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 낳고 첫 번째 주일, 친정 식구들은 다 교회에 가고, 자다가 눈을 뜨니 옆에 아기가 누워있었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입체 초음파로 보았던 바로 그 콧대. 그 콧대의 주인공이 정말 그림처럼 누워 자고 있었다. 만난 지 삼일 만이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 나는 사랑이 느껴졌다. 모성이 부족한 사람인 내게조차 그 두근거림은 너무 선명해서, 자는 아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는 좀 다른 것 같고 혹은 더 큰 것 같은 사랑, 그런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확신하게 된 순간이랄까. 마음을 주었어도 또 다른 마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또 다른 마음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 손으로 처음 뽑은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님이지만, 그분은 워낙 산 같은 분이시라 그냥 존경하고 우러러볼 뿐이었고, 내 마음속 대통령이라면 언제나 노무현 대통령님이었다. 파란만장했던 경선 과정도 그랬고, 가슴을 울리는 연설도 그랬다. 선거 전날 멀리서 뵈었을 때의 기쁨, 그리고 당선의 환희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퇴임 후의 비극은 결국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노무현 대통령님을 내 마음속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런 마지막 대통령이 되실 줄 알았는데, 오늘 퇴임하시는 문재인 대통령님을 뵈니 온갖 감회가 몰려와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웃으면서 조금 울었고, 울면서 또 웃었다.

 


대통령님, 지난 5년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이 우리나라 대통령이어서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어깨의 무거운 짐 이제 모두 내려놓으시고, 그토록 원하시던 일상으로 돌아가셔서

하고 싶은 거 다하세요.

우리 이니님,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하고 많은 날 중에 하필 오늘이 작은 아이 학교 재량휴업일이라 대통령님 퇴근길을 함께 하지 못했다. 꼭 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마중 나온 모습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내일부터 새 시대가 열린다. 선택에 대한 결과를 우리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몇몇 친구들에게 울적한 마음에 나 지금 울고 있다ㅠㅠ카톡을 보내고, 오늘 같이 갈 걸 그랬지? 대통령님의 퇴근길을 아쉬워하고, 조국 장관 따님의 일기장은 중학교 때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 것이므로, 중학교 일기장을 압수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비열하고 악랄한 한동훈이 욕을 나누고 있다. 결론은 한 방향으로 향한다. 이제 5년 동안 시사 방송 모두 끊고, 뉴스 끊고, 네이버 끊고, 어디 조용한데 칩거해서 연구에 매진하자.




 



























일단 도나 해러웨이. 신간이 오고 있다. 내가 함 읽어보겠다는 정신으로 읽어보겠다. 친구가 추진 중인 <서양 철학 제대로 파보기 전국 협의회> 선정 도서도 쓱 훑어본다. 고급스럽고 우아하지만 포스가 어마무시하다. 원서는 새로 사지 말고 집에 수납장 속에 대기 중인 것 중에 몇 권 골라보고, 무엇보다 엄중한 시절에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님 만나주셔야 한다. 1월에 구입한 세트 도서 3권 중에 다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읽어야겠다. 읽어보겠다. 읽는 수밖에. 허어, 읽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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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5-09 22: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인 분이 현장을 담은 릴스
를 인☆에 올린 것을 보고는
기냥 울컥했습니다.

항상 소중한 것은 지나간 다
음에야 알게 되는 닝겡이의
깊은 회한이었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미디어는 끊고 책이
나 더 읽어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05-10 11:24   좋아요 3 | URL
네, 울컥하죠. 저도 그래서 어제 눈물바람.....
소중한 순간들이 이렇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미디어 끊고 책 더 읽으신다는 말씀에 100퍼센트 공감합니다.

꼬마요정 2022-05-09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상만 봤는데 울컥 했네요.
너무 고생 많으셔서 이젠 편하시면 좋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05-10 11:24   좋아요 3 | URL
네, 꼬마요정님!
너무 고생 많으셔서 이제는 편안한 일상을 사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syche 2022-05-10 0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 뉴스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내 다시는 안 보리라 해놓고 또 보면서 화나고.... 앞으로 5년이 두려워요. ㅜㅜ

단발머리 2022-05-10 11:28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래서 뉴스 끊고 있어요. 전 한참은 안 보려고 해요. 프시케님도 정신 건강을 위해 당분간은.... 뉴스를 끊으심이 어떨까요.

