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날개>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디가 불편하신지?"

"그게요. 우리가 요 옆의 길벗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술도 고기도 잘 먹던 이 친구가 갑자기 배를 끌어안고 뒹굴더니 나와서 토하는데 결국 피까지...."

 

마늘 냄새가 탁하게 끼친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 냄새를 피한다. 배우지 못하고 능력도 없어서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 그들은 말할 기회를 얻기만 하면 불필요한 말을 공연히 길게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진단에 필요한 증상, 사실 전달만 하면 되는데 끓는 찌개 위에 뜨는 거품처럼 장황한 군더더기 말이라니. 그는 거품을 걷어내듯 말을 끊는다.

 

"어디 한번 봅시다. 피가 많이 나왔나요?"

"그건 아닌데요, 그래도 피가 섞이니까.."

"위염이네요. 우선 주사 한 대 맞고, 약 드시고, 나가다 내시경 예약 잡으세요."

"내시경은 무슨...그냥 약이나 지어주쇼." 

                                                                                                                                            p.145

 

 

책을 읽다 불에 데인 듯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내 생각이 왜 여기에!

배우지 못하고 능력도 없어서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을 빼버리면 말이다. 내가 겪는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되려 많이 배우고, 돈도 많은 사람이 더 많으니.

 

생각을 하는 당사자는 의사다. 스무 몇 살의 젊은 시절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쳤음이 분명하고, 의대 인턴, 레지를 거쳤겠고, 군복무 대신  군의관을 지나 개업한 내과 개인의다. 직원으로 사무장, 간호사, 보조 업무 보는 사람이 있겠고, 일 처방 70건 정도의 무난한 수준의 환자 확보가 된 상태일 것이다. 건강한 사람이 의사 가운을 입고 매일 듣는 소리는 여기가 아파요, 저기가 아파요, 일 것이다. 환자가 말하는 아파요, 에 대응하는 의사의 속생각이 잔인해 보이는가?

 

 

 

어느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왜 나는 어떤 환자와는 깊은 공감을 하면서 말을 한 시간이고 들어주면서,

또다른 어떤 환자에게는 귀를 닫고 싶을 때가 있는지.

 

이 양자간의 차이에 대한 고민은 내가 개업을 하고부터다. 사실 개업을 하기 전, 남 밑에 있을 때는 주는 약을 최대한 정확하게 주는 것에 집중을 했지, 약을 먹는 당사자의 입장에 서보는 일이 힘들었다. 그러니 저런 고민 자체가 내 속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진료와 치료를 하는 의사 역시, 아픈 당사자의 입장에 서 보는 일이 힘들 수 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해보고자 하나, 인의를 펼쳐보고자 하나, 무릇 세상 모든 일은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 법이다.

 

내가 그나마 어떤 환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다. 약자일 수도 있다, 가 아니라 약자 그 자체, 라는 사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볼 때의 시선 처럼,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대할 때의 그 눈빛 처럼, 기득권자의 눈은 가지지 못한 자의 마음을 뚫어보지 못한다. 그 마음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비기득권자가 되어 보는 것이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 마음을 내어보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나는 그럼 비기득권자란 말인가, 혹은 비기득권자가 되어 봤단 말인가. 그래서 (몇 명에게나마) 공감을 하게 된 거란 말인가. 물론,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한 부분은 다른 사람의 고민에 맡기고, 나의 고민이 이 지점이니 이것만 이야기해보자.

 

천민 자본주의가 극에 다하는 요즈음에는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직종 또한 언제 어느 때 나락으로 떨어질 지 모른다. 내가 아는 약사님 한 분은 개업 후 2년도 안 되어 문을 닫았지만 그 손실액은 몇 억에 달했고, 개인 파산과 이혼이라는 선택을 강요 당했다. 또다른 의사 한 분은 종합병원에서 개업의로 나섰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처방 건수로 인해 불면과 두통, 고혈압을 몸에 새기게 되었다. 또다른 한 의사는 지인의 빚보증을 서주었다가 떼인 후 몇 년간이나 일하는 족족 빚갚기를 하더니 급기야 스트레스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자신이 기득권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의 '나락'은 더 위험하다. 머니의 단위가 크기도 하지만, 자존심의 상처 또한 만만찮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경쟁 원리에 대해 쑥맥인 채로 (그야말로 공부만 하다) 세상에 나왔으니 더 그럴 것이다. 나는 다행히 파산 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남이 보기에 성업 중이라 생각하겠지만, 초창기의 나는 꽤 고전했다. 직원 월급이라도 제대로 줘야 될텐데..라는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는 개업 후 금방 알아버렸다. 자영업자들의 애타는 마음도 알게 되었으며, 덩달아 환자, 아니 고객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저절로 되어 버렸다.

