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든 타의든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문학 평론가 신형철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헌사를 이렇게 썼을 때, 팬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갈렸던 것 같다.
신성호 님 조봉순 님
나의 새로운 부모님들께.
그리고 신샛별
나의 절대적인 사람에게.
사랑하는 여인, 이제 막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기로 한 새신부를 ‘절대적인 사람’이라고 호명한 것은 일면 이해가 되지만, ‘새로운 부모님들’까지 더하고 나니 좀 과하다는 느낌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앤 드류안에게 바친다고 썼는데, 우주 전문 과학자답게 우주에 대한 언급이 아주 자연스럽다.
작가 김영하의 헌사 역시 멋지다. 아내에게 사랑을 담아,는 평범하다고 하겠지만, ‘경의’까지는 쉽지 않겠는가 싶다.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아내를 주방에서 은퇴시킨 사람이니, 난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표현 자체로는 훌륭하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록산 게이는 이렇게 썼다.
『헝거』에서 록산 게이는 내내 자신을 숨기려 혼자 웅크려 들었기에 그녀의 이 헌사는 좀 특별하다. 나의 선샤인, 당신에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헌사는 좀 단순한 헌사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타미에게. 나는 타미를 아주 조금 아는데, 타미는 좋아하는 자두를 하루에 4개씩 먹는 아이고, 이모의 책상에서 발견한 포스트잇 플래그를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이것 봐, 이거 우리 이모 꺼야’ 라고 자랑하는 아이다. 책의 헌사가 어떤 의미인지 타미가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지금이든 나중이든 아무튼 타미는 좋겠다.
근래에 제일 눈길을 끄는 헌사는 이런 헌사다.
나의 어머니에게.
둘째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던 시절, 8시 35분 일일연속극이 시작하고 둘째가 이제 막 젖을 먹으며 눈을 슬슬 감기 시작하면, 첫째는 꼭 그 때 책을 읽어달라고, 어린이 동물 백과 사전 <동물편 1 - 사자는 동물의 왕이에요>을 읽어달라고 했다. 방해 받는 걸 느끼는 둘째는 작은 입으로 앙앙거리고, 첫째는 둘째 쪽으로 책을 들이밀며 조금 더 크게 앙앙거릴 때, 누구에게 인지도 모르게 야야야!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는 첫째와 <동물편 1 - 사자는 동물의 왕이에요>를 한꺼번에 안아 저쪽으로 끌어가시며 습관처럼 말씀하셨다. 그러게, 엄마라는 말 듣는 게 쉬운 줄 알았어? 몰랐어, 몰랐어, 몰랐어를 외치던 철없던 나는,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철이 없어서, 철을 몰라서 엄마라는 말, 어머니라는 말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 헌사가 제일 마음에 든다.
나의 어머니에게.
점심에 엄마는 비빔밥을, 나는 제육볶음을 시켰다.
엄마는 녹차라떼를, 나는 벚꽃라떼 아이스를 마셨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