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어제 저녁 퇴근 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인강(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말이다. 수업의 주제는 여성의 폐경기였다. 선생님이 우선 여성의 생식기에 대해 설명을 했고 나는 자세히 보려고 화면 캡쳐를 했다. 화면 아래에 질(vagina 바지나)이 보이고 자궁(화면의 초록색 부분)이 보이고 양쪽으로 난소(ovary 오바리)가 보이고 오른쪽은 난소를 절반으로 쪼갠 것이다. 난자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기 위해 화면을 확대해서 다시 설명을 하셨는데,

 

 

 

 

 

나팔관(fallopian tube 팔로피안 튜브) 밑으로 난소에서 난포(follicle 폴리클)가 자란다. 난포는 1차, 2차를 거쳐 성숙난포(graffian follicle 그라피안 폴리클)가 된 후 아래 중앙의 황색 난포에서 알이 떨어져나온다. 요 녀석이 난자인데 이제 장차 정자와 만나러(데이트하러) 싸돌아다닐 예정이다. 난자를 낳고 힘이 딸린 난포는 늙어서 황체(corpus luteum 코퍼스 루테움)가 되어 자식인 난자를 위해 늙은 몸에서 각종 호르몬을 짜내어 난자에게 갖다바친다. 그것조차 마친 황체는 이제 백발(알비노) 노인이 되어 생을 마친다. corpus albicans(코퍼스 알비칸스).

 

 

 

 

 

 

황체가 만들어내는 호르몬으로 여자는 임신도 하고 생리도 하는데 이 호르몬을 조절하는 기관이 바로 뇌하수체이다. 이 뇌하수체는 또 시상하부가 주재를 한다. 시상하부가 어떻게 생겼더라..궁금하니 수업이 진도가 안 나간다. 아..이제 겨우 10분 들었는데.. 일단, 잠시 중지시켜놓고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를 찾아본다. 잠깐만 찾아보지 뭐. 아..맞다. 저렇게 생겼었지. 마치 남자의 거시기처럼 덜렁덜렁 생긴 저거. 뇌하수체다. 뇌하수체 조금 위는 시상하부.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아까 봤던 corpus란 단어가 여기 또 나온다. 뇌량(corpus callosum 코퍼스 칼로섬). 음..corpus의 뜻이 궁금해졌다. 뭐길래 뇌량에도 나오고 황체에도 나오는걸까.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길래. 네이버 등에 물어보니 이렇게 나온다. 문학에서는 집대성. 의학에선 무슨무슨 '체'라고 해서 몸 체 자의 의미로 쓰인다. 아..그래서 황체란 말에 저 코퍼스가 붙었구나.. 그럼 아까 나온 황체에서 luteum 의 뜻은 따로 또 있을까? 찾아보니 노란색의 의미이다. 아하. 그래서 노란 몸, 황체로구나~ 음..그럼 혹시.. 요새 각광받는 눈 영양제 루테인(lutein)과는 비슷한 걸까? 왠지 발음이 비슷한데 말이다. 

 

빙고~ 

 

루테인은 난소의 황체 세포 안에 잇는 황색 색소의 호르몬이다.

식물의 엽록체 속에 많이 있는 색소로 카로틴과 함께 널리 분포하는 천연색소의 하나이다.

옥수수, 고구마, 당근, 토마토, 시금치, 케일에 많다.

 

 

황반변성을 막아줘서 눈의 노화를 막는 루테인이 그러니까 노란색의 대표주자. 황반변성은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노란색)이 변성되어서 생기는 질환인데 노란색 그러니까 이것도 결국엔 색소이론의 일종이 되겠구나. 인체를 오장육부로 나누어서 간심비폐신의 자리에 적청황백흑의 색깔을 배치시키고, 자신에게 부족한 장기의 기운을 음식이나 옷에서 보충하는 이론.

 

 

다시 뇌로 돌아가서,

 

 

 

 

 

 

 

 

칼로섬은 뇌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식물학적으로 땅나리(lilium callosum)를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종소명 callosum은 자색반점의 의미. 아..보인다 보여..주근깨처럼 자잘한 작은 점들. 그러고보니 앞의 뇌량에서 반점이 조금 보였어. ㅋㅋ 그렇구나..반점. callosum의 뜻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뇌량. 뇌들보. 변지체.

 

뇌와 뇌를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이니 뇌량이겠고, 양쪽 뇌를 떠받치는 역할도 하니 뇌들보겠고, 근데 변지체는 또 뭘까? 변지..를 찾아봤다.

 

표피가 잦은 마찰로 단단하게 된 자리. 추위 따위로 튼 살갗, 굳은 살, 못 과 유의어.

 

아하하. 여기서 완전 뿜었다. 예전에 이웃님 블럭에서 못이 박이다..를 읽었던 기억이 나버린 거다. 아..웃겨..그러니까 내 공부가, 폐경기로 시작한 내 공부가, 돌고 돌아

 

못이 박히다..는 틀린 표현. 못이 박이다..가 맞는 표현으로 끝이 났다.

