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산 건 순전 김성중 때문이다. 계간지로 받아 보는 문학 잡지에서 김성중의 '게발 선인장' 소개글을 읽었는데 제목이 너무 궁금했다. 뒤늦게 생각하니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만 하면 '게발 선인장'이 뭔지 알 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게발 선인장이 실재하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외계의 혹성 여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처럼 게발 선인장을 여관 이름이거나 기타 생소한 종류의 것일거라 지레짐작한 탓이다.

 

소설은 도입부 부터 마음에 들었다. 나는 불현듯 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김성중의 문장들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설에서 중요시 하는 부분이 문장이라는 걸 인정이라도 하듯이.

 

몇 개의 단어를 골랐다. 내가 몰랐던 단어들. 내가 잘 쓰지 않는 단어들. 의미는 알고 있지만 정확한 용어를 모르고 있던 단어들이다. 적재적소의 자리에 들어앉은 단어들과 그 단어들로 문장의 꽃밭을 만든 듯한 글을 보고 있노라니, 새상 김성중의 저력이 느껴진다.

 

 

 

단어; 느른하게; 맥이 풀리거나 고단하여 몹시 기운이 없다.

        힘이 없이 부드럽다.

# 개가 느른하게 꼬리를 흔든다

# 최소한의 가게가 문을 여는 오전의 시장이 파리하고 창백한 안색이라면,

느른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들이 게으른 슬리퍼 소리를 내는 정오의 시장은 점점 살집이 붙고 핏기가 도는 모습이다. 해가 기울면 거리는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며 변덕스러운 흥분 상태가 된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골목의 기이하고 폭발적인 활력에 전염되면서 장사꾼과 손님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인간의 소리로 지어진 허공의 집 위에 누워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단어; 말밥; 좋지 못한 이야기의 대상

        말밥에 얹다; 좋지 아니한 화제의 대상으로 삼다

        말밥에 오르다; 좋지 아니한 화제의 대상으로 되다

# 선배는 소주를 털어 놓고 이내 다른 사람을 말밥에 얹었다. 나는 그 뒤를 따를 수 없었다.(...)

 그대로 살자니 무당 집에 세 든 것처럼 찝찝하고, 나가자니 당장 이 돈에 그만한 방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적이 심란했다. 다음 날 부러 1층 식당에서 밥을 먹은 건 이 모든 게 뜬소문이라는 말을 들었으면 싶어서였다.

 

 

 

단어; 느지막이; 시간이나 기한이 매우 늦게

# 한마디로 혈연과 아무 상관없는 노인 셋이 사는 집에 내가 들어온 것이다. 훗날 할머니는 '모든 것이 일주님이 정해놓은 운명'이라고 했지만 나는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운명을 느꼈다. 불가해한 것에 유독 끌리는 내 기질은 이 시절에 빚진 탓이 크다.

느지막이 일어나 볕 잘 드는 거실을 차지한 할아버지는 수련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도무지 하는 일이 없었다. 비대한 몸에 풍성한 텁석나룻,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노인은 이상야릇한 눈빛을 하고 있어 마주 보기가 꺼림칙한 인상이었다.

 

 

 

단어; 험구가;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뜯거나 험상궂은 욕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 그에 비해 진천 이모는 동네의 유명한 험구가로 친구도 적도 많았다. 이모의 귓속으로 들어온 소문은 그 뚱뚱한 육체 안에서 한껏 부풀었고, 밖으로 나올 때는 종류와 상관없이 얼마간의 음담이 섞여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이모가 뿜어내는 부정적인 영향력 아래 놓였고, 이모는 그런 식으로 자기 처지에 권력을 부여해 시장 내에서 일정한 위치를 누렸다.

 

 

 

단어; 경광등;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차의 위쪽에 다는 붉은 빛을 발하는 등

# 친구들과 헤어져 늦게 집에 돌아오던 어느 밤, 흥미로운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고주망태로 취한 노인이 자정 넘어 순찰차에 실려 온 것이다. 경광등을 받고 선 할머니는 밤의 고양이들이 빛에 얼어붙는 것처럼 잔뜩 겁먹은 모습이었다. 종일 집귀신으로 살던 노인은 누구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할머니의 부축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김성중의 글은 낚시그물 같다.

 

사방이 다 보이지만 투명한 막이 있어 그 막 너머로는 나갈 수 없는, 완벽하지만 갑갑한 타입의 글이 아니다.

치어는 다 내보내주고, 알 굵은 놈만 잡는 성긴 그물 같은 그의 글은, 그래서 숨쉴 수 있는 여지가 곳곳에 있다.

 

그래서 나 같은 게으른 사람도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는 경우는 예전의 나와 만나게 해줄 때,  혹은 드물지만 미래의 나를 느끼게 해줄 때다.

 

 

 

김성중의 글을 읽고 과거의 나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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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3-05-0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지난번과 같은 패턴이네요.
1. 페이퍼를 쓰려고 작심한다.
2. 괜히 글 쓰기 전에 서재에 들어와 이웃님들 글을 본다.
3. 글 읽고 댓글 달다가 그날 본 책에서 삘받아 '국내도서'로 눈길을 옮긴다.
4. 아무것도 못 쓰고 그냥 로그인한다. 구매 버튼 안 누르면 그나마 다행.ㅋㅋㅋ

오늘도, 제가 그동안 눈여겨보던 <개그맨>의 김성중이라 또 그 책을 흘깃거리다 갈 것 같습니다.

'(...)오전의 시장이 파리하고 창백한 안색이라면,
(...)정오의 시장은 점점 살집이 붙고 핏기가 도는 모습이다.'
-> 요 부분도 딱 꽂혔어요. 정말 그렇네요, 정오의 시장..핏기가 도는 모습.

전에 <금빛날개>도 슬쩍 읽어보았어요.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달랑 하나만 읽고 덮기 뭐해서 표제작인 <너 없는 그 자리>까지 읽었는데, 참 좋더군요.
페이퍼에 이 책에 대해서도 쓰려고 했는데, 음..지금부터 부지런히 끄적이면
내일쯤은 올릴 수 있을까? 지금도 좀 졸렵거든요.
하지만..기필코 이번 토요일에는 뭔가 올려야 해요.
일요일은 어린이날이라고 조카가 쳐들어 올 예정이라...^^

그럼, 좋은 밤 되세요. 달에게 소근~소근~ 하시면서요.

