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끼, 순진한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뻔뻔한 자식이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거기엔 너도 있었잖아. 당시엔 다들 그게 이 배를 뺏으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했어. 제기랄, 이딴 이야기를 내가 왜 하고 있지? 암튼 풋내기놈아. 잘 알아둬.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하냐? 너는 나를 사과하게 하거나 돈을 돌려주게 할 수 없어. 왜냐, 너는 아무 힘도 없으니까. 압드라만도 마찬가지야. 착한 척 나섰지만 돌아오는 건 외면뿐이라도 뭘 어쩌겠냐. 제 방에 틀어박혀서 알라하고나 놀라지. 젠장, 난 그 자식을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어. 난 빌어먹을 광신도들만 보면 도저히 견디질 못하겠단 말이야. 넌 그걸 알아야 해. 지금 세상은 백인들의 신이 지배하고 있어. 그 뭐야, 예수라던가, 그 자식 있잖아. 그놈을 믿는 백인들이 이 세상을 지 맘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아랍인들이 믿는 알라도 나쁘지 않아. 걔들한테는 적어도 석유라도 줬잖아. 우리도 이슬람을 믿지만 우리한테 돌아오는 건 뭐야.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랑 총알뿐이야. 그게 왜인 줄 알아? 그건 알라가 아랍인들의 신이기 때문이야. 선지자 모하메드가 어디 아프리카 사람인가. 아랍놈이지. 난 백인들의 신보다 알라가 더 싫다고. 소말리아의 신을 알라가 죽여버렸거든. 깜둥이 신이 없으니까 우리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거야. 제기랄, 우린 심지어 깜둥이 신이 누군지도 잊어먹어버렸다고. 난 그래서 알라에 매달려 사는 압드라만이 싫단 말이야. 알겠냐? 그 멍청한 자식이 착한 척 하는 모습을 보면 대갈빡을 쪼개버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 백날 알라나 외쳐보라지. 알라가 우리한테 콩 한 톨이나 주는 줄 알아? (후략) "
P.178
소말리아의 신을 알라가 죽여버렸거든. 깜둥이 신이 없으니까 우리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거야. 제기랄, 우린 심지어 깜둥이 신이 누군지도 잊어먹어버렸다고.
도둑질을 한 주제에 꼬마 해적 모하메드에게 들켰음에도 어른 해적 압켈은 되려 뻔뻔하게 말한다. 여기 있는 누구나 다 내가 도둑질을 한 걸 이미 알고 있다고. 훔치지도 않은 압드라만이 자신이 훔쳤다고 한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압드라만이 그런 행동을 한 건 다 배 위의 평화를 위한 거고, 만약 사실이 밝혀져 평화가 깨질 경우 압드라만 역시 끝장이기에 그런 결정을 한 거라고. 그러면서 위의 말들을 덧붙인다.
뻔뻔한 압켈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압켈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소말리아에 전사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전사 아니면 거지인 게 소말리아지!"라는 말처럼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전국민이 해적질을 하는 나라의 국민 중 하나 압켈. 해적질은 분명 나쁜 것이 맞는데 그 해적질의 장면을 오랫동안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만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종교관 또한 헷갈린다. 유럽의 식민지, 노예 시장 등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책을 읽는 동안 궁금함으로 다가왔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는 종종 찾아봤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내가 한 번이라도 자료를 찾아봤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프리카를 찾아본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구급약을 사러 오는 어른들이 가끔 있다. 그냥 주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땐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 손님들이 넌지시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는데 이 정도만 준비하면 되나요? 라든지 아니면 그 나라에서 특히 더 필요한 구급약이 뭐가 있을까요? 라는 식의. 나의 대답은 당연히 어느 나라를 가시나요? 이다.
