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시
잠시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아니, 세상이 여전히 그대로인 게 이상하다. 나는 바뀌었는데, 세상이 그대로인게 당황스럽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다시 생각하니, 세상이 그대로여서 고맙다.
내가 바뀌는 잠시의 시간은 고작 1분일 수도, 한 시간일 수도,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을 우리가 가지는 건 무척 어렵다. 그 잠시의 시간을 위해서 때론 1년이, 때론 10년이, 때론 평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변하는 잠시를 가지게 된걸까.'변하는 잠시'.. 좋다. '변하는 잠시'가 있기에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잠시와 영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엔, 이 둘은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변하는 잠시'를 통해 변하지 않는 자연의 소리가 간혹 들리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
내가 얼마나 변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래 바라던 일 일수록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 변화 이전이 도리어 실감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다시금 아플 수도 있고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판단을 전적으로 내가 했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부지런해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좀더 느리게 갈 확률이 크다. 순간과 영원이 같다면야 느리게 가는 발걸음이 더 빠를 수도 있게 되니까.
2.
퇴근 후 내 방에 들어온 나는 친구와 약속한 도선생의 <죄와 벌>을 펴들었다. 5월 1일부터 같이 보기로 했지만 미리 한 페이지를 들춰보고선 약간 실망을 했기에 호기심이 반감된 상태였다. 첫 페이지는 이랬다.
7월 초 굉장히 무더울 때, 저녁 무렵에 한 청년이 S 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쓰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듯 천천히 K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청년이 주인공인 듯한데, 세를 얻어사는 눈치다. 그렇담 '세입자에게 빌려 쓰고 있는' 이 아니고 '세입자로서 빌려 쓰고 있는' 이라든지, 그냥 세입자란 단어를 빼고 '빌려 쓰고 있는' 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님 혹시 골방의 주인이 따로 있고 이 골방을 세 든 사람이 또 따로 있어, 우리의 주인공이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골방을 소위 말하는 전전세로 빌렸단 말인가. 하..러시아에도 전전세의 개념이 있단 말인가..그치만 골방 따위를 전전세로 빌릴 것 같지는 않은데, 책을 더 읽어봐야겠지만 그래도 전전세는 왠지 아닐 거 같다.
두번째로 실망한 건, 지명(도로명, 골목명, 다리명 등)을 약어로 지칭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책이든 외국 책이든 소설 류는 특히나 읽을 때 지명을 중요시하며 읽는 내 습성으로 봤을 때 이런 약어가 나오면 책을 조용히 덮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 친구와 같이 읽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대충 읽어본 명작을 다시 제대로 정석으로 읽어보고픈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투정을 부렸더니 친구는 약어로 된 부분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는 재미를 가지라고 조언을 해준다. 내가 워낙 지도를 좋아라하고, 지도를 펴놓고 소설을 보는 스타일임을 익히 아는지라..
흠..그러지뭐. 내가 죄다 원래 도로명, 원래 골목명, 원래 다리명을 알아내고야 말겠어!! 불끈!
정자세를 하고 첫페이지를 다시 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옷매무새부터 남루했고 돈까지 없어서 휴학생 신분이었다. 그나마 과외도 끊겼고 집에서 근근이 붙이는 돈도 오지 않아 방값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요행히 팔아치울 물건은 있어서 노파가 운영하는 전당포에 들러 물건을 맡겼고 받은 돈으로 술집을 들렀다. 이때부터 라스콜니코프에게 쯧쯧..소리가 나왔다. 이놈이놈..20대 파릇파릇한 놈이 과외 좀 끊겼으면 노가다라도 해서 학비를 마련하든지 해야지. 벌써부터 전당포나 들락거리고..게다가 그 돈으로 술이나 퍼마시다니..
집에 돌아온 라스콜니코프는 전보를 받는데 이 전보 내용에 아..나는 감동을 했다. 우리나라 식 귀남이 신파와 비슷한데 아들 귀남이를 위해서 누이 후남이가 희생을 하고 엄마가 희생을 해서, 엄마는 삯바느질로 번 돈을 귀남이 학비에 보태고, 후남이는 싹퉁머리 부자집에 들어가 힘겹게 과외를 해서 번 돈을 귀남이 생활비로 보내고, 그 와중에 후남이는 추문에 쌓이지만 꿋꿋하게 견뎌내어 오해를 풀고 좋은 집에 혼담이 오고가고, 신랑 될 사람이 후남이를 위해 손을 써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둥, 우리 집의 보물 귀남아, 너를 위해서라면 우리들은 이 시련을 참을 수 있어, 괜찮아, 사랑한다 귀남아..식의 전보였는데 아직도 내 주위에는 이런 엄마(아빠)들이 많다. 사고뭉치 아들을 위해 늙은 육신을 아직까지 꿈지럭거리며 노동을 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주위의 엄마(아빠)들을 보면서 한심하면서도 그 애틋한 마음에 답답했는데 으매...러시아에도 저런 엄마가 있었단 말이지. 에이구..짠해라..
내가 두 눈이 크게 떠진 건 이 감동적인 전보를 읽고난 라스콜니코프의 반응부터다. 전보를 읽자마자 미안해하기는 커녕 분개해하는 라스콜니코프는 누이의 결혼에 반대표시를 하면서 그 이유를 열 개도 더 대며 조목조목 (혼자 속으로) 따지기 시작한다. 누가 법대 휴학생 아니랄까봐. 말은 잘한다. 머릿 속에서 생각이 타래처럼 흘러나오는 걸 보면서 누이에 대한 애정으로 인한 분개인지,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인한 분노인지,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감정들이 뭉뚱거려지면서 엉뚱한 쪽으로 사건이 터지는데, 돈많은 전당포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죄목을 씌워버린 것이다.
돈이 너무나도 필요한 라스콜니코프.
돈은 많지만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전당포 노파.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에게 후원해줄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고 있고,
노파는 자신의 사후를 관리해줄 무덤 관리자 등을 바라며 자신의 돈을 쓰려고 하고 있고,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돈도 아니면서 노파의 허투루 쓰는 듯한 돈에 분개해하고 있다.
그럴 듯한 대의명분까지 만든 라스콜니코프는 한달에 걸쳐 생각을 했고, 생각만으로 이미 죄의 굴레를 덮어쓴 듯 수시로 흠칫거리며 놀라게 된다.
노파의 살해는 꿈처럼 몽롱하게 이루어진다.
자다 깨어 꿈결처럼 길을 걷다 노파의 살해 시각을 정하고
또 자다 깨어 살해 도구인 도끼를 얻는 일이라든지 살해 후 집 앞에 사람이 있었음에도 운에 운을 거듭해 아무에게도 눈에 띄이 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든지.
그리고선 다시 잠에 빠지다 깨다를 반복하며 살인의 증거품들을 처리한다. 역시나 꿈인 듯이.
열과 오한을 반복하는, 이제는 살인자인 라스콜니코프의 불안한 마음은 읽는 사람을 역시나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덩달아 무서워져서 읽다마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라스콜니코프의 저 살인도 '변하는 잠시'에 들어갈까. 라스콜니코프는 이제 절대로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텐데. 그의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묘사는 너무 리얼해서 읽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내 옆에 살인자가 있는 듯해서 자꾸 두리번거려진다. 이제 1권의 절반도 안 읽었는데 많이 무섭다. 친구가 각오를 하고 읽는다고 한 말의 이유를 알겠다. 근데 무서운데도 나는 오늘 밤에도 조금은 읽을 것 같다. 스스로 선택한 '변하는 잠시' 를 지나친 라스콜니코프의 이후가 궁금하니까.