달사르 2013-05-09 23:45   좋아요 0 | URL
토요일 오후에 시장을 나갔더랬어요. 중간에 스포츠 매장을 들러 운동용 모자를 샀는데 아글쎄..시장통에 그와 꼭같은 모자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가격도 엄청 싸지 뭐에요. 십분의 일도 더 싼 가격에..내 과소비를 반성했지요.ㅠ.ㅠ
반성을 하고 나니 입이 궁금해지더라구요? 근데 마침 인근에 건어물 상회가 있길래 말린 홍합을 한 봉지 사서 질겅질겅 씹으면서 두리번두리번, 시장구경 했어요. 아직 소설 속 핏기가 도는 시장의 풍경은 아니어서 좀더 기다리면서 시장 구경 더 할랬는데, 손에 든 짐이 너무 무거워 그냥 집에 돌아왔지요.

눈으로 어떤 풍경을 보고 나서 새삼 감회에 젖는 걸 '서정'이라 한다면,
소설 속에서 읽은 어떤 장면, 어떤 문장이 실지 현실의 풍경에서 불러일으키기가 된다면, 이건 무어라고 불러야하나..궁금해지는군요.


김성중...궁금해서 뒤적뒤적거리다 사진을 보고는 깜놀했습니다.ㅠ.ㅠ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는데..여자더군요.. 문체를 봐서는 분명 남자였는데..ㅠ.ㅠ

<개그맨>은 책표지부터 멋지네요. 저도 나중에 읽어볼게요. 우리 비슷한 시기에 김성중 글, 읽어봐요. ^^

넵! 지금도 밤이네요. 살짝 비가 흩날려서 아주 운치있고 좋아요. 오늘 저녁엔 대금을 하도 불어서 목구멍이 아프네요. 굿나잇 인사는 소근소근.. ^^

탄하 2013-05-11 00:22   좋아요 0 | URL
반성 뒤에 입이 궁금해지다..하하하...이 밤중에 혼자 웃고 있어요.^O^
반성해서 착해요, 하고 상주는 건가요?

글쎄요, 저는 '상기'라는 말 밖에 안 떠오르네요.
어쩌면 이런건 이론에서 뭐라뭐라 논했을 법도 한데...

허걱, 저두요..저두 남잔줄 알았다가 여자인걸 알고는 깜놀.
하지만 실제 사진을 본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리고...저, <개그맨> 샀어요. 힝~!


제가 하도 불어 본 것은 '풍선'밖에 없어서 악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목구멍까지 아픈가요? 음, 저는 입술과 가슴이 아프던데, 아마 풍선하고는 다르겠죠?
언제 연주 한 번 들려주세요. 주말 아침에 들으면 세상이 다 평온할 같습니다.
아..내일 주말이네요, 주말...달사르님도 편히 쉬세요.

달사르 2013-05-11 22:45   좋아요 0 | URL
네. ㅎㅎ 상주는 의미.ㅋ
그 홍합이 여직 남아있네요. 방금 배 고파서 먹다 남은 라면이 있길래 홍합 넣고 팽이버섯 넣고 끓여봤어요. 불어터진 라면이라도 국물맛은 끝내주는데요? 아..근데..건홍합은 국에 넣는게 아닌가봐요. 짬뽕에 들어가는 홍합맛이 전혀 안 나요.ㅠ.ㅠ 홍합을 불려서 넣어야 되는 건지, 건홍합은 아닌건지..ㅠ.ㅠ 20개나 넣었는데 10개 먹고는 도저히 못 먹겠어서 버렸어요.ㅠ.ㅠ

지금은 점심 때 먹다 남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댓글 달고 있어요. 제가 음식 재활용을 잘하지여? 헤헤

아. 맞다. '상기'
그 단어가 있었군요.
'서정의 상기'
멋지다~

옷. <개그맨> 샀어요? 음..나도 빨랑 사야겠네요?

ㅎㅎㅎㅎ. 지금 목구멍이 아픈 상황이라서 더 그런거 같애요. 몇 달 째..ㅠ.ㅠ 나중에 목이 안아플 때 많이 불어보고 목구멍이 아픈지 안아픈지 말씀드릴께요. 한 곡만 완주할 수 있는 실력이 되어도 대금 들고다니면서 자랑질할 듯요. 하하하. 그나저나 요새 엘 콘도 파사, 연습하는데요. 물론 저는 여전히 소리가 안 나지만요.ㅠ.ㅠ 다른 사람들 소리 들으니, 가락이 정말 좋군요. 캬..
 

 

 

 

 

 

 

 

 

 

 

 

 

 

 

 

지금도 가끔 꿈에 그집이 나타난다. 무의식의 세계에 나타나는 집의 의미가 안식이거나 공포라면 그집은 어디에 속할까. 내가  드라마 속 수애처럼 치매에 걸린다면 난 아마 그집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집은 고향을 떠나 혼자 내 몸을 뉘인 첫 집이었다.

 

집은 1층의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주인 할머니 내외는 옆집의 이층 양옥집에 기거하셨고, 내가 세들어 사는 집엔 세 가구가  살았다. 초록색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방 3칸의 안채가 있고 오른쪽으로 문간방이, 뒷쪽 정면으로 부엌 딸린 작은 방(내 방)이 보인다.  마당은 시멘트를 거칠게 발라 아이들이 뛰어놀기는 위험했으며 오른쪽 문간방과 부엌이 있는 작은 방 사이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수돗가를 돌아가면 계단이 나오는데 올라가면 작은 옥상이 있다. 옥상엔 장대 두 개를 연결한 빨랫줄이 중앙에 있으며 햇볕이 잘 드는 쪽엔 키작은 선인장들이 일렬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빨래는 잘 익은 대추 처럼 사시사철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는 빨래를 핑계로 종종 옥상에 앉아 있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에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보는 하늘의 수채화는 매번 넋을 잃고 봤다.