 

저기는 불친절해서 말야..라는 곳은 먹고 살 만한 곳이거나, 장사 때려치우려고 마음 먹은 곳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직원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되는 상태에서는 불친절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런 말이 있다. 동네에 안과가 하나 밖에 없다면 불친절할 수 있다. 하나 뿐이니 불친절도 감수할 수밖에. 그러나 안과가 하나만 더 생겨도 불친절했던 과거는 기억도 나지 않는 저 먼 과거의 산물이 된다. 불친절했던 안과가 급친절로 바뀌는 생생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그래서 나 역시 불친절할 겨를이 없이 항상 얼굴에 미소와 친절한 멘트와 더불어 이런저런 서비스를 해주게 되었다. 언젠가의 경우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쳐서 무릎이 까인 사람이 글쎄, 다친 부위에서 나온 진물이 무릎에 딱붙어 바지를 벗지도 못하게 된 상태로 온 것이다. 병원에 가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막무가내다. 알고 봤더니 초기에 다치자마자 병원을 갔으나,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찰과상은 원래 다치자마자는 아프지도 않고 환부의 상태가 심각하지도 않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욱신거리기도 하고, 진물이 나오기도 하면서 상태가 심각해지는 법이다. 초기에 병원을 갔으니 찰과상의 그런 진전 상황에 대해 미처 생각을 못하고 대충 드레싱만 해주고 보낸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병원에 갔다 왔으니 할 도리를 다했는데 이상하게 상처 부위는 점점 심해지니 병원을 기피하게 되고, 급한 김에 약국이라도 들러본 것이다. 소독약과 거즈와 습윤밴드 등을 사긴 했는데, 손님은 암담한지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만 있는다. 이 상태로 뒀다간 상처가 더 심각해질 것 같아 집에 가서 이런 식으로 드레싱 하라고 설명을 해봤지만 계속 멍한 상태다. 도저히 안되겠어 상처를 보기나 하자는 심사로 진물로 덕지덕지한 청바지를 떼내보기라도 하자, 싶었다. 그러나 고름이 청바지에 엉켜 붙어 굳어버려 청바지가 떼어지지 않았다. 식염수를 부어 가며 청바지를 조금씩 떼어내니 손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엉겨 붙은 청바지가 거의 뜯겨나갈 즈음에는 손님은 남자로서의 긍지는 커녕 아파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마무리까지 하고 나니, 손님은 다시 얌전해졌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비칠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상처를 환자와 내가 동시에 들여다 보는 이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열어주었다. 말로만 듣던 여기 아파요, 저기 아파요, 가 실지 공감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후로도 다쳐서 온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계속 공감상황이 늘어났다. 그러더니 어느날인가부터는 말로 하는 아파요, 에도 공감되는 순간이 왔다. (너무 길어서 이 부분 생략) 그러나 이 공감은 복불복이어서 언제 올 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공감을 하고파도 안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빨리 대화를 마치고자 하는 생각으로 말을 끊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몰입하게되어 나도 모르게 깊은 공감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복불복의 상태는 아주 불안정하다. 엔드로피가 어디로 튈 지 모른다. 그러므로 예기치않는 불상사가 곧잘 생긴다. 아니, 내가 저렇게 속으로 생각을 하는 자체가 불상사다. 저렇게 생각을 하기 싫은데도, 피곤하기 때문에라든가 손님이 너무 무례하기 때문에라든가 하는 갖가지 이유를 핑계로 들며 자꾸 저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상황이 싫은 것이다. 저 상황은 나의 현 상황 임과 동시에 피하고픈, 혹은 극복하고픈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바쁜 시간들이 가고  좀 쉬고 싶을 때, 하필이면 그 시간을 맞춰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사람이야 그 시간을 일부러 맞추지는 않았겠지만, 이상하게 그 시간에 오는 사람은 대개가 같은 행태를 보인다.) 소설 속 의사 역시 퇴근 시간 직전에 오는 환자는 받지 않으려 한다. 칼퇴근을 하려는 개인의 이기심? 처럼도 보이지만, 나는 의사가 이해된다. 하루종일 지친 속에서 이제 마지막이다, 싶은 마음으로 팽팽한 신경줄을 느슨하게 만들며 이제 더는 못하겠어, 라는 마음가짐 일텐데 급하다며, 니가 퇴근시간이건 말건 나와는 상관 없어, 내가 아프다는데 감히 진료를 안봐, 나더러 지금 다른 병원에 다시 가라는 말이야? 등의 말을 들으며 진료를 가외로 본다는 건 분명 지치는 일이다.

 

역치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퇴근 시간 즈음이다. 퇴근 시간을 넘어서 이것저것 하다보면 금방까지도 팔팔했던 몸이 축 늘어지며 더이상 하다가는 쓰러지겠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혹은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의사 역시 그런 느낌을 알 것이다. 마지노선. 자신이 내일 진료를 또 봐야 되는 상황에서, 그 마지노선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산 그에게,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탕탕탕.

늦은 밤. 자신의 불 꺼진 건물 내려진 샤시를 두드리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도대체 누구길래 크게도, 애타게도 아니고, 소심하게 샤시를 두드리는 걸까.

 

그 누구의 존재가 누구였나에 따라, 남자의 삶이 바뀐다. 그러나 기실은, 그 존재가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존재의 상태가 어땠냐가 아니었을까. 그 상태가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의사는, 샤시를 내리치던 청각의 소리를 유죄 확정! 의 탕탕탕!!! 소리로 바꾸어 가슴 속에서 평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 나는?

나 역시 유죄 확정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저런 고민을 하는 것이겠다. 내 고민의 결과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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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3-24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단편 기억나요. 마지막의 그 서늘한 느낌도. 탕탕탕, 하던 소리에 괜히 불안했더랬죠. 이 단편 좋았는데 달사르님껜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네요.

달사르 2013-03-24 22: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포스팅 봣어요. 이 책 다 읽고 다시 쪼르르 달려가서 이런저런 이야기 해야지 하면서 말이죠.

