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시간이 그새 많이 흘렀어요. 난 잠시 출근했다 퇴근했구요. 어느듯 가을이네요. 손에는 장갑이 필요하고 점퍼를 목까지 채워야 춥지 않더라구요. 퇴근길에 강가를 봤더니 고요한 강물에 하늘의 구름이 슬몃 비치네요. 그래요, 그 구름. 고개를 들었더니 그 구름은 유유히 흩날리며 비는 듯 자기 공간을 꽉 채우고 있네요. 우리의 사랑이 조금씩 흩날려 바람 저편으로 날아가듯, 그렇지만 다른 공간 어딘가를 꽉 채우고 있는 듯 말이죠.  

나는 왜 움켜쥐고 싶지 않은 걸까요? 조금이라도 손아귀에 남겨놔서 당신을 영영 볼 수 없을 때를 대비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저 평화롭게, 무심하게 보고만 있네요. 당신은 욕심이 없다고 했죠. 나도 욕심을 버리고자 했구요. 그래서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평화로운 걸까요.

평안함 속에서 나는 아주 조금, 허전함을 느껴요. 그 허전함이 당신의 부재에 의한 것인지 태생적으로 내가 가진 외로움이 일순 강력해진 것인지 종종 분간이 힘들어요. 나는 내 외로움을 당신으로 채우고 싶진 않아요. 누구나 자기 몸을 가지고 태어나듯 누구에게나 외로움은 떼어버릴 수 없는 그림자처럼 숙명적인 것이니까요. 그래요. 유독 외로움을 느끼는 건 채우고자 하는 것의 존재가 어쩜 불가(不可)의 영역에 속함을 알기 때문일 거에요. 

일상의 번잡한 것들에 몸이 묶인 우리에게는 잠시의 티 타임이 좋을 듯 해요. 정오의 낮잠도 좋구요. 

물론 나는 그 이후의 시간, 그리고나서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겁이 나요. 당신이란 아름다운 과일의 향기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없이도 난, 당신의 향기를 기억 속에서 매번 끄집어내거든요. 그렇지만 그건 나의 행복한 일과 중 하나. 이 가을 날에 당신을 추억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1-10-0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을 타게 만드는 글... 너무 낭만적이잖아요! 정오의 낮잠과 티타임, 저도 해보고 싶은데 오늘은 할 일이 꽤 많아서 다음 주말을 기약해야겠네요 ㅠ ㅠ 당신이란 아름다운 과일의 향기, 요 문장이 참 좋아요 :)

달사르 2011-10-03 17:46   좋아요 0 | URL
캬캬. 전 잠시 낮잠을 즐기다가 오후의 티타임까지 가졌답니당~~ ㅎㅎㅎ

말없는수다쟁이님도 다음 주말에 해보셔요. 고양이처럼 뒹굴뒹굴.완전 신나네요. ^^ (힛. 그 과일 같은 사람의 향기는 정말 달콤했답니다. ^^ )
 

결국 나는 그와 그녀와 헬스를 끊었다. 호흡곤란의 상태를 즐기기로 했다. 점점 차올라오는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동안 해봤던 모든 조치들이 무산되었다. 그나마 반타작이었던 저녁조깅은 며칠 전부터 내리는 비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비는 다음 주까지 내릴테고, 이제 장마권으로 접어들었기에 더욱더 힘들터이다. 4개월동안 진행된 수업도 종강되었다. 새로이 시작한 다른 수업은 아직 시간을 못 잡아 부유중이다. 도로는 온통 파헤쳐져 상수도, 하수도, 가스배관 등의 공사가 날마다 진행된다. 가게 앞 도로는 기운 누더기처럼 불쌍하기 그지없다. 하루종일 두두두 소리내던 포크레인이 이제 내 머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소리라도 질러라.

앞으로 한 달이 지나면 혼란이 사그라들까. 더 혼란스러워질까. 뭐든지간에 나는 그와 그녀와 같이 무언가를 할 것이다. 그녀는 더 늘어날수도 있다. 그가 더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면 족하다. 내일도 나는 헬스를 가고, 모레도 나는 헬스를 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늘어나는 근육처럼, 마음에도 근육이 생겨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어쩜 그가 도와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도와주고 있다. 여행 후유증으로 생긴 호흡곤란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새로운 도전에 성공하고나서의 후유증이기에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아주 만족한다. 나는 5년만의 외출에 성공했으니까. 혼란은 그러니까, 성공에 따라붙는 꼬리표 같은거다. 그러니 '혼란'을 혼란스러워말고, '혼란'을 그저 지켜만 보자. 숨었던 호흡은 곧 돌아올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29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1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 말이죠. 좋은데 눈물나고 이런거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좋으면 좋은거, 싫으면 싫은거, 아프면 아픈거였죠.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요? 좋은데 말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슬픔' 쪽으로 가는 길에 한 발짝 들이민 걸까요. 

흐르는 시간이 자꾸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피어나는 장미 같던 시간은 사정없이 시들어 차가운 얼음가시만이 남아 내 마음을 콕콕 찌릅니다. 시간이 더 흘러가면 얼음가시가 녹을까요? 몰아쳐오는 태풍에 얼음가시의 날카로운 부분이 부러졌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혹시 얼음가시에 찔렸나요? 난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당신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사이클 돌아 새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날, 당신에게 얼음가시에 찔리지 않는 튼튼한 심장갑옷을 지어드릴께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29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1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5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