외국을 가는 경우 젊은이는 워킹 홀리데이의 경우도 있고, 언어연수의 경우, 그리고 해외선교의 경우가 있다. 호주, 미국, 캐나다 등등의 나라로 가는 경우는 전자의 두 경우. 해외선교의 경우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가 대부분. 한번은 손님에게 들은 나라의 이름이 너무 낯설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아프리카 오지의 한 나라였다.
"아프리카에 선교를 가시나요?"
"네. 요즘은 아프리카 쪽을 많이 가요."
우리나라는 기독교의 정통나라가 아님에도 해외선교를 많이 간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기에 이런 말들이 낯설긴 하지만 신기하다는 생각, 대단하다는 생각은 든다. 얼마나 종교를 깊이 믿으면 저런 행동이 나오는건지. 그나저나 아프리카엔 기독교인들에게 선교의 장소로 적당한 모양이다. 아직 선교할 곳이 많기에 이 시골에서도 저리 선교를 가는 모양이다. 그럼 아프리카는 원래 종교가 뭐였을까. <종교>책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종교 분포를 본다.
P.200- 215 정리 <사진 첨부는 나중에>
1. 기독교의 전래
동북아프리카는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인 나일강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기원전 3천년 전에 누비아의 케르마시 근처에 아프리카 최초의 쿠시 왕국이 출현했으며 쿠시인들은 당대의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영속화되는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드러났다. 이후 두번째 왕국이 나파타 근처에서 출현했으며 이들은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아문 숭배를 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수도를 나파타에서 메로에로 옮겼고, 전쟁의 사자신 아페데메크 같은 새로운 신들이 등장했다.
기원후 4세기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악숨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했으며 악숨이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는 과정은 이러했다. 악숨의 에자나 왕의 궁전에는 두 명의 젊은 죄수가 있었는데 이들은 종교적 기능을 담당했던 이들로써 이들의 중재로 왕이 개종을 했고 그 중 푸르멘투스는 악숨 최초의 아바, 즉 주교가 되었다. (죄수의 개입으로 한 나라의 종교가 바뀌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라..왠지 냄새가 난다..죄수가 일부러 잡혀간 걸까? 아니면 우연히 잡힌 죄수가 타국의 제사장 정도였는데 말빨이 워낙에 뛰어나 일국의 왕까지 그 말에 빠진 걸까. 아니면 악숨의 왕이 장자가 아니거나 등의 이유로 정통성이 부정받고 있던 찰나, 새로운 종교를 들이밀어 적자의 자리를 주장하게 되는 걸까. 아..상상만 해도 잼있다. 왠지 얼마 전 읽은 <하자르 사전>을 보는 듯하다. 하자르 왕국 또한 개종 문제를 둘러싸고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를 각각 해당종교의 입장에서 풀이하고 있다. 입장이 다르면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이렇게 개종한 후 악숨의 왕들은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9명의 성인이 전국을 순회하며 사당과 신전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교회와 성소를 세웠다. (윽..이건 좀..)
13세기 솔로몬 왕국이 들어서며 쿠시 왕조는 몰락했고 1973년까지 에티오피아를 통치했다. 솔로몬 왕조는 셈족이었기에 셈족어인 암하라어를 강요했다. <왕들의 영광>을 집필하면서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 발생을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만남으로 설명했고 이 만남으로 아들인 메넬리크가 탄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메넬리크는 예루살렘에서 아버지를 만난 후 유대 율법이 담긴 언약의 궤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에티오피아의 모든 교회의 은밀한 성소에는 이 상자를 상징하는 나무껍질(타봇)이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다.
2. 치유의식
'고통의 치유'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치유의식은, 영적 존재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에 개입함으로써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는 믿음에서 생겨난 종교적 의식이다. 영적 존재로 인해 병을 얻었다고 생각되면 환자는 예언가나 사제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일련의 의식을 치른 환자는 계속해서 종교적 수련을 쌓아 자신이 직접 치유사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이 치유의식의 가장 큰 특징인데 치유사와 환자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치유의 과정을 통해 환자가 치유사가 될 수 있는 과정을 오픈해두었다는 점이다. 즉, 불행과 고통이 오히려 힘과 완전함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크게 보리 의식, 은고마 의식, 자르 의식으로 나뉘는데 소말리아는 자르의식이, 조스고원은 보리의식이, 남아프리카는 은고마의식이 주로 분포한다.