 

안채에는 4인 가족이 살았는데 비쩍 마르고 강퍅한 아저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술에 취한 날엔 아저씨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양볼에 욕심보 마저 붙어 있어 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기분이 좋을 때면 내게 세탁기의 탈수 정도는 허락했다. 아이들은 영악해서 부모의 부부싸움 때는 쥐죽은 듯 있었으며 대개는 둘이 놀았다. 동네에 또래들이 많았으나 집에 또래들이 놀러오지는 않았다. 간혹 부부싸움이 지나쳐 경찰차가 오고 경찰이 올 때면 어른들은 사이렌 소리에 마실을 나왔고, 동네 아이들은 경광등 불빛에 홀려 경찰차를 둘러쌌다.오른쪽 문간방에는 직장을 다니는 젊은 언니 뻘 아가씨가 살았고 얼굴은 한 달에 한 번 보는게 고작이었다. 나는 학교 근처에 내 방이 생긴 것만으로 좋았다. 2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며 다니던 이전 집은 같이 살던 친언니가 졸업하면서 나올 수 있었고 나는 홀가분하게 혼자서 학교 근처의 방을 구해 마음껏 뒹굴거렸다. 혼자 사는 첫 집이어서 무서움 보다는 설레임이 더 컸다.  

 

새로 터전을 잡은 내방에 적응할 무렵, 예비 2학년으로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엠티를 몇 일 갔다왔다. 땀에 절은 옷가지 등으로 눅눅해진 가방을 메고 도착하자마자 씻고 퍼져 잘 생각 뿐이던 내게 집 대문 한 켠에 우뚝 솟은 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장대에는 이파리가 조금 나 있었다. 장대로 빨래줄 다이를 만들려나보다.  고함을 많이 질러 쉬어터진 목이 아파 마당 한 켠 수돗가에서 물을 틀어 한 모금 먹고는 내 방문을 열어 바로 취침했다. 코를 골며 잠에 취해 열 몇 시간을 꼬박 잔 뒤, 다음날 오후 느즈막이 일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 대문에는 여전히 장대가 있었다.

 

 

 

 

달세를 드리기 위해 만난 주인할머니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평소와 달리 머뭇거렸다.

"계속 계약할 거야? 문간방 아가씨는 이번 달에 나간다고 하네. 그래. 잠자기는 괜찮아?"

"네? 왜요? 참, 할머니. 우리집 현관에 왠 장대가 계속 꽂혀있어요. 빨랫줄 다이를 새로 만들려나본데 아저씨가 안 도와주나봐요."

"그게..간판인데..그러니까..안채 여자가 무당이 되었다는구먼. 그참..전세기간이 많이 남아서 내보낼 수도 없고. 하필이면 전세계약을 새로 하자 무당이 될 게 뭐람. 이거..집값 떨어질까봐 걱정이구먼."

"네? 안채 아주머니가 무당이 되었다구요?"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네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싸움 소리가 나던 집이 요즘 들어 무척 조용했고, 아이들도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주머니 이마에 못보던 점이 하나 보여서, 원래 있던 점을 내가 뒤늦게 발견한 건지 점을 심은 건지 헷갈렸는데 그럼 그 이마 점도..

"그래. 붙인거야. 무당의 증표지."

주인할머니의 말밥은 신난 것과 짜증난 것이 섞여 있었다. 나는 괜히 험구가가 된 듯해 말밥을 이어주기 싫어서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지금은..괜찮아요. 다시 이사하기도 힘들고, 뭐 이대로 좀더 있어볼게요."

 

 

 

느른하게 잠을 청하던 오후였다. 잠결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오고 있어?"

"그래. 지금 ...으니..조금만 더.. "

"어디까지.. 왔어?"

 

갑자기 잠이 확 깼다.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다. 애경이 소리. 술에 취한 애경이 소리다. 애경이는 술에 취하면 귀여워진다. 술이 조금더 취하면 운다. 울다가 술이 떡이 되면 아기 목소리로 바뀐다. 나는 애경이랑 술을 먹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른이 내는 아기 목소리는 뭐랄까 해소가 잔뜩 낀 노인네가 가래를 밭지 않으려고 할 때 내는 소리와 같달까. 쇠를 가는 소리와 같달까. 그 어색하고 불편한 목소리는 신경줄을 팽팽하게 만들어 그만 술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애경이 남친 병길이는 이런 애경이도 좋다고 한다. 나라면 도망갈 터인데. 하긴 나라면 병길이도 도망갈 녀석이다. 병길이는 신장이 안좋아 신장투석을 한다.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병길이는 집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개인 세대다. 병길이는 요즘 들어 자주 신장투석을 하러 간다. 병길이는 얼굴이 검다. 병길이는 애경이가 술이 취해 애기 소리를 내도 그저 좋고, 애경이는 병길이 배가 자꾸 부어도 배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둘은 바보다. 둘다 바보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쁜 커플이다.

 

나는 애경이가 술에 취해 나를 보러 왔나 싶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애경이가 내 집을 어찌 알고.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

계속 말소리가 들린다.

"보이니?"

"까까..까까가 먹고 싶엉."

 

뭐야. 이건 애경이 소리가 아닌데?

분위기가 수상해 기척을 내지 않고 방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 마당엔 아무도 없었고 맞은편 안채 마루에 아주머니 두 분이 앉아 계셨다. 둘다 머리게 고깔을 썼으며 안채 아주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연신 손가락질을 해대는게 뭐가 보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자세히 보니 쭈그랑 할머니였는데  앉은다리 옆으로 북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북채로 북을 연신 치고 있었다. 두둥 두둥. 북소리는 작았지만 낮은 심장소리처럼 내 피를 자극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계속 훔쳐 보았다.

 

"앙앙. 까까 줘. 까까 먹고 싶어."

"여깃네. 여기 까까 있다. 까까 먹자"

"냠냠. 냠냠. 까까 더줘"

....

꺄르르 꺄르르

 

안채 아주머니 속 아이는 실컷 먹고 실컷 놀다 갔다. 안채 아주머니 목소리가 원래로 돌아왔다.

"언제 집에서 죽은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입니다."

"아이고. 맞아요. 우리 신랑 먼 친척 중에 어려서 죽은 아이가 있어요."

"동자신이 무난하고 좋아요. 아이는 잘 삐치니 잘해줘야 합니다. 대신 바로바로 말을 해주니 그것은 좋지요."

 

그러니까 무당 수업 중이었던 것이다. 접신을 하는 법과 신이 들어왔을 때 신과 소통하는 법, 신을 어루는 법 등에 대한 수업.

그러나 내게는 개뿔. 거짓부렁 수업이었다. 접신이 저렇게 허투루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내 눈엔 암것두 안 보이더만. 저건 분명 오소리 귀신일 거야. 사람 귀신 아니야.

