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작은 조카를 혼내켰다. 우리 집에서 작은 조카를 혼내는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주로 나인데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조카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새는 집에 아이들이 외동이나 딸랑 둘인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을 오냐오냐 받들고 맛있는 먹거리도 어른들 먼저 챙기지 않고 그저 많이많이 먹어라~ 하는데 난 그게 싫다. 왜냐면,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것도 스무살도 넘었을 때, 내가 얼마나 등신이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울 엄마는, 온 식구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시절에 울 엄마는, 생선대가리를 유독 좋아하셨고, 나물을 좋아하셨으며, 고기를 먹을 땐 야채를 배불리 드셨고, 어쩌다 온 식구가 외식을 하러나간 중국집에선 짜장면이나 짬뽕에서 우리들이 가려놓은 야채건더기만을 드셨다. 난 엄마가 야채를 아주 좋아하시는 줄 아셨고, 맛있는 생선대가리를 엄마에게 매번 챙겨주기까지 했다. 어느날 친구들과 대화 끝에 울 엄마는 생선대가리를 좋아해! 자신있게 이야기했다가 옆의 친구들이 피식! 웃었다.
"야..니네 엄마가 니네 많이 먹일려고 수 쓰신 거잖아. 니네 엄마야 그렇다손쳐도 너는 정말 그걸 사실로 알았어?
야..야..감성 좀 키워. 엄마가 그동안 많이 서운했겠다야. 엄마 앞에 생선대가리를 놔주다니, 그게 말이 되냐?"
ㅠ.ㅠ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가 생선을 발라줘야 겨우 한 젓가락 먹는 시늉을 해서, 그래서 생선대가리가 엄마에게는 맛있는 줄 알았다. 생선은 대가리보다 살이 더 맛있는 건 줄 몰랐다..라는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왜냐면, 생선대가리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에서 엄마는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 이외의 것들, 찌끄레기를 주로 처리하셨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을 후로 난 엄마에게 생선대가리를 절대 주지 않았는데 헷갈리게도 아빠는 생선대가리를 정말로!!! 좋아하신다. 와작와작 씹어서 드시며 생선 눈알도 막막 드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빠는 생선 살도 좋아하시고 생선대가리도 좋아하신다. 다만 가족들이 같이 먹을 경우에는 주로 생선대가리를 먼저 드시고 생선 살은 나중에 드신다. 자식이 배불리 먹기를 바라는 부모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인 걸까.
암튼, 나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혼자서! 터득했지만 작은조카는 음식을 너무너무너무 밝힌다. 공부도 잘 하고 집안일도 잘 돕고 이모 약국 일까지 잘 도우면서도 뭔가 더 도울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녀석이 먹는 거엔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다. 한때 어린이 유괴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우리는 조카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먹을 거 사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돼!"
이런 거는 안 통했다.
"우리가 더 맛있는 거 사줄테니, 누가 먹을 거 사준다고 하면 이렇게 말을 해. "저는 집에서 더 맛있는 거 사주세요." 라고 말야"
이런 거는 겨우 통했다.
엊그제 토요일에 식구들끼리 나간 외식에서 하필이면 작은 조카가 속이 불편했다. 칠리 새우가 한가득 차려진 상을 쳐다보며 작은 조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먹고 싶은데, 너무 먹고 싶은데, 하필이면 속이 안 좋다니..정말로 슬퍼하는 조카 앞에서 우리는 미안했지만, 음식을 남길 수 없어서, 평소에 조카의 위대함 때문에 덜 먹어야했던 칠리 새우를 맘껏 먹었다. 양이 작은 우리는 맘껏 먹어야 3개 이상 먹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큰조카는 4개 먹고 아주 뿌듯해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작은 조카는 학원시간이 애매해서 앞으로 저녁은 약국에서 먹기로 했다. 작은 조카의 삶에 먹을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엊그제그런 시간을 즐기지 못한 조카를 위해 오늘 저녁엔 칠리 새우를 시켜줬다. 단골이라 그런지 칠리 새우가 생각보다 푸짐했다. 새우의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갯수는 서른 개도 훨씬 넘어보였다. 맛있는 음식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주위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입에 넣기 바쁜 작은 조카를 위해 고르게 3등분을 할 생각이었던 계획을 변경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 굳이 나눌 필요가 없어보였다. 맛있는 걸 한 입 먹고 나니 문득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에게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동생의 마음이랄까. 언니는 수업 중이어서 조금 있다가 내려온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를 했고 조카도 통화내용을 들었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손님은 계속 왔고, 나는 몇 개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중단을 했지만 작은 조카는 수저를 놓지 않았다. 어쩌나 볼 심산으로 계속 휴게실과 약국을 들락거리며 조카를 지켜봤다. 열 개도 더 남았던 새우는 이제 마지막 하나를 남겨놓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조카의 입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 언니 새우 하나도 못 먹겠다, 싶어서 조카교육을 시작했다.
"어이쿠..그 많던 새우가 다 어디 간 거야? 음...우리 조카가 맛있는 거 앞에서 또 깜빡했구나.. 이모가 뭐라고 했지?
맛있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맛있는 법이라고 했지? ..그래..잘 기억하는구나..이모가 엄마에게 통화하는 거 들었어?
..그래..그것도 기억나는구나..그럼, 엄마가 조금 있음 내려오겠구나? 조카는 엄마 아들인데, 엄마는 누가 챙겨야되지?
..그래..엄마아들이 엄마를 챙겨야지. 이모보다는 아들이 더 엄마를 챙겨야겠지?
..근데 깜빡하고 그 많던 새우를 하나만 남기고 다 먹어버렸어? 이모가 말 하지 않았으면 그 남은 하나도 다 먹을 뻔 했구나..
엄마가 칠리새우 먹으러 내려왔다가 칠리새우가 하나도 없으면 놀라시겠다그지..
이모하고 또 다른 이모하고 먼저 일어난 이유를 모르겠어? 일부러 조금 덜 먹고 일어난거야. 엄마도 먹어야 되니까.
자..다음 번에는 까먹으면 안돼~ 맛있는 건 누구에게나 맛있는 법이다! 꼭 명심해! "
실은 조카는 교육 받은대로 행동을 했다. 얼마전까지의 교육은 이러했다. 하도 남 생각 않고 맛있는 걸 얌냠 먹어서 자! 그렇다면, 일단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먹어라. 급히 먹지 말아라. 다른 사람들이 먹을 때까지 기다려줘라. 혹 사람들이 배를 다 채우고 일어났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이 남아있을 경우, 그때는 다 먹어도 된다. 그전에는 타임을 계산해서 적절히 조율해라. 이랬는데, 조카는 여기까지만 딱 생각한 거다. 사람들이 다 일어났으니 남아있는 맛있는 음식은 다 자기꺼! 내꺼! 내꺼!
ㅎ 조카가 남아있는 맛있는 칠리새우를 보고 얼마나 황홀해했을지 상상이 된다. 조카는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하나씩 먹었고, 누구에게 뺏길 염려도 없이 혼자서,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했다. 곧 내려올 지네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오늘 하나 더 배운 걸 조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제발 좀 빨리 이해했으면 좋겠다. 아..그 당연한 걸 왜그리 이해못하나 싶기도 하지만...욕심 차원을 떠나서 순수하게 음식을,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고, 음식 앞에서 행복해하는 조카가 많이 귀엽다. 많이 사랑스럽다. 혹시 조카라서 그런가? 남이면 안 그럴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