 

 

오늘 나는 공부를 많이 했다. ( ")

이제 3월도 되었고 서서히 가게도 한산해지는데 나는 되려 신나서 근무 중에 이런 짓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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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09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첫번째 사진 밑의 글은 순전히 달사르님의 구어체 문장? 강의 하셔도 잘 하시겠어요 ^^
저도 이 페이퍼 읽으면서 공부 많이 했네요.
'사구체'가 신장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뇌에도 있네!' 이러면서 저도 지금 저 단어 찾으러 다닐 참입니다 ㅋㅋ

달사르 2012-03-07 22:41   좋아요 0 | URL
아하하. 넵! 제 사투리임돠~ 수업하시는 샘은 깔끔한 멘트를 구사하시는데 제 귀에는 왜 자꾸 저런 식으로 번역되어서 들리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글치여? 이렇게 포스팅을 해놓으면 담에 까먹어도 또 볼 수도 있구요. 공부가 제법 되거든요. 아하! 뇌사구체! 저건 저도 못봤네요. 찾아보시고 재미난 에피소드 있으심 살짝 알려주시와요. ^^

그나저나 저 수업이 엊그제 끝이 났더군요. 아직 2주는 남았는줄 알았는데 수업종강날도 엉터리로 알고 있었더라구요. 아유..덜렁거리는게 이렇게 뽀록이 납니다.ㅠ.ㅠ (수업 덜 들었는데 벌써 끝나고..ㅠ.ㅠ)

양철나무꾼 2012-03-0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hnine님 의견에 동감이요.
넘 재밌어요, 강의하시면 안 졸고 잘 들을 자신 있어요~^^

저 누구 블로그인지도 기억하고 있지요.
근데, 더이상 그 분 블로그에서 저 관련 글 읽을 수 없겠죠?


달사르 2012-03-07 22:45   좋아요 0 | URL
하하. 저 수업이 새로 개강하면 그때 또 재미난거 찾아볼께요. 양철나무꾼님이랑 hnine님이랑 좋아해주시니까 왠지 제가 강사가 된 느낌입니다!

아! 못이 박이다! 저 부분요? 저거 후와님 블럭에서 읽었어요. 읽은지는 꽤 되어서 언제인지는 모르겠구요. 후와님 글이 느낌이 좋아서 종종 들릅니다. 힛.

saint236 2012-03-0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궁금한 것은요 왜 성에 관한 교육은 항상 저렇게 복잡하게 할까요? 뇌구조가 어떻고, 호르몬이 어떻고, 나팔관이 어떻고...당최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을 이야기들이....

달사르 2012-03-07 22:51   좋아요 0 | URL
아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을 저런 식으로 하면 다들 졸려하겠군요. 그래서 강사님들이 좀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나 봅니다. 위의 내용은 폐경기가 주제라서 저 부분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성교육에 대한 부분은 저 부분을 살짝 터치하는 정도로 언급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듣는 이가 젤루 궁금해하는 걸 집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요새는 뭐 여고생 뿐 아니라 여중생도 노레보 처방전 들고다니는 시대인지라 약국에서도 여중, 여고생과 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곤 한답니다. 뭐..날짜 피임법의 무의미성이라든지..배란주기 확인법이라든지..이런걸 학생들이 물어보더라구요. ^^

꼬마요정 2012-03-0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음..음...
(이해 못하고 도망가는 1인)ㅜㅜ

달사르 2012-03-07 22: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어디 도망가셔욧!
땅나리 이쁜 사진은 보고 가셔야지욧! ^^
 

 

 

오늘도 작은 조카를 혼내켰다. 우리 집에서 작은 조카를 혼내는 악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주로 나인데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조카의 심각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새는 집에 아이들이 외동이나 딸랑 둘인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을 오냐오냐 받들고 맛있는 먹거리도 어른들 먼저 챙기지 않고 그저 많이많이 먹어라~ 하는데 난 그게 싫다. 왜냐면,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것도 스무살도 넘었을 때, 내가 얼마나 등신이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울 엄마는, 온 식구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시절에 울 엄마는, 생선대가리를 유독 좋아하셨고, 나물을 좋아하셨으며, 고기를 먹을 땐 야채를 배불리 드셨고, 어쩌다 온 식구가 외식을 하러나간 중국집에선 짜장면이나 짬뽕에서 우리들이 가려놓은 야채건더기만을 드셨다. 난 엄마가 야채를 아주 좋아하시는 줄 아셨고, 맛있는 생선대가리를 엄마에게 매번 챙겨주기까지 했다. 어느날 친구들과 대화 끝에 울 엄마는 생선대가리를 좋아해!  자신있게 이야기했다가 옆의 친구들이 피식! 웃었다.

 

"야..니네 엄마가 니네 많이 먹일려고 수 쓰신 거잖아. 니네 엄마야 그렇다손쳐도 너는 정말 그걸 사실로 알았어?

야..야..감성 좀 키워. 엄마가 그동안 많이 서운했겠다야. 엄마 앞에 생선대가리를 놔주다니, 그게 말이 되냐?"