 

문간방은 한달이 지나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무당이 무서운지 무당이 사는 집이 무서운지. 학교에 가면 학과 친구들이나 동아리방 선배들이 자꾸 이사가라고 말을 한다.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그러나 원래 내가 살던 곳을 타의로 이사한다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그집은 빨래 널기가 아주 좋았다. 아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조금 외양이 바뀌었다고 안면을 바꾸고 무서워요, 도망가는 것은 내게는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미간에 빨간 점을 붙이든 눈매가 매서워지든 내가 알던 안채 아주머니 그대로인데.

 

 

 

 

주말에 고향집을 다녀와 반찬을 잔뜩 든 무거운 양팔을 낑낑대며 집 대문을 들어섰다. 이상한 향이 났다. 문간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가 새로 이사를 들어왔나? 방문이 열려 있었고 나는 슬쩍 봤는데 방안엔 부처를 모셔놨고 제단이 있었고 향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한 향의 정체는 향불이었다. 안채 아주머니가 견습을 드디어 마치고 샵을 차린 것이다.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손님이 많겠지. 그러나 학교를 오가며 봐도 손님 꼬라지는 보이지 않았다. 홍보가 덜 되었나. 이 동네는 점을 잘 보지 않나. 내가 들락거리는 시간대가 맞지 않나. 들락거리는 시간대를 바꿔 보았다. 아주머니가 용돈벌이라도 해야될텐데. 나라도 봐주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늘 아프던 아주머니가 이제 더이상 아프지 않고, 시끄럽던 부부싸움도 더이상은 하지 않으니, 아주머니에게는 신내림이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그뒤로 무당을 보면 겁이 나지 않는다. 왠지 내 미래를 훔쳐 볼 것 같고, 내가 품은 나쁜 마음을 알아챌 것 같은 무당이었는데, 무당 견습을 본 뒤로는 어지간히 큰 무당이 아닌 고만고만한 무당들은 샵을 연 가게주인 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무당아줌마. 우리, 같은 상인으로써 작금의 불경기에 대해 이야기 한 번 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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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4-2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옛날에 꿈을 꿨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오더니 화를 내는 겁니다.
왜 밥상을 차리지 않았냐고 말이죠. 호통을 치는 거예요.
그래서 꿈에 어머니가 밥상을 차렸는데 그 사람이 밥을 먹으려다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는 겁니다.
그러더니 혼잣말을 하더라고요
" 어, 이 집이 아니네... "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바로 옆집으로 가더이다.

꿈에서 깨어서 다음날 옆집에 물어볼려다가 만약에 진짜 그 집이 그날 제사가 있었다면 더 무서웠을 것 같아서
그냥 묻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달사르 2013-04-29 13:18   좋아요 0 | URL
어..
무서운 꿈이네요!

가끔은 꿈이 실제보다 더 현실적일 때가 있더라구요. 그런 실재감각에서 돌아와 꿈에서 깨어보면, 한동안 멍하고 그렇더라구요. 곰발님 꿈꾸고 나서 놀라셨겠어요. 무슨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그런 꿈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에 이런 귀신 이야기 하면서 전 부쳐 먹으면 딱일 것 같아요.

탄하 2013-05-0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예전에 말씀하셨던 신비스런 경험 중 하나인가요?
제겐 신비라기보다는 섬찟에 가깝지만요.^^

저는 이런 거 무.서.워요.
지금까지 무당집에 가본 적도 없고, 점집에도 가본 적 없고...
특히 가위에 크게 눌린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이후로는 더 싫어요.ㅠ.ㅠ
웬지 그쪽 귀신이 저한테 옮아올까봐.(무슨 병도 아니구..ㅎ)

김성중의 단편이 어느 하숙집 이야기인가요?
제 생각엔 김성중 작가가 달사르님 이야기에 오마쥬를 써 주셔야 할 듯.^^

달사르 2013-05-09 23:57   좋아요 0 | URL
아니요. 신비스런 경험은 좀더 나이가 들어서였구요. 저건 걍 선무당 구라를 구경한거죠. ㅎㅎ
저는 섬찟도 아니었어요. 그냥 웃기네..정도.
저 장면을 안봤으면 무서웠을텐데요. 무슨 만담하듯이 두 여편네가 거실에 앉아서 뭐가 보이네. 뭐가 돌아다니에. 하면서 목소리로 억지로 쥐어짜서 일부러 애기 목소리를 내니까 영~ 감흥이 안 생기더라구요. 저 여편네들은 연기학원을 더 다녀야돼. 이런 생각? ㅎㅎ
음..그러니까 생계형 무당이랄까..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신내림이랄까..

저도 무당집 가본 적 없어요. 무당집에 살아본 적은 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가본 적 있다!
무당아지매가 단골인데 약 갖다드리러 간 적 있어요. 울집 앞에 살아서 퇴근길에 약배달을. ㅎㅎㅎ
근데 무당아지매가 없어서 방문 열어서 안에다 놓고 왔는데요. 불상 모셔놓은 거랑 향불이랑 스윽 훑어봤다는. 히히.

넵! 하숙집(자취집)이야기에요. 우연히 시장통 어느 건물에 자취를 했는데, 어느날 알고보니 주인할머니 등이 어떤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어서 깜놀했다는 이야기. 근데 주인공이 저처럼 그냥 눌러살아요. 무섭다고 도망가지 않고 귀찮다고 눌러살아요. ㅋㅋㅋㅋ 저처럼 말이죠.

순간, 아... 이 글.. 혹시 내가 썼나? 내 사연이랑 왜이렇게 비슷하지? 했더랬어요. ㅎㅎㅎㅎ

탄하 2013-05-11 00:31   좋아요 0 | URL
에이, 단골 약배달을 갔음 '내일의 운세' 한 소절 정도는 무료로 제공해주셔야 하는 건데..^^
아..안 계셨다고 그랬죠? 무당아지매가 계셨다면 분명 한 말씀 해주셨을 것 같아요.

