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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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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땅 속에 난 세상의 구멍을 무척 좋아한다. 개미 구멍도 좋고, 지렁이 구멍도 좋고. 소꿉놀이 구멍도 좋다. 아이들은 흙만 보이면 어디선가 나무 꼬챙이를 주워와서 땅에 구멍을 낸다. 그러다 어느날 아이들끼리 모여 구멍을 크게 만들어도 본다. 구멍을 점점 깊이 파면 지구 반대편에 닿을거야.   

아이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했을까. 여기, 신나게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캠프가 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 한때의 영광으로 진주가 비밀스레 숨어있듯이,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있던 이름뿐인 초록호수 캠프가 그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가로 세로 1.5 미터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판다. 먼저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일찍 가서 쉬어도 된다. 공부도 안 해도 되고, 놀기만 하면 된다. 아! 물론 오락거리? 전혀 없다. 명색이 캠프인데 노는 건 알아서 놀아야지? 뭐. 물론 피곤하면 그냥 암것도 안하고 쉬든지. 테레비도 잘 안 나와. 테레비는 아이들 두뇌건강만 해치니 필요없지, 뭐.

너무 재미난 일도 매일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 날도 생기겠지? 그럼 그런 날은 전갈이나 방울뱀에게 시비를 걸어보는 거야. 아주 살짝~만 물리게 말야. 몸에 열이 나는 동안은 구덩이 파는 신나는 일을 잠시 쉴 수 있거든. 그치만 말야. 노랑 반점 도마뱀은 조심해야돼. 구덩이 파는 일을 영영 못하게 될 수가 있거든. 그것만 조심하면 돼.

이런 멋진 캠프에 어떡하면 갈 수 있냐구? 어른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잘못을 하게 되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아주 명명백백한 잘못을 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이런 거. 길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냄새나는 운동화를 머리에 맞고, 무심결에 신어보는 거. 그리고 잠시 걸어보는 거. 그거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갈 수 있지. 이건 아주 큰 잘못이거든? 이 운동화가 누구건 줄 알고 함부로 신길 신어! 이 운동화는 도둑맞은 운동화일 수도 있고. 유명인의 운동화일 수도 있고. 엄청나게 비싼 운동화일 수도 있는데. 외관이 허름하고 낡아빠졌고, 썩는 양파같은 냄새가 난다고 무시하지 말라구. 외관과 가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운동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증거, 댈 수 있니? 증인 있어? 하다못해 돈이라도 있어? 없으면 당신은 유죄!! 감옥 가는 거 보다는 캠프가 더 신날 거 같지 않니? 신나게 구덩이 파는 일, 재밌을 거 같지 않니? 같이 구덩이 파러, 가지 않을래?

살다보면 억울한 순간이 종종 옵니다. 나는 분명 안 했는데 내가 하는 거를 누가 봤다고 증언을 할 때, 나는 물건을 안 훔치고 그저 길을 가던 중인데 도둑으로 오인할 때, 친구들이 수군대며 사건의 범인으로 나를 몰아세울 때, 친구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그럴 때. 그토록 억울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거 같으세요? 아무리 변명을 해도 안 통하고, 주위에서 온통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미칠 거 같은 억울함에 밤새워 눈물지어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빛 뿐일 때, 그럴 때는 도리없습니다. 나를 굽어보며 지켜봤을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요.

시간은 지금은 너의 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너의 편이 되어 줄거야. <미미 여사의 영웅의 서에서>

시간이 지나면, 너 스스로 정직하면, 너를 믿어주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날 거야. <내 생각>