 

ㅠ.ㅠ

 

생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가 생선을 발라줘야 겨우 한 젓가락 먹는 시늉을 해서, 그래서 생선대가리가 엄마에게는 맛있는 줄 알았다. 생선은 대가리보다 살이 더 맛있는 건 줄 몰랐다..라는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왜냐면, 생선대가리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에서 엄마는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 이외의 것들, 찌끄레기를 주로 처리하셨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을 후로 난 엄마에게 생선대가리를 절대 주지 않았는데 헷갈리게도 아빠는 생선대가리를 정말로!!! 좋아하신다. 와작와작 씹어서 드시며 생선 눈알도 막막 드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빠는 생선 살도 좋아하시고 생선대가리도 좋아하신다. 다만 가족들이 같이 먹을 경우에는 주로 생선대가리를 먼저 드시고 생선 살은 나중에 드신다. 자식이 배불리 먹기를 바라는 부모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인 걸까.

 

 

암튼, 나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혼자서! 터득했지만 작은조카는 음식을 너무너무너무 밝힌다. 공부도 잘 하고 집안일도 잘 돕고 이모 약국 일까지 잘 도우면서도 뭔가 더 도울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녀석이 먹는 거엔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다. 한때 어린이 유괴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 우리는 조카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먹을 거 사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돼!"

 

이런 거는 안 통했다.

 

"우리가 더 맛있는 거 사줄테니, 누가 먹을 거 사준다고 하면 이렇게 말을 해. "저는 집에서 더 맛있는 거 사주세요." 라고 말야"

 

이런 거는 겨우 통했다.

 

엊그제 토요일에 식구들끼리 나간 외식에서 하필이면 작은 조카가 속이 불편했다. 칠리 새우가 한가득 차려진 상을 쳐다보며 작은 조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먹고 싶은데, 너무 먹고 싶은데, 하필이면 속이 안 좋다니..정말로 슬퍼하는 조카 앞에서 우리는 미안했지만, 음식을 남길 수 없어서, 평소에 조카의 위대함 때문에 덜 먹어야했던 칠리 새우를 맘껏 먹었다. 양이 작은 우리는 맘껏 먹어야 3개 이상 먹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큰조카는 4개 먹고 아주 뿌듯해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작은 조카는 학원시간이 애매해서 앞으로 저녁은 약국에서 먹기로 했다. 작은 조카의 삶에 먹을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엊그제그런 시간을 즐기지 못한 조카를 위해 오늘 저녁엔 칠리 새우를 시켜줬다. 단골이라 그런지 칠리 새우가 생각보다 푸짐했다. 새우의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갯수는 서른 개도 훨씬 넘어보였다. 맛있는 음식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주위 사람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입에 넣기 바쁜 작은 조카를 위해 고르게 3등분을 할 생각이었던 계획을 변경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 굳이 나눌 필요가 없어보였다. 맛있는 걸 한 입 먹고 나니 문득 언니가 생각났다. 언니에게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동생의 마음이랄까. 언니는 수업 중이어서 조금 있다가 내려온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를 했고 조카도 통화내용을 들었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손님은 계속 왔고, 나는 몇 개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중단을 했지만 작은 조카는 수저를 놓지 않았다. 어쩌나 볼 심산으로 계속 휴게실과 약국을 들락거리며 조카를 지켜봤다. 열 개도 더 남았던 새우는 이제 마지막 하나를 남겨놓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조카의 입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 언니 새우 하나도 못 먹겠다, 싶어서 조카교육을 시작했다.

 

"어이쿠..그 많던 새우가 다 어디 간 거야?  음...우리 조카가 맛있는 거 앞에서 또 깜빡했구나.. 이모가 뭐라고 했지?

맛있는 음식은 누구에게나 맛있는 법이라고 했지? ..그래..잘 기억하는구나..이모가 엄마에게 통화하는 거 들었어?

..그래..그것도 기억나는구나..그럼, 엄마가 조금 있음 내려오겠구나? 조카는 엄마 아들인데, 엄마는 누가 챙겨야되지?

..그래..엄마아들이 엄마를 챙겨야지. 이모보다는 아들이 더 엄마를 챙겨야겠지?

..근데 깜빡하고 그 많던 새우를 하나만 남기고 다 먹어버렸어? 이모가 말 하지 않았으면 그 남은 하나도 다 먹을 뻔 했구나..

엄마가 칠리새우 먹으러 내려왔다가 칠리새우가 하나도 없으면 놀라시겠다그지..

이모하고 또 다른 이모하고 먼저 일어난 이유를 모르겠어? 일부러 조금 덜 먹고 일어난거야. 엄마도 먹어야 되니까.

자..다음 번에는 까먹으면 안돼~ 맛있는 건 누구에게나 맛있는 법이다! 꼭 명심해!  "

 

실은 조카는 교육 받은대로 행동을 했다. 얼마전까지의 교육은 이러했다. 하도 남 생각 않고 맛있는 걸 얌냠 먹어서 자! 그렇다면, 일단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맛있는 음식은 천천히 먹어라. 급히 먹지 말아라. 다른 사람들이 먹을 때까지 기다려줘라. 혹 사람들이 배를 다 채우고 일어났을 때에도 맛있는 음식이 남아있을 경우, 그때는 다 먹어도 된다. 그전에는 타임을 계산해서 적절히 조율해라. 이랬는데, 조카는 여기까지만 딱 생각한 거다. 사람들이 다 일어났으니 남아있는 맛있는 음식은 다 자기꺼! 내꺼! 내꺼!