와, 진짜 '내 얘긴가' 하셨겠어요.
하숙집 얘기겠거니, 했는데 이정도로 흡사할 줄이야!
저는 옛날에 편혜영의 단편에서 아주 초큼, 한 문장 정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본 적이 있어요.
커피숍에 있는 나무들(화분)이 싫다..뭐, 이런 얘기였는데, 제가 친구한테 그런 말을 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그 때 편혜영 작가가 옆자리에 있었나? 생각했죠.ㅋㅋ

달사르 2013-05-11 22:5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주인할머니 집에 노인이 총 세 명인데요. 한 명은 사이비 종교 교주, 한 명은 신도, 한 명은 배교자에요. 근데 셋다 유일한 한 명이지요. 그러니까 저 사이비 종교는 이제 망해서 교주가 한 명, 신도가 한 명, 배교자가 한 명뿐인데 셋이 한 집에 살아요.

어느 종교나 그렇겠지만 무슨 염불 같은 것도 외울 테고, 향불 같은 것도 피울 테고, 신주단지나 부처나 하여간 어떤 종류의 상도 모셔놓을 거고,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걸어서 출근하기 길 중에요. 약간 허름한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 중간에 허름한 가정집에 '무슨 무슨 교회'라는 간판이 있어요. 십자가도 안 보이고 암것도 없는데 벌써 몇 년째 간판이 있어요. 그곳도 그런 사이비 단체인가? 란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런 사이비 종교가 시골에는 의외로 곳곳에 많아요.

물론 정식 교회, 큰 교회, 큰 절 등이 사이비 간판을 안 달았다고 해서 정도를 걷는다, 라고 생각지는 않지만요. 사이비 종교를 무조건 터부시하고 싶은 생각도 없긴 해요. 어떤 종교이든 간에 저 사람들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 종교를 믿게 되었을까..란 생각이지요.

ㅎㅎㅎㅎ 분홍신님도 비슷한 경험 하셨군요. 커피숍에 있는 나무들이라..커피숍 한 가운데 아주 큰 나무 있는 건 조금 무섭기까지 하던데요. 커피숍이 삼층짜리였는데 가운데를 통으로 터서요.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높이 솟아있더라구요. 그 나무는 가지를 얼마나 많이 잃었을까요. 옆으로 뻗지 못하게 해마다 잘렸을텐데..
분홍신님은 작은 화분도 싫어하시는 거지요?
음..이유를 알 듯 모를 듯. ^^

탄하 2013-05-13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베란다나 길가, 야외에 있는 나무, 식물들은 좋은데, 그게 실내로 들어와 있음 썩 반갑지 않아요. 이상하죠?
어떤 면에선 당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커피숍(까페) 인테리어의 어줍지않음과 그걸 무마시키려는 듯한 '장신구'로서의 용도..뭐,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그때는 왜..테이블 간의 프라이버시, 소음의 분산을 위해 군데군데 사람 눈높이~키높이의 화분을 두었잖아요? 저는 그게 다른 장식물이나 구조, 혹은 더 넓은 테이블 간격에 의해 소화되길 바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원주택도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지 5년 남짓하니까, 근본적으로 자연친화력이 떨어지는 1인인지도 모르구요. 하여간 살면서 동물을 키워본 적은 있어도 제 손으로 화분을 키워본 적은 없네요. 8살때 학교 숙제로 채송화 심기 한 것을 제외하면..^^


앗!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이닷! 저두 저 책 사려고 벼르고벼르고벼르는 중입니다. 냉큼 사봤자 즉시 읽지 않을거라 한 템포 늦췄더니 지금까지 벼르고만 있네요. 에잇! 또 맘에 불을 지펴버렸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칭찬을 받으리라 잔뜩 흥분해 있던 나는

화도 못 내고

억울한 마음에 방안을 멤돌았다.

아직은 목을 보호해야할 때라 밖에 싸돌아 다니지도 못한다.

 

당신 눈에는 고작이겠지만

나는

나는

아픈 와중에도

당장 해야할 일조차 미루며

그일에만 매달렸다구.

그런데 이게 다야. 이게 다냐구? (꽥!)

 

 

방안에서 소리나지 않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다가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책을 폈다.

 

 

 

 

 

 

 

 

 

 

 

 

 

 

 

 

달이라..

 

몇일 전

내게 약주를 선물한 분과 같이

하늘의 달을 봤다.

누군가와 같이 하늘의 달을 보는 기분

오랜만이다.

 

 

그리운 사람과 같이

사방이 확 트인 너른 곳에서

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과 달을 보며

공간의 흐름 속에 같이 흐르자 했던

오랜 약속이 떠올라 울컥했지만 웃으며 말했다.

 

"달이네요"

 

 

 

신경숙의 글은 처음 읽는다.

장편소설도 아니고, 단편소설도 아니고, 그저 짧은 소설이다.

 

신경숙의 글은 마치 약국에서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같다. 이빨 빠진 할머니가 말하기 전부터 당신이 먼저 웃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몇 마디 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다 알겠고, 뒤에 하는 말들은 그저 맞춰주기 위해 들어줄 뿐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듣다보면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박장대소의 웃음이 터지진 않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우며 듣게 되진 않지만, 어디에서 웃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그 선한 얼굴을 대하면 그만 어떤 이야기라도 좋아, 라고 생각되고 마는 것이다.

 

신경숙이 쪽지처럼 숨겨둔 유머는 찾지 못했지만(반 개 정도는 찾기도 한 듯), 어쩜 할머니들은 잘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니, 내가 할머니가 되면 그때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달에게 힌트를 구할 뿐이다.

 

 

 

오늘처럼 신경질이 나는 날엔

나도 달에게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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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4-2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는 고단한 몸을 이끌고 시장에 가 떡볶이와 막걸리를 사왔어요. 달사르님에게도 사발 가득 막걸리를 따라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크게 한 입 삼킨 뒤에 크- 하는거죠. 안주로 떡볶이도 괜찮은 궁합이었어요.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하다보면 괜찮아질까요, 달사르님?

달사르 2013-04-22 17:33   좋아요 0 | URL
고단한 몸에 넣어주는 막걸리는, 하루를 힘겹게 보낸 우리들에게 주는 선물 같아요.
등산 후 산자락에서 파전에 막걸리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고단한 하루 끝자락에 목을 타고 가는 막걸리가 보약입지요. 반가운 지인이 옆에 있어 주거니받거니 마시면 운치까지 있겠어요.

