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노인의 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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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6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를 떠나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항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아주 재미있고 탐미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정직한 제목인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노인이 쓴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이지만 그의 성욕은 왕성하기만 하다. 특히 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면, 이러한 그의 욕구는 며느리인 사쓰코에게 향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 .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P.25



그런데 사쓰코 역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이 자신을 향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위해 노인의 추파를 아주 조금은 맞춰준다. 이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쓰코는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 반대로 노인은 며느리를 사쓰짱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P.95



며느리에게 온갖 치욕, 멸시를 당하면서도 노인의 구애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왕성한 욕망을 보인다. 노인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성욕이었다. 게다가 사쓰코의 발에 대한 미친 성욕은 그녀의 발 아래에서 죽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욕망으로 이어진다. 노인의 미친 욕망은 이뤄질수 있을까?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P.165





널리 읽힌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막 강추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기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욕나오지만 읽는걸 멈출 수는 없고 매우 재미있다.


Ps.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선집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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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2-25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초기작들이 이런 성애소설이 많다죠?^^
저도 오래전 대표작인 <미친사랑 > 읽다 깜놀했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도 풋페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나오거든요. 참... 뭐라 평하기 곤란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다음에 읽었던 책은 에로티시즘과 전혀 닿지않아서 의외였던 경험이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긴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09:12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다니자키 준이치로 팬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눈치보이지만 좋아합니다 ㅋ <미친 사랑> 보다 이 작품이 더 충격(?) 적이긴 합니다 ㅋ

그당시에 이런 작품을 썻다는데 놀랍기만 합니다~!!

희선 2022-12-26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미친 노인의 일기》라니... 욕하면서 재미있게 보게 되는 거군요 며느리 발이라니...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가 바라는 게 있었네요 다른 것 때문에 오래 살면 더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12-26 09:1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준이치로의 일대기를 보면 왠지 실제로도 그랬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ㅋ 완전 재미있어요 ~!!

coolcat329 2022-12-2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원동력이 성욕이라니 괴로울 거 같아요.ㅠ 변태같지만 본인도 괴로울겁니다. 그것도 며느리라니 ㅠ
현실에서 이런 노인은 노망난 변태겠지만 문학은 이런 인물을 그래도 이해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니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2-12-26 09:14   좋아요 1 | URL
이해하고픈 마음이 별로 들지는 않습니다 ㅋ 완전 미친 노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ㅋ 이게 문학의 힘인거 같기도 합니다~!!

청아 2022-12-2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문학을 매개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네요. 내년에는 그의 작품을 꼭 읽어야겠어요. 제 생각에 페티시즘을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이 되고싶은 열망도 얼마간 있는것 같아요ㅋ

새파랑 2022-12-26 13:11   좋아요 1 | URL
앗 ㅋ 그런 이유도 있는걸까요? 정신건강(?)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안읽는걸 추천하지만, 미미님은 독서기계시니 문제 없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12-26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전 미친, 막장 드라마네요.
그래도 이 소설을 욕하면서 읽어갈 수 있다는건 작가의 필력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욕망은 자기 뜻대로는 제어가 안되어 저런 사람도 존재할 듯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21:40   좋아요 1 | URL
필력이 ㅋ 장난 아닌거 같아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수가 없습니다 ~!!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거 같아요 ㅋ

페넬로페님하곤 완전 상극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