초록호수 캠프에서 덩치 큰 소년인 스탠리 옐내츠는 그냥 원시인이라 불린다. 원시인은 그곳에서 겨드랑이, 엑스레이, 자석, 지그재그, 제로와 같이 한 팀을 이뤄 매일 구덩이를 판다. 이 중에 원시인을 믿어주는 친구가 있을까. 그런 친구를 만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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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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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1 2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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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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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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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조금만 있으면 개나리가 노란색의 자태를 뽐내기 시작할 터이다. 과거의 그때도 개나리가 꽃눈을 틔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습관처럼 방황은 시작되었는데 하필이면 학교에서 중책을 맡아 제대로 방황을 즐길 수가 없었다. 잠깐 어디 다녀올께, 말 한 마디 없이 훌쩍 떠나면서 얼마나 미안하든지. 그치만 그렇게 가슴에 바람을 넣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어. 그 망할, 개나리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기 직전이었거든. 개나리는 꽃눈이 보였다 싶으면 다음날 바로 흐드러지니까. 그리고 개나리의 노란 색깔은 내 피를 흥분시키니까.

훌쩍 떠나 목적지를 정한 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오빠네 고향 집. 오빠는 남자이지만 여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호모도 아닌, 어정쩡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냥 친구였다. 아무때나 불쑥 찾아가도 되고, 아무때나 있을만큼 있어도 눈치주지 않는 그런 친구같은 존재. 오빠에게 불쑥 전화 걸어서 "몇 년만에 전화하지? 근데 나 좀 쉬고 싶어. 오빠."  "그래? 그럼 놀러 와. 푹 쉬다 가."

버스를 타고 가다 가다 차 오른 쪽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해 바다. 도로 바로 옆이 바다물로 꽉 차 있다. 미리부터 겁이 난다. 아이고야..무슨 바닷물이 도로 바로 옆까지 차 올라와. 아이고..무서워. 흑. 시커멓고 철썩거리는 동해 바다의 위용에 절반은 즐기고 절반은 쫄아서 터미널에 도착해 시골버스로 갈아탔다. 한참을 들어가는데 시골 버스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시장에서 닭을 사서 버스에 오른 할매 덕분에 버스 안은 꼬꼬댁 신나는 소리와 할매들 와장창 수다 소리에 귀가 멀 정도다. 신호등도 없이 길가에 사람만 보이면 버스는 내리고, 할매가 나 여기 내릴래, 하믄 아무데서나 내려준다. 이거는 버스가 아니고,자가용인가요? 

드디어 도착했다. 백암 온천. 무슨 수련원도 보이고, 백암 온천 밑 조그만 마을이 오빠네 동네. 동네를 휘 둘러보니 깨끗하고 괜찮다. 오빠네 엄마는 신이 났다. 불청객이 왔는데 반찬이 한 상 가득이다. 아주 커다란 생선을 쪄서 봄나물이랑 무쳐서 주신다. 찐 생선은 처음인데, 비리한 거 싫은데, 먹어보니 어? 맛있다. 아구아구 먹는데 옆에서 오빠네 엄마는 당신 입에 넣지도 않으시고 생선가시를 발라서 내 숟가락 위에 얹어 주신다. 나도 엄마 있는데. 울 엄마도 있는데 괜히 눈물이 울컥, 나려 한다. 맛있게 먹고 설겆이를 하려고 하니, "아이고, 색시. 손에 물도 묻히지마. 그냥 곱게 있어. 아무 일도 안 해도 돼." 장년한 아들에게 간만에 여자가 찾아오니 오빠네 엄마는 무척 좋은가 보다. 오빠의 성 정체성을 알 길 없는 오빠네 엄마에게 내가 뭐라 할 말도 없고, 오빠와 나는 그냥 싱긋 웃는다. 

하룻밤을 자고나서 오빠는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무슨 동굴 탐험도 시켜주고, 동해바다 구경도 시켜줬다. 저녁에는 백암온천 앞 또랑가에 나오는 뜨거운 물에 발도 담그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집에 와서는 좋은 음악을 듣자며 뭘 틀어주는데 들어보니 과연 좋다. 오빠, 누구 노래야? 전경옥의 혼자 사랑. 아..좋다. 음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며 웃다 울다 그렇게 밤을 보냈다. 다음날엔 오빠가 혼자 여행을 추천해준다. 여행이라고 왔으니 혼자 다녀봐야되지 않겠니. 정 무서우면 따라가주고. 월정사 가는 길이 그렇게 좋다는 오빠의 추천을 듣고 버스길에 올랐다. 왼쪽길로 낭떠러지가 끝도 없이 나 있는 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버스에 앉아서 스릴만점을 만끽하며 기절 직전에서야 월정사에 도착했다. 혼자서 길을 걷고 혼자서 절을 둘러보고 혼자서 밥을 사 먹고 혼자서 하루를 온종일 보내고 돌아왔다. 

