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 잘했다 싶은 일들은 다 친구 따라 강남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깊은 생각을 잘 못하는지라 내가 믿을 만한 누군가가 "뭐 해볼래?"라고 하면 "생각해 볼께" 라는 말 보다는 "그래? 그럼 같이 하자" 라는 말을 하는 편이다.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하는 내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혼자서 뭘 했을 경우 대개 실패하고 만다는 걸 체감했기에, 누군가가 무엇을 제안했을 때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동참한다. 어제 퇴근 후 다녀온 '수화센터' 역시 친구의 제안으로 다녀왔다. 수화센터에는 두 명의 정상인 근무자와 한 명의 농아인 근무자가 있었다. 그네들의 용어로는 두 명의 '아'와 한 명의 '농' 근무자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축제를 하면, 조용한 샌님 같았던 친구들의 숨은 끼를 많이 발견했다. 한 친구는 수화도 할 줄 알았고, 팬플루트도 불 줄 알았으며, 찰흙으로 인형도 예쁘게 만들 줄 알았다. 그 친구는 자라서 목사가 되어 머나먼 타국에서 살고 있는데 가끔 동기들끼리 만나 그 친구의 근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 친구가 수화로 노래를 불렀던 예쁜 모습이 떠올랐다. 기숙사에 놀러가서 친구가 축제에 대비해 수화 노래를 연습하는 걸 구경했던 그때가 내가 수화라는 것의 존재를,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절이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언젠가는 나도 수화를 배워야겠다, 라는 막연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겨울이면 시골 동네엔 하나 둘 트럭 포장마차가 생긴다. 꽃게를 쪄서 팔기도 하고, 어묵을 팔기도, 떡볶이나 순대를 팔기도 한다. 물론 국화빵도 판다. 내가 자주 가는 국화빵 포장마차는 주인이 '농'이다. 병원 인근의 길 좋은 목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국화빵을 구워서 파는데 우수리도 많이 얹어준다. 주인이 '농'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국화빵 굽느라 고개를 숙인 주인에게 큰소리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1분 이내로 '농'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몸짓으로 대화를 나눈다. 나도 미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국화빵을 사러 갔다가 주인 아저씨의 얼굴 표정과 손짓을 보고 '농'을 알아차리고는 무척 당황했다. 마치 외국인이 나에게 길을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내어 가리키기도 하고, 갯수를 말하기도 하고, 금액을 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 잘 먹겠다는 표현도 모두 몸짓과 눈짓, 얼굴 표정으로 했다. 그리고 어제 수화 수업 첫 시간에 알았다. 내가 한 동작이 바로 수화의 한 갈래길이라는 것을. 수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국어처럼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배우는 표준수화가 있다. 이는 '아'도 배우고, '농'도 배운다. 다른 하나는 자연수화라는 것인데 이것은 수화를 배울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한 '농'이 자연적으로 터득한 몸짓 수화이다. 그러니까 수화 문맹인이 하는 수화라고나 할까. 내가 했던 손짓이 바로 자연수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가끔 약국에 오시는 손님 중 '농'이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거리고 허리는 구부정하고 손이 거칠한 한 할머니는 꼭 물약소화제 한 박스와 파스 하나를 사가지고 가셨는데 눈썰미가 없다 보니 할머니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뭐 필요하세요?" 라는 질문 후 할머니가 내지르는 응응거리는 음성을 접하고서야 그 할머니를 알아차리고는 물건을 내드렸다. 그러나 그 물건이 뭐였는지 기억을 못하기라도 해서, 이거요, 이거요? 라고 말하며 물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잉, 이잉, 이라고 하셨는데 그 표정이 무척 귀여웠다. 언젠가는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할머니가 오셨는데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머니가 '농'인 줄을 알았는데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못 찾아주고 있는 거였다. 나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이거요. 이거요? 하면서 하나하나 짚었고 할머니는 역시나 이잉, 이잉 소리를 내시며 물건을 고르셨다. 할머니가 원하는 물건을 내가 짚었을 때 할머니가 내시는 목소리는 이잉과 또 달랐기에, 그리고 함박 웃음으로 확인을 해주었기에 나는 쉬이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원하는 물건을 획득하신 할머니는 이제는 내게 직원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자기 자리에 가서 앉은 직원을 향해 눈을 흘기며 이잉, 이잉 소리를 내시며 손가락질을 하시는 거다. 그리고 나를 또 한 번 보면서 직원을 삿대질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 보채셨다. 나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알았다고 말을 했고, 할머니는 내 웃음을 보고 나서야 만족을 하시고는 가게문을 나섰다. 한 달 인가 후에 할머니가 또 오셨는데 들어오자부터 직원에게 삿대질을 했고, 또 흉을 보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가 참 기억력이 좋으시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그 할머니의 전담은 내가 되었고, 그 할머니가 오실 때는 직원은 자리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표준수화를 알고 계셨을까. 내가 수화를 배우게 되면 다음에 그 할머니가 오셨을 때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수화센터에서 일을 하려면 하루종일 웃고 있어야한다고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농'은 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아'가 쉴 때 짓는 무표정한 얼굴, 그러니까 멍 때리는 얼굴을 견디지 못한다.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뭐 때문에 화가 났을까, 라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기가 뭘 잘못했지, 혹은 저 사람이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걸까. 그 두 가지 경우 이외의 것을 생각지 못한다. '아'가 아무리 그냥 멍때리는 표정이라고 말을 해도, '농'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화 강사님의 사례를 들으면서 나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직원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한 것처럼 계속 삿대질과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욕을 했는데, 직원은 고작해야 무표정한 얼굴 표정과 차가운 말투를 보였을 뿐이었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니..물론 못했지만, 할머니가 올 때마다 직원에게 욕을 할 수준까지는 아니고 그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람, 정도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무척이나 서운해했고 가슴에 뭐가 맺힌 사람 마냥 올 때마다 직원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는 그저 웃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웃기만 했는데, 할머니는 나에게는 포근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건, 할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감각이 전적으로 '눈'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입을 열어 뻐끔거리는데 나는 어항 속 물고기 처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게다가 상대방이 차가운 표정까지 추가한다면 물고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구나.'라고 단박에 읽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입을 뻐끔거리며 누군가가 계속 싱글거리며 자기를 쳐다보면, 웃는 모습 만을 알 수 있는 물고기는 그 모습에서 호의를 읽는 것이다. 같은 수화를 해도 얼굴을 웃으며 하는 행동과 얼굴을 무표정으로 하고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른 뜻의 수화가 되듯이, 수화를 하지 않더라도 '농'은 '아'의 얼굴 표정으로 말로 들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눈이 안 좋은 사람 중에 귀가 발달한 사람이 많듯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눈으로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할머니는 자기를 싫어하는 느낌을, 활짝 웃고 있는 내 표정에서 할머니는 호의를 느꼈고 그 느낌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말로 하지 못하니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수화 첫 수업을 들으면서 그제서야 할머니를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