 응? 알듯 말듯. 역자 허경은 옮긴이의 말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저자ㆍ독자ㆍ텍스트 모두를 탄생시키는 언어작용*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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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mistry reading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05-31 12:29 
    애플 티비 <파친코>가 막 개봉했을 때였다. 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 토크쇼의 사회자가 배우 캐스팅에 대해 물었다. 감독이 말했다. "선자 역과 한수 역에 각각 3명의 결선 진출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함께 오디션을 보며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찾으려 했다. ...... so you have incredible, incredible actors, but the question is who has that magic touch with one
 
 
난티나무 2022-05-28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글 쓸 자격 없다… 저 인용구요. 늠 싫고!!! ㅎㅎㅎ

공쟝쟝 2022-05-28 08: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왜 떠오르냐곸ㅋㅋㅋㅋㅋㅋㅋ

2022-05-28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8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5-29 2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올라온 거 보고 상호대차 신청해서 오늘 책 가지고 왔고요. 29쪽 펼쳐봤지만 웃음 포인트 아직 못 찾았어요.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어봤는데도 재미 없으면 그 때는..... 흠,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눕시다!!!

푸코 이야기보다 쟝쟝님의 쓰기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어요. 800페이지 갱지 노트 아무나 살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공쟝쟝 2022-05-30 11:50   좋아요 2 | URL
.......... 안웃겨요.........? 으허헝....... 또 나만웃겼지....ㅜㅜ (울면서 달려나간다)

다락방 2022-05-30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여기 푸코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푸코를 좋아하고 소울메이트라 하고 재미있어하는 쟝님 넘나 신기해요. 이런 단어와 문장들을 받아들인다니... 어쩌면 쟝님은 푸코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공쟝쟝 2022-05-30 11:53   좋아요 3 | URL
아니야하.. 그런거 아니야하... 다른 철학자나 작가들 글 읽을 때는 와~ 우와~ 이랬는 데, 푸코 읽을 때는 자꾸 피식피식 하게 되요... 웃기달까... ... 나는 그가 왜 웃긴가... 왜 웃다가 정들어버렸는 가... 정말 푸코는 ..... 내 영혼의 소울메이트.... 인가... 나는 푸코처럼 생각하는 것인가.... (진지해짐)

mini74 2022-06-1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쟝장님은 글을 쓸 의무가 있다 ㅎㅎ 당선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6-10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장공장공쟝쟝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6-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6-1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시에나 2022-09-22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벨벳 어찌고에서 ..특히.웃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웃은 사람 여기 있습니다.

저도 푸코의 글쓰기 좋아해요. (수줍...)

단..저에겐 푸코에게 약간 입을 삐죽대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자기배려와 관련해서) 그게 저에게 아직 안 풀린 숙제입니다. ^^

공쟝쟝 2022-09-22 21:02   좋아요 2 | URL
오호, 제가 그걸 아직 안읽어봐가지고요! 일단 저는 푸코 다 삐죽대긴 하는데요...(맘에 드는 거 하나도 없음. 생긴것도. 백인. 서양. 남자. 지식인 것도. 심지어 게이여...ㅋㅋㅋ) 그런데... 푸코의 그 뭐랄까 절대 누구도 깔 수 없는 괴랄한 자만심(?)은 좀 배워야할 거 같아요. 신.자.유.주.의. 시대의 페미니스트로서 남 눈치 안보고 나만 잘났다! 해야하는 데... 푸코가 나한테 뭐 그런 기술을 알려주면 좋겠다... ㅋㅋㅋ 응? (난 아무래도 아직 남 눈치를 넘 많이 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