다시 오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구 고개길에 미술관이 서 있는 게 문득 보였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며 아저씨~ 내려요~ 소리를 쳤다. 내려서 미술관 앞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문을 스윽 열고 들어갔다.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계셨다. 조용한 미술관. 작품들을 실컷 구경하고 아주머니와 수다에 따뜻한 차도 한 잔 얻어마시니 속이 든든하다. 오빠네서 하루를 더 자고 이제 짐을 꾸려 떠나려 하니 오빠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고작 며칠 묵었는데 못 가게 하신다. 어머니~ 다음번에 제가 알바해서 어머니 약, 우편으로 보내 드릴께요~ 어머니~ 아프시지 말고 오래오래 사세요~ 다음에 또 놀러올께요~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오니 난리가 살짝 났다. 그러나 내 기질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에게 조금만 혼이 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제 개나리를 봐도 그저 두근거리는 정도로 안정도 되었다. 굵직한 행사는 끝이 났지만 끝도 없는 회의 등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온지 일주일인가 한 달인가 지났을 무렵이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몸을 닦는데 가슴에 무슨 점..같은 게 보인다? 뭐지? 가렵지도 않은데 뭐가 났네. 뭐지? 꺄악...어루러기..닷! 마침 얼마전 학교에서 배웠던 게 기억이 났다.  어루러기. 곰팡이균 감염에 의해 생기는 것.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믄 옮을 수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도 쉽게 걸릴 수 있다. 으악! 

오빠네 엄청 더러웠던 집이 문제였나보다. 비염이 심하다 못해 아예 코가 막힌 오빠와 오빠네 엄마는 냄새를 맡지 못하니 집에 더러운 게 있어도 잘 모르셨다. 그래서 이불에서 오래묵어 퀘퀘한 냄새가 났더랬다. 그 이불을 몇 일간 덮고 잤더니 이래 곰팡이꽃이 폈나보다. 내 몸에 핀 곰팡이꽃. 좀 신기했다. 이틀간 지켜보며 틈나면 가슴을 들여다보며 구경을 하다가 이놈이 자리를 잡을까 살짝 겁이 나서 병원을 들렀다. 의사샘이 보시더니 다행히 아직 자리를 안 잡았다고 연고만 처방을 주신다. 그리고도 안 나으면 그때는 먹는 약을 써보자시는데 다행히 일주일만에 가슴에 핀 곰팡이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직까지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올해도 약속처럼 봄이 왔고 개나리는 하루아침에 피어나겠지. 개나리를 생각하니 나는 왠지 오래전 내 가슴에 잠시 살았던 곰팡이꽃이 생각났다. 외로운 나를 살짝 위로해주고 갔던 곰팡이꽃.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곰팡이꽃. 나 역시 너를 대환영해주지는 않았지만, 너와 있는 일주일간은 신기한 경험이었어. 사람 몸에 꽃이 피는 느낌. 나중에, 한참 나중에 다시 내 몸에 꽃이 핀다면 그때도 역시 너겠지. 그때 우리 다시 만나자. 안녕, 곰팡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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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9 2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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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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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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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4: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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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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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저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인가봐요. 막 친구들끼리 수다떨고 놀다가 제가 다가가서 말을 하면 제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친구들이 저를 대해요. 제가 벽, 같은가봐요."