 

ㅎ 조카가 남아있는 맛있는 칠리새우를 보고 얼마나 황홀해했을지 상상이 된다. 조카는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하나씩 먹었고, 누구에게 뺏길 염려도 없이 혼자서,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했다. 곧 내려올 지네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오늘 하나 더 배운 걸 조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제발 좀 빨리 이해했으면 좋겠다. 아..그 당연한 걸 왜그리 이해못하나 싶기도 하지만...욕심 차원을 떠나서 순수하게 음식을,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고, 음식 앞에서 행복해하는 조카가 많이 귀엽다. 많이 사랑스럽다. 혹시 조카라서 그런가? 남이면 안 그럴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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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3-06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이켜보면 뭐든 자기가 절감을 해야지 정말로 깨닫게 되더군요
달사르님은 체험을 통해 조카 교육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어머니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폭풍공감 ㅠ
아이가 그러는 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른들 중에서도 저는 남 배려 없이 식사를 하는 경우 종종 봐요
그런거 말고도
나중에라도 어떤 계기로 깨달으면, 자신도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데
옆에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거나 몰라서 나쁜 습관을 계속 가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여러번 자신도 모르는 실수를 했었거든요
조카가 이모 덕분으로 배려심 많고 현명한 어른이 될 거 같아요 ^^

달사르 2012-03-06 12:30   좋아요 0 | URL
네 ^^ 조카가 어릴때 저랑 비슷해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로 믿어버리는 얼빵한 녀석이어서요. 농담도 못 알아먹기도 하고 또 나중에 자라면서 상처도 많이 받을까봐 미리부터 준비를 하는 의미랍니다. 위에 올린 부분만큼 교육시키는데도 한 3년은 걸린 거 같아요.

조카가 어느날 정말로 진지하게 물어보더라구요. 피자를 먹는데 왜 내가 양껏 먹으면 안되냐고. 다른 사람들도 양껏 먹든지..그건 다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 아니냐구요. 여러 사람 같이 있는데서 혼자 양껏 먹으면 민폐라는 말을 조카가 이해하는데만해도 1년도 더 걸렸어요. 휴우..

이런 조언들은..사실..예민한 부분이어서 같은 가족이어도 좀 부담스러운 건 있더라구요. 상처받지 않나 둘러보면서 말을 해야하니까요. 반대로 저 역시 저의 그런 부분을 누가 지적해주면 바로 수긍을 하는지도 생각하는 계기도 되구요. 뭐..신지님께서 언급하신 알라딘에서의 댓글 부분도 크게 보면 일맥상통할 거 같애요.

마노아 2012-03-0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착하게 설명해주는 이모라니, 조카가 결고 잊어먹지 않겠어요. 바람직한 교육의 장을 보았습니다.^^

달사르 2012-03-07 22:54   좋아요 0 | URL
ㅎㅎ 이모들은 이렇게 조카사랑이 지극한가봐요. 마노아님도 이모던가요? 고모..?

오늘은 왠일인지 조카가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해서 엊그제 혼낸게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요. 알고보니 중간에 놀러다니면서 간식으로 이미 배를 채웠는데 이모에게 안 들키려고 그냥 피곤한 척 했더군요. ㅋㅎㅎㅎ
 

 

 

 

1.

마음이 울적해지고 있다. 조금씩 젖는 줄 모르고 내리는 가랑비에 어느새 온 몸이 적셔졌는가. 물에 탄 노란 잉크처럼 일순 타오르는 개나리의 개화를 미리부터 느끼는건가. 그래, 봄이 다가오는구나. 올해도 어쩔 수 없이 봄을 타겠구나. 미리부터 이렇듯 이유없이 울적하니 말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여행 dvd를 잔뜩 샀는데 유용할지 되려 더 힘들어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중 하나를 뜯었다.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모차르트의 나라, 몽골 말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하나 더 늘었다. 이덕형 샘이 말하는 판타스마고리아, 변이형이 자꾸만 궁금해져서 견딜 수 없다.

 

 

 

 

 

 

 

 

 

 

 

 

 

 

 

 

 

웅장한 음악과 같이 네바강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헬리콥터를 탄 듯한 느낌으로 네바강 일대를 둘러보았다. 음악이 바뀌어 잔잔해지며 섬머가든과 마르스 광장을 보여주는데 어느 순간 음악이 귀에 꽂힌다. 잠깐만, 이게 누구의 작품이지? 차이..코프스키? 어..이 사람은 좀 웅장한 스타일이 아니었던가? 궁금병이 도져 뒤져보기를 시작했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임이 분명하다. 다양한 악기들로 연주되고 편곡되어서 유투브에 잔뜩 올려져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잠시 접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오래도록 들었다. 언젠가 그 도시에 두 발을 딛게 되면 이 음악이 같이 떠오르겠구나.

 

 

 

 

 

다시 dvd를 본다. 이번에는 섬머가든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 속으로 빨려든다. 잔잔한 선율은 나를 헬리콥터에서 내리게 했고 나는 나비처럼 조각상 위에 살짝 앉는다. 다시 팔랑거리며 날아가다 벌처럼 향기에 홀려 조각상에 돌진한다.