수이 2022-05-10 0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배우들이 실시간으로 동영상 올려줘서 보았는데 뭉클했지요. 고생하셨으니 이제 평화로운 시간 보내시면 좋겠어요. 더불어 이제 5년은 영불철의 나날들인 겁니다. 절망해서 바닥에 엎드리지 말고 두 주먹 불끈 👊

단발머리 2022-05-10 11:30   좋아요 1 | URL
새로운 5년을 새롭게 만들어갑시다, 비타님! 비타님의 커리큘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두 주먹 불끈!!!

거리의화가 2022-05-10 09: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대통령님 마음으로 항상 응원하고 지지를 했던 사람으로서 어느덧 마지막이라는게 믿겨지지 않더라구요. 5년중 거의 3년간을 코로나로 더욱 힘드셨을 것 같은데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저 중에 ‘세계철학사‘만 갖고 있네요^^; 읽어야 하는데 소장만.. 아렌트 책도 찜해놓았다가 품절되서 재입고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간 도전을 해봐야겠어요~ㅎㅎ

단발머리 2022-05-10 11:33   좋아요 3 | URL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거 같아요.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가지셨던 분들이 많으시니까 당선 때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퇴임하시는 것 같아요.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접습니다.
저도 소장만 하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요. 이제 때가 되었으니 소장만 했던 책들, 좀 자세히 살펴보려고요.
한나 아렌트가 시작입니다^^

mini74 2022-05-10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분. 꼭 지켜드려야 할 분 단발머리님 사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단발머리 2022-05-10 13:10   좋아요 2 | URL
고마운 분, 저희가 지켜드리지 않아도 되었으면, 그런 갈등 속으로 불려오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감사해요. 미니님 맘이 전해지네요....

얄라알라 2022-05-10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렇게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실수로라도 목소리 들을 까봐 뉴스 끊고 삽니다..
이렇게 단발머리님께서 글 올려주신 덕분에 북플 친구분들 따스한 감사 댓글 서로 읽고 지지하는 마음 나눌 수 있고, 좋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2-05-10 21:43   좋아요 2 | URL
뉴스 끊으신 분 많으시네요….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맘이지만 저처럼 속상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중에도 위로가 되네요. 감사해요, 얄라알라님!

라로 2022-05-10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뒷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떠나는 뒷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다웠어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는데 이제 마음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다시 시궁창으로 빠진 것 같은 국민들을 생각하면 그러기 힘드시겠지만..ㅠㅠ

단발머리 2022-05-10 21:4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아름다운 뒷모습이요. 이제 여사님과 반려견들과 이웃분들과 평화로운 농촌 생활 이어 가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5-15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짐정리 하면서 라이브로 뒤늦게 영상 보면서 ˝다시 출마할까요?˝의 한 마디에 울컥했다가, 또 한편으론 다음 날 사저에서의 모습 사진 몇 컷 보고, 갑자기 정겨워지는 거에요^^
대통령님댁에 놀러가고 싶더라는~ㅋㅋㅋ
고생하신만큼 동네 사람들이 잘 챙겨드렸음 좋겠는데, 어르신들이 보수텃밭이라 불안불안 합니다. 그래도 지지자들도 많으니까^^

단발머리 2022-05-16 16:03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우리 많이 울컥하네요 ㅠㅠㅠ 이제 맘껏 쉬시고 하고 싶은 일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여사님이랑 놀기, 강아지랑 놀기, 꽃 가꾸기 기타 등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네 사람들은 괜찮은거 같은데 보수 쪽의 외부사람들이 확성기 틀어놓고 그러나 봐요. 경찰에 신고해도 안 된다 하니.. 참, 안타까워요.

책나무님, 정리 대충 하시고 짬짬이 쉬세요. 갑자기 정리하면 몸살나더라구요. 사이사이 알라딘 놀러오시구요^^

ÊTRE 2022-05-15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즘 폭풍책읽고있네요.콜린후버 필독서? 지르고있던중 우연히 발견하고 위로받는중

단발머리 2022-05-16 08:0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Être님! 전 일단 콜린 후버 한 권 샀어요. 장르만 알고 예전에 사뒀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르네요 ㅎㅎㅎ 일단 한 권 읽어보고 또 사려고요^^

ÊTRE 2022-05-15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별한날 아니면 너무자주들 우르르가서 사진찍고 번거롭게는 안해드렸으면 하네요.우리야한번이고 기념이지만 얼마나 피곤하실까요

단발머리 2022-05-16 08:03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저도 노대통령님 계실 때 못 가봐서 문대통령님께는 꼭 가보고 싶은데... 맞아요, 우리만 생각하면 안 되겠죠.
조용한 동네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