네. 저 부분은 제가 지속적으로 하는 고민이어서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탕탕탕..소리가 참 서늘하지여? 에고..
마지막 완성(남자의 인생역사에 대한 나름의 완성)은 저렇게 불발로 끝나는게 인생이지..싶기도 했구요.
꿈의 완성 단계에서 깨져버린 남자의 미래는 이제, 가족과 같이 쌓아올렸으면 하는 바램도 있구요. 상처를 서로 도닥이면서. 힘들겠지만 새로 시작해야지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탄하 2013-03-2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아악아악..! 저도 이 책 있어요.
요건 아껴뒀다 있다 밤에 읽을께요.
일단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여, 나머지 포스팅도 잠시 둘러봐야 하니까..ㅠ.ㅠ

달사르 2013-03-25 14:43   좋아요 0 | URL
ㅎㅎ 어여 읽으셔요.

저는 이 책 읽고 막막 흥분해서는, 채 소화도 되지 않은 글을 썼다가, 쓰고 나서 영..이상해서 하나는 수정할려고 일단 삭제를..ㅠ.ㅠ
윗 글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너무 오래 쉬었나..글이 내 맘대로 안 되고 지 멋대로..ㅠ.ㅠ

이번 주말에 다시 한 번 재도전해볼려고 마음 먹는 중. 불끈!!

2013-03-25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7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답글 달다가 설명을 잘 못할 것 같애서 아예 포스팅 합니다. ㅋ

 

리뷰나 페이퍼나 일단 쓰기를 누르신 다음에 글을 마구마구 쓰시구 나서요.

유투브 동영상을 올리고잡다..싶으실 때에는.

아래처럼 우선 html을 누르셔야 되요. 그러면 화면이 이상하게 바뀌는데요.

 

 

 

 

이렇게 바껴요.

 

 

 

 

 

 

뭐라고 나오는 부분 아래 빨간 부분이 제가 동영상 넣은 부분인데요. 이거는 어케 하냐믄요. 일단 유투브로 가셔서 아래 파랗게 표시된 부분을 순서대로 클릭하심 되요. 제가 생각하기에 곰발님이 여기까지는 아실 것 같은데, 맨 밑의 <이전소스코드사용>클릭을 안 하신 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여기 알라딘은 저걸 클릭 안하면 동영상 재생이 안되거든요. 이유는 모르겠구요.

 

 

 

 

이렇게 해놓고 나서 네모칸 안의 저 암호들을 복사해와서 붙이기하면

신기하게도 재생이 됩니다.

쉽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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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3-2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하....
아니 깜짝 놀라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최근서재글 보다가 곰발님'이라고 해서 어디서 만이 본 이름이네..
그리고는 그냥 지나가려다.. 잠깐. 동영상 ?! 이거 나잖아? 했습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거 옛날 방식이군요 !!!!!!!!!!!!!!!!!
아이고 너무 쉽게 갈켜주셔서 감사합니다.알라딘 처음이라....
사실 제가 올린 글은 전부 그 전에 썼더 글 복사해서 옮기는 작업하는 글입니다.
자주 다루어야 하는데 복사만 하고 있으니... 감사해요. 달사르님 복받을실 겁니다요..

달사르 2013-03-24 17:3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앞으로 곰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닷. ^^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만, 암튼..)

넵! 저, 복 많이 받을께요. 복, 더 주세요!!!!!
 

 

1.

최근 기사에 중국의 사막화가 떴다. 기사를 보는데 중국 지도가 나온다. 앗. 내가 좋아하는 지도!

일단 캡쳐부터 해놓고 본다. 윈난성..윈난성이라면 양쯔강이 발원지에서 태어나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한 템포 쉬어가는 중간 지점 아닌가. 여기가 가뭄이 들었다고 하면 윈난성의 양쯔강 지류의 물이 말랐다는 뜻인데..

 

 

윈난성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윈난성은 중국 말단부에 위치한 성(중국의 지역 분류 단위. 우리나라로 치면 도)으로 차밭이 유명하다. 윈난성에서 생산된 차를 마방이란 상인들이 저 멀리 티벳의 라싸까지 실어나르던 험준한 옛 길을 차마고도라 불렀으며 그 유명한 보이차(푸얼차)가 여기 특산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차밭을 갈아엎고 돈이 되는 커피로 종목을 바꾼 곳이 늘고 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695138

 

 

오랜간 차밭이었던 이곳은 최근 들어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위적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오래도록(천 몇백년?) 차를 심은 결과 가뭄에 대비해 물을 머금고 있어주는 큰 나무의 부재가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토지 침식으로 인해 가뭄에 취약해진데다 3년 연속으로 몇 달씩이나 가뭄에 시달리니 땅이 메말라버린다. 하여 이제 이곳은 사막화가 진행중이다. 이 가뭄은 지역을 점점 넓혀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면적이 사막화의 위협을 받고 있다.

 

 

 <파란 색이 양쯔강이다. 쓰촨성 위의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쓰촨성과 서쪽의 티벳자치구의 경계지역으로 남류해 윈난성에 머문다. 윈난성에서 두번의 굽이를 만든 후 쓰촨성으로 다시 상류한 후 동류해 상해의 바다로 흘러나간다.>

 

 

 

 

2.

나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투루판이 떠올랐다. 투루판은 사막의 오아시스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위로는 천산 산맥이, 아래로는 곤륜 산맥이 에워싸고 있는데, 투루판은 천산 산맥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걸었던 서역 상인들이 서역북도(천산남로)를 택할 때 접하게 되는 서역 첫 오아시스이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의 외양이 갑자기 동양적에서 서양적으로 바뀌며 물자 또한 당시 진귀했던 포도를 비롯해 낯선 것들로 가득차게 된다.