 

곁에 없어도 상상을 하면 느낄 수 있어.

 

그의 말이 맞는걸까. 먼 나라의 공기가 들이켜지는 느낌이다. 꿈인듯 생시인듯 몽롱한 러시아의 백야 창백한 달빛 아래, 이른 아침이지만 지는 저녁 노을인듯 헷갈리는 러시아의 아침 햇살 아래. 온통 부재로 가득한 느낌. 텅 빈 무의 충만. 판타스마고리아의 도시. 그곳.

 

 

 

 

 

 

 

 

두꺼운 창문 커튼을 젖히자 영하에서나 보았던 핀란드만의 하얀 설원이 끝없이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위로 오렌지색의 아침 햇빛이 빛나면서 저 먼 곳의 푸른색 하늘을 아주 더 멀리 보이게 만들고 있는데, 공기 중에 떠돌고 있는 이들은 색이라기보다 오히려 관념적인 추상에 더 가까웠다. 예를 들어, 현실과 무한 혹은 내재와 초월의 대비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 색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리라. 자줏빛 오렌지의 내재와 푸른색의 무한. 형태 없는 모든 부재의 기원. 그러나 이 낯선 곳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인상은 텅 빈 무의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대면하고 싶은 욕구에 이 땅에 온 것이 아닌가. 이곳은 러시아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은 바실레프스키 섬. 핀란드만을 향해 있는 프리발치스카야 호텔에서 바라보는 겨울 아침이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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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0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는 '상페테르스부르그'라고 하고, 누구는 '세인트 피터스버그'라고 부르는 그곳. 우리는 러시아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너무 한정되어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가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언젠가 저기를 다녀온 친구가 그랬어요.
차이코프스키 곡의 어떤 것은 Chopin의 곡보다 더 낭만적이고 유려한 것들이 많더군요. 올려주신 저 피아노곡도 그러네요.
달사르님은 꿈과 사유의 범위가 정말 넓은 것 같아요.
앞서 소설'조드'에 대해 소개해주신 글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작가는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라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달사르 2012-03-05 15:29   좋아요 0 | URL
아. hnine님 친구분 중에 러시아 다녀오신 분이 있군요. 외국 다녀온 뒷이야기 듣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합니까. 저는 손님들 중에 간혹 외국 다녀오신 분들 접하게 되면 음료수를 권하면서 붙들어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합니다. 손님들도 침을 튀기면서 신났던 경험, 신기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서 그런 분들 다녀가시면 무척 기분이 좋더라구요. 하물며 그 상대가 친구라면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요. 와우.

러시아 하면 떠올리는게 한정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하하하. 러시아하면 혁명..이란 단어 말고 아는 게 거의 없는 수준이었는데요. 저도 이번에 이덕형 샘 책 읽으면서 러시아에 대해 기존의 생각을 깰 수 있어서 기분 좋았어요. 아..정말, 가보고 싶은 나라에요. 근데, 추울 때 말고요. 하하 ^^;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좀더 찾아봐야겠어요! (불끈)

네. '조드'는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아끼는 책이어서요. 마구마구 권해드리고픈 책입니다. 김형수 작가님은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3인방 중 한 분입니닷! 이 책은 읽으면 사유가 넓어지는게 막 느껴지더라구요. ^^ (헤헤. 칭찬, 고맙습니닷. 오늘도 종일 비가 내리는데요. 봄비처럼 촉촉한 느낌입니다. 이런 날엔 hnine님의 시 한 수가 특히 더 몸에 감기는 거 같애요.)
 

 

 

1.

언젠가 호주에서 양젖짜기를 해본 적이 있었다. 원주민은 나보고 양젖을 너무 잘 짠다고 눌러살라고 했다. 자기에게 시집오라고도 했던가. 또 필리핀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새파란 바닷물에 예쁘게 노니는 금붕어 낚시를 했었다. 손낚시였는데 난생 처음 해보는 낚시였다. 남자들도 많았는데도 생초짜인 나에게만 금붕어가 입질을 했다. 옆의 여자애들은 부러워했고 남자애들은 나에게 낚시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금도 문득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을 볼 때면, 너무나 둥그렇게 예뻐서 쳐다보다 그만 후두둑 눈물을 흘려버린 호주의 하늘이 떠오르고 양젖짜기의 추억이 겹친다. 한참 털깍기를 하고 흉한 몰골을 했던 양의 털은 다시 곱슬곱슬 나고 있겠지. 출근길에 햇살이 퍼져가는 강의 물결을 보노라면, 너무 파래서 심장이 아파오는 듯한 금붕어의 파닥임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그렇게 잘했던 건 혹시, 잘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렸기 때문일까.

 

 

 

2.

알약을 조제할 때면 반으로 쪼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통통하고 단단한 약들은 반절기나 절단가위를 들고서 잘라야 되지만 단단하지 않고 작은 알약들은 손으로 쪼개기도 한다. 엄지 손톱을 약간 기르는 건 그런 이유이다. 디고신이라는 약이 있다. 강심제로 쓰는 약인데 이 약은 용량에 따라 약효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다른 약보다 좀더 주의해서 정확하게 절반을 잘라야한다. 이때 신중하게 잘 하려고 마음 먹다가는 난처한 경우가 생긴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 정확한 절반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양 손 모두에 힘을 빼고 쪼개야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뉘어진다. 덕분에 매일 약을 쪼갤 때마다 힘을 빼야 균등해지는 세상의 이치 하나를 배우는 셈이다.