떡뽁이는 언제라도 반가운데, 술 친구로도 괜찮았군요.
오늘, 월요일인데 하루 잘 보내고 계십니까. 일요일 쉬지 못하고 일한 주 다음 날의 월요일은 되려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구요. 화요일이나 수요일 정도 되면 축 늘어지구.

저는 씩씩거리던 화가 다 풀렸구요. 이제 반성모드로 들어갔습니다. ^^

탄하 2013-05-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위에서부터 쭉~~보다가 이거 날짜 보고는!
제가 소주이야기에 댓글 달고 곰방 올리신거네요.

신경숙의 글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동안의 작품성격을 보면 '유머'와 친한 작가는 아닌 듯..ㅡ.ㅡ;

요즘 이 책이 많이 나가나봅니다.
단편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그저 짧은 소설.
어쩌면 작가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달을 바라보며 마음 속의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달사르 2013-05-10 15: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본인은 나름 '유머'라고 생각을 해서 읽는 입장에서 약간 난처했다고나 할까요.
그왜 있잖아요. 아주 진지한 친구의 경우.
자신은 농담이라고 하고는 조용히 웃는데, 맞장구쳐야 될 순간이 언제인지 몰라 눈을 굴리게 될 때. 근데 그 친구가 너무 순해서 "야, 이거 안 웃기거든?" 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경우.

이 책 읽고나니, 신경숙의 다른 진지한 책은 어떨까? 라는 생각은 들었는데요. 지금은 말고 다음에.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이러이러한 일들을 겪었고 힘든 시간을 다 지나왔던 거 같애.

-이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작가가 등장인물들에게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갖다붙인 거 같애.

 

-너를 만난 것도 행운이지만, 너를 만나기 전의 나의 과거 또한 나에게는 소중해. 그것이 비록 아픔의 추억일지라도.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이 하나의 사건은 심히 놀랍지만 등장인물들의 과거 또한 과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어. 그러니 등장인물들에게 마음이 가는 거겠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소설이다. 전자의 이야기가 아닌, 후자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소설가. 소설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맘껏 하게 해주는 소설가.

 

 

7년 전 초고를 만든 소설은 몇년 전 신문에서 본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박 작가는 "어느 사람이 무작위로 여러 사람에게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이를 받은 사람 중 반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돈을 보내왔다는 기사를 보면서 모텔에 대해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으악. 7년이나 잡고 있던 작품이라니. 작가의 끈기에 일단 박수를. 자신의 분신이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을 저렇게 오래 품고 있다는 건, 그 만큼의 애정이 있다는 말. 이 소설은 허리 아래의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다. 모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모텔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약국도 어쩌면 허리 아래 이야기를 직업상 해야 되는 장소다.

 

 

1.

임신 테스트기를 사러 온 신혼의 부부가 약국에 들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목적이 뚜렷한 여자가 들렀고 남자는 약국 밖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배회하다 부인의 부름을 받고 약국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도 여자는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했다.

-결혼하고 이제 6개월이 지나가는데 왜 이렇게 임신이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남자가 조루면 임신이 잘 안 되나요? 조루면 정자가 난자까지 가기 힘이 들까요?

말하는 여자 말고는 모든 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남자는 머리를 손을 매만지며 문을 열고 나갈 폼을 취하고 있었는데 여자의 진지한 나무람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얼굴이 붉어질 농담의 내용이 아니라, 여자의 진지한 고민임을 알고 정자세를 취하고 대답을 했다.

-아직 오래 되지 않아서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두 분 다 나이가 어리시니. 금슬이 좋으면 또 애기가 늦게 들어서잖아요. 지금은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해서 배란기를 맞춰서 임신준비를 해보시구요. 정 답답하면 그때 병원을 가 보세요. 아마 여자분의 경우, 남자분의 경우, 각각의 경우를 다 검사할 거에요. 요새는 직업 때문에 정자의 수가 작아지는 경우도 꽤 많기도 하구요.

-어머. 그래요? 어떤 직업이 그렇죠?

-제 친구가 비행기 조종사인데, 그 직업도 그런 모양이더라구요. 게다가 환경호르몬이 좀 위험합니까. 직업 뿐만 아니라 남자의 정자에 위해가 되는 물질 또한 상당하지요.

-그런데 조루를 치료하려면 어떤 방식을 써야 될까요?

여자는 임신보다 조루가 더 심각한 눈치다. 임신을 빙자해서 남편의 조루를 치료하고픈 걸까. 자고로, 병은 떠벌리고 다녀야 낫는 법이다.

-조루인지 아닌지는 시간상으로 따진다기 보다는 부부간의 만족도로 따지는 경우가 크구요. 남자는 심리적으로 조루가 올 수도 있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행위여서 서투른 신혼의 조루도 꽤 되구요. 그리고 부인과는 안되면서 다른 여자와는 잘 되는 경우, 이런 사람은 심리적인 경우고요. 심리적인 상담에 병행해 '졸로푸트'라는 처방약을 쓰기도 해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비아그라' 같은 약 처방도 있구요. 조루라는 상황이 사람에 따라 다 다른거니까, 일단 부부간에 대화를 먼저 해보는 게 좋을 거에요.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건데, 넌 어때? 라든지 어떤 부분이 특히 좋았어? 라든지. 말로 털어놓고 시작을 하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도 하거든요.

 

1번은 허리 아래의 이야기는 병원 진료실 안, 보고 듣는 사람이 의사 한 명 뿐인 공간에서 내밀하게 하는 게 좋다, 라던 내 생각이 깨져 버린 계기가 되는 이야기다. 저런 이야기를 병원까지 가서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거며, 저 이야기가 그토록 숨겨야 되는 이야기인 것인가, 라는 의문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엔 남편의 부끄러움이 먼저 눈에 들어와 제발 여자가 입을 다물었으면, 라고 생각했지만 기왕에 여자가 입을 열었고 남자 또한 나가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듣는 판국에야, 나로선 최선을 다할 일이다. 다양한 방법,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이야기를 객관적인 입장의 사람에게 듣게 되면 아무래도 자신들의 상황 또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

 

 

2.

가끔 이른 저녁 약주를 드시고 헤롱거리는 상황에서 콘돔을 사러 오시는 아저씨가 있다.

-어떤 게 좋아?  이거는 말이지. 촉감이 무뎌서. 요새는 그런 거 있다믄서. 건조하지 않게 하는 거.