3.지방의식
치유의식이 개인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방의식은 가뭄, 홍수, 전염병 같은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중심이 되는 인물은 역시나 영매인데 은질라, 비투마, 므왈리, 코레코레, 음보나 의식이 지역마다 존재하며 사당이 있다. 주로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4.이슬람교와 수피교단
이슬람교는 7세기에 북아프리카에 전파되었으며,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여 동아프리카의 해안을 따라 내려간 무역로 덕분에 사하라 사막 이남에도 전파되었다. 초기는 대체로 평화로워 사원을 짓고,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으며, 개종자가 점점 증가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유럽의 식민지배가 시작디면서 지하드가 등장했는데 이슬람의 이름으로 수행된 이 성전에서는 비이슬람교 뿐 아니라 엄격하게 준수하지 않는 이슬람인들까지 적으로 간주되었다.
18세기에는 수피교단이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소말리아에는 라시디야 교단이 있다.
5.유럽의 선교
로마 시대에 이미 불아프리카에 정착을 했지만 7세기 아랍인의 침략으로 이슬람교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그리스도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만 규모가 큰 소수종교로 잔존했다. 이후 크게 두 번의 선교활동이 있는데 첫 번째는 15-17세기에 포르투갈 사제들과 무역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슬람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이유, 아프리카 식민지를 넓히기 위한 수단, 아프리카에서 사로잡은 노예들을 무역업자에게 넘겨주는 조건 등이 붙으면서 각자의 이익에 따라 선교를 응하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했다. 콩고의 왕은 개종 후 가톨릭교의 확산에 노력을 기울였고, 베냉의 경우는 노예공급을 거절했고, 와리는 노예공급에 기꺼이 응했다.
두번째 만남은 19세기에 이루어졌으며 왕의 개종이 있는 경우는 백성들의 개종이 잇따르지만, 토착종교에 깊이 관련된 왕들의 경우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선교에 장애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사회에서 조상, 영혼, 신들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선교사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0세기 선교에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전파, 농경과 인쇄 기술의 전파, 의약으로 갖가지 질병을 치료해주는 등 변화가 생기고 있다.
6.독립 그리스도교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아프리카인은 성직에 종사할 수 없다는 유럽 선교사들의 인종차별에 좌절감을 느낀 아프리카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해 독립교회가 창설되었다. 이후 시온교회 운동이 일어났고 종교적 치유, 현지 언어의 사용, 세례 중시 등의 내용이었지만 그 시작은 선교활동이었다.
1920년대에는 예언운동이 널리 퍼졌는데 선교활동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발전했고, 종교적 치유, 꿈, 환상 등을 중시했다. 나사렛 교회, 지상예수그리스도 교회, 해리스 교회, 알라두라 운동 등이 있다. 이들은 예언적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교회 창시자인 (셈베, 킴방구 및 해리스)를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한다는 점에서 에티오피아 교회나 시온교회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식민통치라는 사회적 영향 아래 유행한 독감은 이 종교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는데 예언자들은 아픈 부위를 만져 질병을 고쳐주었고, 넉넉한 성수를 이용해 악으로부터 보호해주었고, 악의 근원에 대항하는 신성한 전쟁을 감행했다. 즉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아프리카 토착종교의 관습을 버릴 것을 촉구했지만, 예언적 인물들은 토착종교를 대신할 영적 능력의 원천을 제공해서 개종자를 모았다.
작가 하상훈이 소설의 주인공을 피랍선원으로 하지 않고 꼬마 해적 모하메드로 한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 이유는 하상훈이 소설을 쓰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시선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각을 취할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을 덮고나서도,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