하얀 벽
벽이 말한다.
-너도 이제 혼자구나
-내가 왜 여기 있냐구 글쎄 생각나 네가 나보고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거 같다고 했었어
-내 이름은 없었어 신학기가 되어 모두들 새 반을 배정 받았는데 내 이름을 아무도 부르지 않았어 내 이름이 없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어 잊어버린거야 나를 그때 난 정말 벽이 되었어


놀란 나는 말문을 겨우 연 조카가 고마웠다. 한달간 조카와 같이 강변을 거닐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뭘 시켜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결과 드디어 조카가 입을 열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내성적이 된다. 준비없이 당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토록 밝고 화사하던 아이가 어느결에 성격이 백팔십도로 바뀌어 어두침침한 아이로 변해서 걱정이 컸는데 아이의 말문으로 치료의 첫 신호탄이 울린 것이다. 알고보니 왕따 시키는 아이는 작년까지 조카의 친한 친구였다. 집안이 가난하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하던 아이는 자기와 정반대이며 선생님께 이쁨까지 받는 조카와 잘 지내면서도 늘쌍 눈에 가시로 조카를 여겼나 보다. 학년이 바뀌면서 그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친구를 왕따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손톰이 자라날 때
선주가 뺨을 감싸 쥐었다. 손이 얼얼했다. 내가 선주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마치 궁지에 몰린 쥐새끼, 아니 고양이처럼. 선주는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툭 튀어나온 눈을 커다랗게 뜨고 벌벌 떨면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 놀란 건 선주만이 아니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서 있었다. 심장이 조그맣게 오그라든 채 굳어 버린 것만 같았다. 선주의 뺨에 난 손톱자국이 독이라도 오른 것처럼 벌겋게 부어올랐다.

평소에 담임이 조카에게 관심가지는 게 싫었던 아이는, 조카가 대장놀이에 기질이 없는 걸 눈치챘다. 선생님이 잘 해주는 애는 대부분 그 반에서 대장질을 하는데 개중에 순한 애들은 그걸 못한다. 그렇담 조카를 왕따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 먼저 다른 친구에게 조카 흉을 본다. "지가 뭘 그리 잘나서 저리 잘난 척이다니? 공부 좀 잘 하믄 다인가? 선생님은 뭘 보고 쟤만 이뻐 한다니? 아이 재수없어." 이런 식으로 몇 마디만 오가도 동조자가 생긴다. 그 다음번엔 우리 노는데 조카가 끼일 때 슬쩍 조카 말을 몇 번 씹어준다. 그럼 같이 흉보던 다른 애들도 슬쩍 같이 씹게 되는데 이때 조카의 반응을 살펴서 조카가 대놓고 발끈하면 시기를 조절해야 되고, 조카가 상처를 받은 눈치면 본격적으로 따를 시키기 시작하면 된다. 사람 한 명 왕따 시키는 거, 일도 아니지 뭐. (물론, 내 속이 그리 편치는 않다구. 나도 알아. 친구를 괴롭히는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거. 그래서 어쩌라구? 당신이 나를 알아? 나도 괴로워. 나도 괴롭단 말야. 그치만..나도..나도..얘처럼 그런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싶고, 나도 얘처럼 선생님에게 이쁨받고 싶고, 나도..나도..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싶단 말야. 우유값이 없어서 징징거리는 엄마 목소리 더는 듣기 싫어. 싫다구..난, 어쩜 친구가..되고 싶었던..걸까?)

난 네가 되고 
예전엔, 내가 말하기 전에 주영이가 먼저 그 말을 했다. 그럼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어색하게 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말을 삼키며 다문 입안에 이물질이 가득 들어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쾌하고, 불길하기까지 한 기분이. "내가 무슨 말이든 하려고만 하면, 네가 먼저 해 버렸잖아. 내가 할 말을 읽고, 일부러, 일부러 방해했잖아!" '그걸 이제 알았어? 병신 같은 년.'