-아. 네. 그렇지요. 여성분의 아래가 건조한 경우는 질 윤활제가 있지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 아래가 건조해지니까요. 여성분이 자꾸 아파서 피하시면 이걸 쓰시는 것도 괜찮죠. 요새는 나이 드신 분도 많이들 찾으세요.

-그래? 그럼 이걸 쓰면 물이 줄줄 흐른단 말이지. 여자는 자고로..

얼굴이 무척 붉어지지만, 성희롱과 제품 설명의 아슬한 경계에서, 이 사람들이 이런 궁금점을 또 어디에서 물어보겠나 싶어서 붉어짐을 참고 말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렇게 노골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점잖게들 말을 하신다. 그러나 어떤 표현을 쓰던 궁금한 건 매한가지고, 내가 답해야 하는 방식 또한 일관적이어야 한다. 가끔 흰머리의 노인이 오셔서 러브젤을 찾을 때, 늙은 할머니가 투덜거리면서 러브젤을 찾을 때, 그럴 때는 괜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죽어도 좋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들의 절절한 마음은 아직 늙지 않은 나에게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3.

혈압이나 당뇨, 기타 고지혈증 같은 질환과 똑같이 신경정신과, 비뇨기과, 산부인과적 질환은 같은 등급이다. 더 높고 더 낮지가 않다. 되려 더 상담이 필요한 부분이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 몸을 팔기 시작해 서울에서 지방으로, 다시 시골 소도시로 급이 떨어져 내려온 어느 여자는 피임약을 일년 내도록 먹는다. 생리를 하게 되면 몸을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3주 복용 후 1주를 쉬어야 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도 소용이 없다. 다방 업주가 여자가 생리하는 꼴을 봐주지 않기 때문이며, 여자 또한 빨리 돈을 벌어야 되기 때문에 둘의 마음이 맞은 셈이다. 한동안 그렇게 먹던 여자는 어쩌다 좋은 남자를 물어 시집을 갔고, 가자마자 아이를 씀풍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이지만 왠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예술과 외설의 한끗 차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외설과 자신의 생활 속 일상은 섞인다.

 

 

 

<에메랄드궁>의 여자, 연희 또한 아이를 씀풍 낳았다. 남의 남자를 유혹해 임신도 하고, 야반도주도 했으나 행복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 순간엔 죽어도 좋을 듯이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은 곁에 있는 것 만으로 싫으며, 밥 먹는 것도 꼴 보기가 싫다. 힘들게 번 돈과 우연히 남편에게 생긴 돈을 합해 차린 모텔. 그곳에서 그들은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생활을 한다. 시골 소도시 조차 밤이 되면 불야성인 모텔을 올려다볼 때면, 모텔을 드나드는 사람이 아니라 모텔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은 하루종일 무얼 하며 지낼까. 모텔을 지키는 사람. 모텔을 청소하는 사람. 모텔을 들락거리는 사람. 모텔에 달세를 끊고 기거하는 사람. 모텔에 몸을 팔러 오는 사람. 모텔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모텔에 얽혀 갖가지 사연을 주렁주렁 매달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쩜 그 주인은 콘돔을 사러 내 가게에 들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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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3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옛날에 동네 약사들은 죄다 여성이더라고요. 콘돔을 사야 하는데
도무지 말은 못하겠고 막 돌아다니다가 나이 지긋하신 남성분이 게식는 거 보고 냉큼 문열 열고 들어가는데
그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온 데 간 데 없고 불쑥 젊은 딸이 나오는 겁니다.
아버지, 어서 들어가서 식사하세요...
뭐 드릴까요 ?

아버지 약사분은 흐뭇한 표정으로 딸을 지켜보고 있더란 말이죠.
결국 박카스 하나 먹고 나왔습니다. ( 실화임.. )

달사르 2013-03-31 22: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나요? 겨우 한 군데 찾아서 안심을 하다가 순간 엄청 당황하셨겠어요. ㅎㅎㅎㅎㅎ. 아무래도 머쓱해하면서 들어오는 남정네들이 꽤 되죠. 차라리 얼굴을 모르면 상관없는데 아는 단골이라든가..의 경우는 콘돔을 살 때는 모르는 약국 가서 사더라는..

실은..약사들도 다른 약국에 들어가서 콘돔 사는 게 좀 부끄럽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당장 저부터도..아..자신이 없어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3-03-3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달사르님. 한수철님 말씀처럼 좋은 소설이 탄생할 것 같아요. 음, 제가 생각하기엔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 류의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도전해봐요, 응원할게요!!

달사르 2013-03-31 23: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소개해주시는 한창훈의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모기장에 모기 들어오듯 단속을 해도 해도 들어오는 그놈의 정, 에 관한 이야기라니요.
급호감이 갑니다요. (헤헤. 다락방님의 리뷰를 벌써 훑어봤지용~)

일기 쓰듯 조금씩 조금씩 분량을 만들어볼까요? ^^

탄하 2013-04-0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뜻한 그린이네요.
민트색도 있어서 아주 시원합니다.

흐흐..예술과 외설의 한끗차이...^^
약국의 처방, 상담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네요.
'이걸 쓰면 물이 줄줄 흐른단 말이지'에서 철푸덕..ㅋㅋ

어찌보면 동네 구멍가게에서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이 약국인지도 모르겠네요.
진짜 약국에서 벌어진 일로 소설 한 권 써보셔도 좋겠어요.
정말 재밌고, 느끼는 것도 많아요.

달사르 2013-04-09 21:37   좋아요 0 | URL
색깔 이쁘지여? 둔황에 가서 슬쩍... 힛.

철푸덕..ㅠ.ㅠ 부끄럽습니다..ㅠ.ㅠ ㅎㅎㅎㅎ

이래저래..부탁받은 일도 마무리하고, 몇 가지 일 좀 더 정리해놓고..
제가 능력이 되는지 끄적거려라도 보게요.

하루키는 일과 마치고 어두컴컴한 부엌(인가 그 비스무리한 곳)에서도 글을 썼다던데..과연 작가가 된 사람들은 정말 그럴 만큼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같애요.
 