 

 

                                                                            <천산 산맥>

 

천산 산맥은 사시사철 눈으로 덮여 있다. 해발고도가 아주 높기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계속 쌓이고 그리고 얼어 있다. 이 눈은 날이 포근해지면 녹아서 아래로 흘러내리는데 천산 산맥 발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투르판까지 어떻게 물이 흐를 수 있는 걸까. 게다가 투르판은 사방이 다 사막인데 말이다.

 

그 비밀은 바로 땅 속에 있다.                                                                                                   

 

 

 

천산산맥 끝에서 투르판까지 수백 개의 우물(카레즈)이 있다. 천산산맥 쪽의 제일 깊은 우물은 300미터에 달하며 점점 얕아져 투르판 인근에서는 3미터짜리 우물이 된다. 이 우물은 지상에서는 제각각이지만 지하로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투르판까지 무사히 올 수 있다. 우물은 원시적인 방식으로 팠는데 두번째 그림처럼 소가 앞으로 나아가면 도르레에 달린 바구니가 우물에서 나오며 그 바구니에는 우물 안의 돌과 흙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게 한 줌 한 줌 파내려가 우물을 만드는 건 좋은데 누가 이걸 하고 있었을까. 강력한 왕이 나타나서였을까. 아니면 부를 축적한 사람이 우물을 파서 그 우물에 세를 받아먹었을까. 투르판은 (현장 법사와 얽힌 건으로) 역사에 잠시 나타났던 고창국이 당에 의해 멸망한 뒤로는 뚜렷하게 강력한 왕이 없었으니 전자는 아닐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기록에 있다고 하니 이렇게 하나씩 만들어나간 우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몇 백 개가 되어 투르판을 젖과 꿀, 아니 물과 포도가 흐르는 오아시스로 만든 것이겠다.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p57>

 

 

한때 번성했던 오아시스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곳도 꽤 된다. 그러나 투르판은 예부터 지금까지 축복받은 땅이며 그 땅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태어나보니 손에 쥔 건 척박한 땅 뿐이었던 그들의 지금 모습과, 물이 넉넉해 큰 나무조차 베어내 넓디 넓은 차밭으로 만들었던 윈난성의 지금 모습이 서로 대비되는 현실 속에서, 걱정되는 건 윈난성의 지금 가뭄이 그들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자연이 물을 허락해 윈난성에 해갈을 시켜주면 좋으련만 되려 홍수로 범람할 우려 또한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4대강 공사를 비롯, 각종 이상기온이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즈음에 우리 역시 언제까지고 안심지대는 아닐 거라는 노파심에 이 글을 쓴다.

 

 

 

 

 

 

 

 

 

 

 

 

 

 

 

 

 

 

 

<제가 독학으로 이 책 저 책에서, dvd에서, tv에서, 그리고 인터넷 검색에서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한 내용을 적은 것이므로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틀린 부분을 발견하시면 지체 없이 저에게 소중한 정보를 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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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3-03-2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지도가 나온다. -> '지도'에 흥분하실거라는 분홍신의 예측.
앗. 내가 좋아하는 지도! -> 것봐..흥분하시잖아? ^^
일단 캡쳐부터 해놓고 본다. -> 허억, 캡쳐까지! 완전 홀딱 반하셨군..ㅋㅋㅋ

페이퍼가 거의 프레젠테이션 수준입니다.
지도가 나와서 그런가? 무슨 해외 진출 전략계획 같은..^^

정말 대단한 우물이네요.
살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해서 겠죠?
저걸 세 받아 돈벌려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에서 만들어야 하는 건데.
흠..예나 지금이나 아쉽네요. 국가도, 부자도..

달사르 2013-03-25 14: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자료 준비 하고 있는 영역이라서, 좀 있어 보이지여? ㅋㄷㅋㄷ

난주 저기는 다 가 볼 지역들이라서, 미리부터 꼼꼼히 준비하는 중이야요.
저 우물(카레즈)는 지금은 나라에서 관리를 하나봐요.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나? 암튼..

지도가 나올 때, 한눈에 싹 보이니, 그간 내가 헛공부한 게 아니었쓰..뿌듯..이럼서
더 좋아했어염. ^^

아이리시스 2013-04-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예요. 달사르님께 담에 기회되면 여쭤봐다겠다, 했던 거.
지형, 지도, 여행, 문화, 실크로드 중에 뭐가 관심사일까, 궁금했어요.

저는 척봐서 어디가 어딘지, 뭐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예사롭지 않아요.ㅋㄷㅋㄷ
사소한 관심 아니고, 신기해서도 아니고, 저도 간혹 저런데 꽂혀서 빠져들고 그러거든요.
예전 시리아처럼..(^^)

달사르 2013-04-28 13:22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아이리시스님 궁금점을 듣고 나니, 저도 제 관심사가 뭘지 궁금해요! ^^
이렇게 궁금하게 생각해주시니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요. 힛.

맨처음에 실크로드에 관심가질 땐 나중에 여행갈 곳, 으로 정했기 때문이구요. 당장 가지는 못하기에 갈 때까지 준비라고 해놓자,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지리 공부도 미리 좀 해놓고..라는 이유가 있었구요. 언젠가 지인이 보내준 사막의 밤하늘 사진은 눈이 시릴 정도로 좋아서 사진 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었지요.