자라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특히나 한국적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무척 많다. 가난한 집은 가난한 집대로, 학원 순례하는 아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 그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아이들. 그 스트레스는 어디로 갈까. 풀 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동기에게 푸는 아이도 생기겠다. 아이에게서 자라나는 잔혹성. 아이는 순수하기에 동시에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고누다
난 그 교실에서 총을 쏜 거다. 20발의 총알을 가지고. 탕탕탕. 신나게 총을 쏘다가 마지막 한 발이 남았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잠시 뜸을 들인 거다.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던 거다. 내게 보라는, 마지막 총알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난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에도 보라를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난 모두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손가락으로 겨누어 총을 쏘면 순식간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둘로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 나는 그런 능력으로 학급 친구들을 하나만 남겨놓고 죄다 쏘아버렸다. 둘로 나누어지자마자 진짜는 쏜살같이 가짜를 먹어삼킨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난 그 장면이 무척 잔인했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총을 겨눌까. 이제 반에는 보라 한 명밖에 안 남았다. 마지막 남은 총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게 이런 능력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나는 왜 다른 얘들이랑 다를까. 왜 다른 얘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을까. 혹시, 내가 총을 겨눈 걸..친구들이 알까. 설마..내가 외롭다..거나 그래서, 보라를 남겨놓은 건 아니..겠지? 게다가 보라는 이미..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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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7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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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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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야, 잘 가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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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여고생 3명이 왔다. 그중 한 명은 엄청 뚱뚱했다. 겨울 교복을 입었음에도 허리라인을 넘어서 삐져나온 살의 느낌을 알 수 있었고, 교복 치마 밑으로 드러난 다리는 코끼리 다리 그 자체였다. 나는 경악에 찬 눈으로 덩치를 슬금슬금 쳐다봤다. 덩치는 성격이 무척 좋은지 이 친구를 중심으로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게 느껴졌다. 여고생들은 주로 약국에 니베아나 챕스틱 등의 립글로스를 사러 와서는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온갖 걸 구경하다가 가곤 한다. 이 친구들도 예외는 아닌데 덩치가 이 립글로스 색깔 좋다, 라고 하면 와하고 붙어서는 지네들끼리 키득거린다. 그러다 덩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또 따라다니면서 소란스럽다. 실컷 놀다가 계산을 끝내고 약국을 나가는 세 명 중 덩치를 유심히 보았다. '저 정도면 한 백 키로 나가나? 음..못해도 팔십키로는 나가겠지? 아유..뚱띠..살 좀 빼지. 숨 쉬기도 힘들텐데 말야. 살이 많으면 소아당뇨도 오기도 쉽고, 어쩜 혈압약도 이십대부터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입고픈 이쁜 옷도 못 입을텐데 말야. 집에서 관리 좀 안 해주나?'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아, 잘 가>를 펴들었고, 책 속에 나오는 뚱뚱한 아이 경실이를 만났다.  


경실이는 주로 식사를 밖에서 해결한다. 엄마 아빠가 모두 살아있고, 집이 부자임에도. 요새 얘들이 김밥나라 등에서 식사를 해결하듯 말이다. 부산 사는 울 조카들도 엄마 아빠 다 일 나가시니 지네들끼리 김밥나라 가서 저녁을 종종 시켜먹는 걸 봤더랬다. 물론 경실이는 엄마가 일을 하진 않지만 어른들 세계의 잡다한 사정 때문에 집에서 차려주는 밥을 잘 먹지를 못한다. 그래서 엄마가 손에 쥐여준 돈으로 주로 찐빵집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다행히 경실이는 찐빵을 무척 좋아한다. 팥 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진빵을 한 번도 제대로 먹어 보질 못했다. 달콤한 찐빵의 소가 그렇게 좋다는데 나는 그렇게 찐빵이 싫다. 간혹 속이 보이지 않는 빵이 보여 호빵인줄 알고 한 입 배어물었다가 팥이 들어있는 찐빵이면 입에 물었던 걸 고대로 뱉어 버릴 정도로 나는 찐빵을 싫어한다. 그래서 경실이가 좋아하는 찐빵을 찐만두로 바꾸어 읽어봤다. 그랬더니 경실이가 노발대발이다. 찐빵은 먹으면 배 속에서 별이 떠다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양파 속등이 들어간 찐만두는 별이 될 수 없다고 내게 호통을 쳐댄다. 찐빵을 계속 먹으면 살이 더 찐다는 걸 아는데도 중단하지 못하는 아이, 경실이. 찐빵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 찐빵을 먹으면서 위안을 받는 경실이. 경실이에게 찐빵의 존재는 단순히 먹는 음식 이상이다. 먹으면 뱃속에 별이 떠다닐 수 있는 음식. 그런 음식이 내게도 있었을까. 
  

