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1. 온라인 클래스의 좋은 점

1)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지 않아도 된다

2) 매일 급하게 체육복을 빨지 않아도 된다

3) 삼시세끼를 아이들과 같이 먹을 수 있다

 

2. 온라인 클래스의 나쁜 점

1)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2) 좋았다 나빴다 남매간의 사랑과 전쟁을 실시간으로 봐야 한다

3) 삼시세끼를 차려야 한다

 


10년 전쯤 좀 늦게 결혼한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 친구를 보러 갔다. , 왔어? 라고 인사하는 친구랑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말한다. 그러니까, 부모님 건강하실 때 모시고 식사하러 많이 다녀. 그때는 나도 어렸고 부모님도 건강하셔서 그냥 그런가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 식사하는 게 어려워지니 친구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지난 생신 때도 아빠가 이번에는 그냥 건너뛰자고 하셨는데, 내가 우겨서 식사하러 갔다. 아빠, 이제 아빠 생파가 얼마나 남았는지 아세요? 기껏해야 30번이에요. 한 번도 놓치면 안 돼요.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해요. 아빠도 웃고 엄마도 웃고 이모도 웃고 나도 웃었다.

 


152쪽에서 153쪽까지 너무 좋아 네 번을 읽었다. 처음 읽을 때 두 번 읽고, 아침에 한 번 읽고,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읽었다. 나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은유 중에 이것보다 더 아름답고 애잔한 걸 본 적이 없다. 자식이었고 이제는 부모인 사람으로서, 미안함과 아쉬움이 그네처럼 앞으로 뒤로 요동을 쳤다. 두 문단을 옮기고 싶지만, 그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고, 도서관 책으로 읽는 사람이라 부끄럽지만 다른 분들도 어떤 식으로든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보이저 1호가 찍은 창백한 푸른 점, 우리 지구별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인간이 가진 우주에 대한 물음의 궁극은 우주의 기원과 종말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온 걸까.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우리 우주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대폭발이 일어나던 첫 순간, 처음 10의 마이너스 43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과학자들은 아직도 설명하지 못한다. 1%의 오차도 없이, 우연과 우연, 그리고 우연과 우연(우연 곱하기 억?)의 연속으로 지구에는 생물체가 살만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별에 산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분노,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을 때 사람들의 두려움, 우리 은하가 사실은 우주의 변두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챘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허탈함.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이렇게 존재한다.

 


칠흑 같은 밤, 반짝이는 별을 떠올리며 우주를 생각한다. 내 조그만 우주의 기원과 종말을 떠올린다. 엄마와의 통화를 들으시고 갑자기 전화해서는, , 너 주차 (위반) 딱지 나왔다며? 크크크. 그거 내가 내줄까? 물어보시는 아빠. 아직도 딸의 반찬을(어머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소서!), 딸의 반찬과 딸 새끼들의 반찬을 걱정하시는 엄마. 원핵세포의 특징을 갖는 미토콘드리아가 진핵생물인 우리와 공존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문과 졸업생을 끝까지 설득하려는 기특한 이과생, 꼬리도 없으면서 강아지마냥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또 한 명의 한량 청소년. 내 우주의 시작과 끝은 이렇다. 인간의 제한된 시간, 한정된 정보, 부족한 기술로서는 우리는 우주의 신비에 닿을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하지만 또 그만큼 나는, 내 우주의 시작과 끝은 이렇게나 아름답고 눈부시다. 살아있음이, 생명이 이 거대한 우주의 한 귀퉁이를 채우고 있다.


 

심채경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정재승, 김상욱을 잇는 주목할만한 과학 전문 저자가 될 거라 생각한다. 『랩 걸』 호프 자런의 한글 버전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심채경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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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7-14 18:41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정재승 - 김상욱 에 호프자런 이라고요? 당장!!!! (장바구니에 담는다!!!!!!!!!!!!)
안그래도 저 요즘 김상욱 다지 좋아져서 스스로 말도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양자 물리학 담아뒀는데... !! (망했다.....)
과학자들이 에세이 잘쓰면 진짜 반칙인 데, 세상에 반칙이 참 많아 ㅜㅜ

단발머리 2021-07-14 21:17   좋아요 3 | URL
양자 물리학 많이 읽어요. 메타버스 다음에는 양자 물리학이에요. 앗! 그전에 현상학 한 번 찍고 가실께요.
우리 쟝쟝님 너무 바쁩니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심채경씨는 반칙 대마왕이요!

mini74 2021-07-14 18:4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찐독자. 작가님이 이 글 보면 정말 좋아하실듯. 책에 대한 애정과 진심어린 이야기. 제가 다 가슴 뭉클한걸요. ㅠㅠ 저희도 엄마팔순이 작년이었는데 코로나로 못 하다가 올해는 해드리려고요 간단하게라도. ㅎㅎ 엄마가 그럼 작년에 못 한것까지 해서 봉투 2개 갖고오라세요 ㅎㅎㅎ 농담이시겠지요. ~~

수이 2021-07-14 18:52   좋아요 7 | URL
진심이실 거 같습니다 :)

미미 2021-07-14 19:20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제 생각에도 진심ㅋㅋㅋㅋㅋㅋ아 요즘 미니님 넘 재밌음요!

붕붕툐툐 2021-07-14 21:04   좋아요 3 | URL
악!!! 너무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7-15 06:39   좋아요 3 | URL
미니님 /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여기 위에 댓글 보세요! 어머님은 진심이십니다. ㅎㅎㅎㅎ 원래 계획하셨던 액수를 두 개의 봉투에 나누어 담으심이 어떠실까 싶습니다.

Vita님 / 비타님 맘이랑 내 맘이랑 똑같습니다.

미미님 / 미미님이 진심이다 2번 되시구요. 제가 3번!

툐툐님 / 그러게 말입니다. 툐툐님은 진심이다 4번 되시겠습니다.

유수 2021-07-14 2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온라인 클래스 장단점을 두려워하며 읽다가 서평이 훅 들어오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7-14 21:21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처음 보는 작가라ㅠㅠ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내내 무척 좋았고 팬이 되어 버렸네요. 유수님께도 그런 시간 되시길요!

붕붕툐툐 2021-07-14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랩걸 너무 잼나게 읽었는데, 단발머리님의 리뷰도 넘 좋고~ 이 책 진짜 꼭 읽어야겠네용~!!

단발머리 2021-07-14 21:25   좋아요 3 | URL
저도 랩걸 좋아해요. 바이킹의 후손답게 겨울내내 우리 가족들은 서로 말을 안 한다. 이 대목 특히 좋아했구요.
심채경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푸하하하하!!!!

블랙겟타 2021-07-14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보다 박사님 나오시는 영상에서 따뜻하고 섬세한 책이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아, 다음에 빌려봐야지’ 했었는데 인기가 있는지 계속 없더라구요. ㅠㅠ
단발님 글 보니 어떻해서든지 꼭 읽어봐야할 이유가 1개 더 늘었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1-07-15 12:37   좋아요 2 | URL
저도 알라딘에서 마련한 그 동영상 봤어요. 책으로 상상한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멋지시더라구요.
읽을 이유를 1 하셨습니다^^

그렇게혜윰 2021-07-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꾸 땡기면서도 미뤄왔었는데 이러시면 읽어야하는데요^^

단발머리 2021-07-16 16:52   좋아요 2 | URL
네네~~ 저도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초딩 2021-08-0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8-08 10:47   좋아요 0 | URL
초딩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1-08-0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단발머리 2021-08-08 10:47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축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8-08 10:4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