외국 소설책 읽을 때 그네들이 무심결에 쓰는 단어들 중에 지명, 강이름 등이 종종 나와요.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어쩌구..라든지..참, 만화 노랫말 중에도 이런 거 있잖아요?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 이런 것들이 나오면 대략적인 지형지물이 그려져야지 다음번 글을 읽을 수 있겠더라구요.

막연히 상상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건 저자가 강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줄 때 이야기구요. 그렇지 않고 기존의 강 같은 경우는 사실 별 설명을 안 하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음이 답답해 한강에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등을 적어놓으면 한강변을 거닐어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잖아요. 그렇지 않고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도 한강을 거닐어보지는 않았지만 테레비젼에서라든지 어쨌든 눈이나 귀로 접해본 경험이 있어서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근데 외국의 경우는 역사도 몰라, 지형지물도 몰라, 감수성도 약간은 달라, 가치관도 조금 달라, 이런 상황에서 소설을 읽다보면 미묘한 지점을 상당히 많이 놓치게 되거든요. 특히 강 이야기 나올 때는 사람이 조금 감수성에 젖는데 그런 부분을 놏치기가 아깝더라구요.

그리고 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 소설에서 주인공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수리스크로 갔다..라고 적어놓으면 이게 동으로 간건지, 서로 간건지, 더 추운데로 간건지, 따뜻한 데로 간건지..전혀 모르잖아요.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야 거기서 거기지만 러시아같은 큰나라는 사정이 다르니까요. 유럽은 특히나 이 나라에서 저 나라 가는게 무슨 이웃 친구네 가듯이 가니까 더 헷갈리고 말이죠.

근데 제 독서는 대부분 용두사미에요. 읽고플 때 읽고, 귀찮아지면 당장에라도 집어치우고..그래서 제대로 끝마무리한 독서가 별로 없어요..ㅠ.ㅠ

ㅎㅎㅎㅎ 아이리시스님은 독서를 깊이 있게 하시는 스타일이시잖아요. 아이리시스님 페이퍼 볼 때마다 책을 몇 번이나 보면 이렇게 소화된 글이 나올까..감탄한답니다. ^^

아이리시스 2013-04-28 17:56   좋아요 0 | URL
아... 이해돼요. 그냥 지나칠때보다 훨씬 좋겠죠. 사실 파리에서 로마로 가서 이탈리아를 유명도시를 거점삼아, 베네치아, 베로나 이렇게 움직인다고 치면, 저는 이탈리아,프랑스를 정말 좋아하는데도 어느방향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땅덩어리 큰 중국이나 러시아, 아프리카 중동 같으면 더하니까요. 이거 보니까 중국얘기할때 정치말고 지형이나 지리도 한번 공부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너무 먼 얘기^^

실크로드 얘기, 종종 올려주세요. 저도 따라가게요. 후훗. 옛날에 한권 사놓은 실크로드 책이 있긴한데, 정말로 두장을 못넘기겠더라고요. 실크로드 생활을 다룬 다큐는 예전에 본적있는데, 아, 이렇게 관심사 넓혀가는 것도 좋은것 같아요. 사막의 밤하늘 사진을 제게도 보여주세요^^

그리고 독서라면, 저도 그래요, 언제나 그렇죠. 검색하거나 조사해서 소화되기 직전의 것들을 써놓고 자주 읽어볼때도 있죠. 예를들면, 예전에 동유럽 페이퍼 같은거요. 달사르님 화이팅! 길게 설명해주신것 감사해요. 이해가 잘됐어요!^^

달사르 2013-05-10 15:3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럴게요. 실크로드 이야기. 한동안 쉬었는데 또 짬짬이 자료를 찾게 되면 올릴께요.
여기 올리는 거는 제 공부 목적도 있기 때문에 저에게도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기억력이 짧아서 돌아서면 까먹어서요. 여기 올려놓고 수시로 봐야되거든요. 힛.

저도 제가 공부하는 분야에 아이리시스님이 관심 보여주시면 기분이 좋아요. 와. 좋아. 이렇게요.

아! 사진! 사진은 밤하늘만 있는 게 아니라서..
ㅎㅎ 담번에는 밤하늘만 찍은 사진을 보내라고 할께요. ^^
 

 

 

 

 

 

 

 

 

 

 

 

 

 

 

 

 

 

페르난다는 외부에서 (백년의 고독의 주인공들인) 부엔디아 가의 일원이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부엔디아 가로 시집 온 사람이다. 그녀는 바다에서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어느 음울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음산한 밤이면 돌을 깐 골목길들에서는 부왕들의 마차들이 여전히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냈으며, 오후 여섯시면 서른두 개의 종탑에서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비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묘석을 깐 저택 안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고 공기는 집안 곳곳에 멈춘 듯 정체되어 있었다. 페르난다는 종려나무로 장례용 화한을 엮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해동안 누군가 옆집에서 연습삼아 치는 구슬픈 피아노 소리 만을 바깥 소식으로 듣고 자랐다.

12살이 되어서야 페르난다는 겨우 집 밖을 나와 두 블록 밖의 수녀원 학교를 마차를 타고 다녔다. 페르난다는 장차 여왕이 될 학생이었기에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라틴어로 시를 썼고, 클라비코드를 연주했으며, 신사들과는 매 사냥에 관해, 주교들과는 혹론에 관해 대화를 하고, 외국의 통치자들과는 국사를, 교황과는 신에 관해 설명하는 법을 팔 년에 걸쳐 배운 뒤 집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종려나무로 장례용 화환을 엮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어느날 가슴에 황금 메달을 단 군인 하나가 찾아왔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아버지는 페르난다를 부엔디아 가가 있는 마꼰도로 보냈다.