 

 

 

 

 

 

 

 

 

 

 

 

 

 

나머지 두 명은 줄곧 창밖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무엇인가를 보기는 하는 것일까. 어둠 속에 볼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어둠은 늘 자기 속에 무엇인가를 담고 있었다. 어둠이 어두운 것은 그 안에 담고 있는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열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군인들이 지어 보이는 침울하고 완고한 표정은 그들과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나에게 모종의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불러일으키다니! 나는 무의식중에 불러낸 하나의 단어에 움찔했다.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불러내진 것들은 불러내질 때까지 누군가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름에도 즉각 반응하는 것이다. 심지어 불안은 누군가 불러 주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퇴근 무렵 약국은 갑자기 바빠졌다. 약속 시간이 빠듯한데 장기 처방전이 왔다. 카톡도 자꾸 띠링띠링 울린다. 몇 십 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약국 문을 닫고 불을 끈 후 정리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폰을 열었다. 여러 개의 문자 중 짧은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처방 프로그램을 끄고 컴퓨터를 끄려던 내 손이 멈칫했다. 내 마음보다 머리 속 뉴런이 보다 빨리 내 손에 정보를 전달했다. 컴퓨터 끄지마.

 

나는 여기저기를 클릭하면서 음악을 찾아 헤매고 글을 찾아 헤맸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홀로 밝은 컴퓨터는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두둑. 눈물이 자판 위의 두 손등에 떨어진다. 애써 참으며 눈 안에 감추려던 눈물이 어느새 넘쳐 흘러버렸다. 짤막한 일상의 문자였지만 그 속엔 말하지 않은 것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을 삼켰고 그 말들은 속절없이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문득, 조용한 어둠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만의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잠시의 이 시간이 한때는 얼마나 진저리났던 시간인지는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어둠이 무서워 밤에 불을 끄면 아침까지 절대로 눈을 뜨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저 만치 가버리고 이제는 어둠의 위로에 안식의 한숨을 내쉰다. 한때는 눈물 조차 말라버려 퍼석거리는 감정의 시기도 있었다.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그 갑갑함은, 이산화탄소로 가득한 공간에 입에만 산소 마스크가 물려져 있어 겨우 숨만 쉴 뿐, 온몸의 모공이 막혀 그야 말로 기막힌 상황이랄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그래. 또 기운 내보자. 힘겨움이 다가오면 다시 흘러갈 때까지 지켜봐야지.

 

문단속을 다 마치고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나섰다. 번화가에 접어드니 책정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우 리스트를 만들자 해놓고 몇 달째 그대로다. 집에 가면 이승우 책이 도대체 몇 권이나 있는지 좀 찾아보자. 한 번 읽고 나서도 자꾸자꾸 읽고 싶어지는 책을 쓰는 사람.

 

집에 와서 책을 찾으니 제법 높이가 쌓인다. 그중 한 권을 대충 집었다. <한낮의 시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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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안을..책에게 들켜버린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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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3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정말 신기할 때가 있어요. 책 말이에요. 저도 어제 아비정전 새로운 스틸컷을 보고 마음이 싱숭생숭...
장만옥은 왜 양조위를 만났을까 ?

노트북이 나열된 책장 앞에 있어 자연히 책이 보이는 구조인데 갑자기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생각나더군요.
다시 읽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꼭 찾아야겠다는 것... 다 뒤져보았습니다. 한 30분 걸린 것 같네요. 새벽에

코매긔 다른 5권은 찾았는데 딱 그 책만 없더군요. 생각해 보니... 헤어진 여자가 가져갔던 책입니다.
책은 어떤 식으로든 어느 한 시점을 반영합니다.

달사르 2013-03-31 18: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승우의 많고 많은 책 중-10권도 넘음-에서 하필이면 저 책을 집어들었는지요.
읽다가 악! 소리가 나왔지 뭐에요.

4월이 되어가니 아비정전이 생각나는 거 같애요. 저는 내일이 마침 생일이라 친구에게 아비정전 비디오 사달라고 졸랐답니다. 힛.

<모두다 예쁜 말들>은 다락방님 책소개로 읽게 된 책이네요. 저도 이 책이 무척 좋았던지라, 이 책을 알고 있는 사람 보믄, 괜히 반갑고 그래요. ^^

헤어진 여자라..난 헤어진 남자에게 책 선물 같은 것도 안 했나봐요. 기억에 없다니..ㅠ.ㅠ (추억에 얽힌 책이라..알싸한 무언가가 있네요. 괜히 코 끝이 시큰?)

탄하 2013-04-0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오랜만에 왔나봅니다.
그간 페이퍼가 2개나 올라왔는데 하나도 못 읽고...ㅠ.ㅠ

이승우라는 작가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인가봐요.
저도 어느분(dreamout님 아세요?) 서재에서 <지상의 노래>에 감동하시는 페이퍼를 보고 그 책을 샀는데,
음, 제가 늘 그렇듯 사 놓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다른 분들도 이승우님을 잘 아시는 것 같았어요.
근데 오늘 보니 달사르님까지...!

발췌하신 글을 보니 그 이유를 알 듯 합니다.
저는 요만큼만 읽었는데 벌써 매료되네요. 항..
달사르님은 이승우 작가의 책 중 어떤 것이 가장 맘에 드셨어요?
<지상의 노래> 읽고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읽고 싶네요.

달사르 2013-04-09 21: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2개나!!!!

정말..올해는 좀 페이퍼를 많이 써보고 싶은 생각인데..올해도 벌써 4월이에요.ㅠ.ㅠ
담에 분홍신님 들를 때 깜짝 놀라게 페이퍼 한 10개 정도 올려보고픈데 말이죠. 마음만 굴뚝. 힛.

아..저도 이승우님을 다른 분 소개(저는 다락방님. 힛.)로 알았어요. 그분도 이승우님 책에 완전 감동받으셨는데요. 제가 감동받은 건 한 일년도 훨씬 지난 뒤..? 일 거에요. 제가 처음에 읽은 책은 어렵기도 하고 감동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쪽이어서요. 그래서 담에 다시 읽자..하고 미뤄두고 한참 뒤에 우연히 다른 제목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는 와~했거든요.

그래서 이승우 책 왕창 사놓고 한 두달에 한 번씩 읽고 또 읽고 그래요. 가장 마음에 든 책은..그래서 아직 뽑지 못하고 있어요. 좀더 더 읽어보고 이렇게 페이퍼도 좀 올려보고..일단, 그럴려구요.


지상의 노래는..저도 아주 좋았던 느낌입니당.~~~(좀더 묵혀서 리뷰 쓸려고 아직 못쓰고 있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