경실이에게는 찐빵 말고 또 하나의 위안이 되는 존재인 일기장이 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현실의 뚱뚱하고 못 생긴 자신이 싫어진 경실이는 일기장에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인 미미를 사용한다. 일기장의 주인공은 경실이가 아니라 미미이다. 현실의 경실이가 울고 있어도, 거짓말을 해도, 일기장의 미미 탓이 아니다.일기장 속의 미미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런 대체품은 청소년기를 겪는 이에게 누구나 하나씩 있거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감춰놓을 수 있는. 그건 일기장이 될 수도 있고, 절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그 일기장 속에 경실이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이복언니 이야기도 적고, 딴 살림 차려 집을 나간 아빠 이야기도 적고, 상상 속의 아틀란티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현실에서의 독서클럽 친구들에게는 전혀 하지 못하는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이스박스에서 꺼내놓은 색깔이 선연하게 다른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녹아 서로 섞이듯 사건들은 서로 섞이게 마련이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알지 못하는 일기장 속의 비밀 이야기가 다른 누구도 아닌 경실이 입에서 튀어나와 한 방울이 섞이는 듯 하더니, 이윽고 조금씩 조금씩 섞이어 간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뚱뚱하고 못 생긴 얼굴 때문에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엄마의 눈물에도 선뜻 다가가 위로를 해주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고, 든든한 오빠라고 생각하는 찐빵집 오빠가 아픈 걸 알고도 걱정은 되지만 찾아가보리라는 마음을 먼저 먹지 못하고, 늘 주춤주춤, 뒷짐만 지면서 속으로만 걱정하는 이 연약한 소녀의 황량한 바람이 부는 마음에서 따뜻한 눈물같은 한 방울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 한 방울은 이윽고 친구들의 꿈과 서로 섞여 무럭무럭 자라다 크나큰 위기를 맞게 된다. 친구들은, 경실이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꿈꾸어 오던 그 무언가를 누군가가 비웃거나 타박을 주게 된다면, 나의 꿈이 누군가에 의해 발가벗겨져 웃음을 사게 된다면, 내 꿈을 누군가가 오해해 전혀 다른 무엇가로 바꾸어놓아 공개를 해버린다면, 꿈이 협박을 당한다면, 이로 인해 다시금 외톨이의 심정을 느끼게 된다면 당신은, 우리는, 어떻게 할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언젠가 꾸었던 꿈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은 그 꿈들이
숨죽이며 누워 있는 지층일지도 모릅니다.
그 꿈의 지층을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가장 강렬했던 때,
그때의 얼굴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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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1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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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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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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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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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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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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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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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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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9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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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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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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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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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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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4: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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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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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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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을 찾아간 소년 네버랜드 세계 옛이야기 14
백희나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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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북풍이랍니다. 저, 북풍은 아주 잘 생긴 바람이에요. 콧대도 높구요. 멋지구리 목도리를 두르고, 아주 우쭐거리면서 이 거리, 저 거리를 쏘다니지요. 흥이 날 때는 완전 쌩쌩 소리를 내며 거리를 치닫구요, 음..조금 기운이 빠지면 산들산들거리면서 농땡이도 부리기도 해요. 헤헤. 어때요 저? 완전 멋있죠? 저를 까도북풍이라 불러 주시와요!