 

 

 

클라비코드는 페르난다의 처녀 시절을 대표한다. 동시에 부엔디아 가의 새로운 역사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부엔디아 가의 사건의 시발점이자 고독의 매개물이 되었던 자동피아노는 페르난다와 딸인 메메를 통해 클라비코드로 대체된다. 메메를 수녀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클라비코드는 부엔디아 가에 들어왔다. 남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여전히 정부의 집에 살면서 본가의 부인을 가끔 찾아 부인의 정부 노릇을 했다. 버림받음으로써 유발된 권태 속에서 페르난다는 낮잠 시간에 꼬박꼬박 클라비코드 연습을 했으며 아이들에게 온 편지를 읽었다.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취미였는데 아이들에게 보내는 자상한 편지 속에는 단 하나의 진실도 없었다. 페르난다는 아이들에게도 숨겼던 자신의 고통을 어디에 털어놓았을까. 페르난다의 클라비코드는 그래서 음울한 음색이었을까.

 

 

클라비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탄젠트(피아노의 해머와 같은 장치)가 튀어 나와 현을 쳐서 소리가 나게 되는데 이때 소리는 피아노의 단단한 소리보다는 기타의 부드러운 소리에 가깝다. 그래서 기타줄의 울리는 소리를 클라비코드에서도 낼 수 있다. 이를 베붕 기법이라고 하는데 페르난다는 이 베붕 기법에 혹, 위안을 받았을까. 클라비코드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자신의 현으로 울었을까.

 

 

 

 

딸 메메는 첫 방학을 맞아 집에 왔으며 방학 때도 오후엔 매일같이 클라비코드를 연습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 때 집안의 어른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죽었으며 졸업연주회와 더불어 탈상을 했다.  경망스러운 성격의 메메는 클라비코드 앞에만 서면 성숙한 태도로 변했는데 이는 향후 몇 년간이나 지속된 각종 연주회에서 알 수 있다. 물론 이 태도는 메메의 극기심 때문이었다. 메메는 어려서부터 완고한 성격의 어머니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며 수녀들까지도 박물관의  화석처럼 여기는 클라비코드를 매일같이 연습한 것도 그 이유였다.

 

 

 

 

사실 메메 그 자신은 클라비코드 따위는 관장기로나 쓰라고 던져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메메에게 애증의 관계가 되어 버린 클라비코드. 그러나 그 연주는 더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보이지 않는 옷처럼 고독을 걸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랑이 같은 의미이듯이. 굴다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메메의 마음에 잠시 닿아본다.

 

사랑을 알게 된 메메는 어머니에 의해 감금 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메메는 평화롭게 잠을 잤으며 규칙적으로 식사를 했고 소화도 잘 시켰다. 다만 목욕을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했는데 저녁나절이면 노랑나비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나비들에 숨어 목욕탕으로 스며들곤 했던 연인은 어느날 결국 들켜 척추에 총알을 맞았다. 발가벗은 몸으로 전갈과 나비들 사이에서 사랑의 갈증으로 몸서리를 치던 메메는 총 소리와 연인의 고통스런 울음을 듣자 그순간부터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 마지막 노랑나비가 선풍기  날개에 부딪혀 찢겨 죽었을 때 그때서야 연인의 죽음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메메의 비통한 마음 위로 클라비코드 선율이 나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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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2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던 여름이 떠오르네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나고, 그 책을 들고 나가서 누군가를 만났던 기억도 나고.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커녕 클라비코드, 라니.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ㅎㅎ

달사르 2013-01-29 13:2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 스쳐 읽다가요. 갑자기 저게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하프시코드는 들어봤는데 클라비코드는 도대체 뭐야? 이럼서 막막 네이버 검색했다니까요. ㅎㅎ 어떤 소리를 내는지 어떤 악기인지 알아야 책 진도가 나갈 거 같아서 말이죠.
아니..무슨..피아노처럼 생겨서 저런 소리를 내다니..사기 아냐? 막 이럼서 흥분도 했구요. 클라비코드 덕분에 엄마 페르난다와 딸 메메 이름을 겨우 외웠어요.ㅠ.ㅠ

등장인물들이 많아도 너무 많지여? 사전정보 없이 책 읽다 완전 당황했네요. 끝도 없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뱅뱅..안그래도 감기 걸려 멍~한데 말이죠.

다락방님은 저 책을 여름에 읽으셨구나. 누군가도 만나고 말이죠. 후훗. 저는 이 책 들고 병원에나 가야겠어요. 아무래도 손님에게 독감이 옮은 것 같아요..쿨럭..ㅠ.ㅠ

transient-guest 2013-01-3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참 정신없이 읽었던 것 같아요. 환상같기도 하고, 또 중남미의 어지러운 사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신화와 우화적인 이야기들을 가져다가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것 같아요. 작가는 이 책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저는 사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클라비코드는 피아노의 초기형태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왠지 르네상스의 식탁음악같은 소리를 내주는게 좋더라구요.

달사르 2013-03-21 15:41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출판사의 책도 궁금해서 봤더랬어요. 근데 정신이 없더라구요. (혹시 트란님이 읽으신 책도 이거 말고 다른 출판사? ^^) 한 작가의 번역물이 번역가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해석되는구나..싶어 몇 페이지 정도 비교해가면서 읽다가 때리치웠어요. 비교하며 읽는 건 책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더라구요.ㅠ.ㅠ 그래서 내년 즈음에나 책 내용이 가물거릴 때 즈음에 다시 읽으려고 얌전히 모셔놨슴돠.