 

이는 피아니스트에게도 마찬가지 논리라고 알고 있다. 언젠가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언니가 나에게 제 1의 원리로 설명한 것이 바로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잘 쳐야지 마음 먹고 힘을 잔뜩 주고 건반을 두드리면 어깨에서, 팔목에서, 손목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 건반으로 가는 힘은 조금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도 뭉툭하고 이쁘지 않다고 했다. 손목만 열라 아프고 말이다. 피아노를 칠 때 손목이 아프다는 사람은 피아노를 제대로 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석으로 치면 아무리 오래 쳐도 허리도 아프지도 않고 어깨도 물론 안 아프며 손목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심장에서 나온 '기'가 온전하게 양 어깨를 지나쳐서 팔과 손목을 지나 손가락을 거쳐 건반을 터치할 때, 그때의 소리는 온전한 소리이며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소리다. 절반으로 온전하게 쪼개진 알약처럼.

 

 

 

3.

읽으면서 힘이 들어가는 소설이 있다. 작가가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서 여기도 힘이 잔뜩 저기도 힘이 잔뜩 들어간 소설을 읽으면 덩달아 힘이 들어가서 어느 순간 지치고 어느 순간 손목이 아프듯 마음 한 켠이 아파온다. 잘 된 소설은 힘을 잔뜩 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스타에서 박진영이 이런 말을 했다.

 

...가 이번에는 대충 불렀죠? 힘을 빼고 불렀죠? 잘~했어요. 노래는! 노래는! 그렇게 힘을 빼고 불러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듣는 이도 부담없이 듣고 부르는 이도 그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어요.

 

다음에 다시 양젖을 짜게 되거나 손낚시를 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또 마음을 비우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때보다 지금 나이를 더 먹었지만 마음을 비우는 건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되는게 아니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견, 욕심이 더 생기는 걸 문득문득 절감하는 요즈음엔 더욱 더 그렇다. 이럴 때 힘을 잔뜩 뺀, 이런 소설이 좋다. 특히 이 부분. 이 부분을 읽으면 나는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테무진이 그의 벗 보오르추를 만나고 잃어버린 황금색 늑대귀 말 여덟 필을 찾아 돌아와 보오르추네 게르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사라져 소식도 없이 4일간이나 지난 뒤 나타난 아들 보오르추를 보고 처음 나온 어머니의 말이다.

 

"내 아들의 손님인데,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나은 걸로 대접해야지."

 

테무진은 눈물이 나올 뻔했다.

'여기는 정말 사람 사는 데 같구나.'

 

....

 

게르 안에서 이렇게 분위기가 익는 동안 밖에서는 일꾼이, 양들 중에서 가장 큰 놈의 뒷다리를 훔쳐서 뿔을 잡아끌고 나온다. 그러고는 사지를 붙들고 눕혀서 명치를 십자로 째고 가슴에 손을 넣어 동맥을 끊었다. 사지가 늘어질 때까지 두 사람이 붙든 채 웃고 이야기한다. 양의 눈동자가 새파란 하늘색이 되었다가 이내 빛이 꺼졌다. 테무진이 게르 밖의 분주한 풍경을 내다보면서 마유주를 한 모금 하고는 얘기를 잇는다.

p.169

 

 

                                                              <김호석 ; 죽은 염소>

 

멋진 표현이다. 삶과 죽음이 일상으로 녹아드는, 삶과 죽음이 태극으로 돌고 도는 원리를 이해한 자의 표현이 아닌가. 자연과 맞닿아 살고 있는 몽골인들은 양을 잡을 때도 하늘에 양의 영혼을 보내주는 의식을 하면서 잡는다. 그 의식 없이 자연재해, 조드, 늑대의 약탈 등으로 인해 죽은 짐승은 먹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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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3-0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 신중하게 잘 하려고 마음 먹다가는 난처한 경우가 생긴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 정확한 절반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양 손 모두에 힘을 빼고 쪼개야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뉘어진다. 덕분에 매일 약을 쪼갤 때마다 힘을 빼야 균등해지는 세상의 이치 하나를 배우는 셈이다."

ㅡ>
아, 이 말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이 글 읽으면서 저는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상한 댓글을 달았던 경험들이 떠올라 또 괴로워지네요 -_-;;
달사르님이 약을 쪼갤 때처럼 댓글도 힘을 뺏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이 괴로움이 제게 쓴 약이 되기를 ㅠ

달사르 2012-03-06 12:4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신지님의 힘을 뺀 댓글을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또..시간이 지나 조금씩 서로 친해지다보면 온라인상이지만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기가 오면 댓글에서 힘이 절로 빠지기도 하는 거 같애요. 그전까지는 댓글에서 힘을 빼기가 좀 힘이 들기도 해요.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인지라..쩝..)