아. 그런데 말에요. 어느날 제가 신나서 좀 세게 달렸나봐요. 왜 있잖아요. 신나서 하면 암 것두 안 보이잖아요. 그날따라 좀 달렸더니 피곤해져서 집에서 쉬었어요. 근데 왠 꼬맹이가 찾아오네요? 어. 누구니, 너는?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손을 앙증맞게 꼭 쥐고 있는 게 예전의 저를 보는 거 같네요. 저도 저렇게 귀여운 시절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 자세히 보니 요전에 봤던 꼬맹이 같기도 해요. 오트밀을 들고 가는 걸 봤어요. 그리곤 기억이 없는데.. 아이쿠. 어쩜 좋아요. 저 때문에 꼬맹이가 오트밀을 흘려서 아프신 엄마께 드릴 음식이 없다고 하네요. 아..이런 어쩌지? 그날 내가 확실히 너무 달리긴 했어. 그렇지만 나는 달리는 게 직업인 북풍인데..에잇, 그냥 내 탓이 아니라고 해버릴까?  음..안돼 안돼. 나는 책임감 강한 북풍이란 말이야. 

마침 집안을 둘러보니 식탁보가 있어요. 하하. 말하는 북풍네 집이니 당연히 요술 식탁보겠지요? 허허. 이걸 들려서 보내야겠어요. 아, 근디 또 찾아오네요? 뭐시라? 고장났다구? 에이..나는 AS도 철저한 북풍맨인데 어쩌지? 음..아! 이번에는 일 잘하는 양을 들려보내면 되겠다. 이제 안 오겠지. 휴우..실은, 좀 쉬었다 저도 다시 일 하러 가야 되서요. 요새 같은 겨울철엔 북풍이 할 일이 많답니다. 제가 겨울동안 세차게 불어야 봄이 제대로 오거든요. 뭐든 제대로 해야지요. 

   

ㅎ. 실은 그래서 제대로 일을 했는지 확인차, 꼬맹이네 집에 살짝 들렀더랬어요. 어? 근데..꼬맹이 어머니가 아프신가봐요. 이불에 쏘옥 들어가서 나오시질 않네요. 아..따뜻해 보이는 이불이다. 나도 빨랑 이번 일 마무리하고 봄바람에게 인수인계하고 따뜻한 남쪽나라 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그나저나 꼬맹이 엄마도 코가 좀 높으..시네요? ㅎ 괜히 반갑습니다. 그럼 이제 꼬맹이에게 가볼까요? 꼬맹이가 지금 있을만한 곳은 길거리 여관 하나 뿐이니, 거기 가봐야겠다. 쓔웅~ 

 

하하하!! 꼬맹이 자는 거 좀 봐요. 아이고..지네 엄마랑 꼭같이 코가 높구나. 어째 꼬맹이에게 친근감이 가더니, 아주 세련된 코를 가졌구나. 자식. 아이쿠. 그나저나 이 꼬맹이는 잠버릇이 왜이렇게 험해? 이불을 다 걷어차는구먼. 근데 저기 다리에 난 저거는 뭐지? 혹시..털..?  아이쿠..이놈 이거..이제 어른이 되어가는구먼. 허허. 벌써 다 컸어. 그나저나 저 마귀같이 생긴 할망구는 뭐지? 왜 꼬맹이 자는 걸 보고 있지? 음..알겠군, 알겠어. 이제 확인은 다 했고, 혹시나 만약에 다시 한 번 더 찾아오면 마지막으로 이걸 줘야겠어. 소년과 엄마가 행복한 꿈을 꾸는 걸 보고 싶군. 음화화. 나는야, 멋진 북풍맨.
 

<실지 동화책을 북풍의 시각으로 조금 각색해서 올려봅니다. ^^
북풍이 마지막으로 소년에게 준 이것은 무엇일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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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7 1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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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17: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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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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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9 0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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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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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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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9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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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2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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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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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4: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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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2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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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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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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