읽을 때는 중남미 소설인지 뭔지도 모르고 읽었는데요. 나중에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중남미 관련 이야기로구나, 실지 역사가 소설에 저렇게 가미되는구나..등등을 알았어요. 그쪽 역사에 대해 미지하니까 소설로 읽어도 금방 눈치채지는 못하나봐요. 그 나라 사람이면 금방 알 수도 있었을까요.

ㅎㅎ 식탁음악. 저도 그래서 좋았던가 봅니다.

transient-guest 2013-03-25 06:39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건 민음사에서 나온건데요. 다른 출판사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근데 비교해서 함께 읽으면 책읽기가 어렵겠네요.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 요즘에 나오는 번역팀이 하는건 좀 별루더라구요.

탄하 2013-02-10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특이한 소리네요. 얼핏 들으면 기타소리랑 비슷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약간 풍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뿐만아니라 건반도..꼭 무슨 반항아처럼 피아노 건반색과 뒤집어져 있네요. 이런 디자인도 참, 멋지군요. 와..설날 아침부터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서재에 너무 오랫동안 안 들러서 인사라도 하고 갈까 들렀더니, 마구마구 행운..^^

<백년의 고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탐닉의 대상이죠. 전 아직 못 읽어봤어요. 문학의 고전은 빠져들면 끝도 한도 없어서 좀 짧은 것들만 가끔 맛보고 있답니다. 흐, 그래도 막연히 놔둘 순 없고, 올해는 몇 권 골라 읽어야 겠네요.

그럼, 설연휴, 가족들(특히 조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좋은 책도 많이 만나시고,
...또 멋진 글로 다시 만나요.^^

달사르 2013-03-2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맞지여? 건반색이 뒤집힌 걸 본 첫 대면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반항아 코드. 좋~잖아요. ^^ 소리 조차 사기캐릭이기도 하구요. 저 건반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요. 이 무슨..이럼서요.

맞아요. 몇 권만! 많이 골라놔봤자 다 읽지도 못하고. 그저 최소한만. ^^ 저도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친구추천으로 사놨구요. 한번 슬쩍 읽어봤는데 담에 제대로 다시 읽어보려고 냅뒀답니다.

ㅋㅋㅋㅋ. 우린 둘 다 게으름뱅이에욧. 근데 그 점이 특히! 맘에 들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4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 독특하군요. 근데 동영상 어떻게 올리나요. 전 올리며 왜 자꾸 깨지죠 ?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말입니다. 흠... 이상하군요.

백년 고독.. 아주오래전에 읽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말이죠. 흠흠..

달사르 2013-03-24 14:21   좋아요 0 | URL
아. 블로그 마다 올리는 방식이 다른가봐요? 저는 여기서 어떻게 했나면 말이죠.
우선, 모드를 html로 바꾸고 나시구요. 저게 어딨냐하면..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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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처음으로 소설의 세계를 알게 해 준 사람은 김훈이다. 그래서 괜찮은 소설을 발견하게 되면 아무래도 김훈과 비교를 하게 된다. 김훈은 이런 식인데 다른 작가는 이런 식이구나, 라고. 내가 소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지만 김훈은 한 문장으로도 사람을 홀린다. 그 문장이 쌓이고 쌓이면 문장의 감옥에 갇혀 때로 오랜 시간을 방황하게 되기도 한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김훈은 산 정상에서 바둑을 (실제로) 두는 도인들 중 한 명이다. 독자인 나는 바둑을 구경하며 곁을 지키는 강아지라고나 할까. 모형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김훈의 건축물은 빈 공간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그제서야 김훈은 벽돌을 쌓는다. 쌓는 벽돌이 성이 될지 너른 광야가 될지는 김훈도 모르고 독자도 모른다. 김훈은 글을 써나가면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의 세계를 펼친다. 등장인물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등장인물들이 가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며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남긴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한없이 넓어질 수 있다. 그것이 비루하든 고독하든. 김훈의 소설은 그래서 독자가 소설에 빠져들기 쉽다. 건물을 짓는 걸 구경하다보면 독자도 덩달아 응원하게 되고 마치 같이 집을 짓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된다. 어느순간 고개를 들어봤을 때 김훈의 건축물에 들어와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물론 빠져 나오는 비상구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김훈은 아니다. 비상구는 셀프. 본인이 알아서.

 

 

 

 김애란은 (이미 다 두어버린) 바둑의 해설자다. 소설의 첫 페이지든 마지막 페이지든 어느 부분에서 한 번 정도는 김애란의 완성된 바둑판이 드러난다.그래서 가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빠지기도 한다. 

 

 서윤이 태국 지폐를 꺼내 은지에게 건넸다. 그러곤 문득 자신이 벌써부터 은지의 영어에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외국인과 단둘이 있다면 어떻게든 얘기해볼 수 있을 텐데. 같은 한국 사람이 곁에서 자신의 영어를 '평가'하고 있다 생각하니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두 사람이 겪을 불화의 작은 씨앗이 될 터였다.                   (p.259 호텔 니약 따)  

 

 즉, 독자는 작가가 가리키는 방향 외의 다른 방향을 보기가 힘이 든다. 작가가 독자의 시선을 한정시켜 놓는다. 나는 왠지 작가가 일부러 '한정'시키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김애란의 세계관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루함을 '한정'된 세계 속에서 진저리나게 느껴보라고, 일부러 '고립'시키는 것 같다. 고립이 효과적이기 위해선 아무래도 배경이 하나인 것이 유리하니까. 독자는 집요하게 반복되는 문장을 읽으며 배경 속에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p.85. 물 속 골리앗)