근데 정답을 요하는 댓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이상한 댓글도 뭐 달아보지요. 그런 우여곡절 겪고 나면 더 친해지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좋은 글을 쓰시는 어느 분에게 친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상한 댓글 달아서 초면에 그분이 버럭! 화를 내셨답니다..ㅠ.ㅠ 너무 죄송해서 쪽지로 사과를 하고 그리 쓰게 된 연유를 설명을 하니 그분이 금방 화를 푸셨구요. 그리고 음..갑자기 확, 친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사건'은 그게 안 좋은 거라도 진실된 마음이 있으면 시간이 지나니 '통'하더란 말이지요. 그러니 좋은 이웃님을 발견하면 이상한 댓글도 감수하고, 최대한 힘을 빼면서 막막 댓글 다는거지요. ^^

탄하 2012-04-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을 쪼갤 때마다 힘을 빼야 균등해지는 세상의 이치 하나를 배우는 셈이다'

아, 이 말씀 너무 맘에 들어 마음에 간직하고 싶었는데,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또 계시네요.
사람을 감동시키는 구절이란 역시 그만한 힘이 있나봅니다.
나의 집착보다는 대상의 본연을 따르고 그것와 일체가 되는 것,
작은 알약 하나라 그 가르침이 오히려 더 크네요.

염소 그림이 심상치 않다 싶어 아래 책을 클릭해 봤어요.
<조드>와 함께 감상하면 참 좋은 책이네요(쓱싹~ 챙깁니다).
작가님도 이 책을 보시면 좋아라..하실텐데.
혹시 아직 <조드> 연재 사이트를 모르신다면 http://blog.yes24.com/millemi 에 가보세요.
거기 작가 노트가 있으니까 그분이 경험하신 몽골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으실지도 몰라요.

달사르 2012-05-03 12:34   좋아요 0 | URL
^^ 염소 그림 멋있죠. 저도 저 그림 보고 기분이 어찌그리 먹먹해지던지요. 그림 하나에 철학이 담기고 자연이 담기고 세상이 담기는 거 같애요.

하하. 염소 그리신 김호석 화백님과 조드 작가님은 이미 친하시답니다. 김호석 화백의 위 작품집에 해설을 조드 작가님이 하셨지요. 분홍신님은 이미 <조드>를 읽으셨으니 <문명에 활을 겨누다>를 읽으실 때 도움이 많이 되실 거에요. 읽다보면 어..어..하시는 부분이 좀 많이 나올 겁니다. 두 책은 서로 닮았거든요. ^^ (사이트는 알고 있어요. 그치만,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거 감사드려요. ^^ )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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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형수의 소설 <조드>는 우리 말로 쓰여졌지만 몽골어로 읽는 듯한 착각에 매번 빠지게 된다.

그의 은유 때문일 것이다.

 

 

 

 

타타르의 권세는 썩어도 아름드리인지라...아무리 위험을 경고해도 듣는 귀가 없다. 도대체 늑대 앞의 염소 새끼들처럼 높은 데만 기어올라 어쩔 셈이니 한심스럽기만 했다.  p.37

 

 

소뿔 같은 초승달 아래, 말똥 같은 보름달 아래, 검은 조드 하얀 조드가 다 모이네. 하늘의 색깔이 잿빛이 되면 늦으리. p.84

 

 

우리는 서로 지문도 보여줬네

나의 운명을 엿본 네게, 너의 운명을 보여준 내게

양의 복사뼈가 닳고 닳은 후 늑대들 속에서 또 만났구나

헤를렌 강 얼음도 꺼지지 않겠지

눈에 불이 있고 뺨에 빛이 있는 친구

멋대로 가는 세파에도 무릎 꿇지 말기를

거칠고 험한 추위에도

마음의 성에가 끼어 흐려지지 않기를    p.63

 

 

은유에 한 사람의 문화적 체취가 묻는다는 걸 이해했다. 은유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공히 이해를 해야 알아듣는 은근한 표현이라는 걸 알았다. 외국의 정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 은유는 어떤 식으로 전달될까. 작가가 외국의 유명한 역사 속 인물인 칭기스칸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려고 했을 때 특히 고심한 부분이지 않을까.

 

외국 문물을 모르고 외국어만 이해한 채로 외국인과 대화할 때 난처한 상황에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몽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절에 속하는 행동인데 몽골에서 같은 행동을 취했을 때 무례한 행동, 내지는 시비를 거는 행동으로 오인된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닥치는 순간마다 하나씩 배워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조금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라와 비슷한 정서의 은유도 역시나 존재할 것이다. 생경한 표현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되는 그런 소소한 은유 말이다. 작가는 그런 은유를 많이도 찾아냈다. 몽골을 숱하게 오가며 몸으로 부딪히고 몽골에 대한 생각을 오래도록 잡고 있지 않으면 결코 찾아내지 못할 숨은 들꽃같은 은유들을.