 

 물러지던 날들이 (있었다), 영향을 주던 시간이 (있었다), 자꾸 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처럼 김애란은 하나의 배경을 제법 여러 번의 반복으로 해석한다. 그 반복은 술어를 생략하면서 리듬을 타기도 하고, 시야를 바꾸면서 배경이 확대되었다 축소되었다 한다. 자꾸만 비가 내리는 시절이라는 평범한 말을 '세계'라는, 그리고 '지구'라는 단어를 써서 시야를 바꾸고 '당도를 잃고''싱거워지던' 이란 형용을 쓰면서 단일한 배경의 음영이 바뀐다. 물론 이 사건은 '내게 영향을 주는 시간'이기도 해서 세계적인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이 되어버리고, 나와 세계는 연결이 된다. 브리핑에 비유하자면 완공된 건축물을 한 장면 보여준 후, 암전이 되었다가 하나씩 한 부분을 훑으며 세세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다. 얼핏 봤던 전체를 떠올리며 혹은 떠올리려 애써며 독자는 김애란의 후래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게 된다. 얼핏 김애란이 쳐놓은 그물이 눈에 뻔히 보이는 듯해서 갑갑한 느낌이 들 듯도 싶지만 그물은 생각보다 커서 읽는 내내 갑갑한 느낌이 들기는 커녕 벌써 마침표가 눈 앞에 있는 걸 보며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다.

 

결론은, 김애란의 소설은 재미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너무 재미있어서 후딱 읽게 된다. 물론 읽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다거나 시원한 청량제를 들이킨 느낌 같은 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책을 읽기 전의 세상에 비해 읽고 난 후의 세상이 변한 게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의 '열쇠'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김훈의 비루함이나 던적스러움과 약간 다른, 이 지겹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미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차라리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워지지만,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만, 그 뿐이지만 말이다. 김애란 역시 '열쇠'를 독자의 손에 쥐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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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1-10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현재까지 읽어본 한국의 현대작가는 대략 김영하, 정이현, 김중현정도가 되고, 김애란, 김연수, 신경숙, 은희경 작가는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에요. 위의 글을 보니까, 정말 김훈의 스타일을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읽어가면서 소설이 펼쳐지는, 일체의 부연설명이 없는 현장감? 김애란 작가는 그에 비해서 3인칭으로 소설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작법인가봐요. 궁금합니다. 요즘 고전문학이나 다른 장르도 꾸준히 읽지만, 상대적으로 소홀이했던 한국의 현대소설과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차차 모두 읽게 되겠죠?

달사르 2013-01-13 14:13   좋아요 0 | URL
트란님도 조금씩 현대작가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중이군요. 저도 그래요. 저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요.
생각해보면 중지했던 독서를 새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독서를 스톱시키고 사유에 몰입하게 해주는 작가가 있는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전자는 아래 소설 체인지킹의 작가 이영훈, 후자는 김훈이에요. 김훈 소설은 읽고나면 한동안은 암것도 못 읽겠더라구요. 그 여운이 너무 진해서 말이죠. 그래서 김훈의 작품은 오래도록 생각을 하게 되요. 몇 달 혹은 몇 년씩 말이죠.

김애란의 3인칭 소설, 전지적 작가 시점은요. 좀 고리타분하지 않나 싶었는데 의외로 김애란의 문체와 잘 맞았어요. 깔끔하면서 허전한 그 무엇. 현대인이 잃어버리고 가는 그 무엇의 정체가 도대체 무언지, 그걸 김애란은 말하려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탄하 2013-01-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물속 골리앗>이 있어 눈여겨보고 있던 책이예요.
그 단편은 정말 잘 쓴데다 제 경험과도 유사한 점이 있어 아주 마음 속 깊이 남아있죠.
허리까지 쏟아진 비,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비, 끊겨버린 전기, 수도...
거기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마음.

저도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재밌다는 것에 매우 동의합니다.
이 책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지금 쏙~!

달사르 2013-01-13 15:01   좋아요 0 | URL
네. 단편들 모음에 <물속 골리앗>이 있던 걸 저도 봤어요.

끊겨버린 전기, 수도..는 어쩜 인류의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읽으면서 더 섬짓해지더라구요. 분홍신님의 경우 유사한 경험이 있어서 더 그랬겠어요. 아..정말이지 누군가 그리워지는 마음은 저럴 때일수록 더 커지잖아요. 괜히 서글퍼지기도 하고, 불쌍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겨내야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ㅎㅎ 분홍신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닷!!!

라로 2013-01-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애란의 소설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재밌다니 저도 읽고싶어요!! 어느것부터 읽을가요???갑자기 고민,,ㅎㅎㅎㅎ

달사르 2013-01-13 15:0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저는 김애란의 소설이 이게 두 번째에요. 장편을 하나 읽었는데 그건 저와 좀 안 맞더라구요. 그래서 한국작가는 나와 코드가 안 맞나..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도 좀 주저하다가 읽었는데요. 읽고나서 대박! 외쳤지 뭡니까. 이 소설은 권해드리고 싶어요. 한참 나중에라도 말이죠. ^^

노이에자이트 2013-01-1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씨가 이상문학상을 받더군요.역대 최연소라고 합니다.

달사르 2013-01-21 13:17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축하를 드려야되겠어요. 이상문학상 이미지와 맞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