 

그래서 이 소설은 한국어로 쓰여졌지만 더 몽골스럽고, 다음에 몽골어로 번역될 경우 (외국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색함이 탈색되어 마치 몽골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어로 쓰여진 몽골 소설을, 한국적인 감성까지 고스란히 살려진 소설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접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평소 나와 다른 가치관,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데 큰 재미를 느끼는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외국인이 자국의 생활권 내에 해당되는 소설을 쓸 경우 자국의 독자들에겐 당연히 이해되는 부분인데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타국의 독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되는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이런 부분을 접하면 난 참지 못하고 읽던 책을 덮고 인터넷을 뒤지거나 참고 서적을 뒤지는 등 난리법석을 떨어서 기어이 이해를 하고야 만다. 그래야 다음 페이지로 진도를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이 없진 않으나 최소한의 필요장치 정도로 그 부분을 남겨놓아서 독자에게 찾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몽골의 전통 집인 겔(게르)는 인터넷 뒤지면 금방 그 선연한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그 외에 타르박 쥐도 뒤졌고 늑대의 사냥도 뒤졌고, 마두금도 뒤져봤다.

 

 

 

 

2.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소설은 젊은 테무진을 소재로 13세기 아시아의 중세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아시아에는 마치 없는 듯 취급받는 중세가 궁금했고 그 시작점을 테무진과 그의 안다(벗),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서 찾고 있다.

 

사람은 위기 속에서 그 본질이 드러난다. 위기에서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 타인을 해하는 사람,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 등이 있겠다. 첫 위기에서는 자신을 먼저 챙겼다가 이내 자책하고 다음 번 위기에선 타인까지 챙기는 사람, 첫 위기에 타인을 챙겼다가 쓸데없는 짓이다 생각하고 다음 번 위기에선 자신만을 챙기는 사람 등도 있겠다. 인간의 삶에서 위기는 끊임없이 다가온다. 산 너머 산처럼 매순간 다가오는 위기는 지난 번의 경험을 발판으로 넘기기 마련이다. 테무진 역시 아버지 예수게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위기가 끊임없이 강도를 올려서 목숨을 수십 번 위협 당하고 또 당한다. 오랜 위기 속에서도 도와주는 이 없는 현실에 서서히 지쳐가는 테무진은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인간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벗이여, 홀로 외롭겠구나"

 

서서히 닫혀가던 테무진의 마음은 한 마디 위로로 다가온 또래 보오르추로 인해 순식간에 봄눈 녹듯 녹는다. 오래도록 지친 속에서도 보석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가졌다는 것. 진정한 벗은, 진실은, 가장 힘든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위기 속에서도 '포기'라는 마음을 품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테무진은 그 순간 알았다. 위기 속에서도 하늘의 뜻을 찾으려는 그의 심성을 필두로 소설은 이후에도 있을 여러 번의 위기 상황에서 테무진의 심적 성장을 보여준다. 테무진은 서서히 대지를 닮은 인간으로 자란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조드' 역시 몽골에서 살기 위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위기의 대표격이다. 위도상 북방에 속하는 나라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조드는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견디기 힘든 위기 상황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 위기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은 자연에 순응할 수 밖에, 그리고 뭉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쿠리엔을 형성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한 조드는 테무진을 칭기스칸으로 키워내는데 한 몫을 한다.

 

 

 

 

 

3.

책의 소제목인 가난한 성자, 에 대한 언급은 책의 뒷부분에 나온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인데 이 부분을 읽고나면 인간의 향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듯도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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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2-03-02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몽골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어로 쓰여진 몽골 소설을, 한국적인 감성까지 고스란히 살려진 소설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접하게" ㅡ 아 역시 소설가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시인보다도 더..

작가가 책상에 앉아서, 맨날 현대인의 시각으로 쓰는 소설들 말고요 -_-
가끔 과거를 정말 살았던 것처럼, 혹은 자기 시대를 모든 사람들의 생을 다 살고 이해하는듯 현실적으로 묘사해내는 작가들 있잖아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를 마치 거기에 사는 사람처럼 써내는 작가들에게는 감탄하게 돼요. 저로서는 어떤 소설들은 (詩와는 달리)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란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리뷰가 좋아서 책에 관심이 생깁니다..

달사르 2012-03-02 13:28   좋아요 0 | URL
마치 거기에 사는 사람처럼! 와우~ 멋진 표현입니닷. 저런 느낌을 주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도대체 얼마나 집중을 하면 저렇게 쓸 수 있을까? 란 생각을 저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글을 쓸 때는 현실을 벗어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작가가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저런 작품을 접하면 읽는 이 또한 과거로 여행을 더 쉬이 할 수 있는 것 같애요. 시야 또한 좀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고 말이죠. 신지님도 한 번 읽어보셔요. 저는 이 책을 역사서 플러스 철학서로 생각하고 읽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2-03-0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접했을때는 겉표지만 보고 집어던졌었거든요~ㅠ.ㅠ
달사르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 혹하기도 합니다.
언제 날잡아 다시 시작해보려구요~^^

사람은 위기 속에서 본질이 드러난다는 말, 참 멋진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달사르 2012-03-03 22:01   좋아요 0 | URL
ㅎㅎ 겉표지 말씀하시니 얼마 전에 읽은 하루키 잡문집이 생각납니당. 하루키가 늘 작업을 같이 하는 안자이 미즈마루, 와다 마코토가 있어 하루키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소설가의 스타일도 이해해서 내놓는 표지디자인 작가와 같이 작업하는 소설가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

소설은, 읽으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가지를 뻗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소설이 좋은 듯해요. 양철나무꾼님도 읽어보시어요. 시적인 은유가 듬뿍 담긴 소설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